도대체 몸 어디가 잘못된 건지 궁금해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동시에 하려고 수면마취를 했다
우선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팔에 주사바늘을 꽂은 채로 30분 가량을 누워있어야 했는데,
난 특히 바늘이나 샤프처럼 끝이 뾰족한 것을 상당히 무서워하기 때문에
어찌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지 30분이 다 지나갈 무렵에는 바늘을 꽂은 팔에는 마비가 왔고
마취제가 들어가기도 전에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어떤 원리인지는 이해는 안가지만 왼팔에는 주사바늘이 여전히 박혀 있는데도(핏줄은 도대체 얼만큼 두껍고 얼마나 직선인걸까) 
사람들이 자꾸 그 팔을 들었다 놨다 하고

심지어 나를 왼쪽으로 돌아눕히면서 왼팔을 몸통 밑으로 쑤셔박으려고 해서
난 공포 때문에 가뜩이나 잡고 있던 마지막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수면 마취약이 들어갈 때는
팔이 뻐근했고 코에는 기분 좋은 마취제 냄새가 맡아졌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내가 간호사 한 분의 손을 더듬어 잡았던 거다

그 간호사 아가씨는 내 손을 꼭 마주 잡아 주었다

마취제라는 게 있어서 다행이다

그 사람들은 그걸 '잠꼬대'라고 불렀다
예전에 꿈에서 엄청나게 정교하고 합리적이고 어려운 인문학 공식을 만든 적이 있는데
물론 나에게는 그런 지능이 없기 때문에 잠이 깨면서 동시에 내용은 다 까먹었지만
대단한 것이었던 건 틀림없다
그러니까 분명 꿈에는 무의식 속에 파묻혀 있는 뭔가에 닿는 빙산의 일각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별 건 아니지만,
무의식이라는 공간에 어떤 원리로 이것저것들이 들어가게 되고 그 중 어떤 것들이 어떤 자태로 남게 되고
그것들이 기회가 닿을 때 어떤 자태로 표출되는 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마침 내 속에 있는 그 공간에 마침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상당히 재밌다
그러니까 매일 들고 다니던 가방 속에 웬 랜덤 포장 선물 세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두근두근 하는 거랑 비슷하다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

내 팔에 주사를 찌른 간호사인지 손을 잡아준 간호사인지 모를 아가씨가 나를 꽉 누르면서 말했다
내 체형이나 체질은 엄마를 많이 닮았는데
마취제 따위에 별 영향을 잘 안받는 엄마가 검사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나갔던 게 첫번째였고
그 딸인 내가 역시 검사가 끝나자마자 좀 더 누워있어야 한다는 간호사들의 만류에도
자꾸 일어나겠다고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쇠막대기를 흔들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적 없고, 저 나가면 안돼요?"

간호사는 안된다고 했고, 1분 있다가 다시 내가 쇠막대기를 흔들어댔는데도 짜증을 안냈다
대단한 인내심이다
나도 월급만 많이 주면 나 정도 인간은 참아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난 결국 삼 분 만에 내 발로 걸어 나왔다

하여튼 결론은 내가 수면 마취 상태에서 그 사람들이 '잠꼬대'라고 부르는 걸 영어로 했다는 건데,
난 경계가 허술한 인간이라 잠시만 영어를 쓰는 환경에 있어도 영어랑 우리말이 뒤섞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전혀 영어를 뱉을 환경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게다가 무의식 중에 영어로 하고 싶은 말같은 건 전혀 없다

그래서 너무 신기하다
난 대체 왜 무의식의 공간에 영어따위를 재어놓았을까
무엇보다 난 내가 중얼거렸다는 그 말의 내용이 알고 싶어 죽을 거 같았다
분명히 멀쩡한 상태의 내가 추측할 만한 내용은 아닐 것 같다
뭘까 뭘까 뭘까
뭘까

어차피 기억이 안나는 거라면 지어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아서
오늘은 하루 종일 그 목록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마취상태에서 굳이 영어로 말할만한 것들의 목록
1. 음....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