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성당

2011.04.12 09:35 from 동선

우리집안은 종교가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불교에 가까운 편입니다
엄마는 항상 종교는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열살즈음에 몹시 아팠는데
엄마는 이유도 없이 사십이도를 훌쩍 넘어가게 열이 나는 내 침대 옆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병원을 순회하며 방언을 읊어대는 '예수쟁이'들을 가열차게 물리쳤습니다
당신은 속까지 썩어가면서도 어디에 의지해야할 지 결코 헷갈리지 않았던 겁니다
덕분에 나는 그 시끄러워 죽을 거 같은 방언을 듣지 않고 그나마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라크에 갔을 때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서 뒷산 작은 절부터 시작해서, 산 아래에 있는 동네 성당, 그 옆에 있는 원불교당, 그 다음 코스는 심지어 교회,
까지 돌고서 저녁께야 집에 와서 밥을 차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고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엄마에게 그 장소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당신의 가슴이 백두산처럼 폭발해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던 게 확실합니다


나는 종교학을 전공했는데
역시 불교 쪽에 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을 버리려면 이 모든 걸 관장하는 신에게보다는
이 모든 것 그 자체에 자신을 내던지는 편이 더 만족스러웠던 거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야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새벽에는 술을 마셔야했기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라크에 갔다와서는 이슬람을 공부해야했는데
이슬람 서적의 대부분은 기독교선교회가 펴낸 것인데다가
나머지 책들의 대부분은 미쳐버리게 복잡한 그 동네의 역사표를 다루고 있어서(다뤄야 하지만!)
도대체가 공부하기가 싫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예수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과 부딪히고, 고리 안에 들어가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만 하고,
그리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내 감정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간단한 말씀이
얼마나 인간이 하기 힘든 말인지, 얼마나 위대한 지 점점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부처님이 덜 좋아진 건 아니다

나는 누가 무엇을 믿냐고 물어보면
나 자신이라고 대답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내 취향과 내 기준과 내 의지가, 옳거나 최고는 아니겠지만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런데 서른이 넘고서야 깨달은 게 있다
나는(그리고 선호도. 선호야 미안.) 내 의지로 무언가를 이룬 적이 없다
나는 운좋게 내게 주어진 것들이 시간과 관성에 따라 내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에
항상 수동적으로 반응하면서 그것들을 우려먹고 살고 있는게 확실하다
그것도
그걸 우리고 우리고 우려서 맛도 더럽게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거다
안타깝고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얼마전, 오랜 지인을 만났다
유일신 종교와는, 서울에서 평양만큼이나 거리가 멀었던 아가씨인데
성당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별로 낯설거나 놀랍지 않았다.
그날 밤에 나는 네 살이 된 이안이를 처음 만났고(뱃속에 있었을 때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아가씨에게서 성경책과 기타등등을 선물로 받았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서 성당에 나가겠다는 약속을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이 주째 성당에 나가서 예비자교리 같은 걸 듣고 있다
여전히 내 안의 가시가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걸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두번 째 가던 날에 그만 봉사자들에게 버럭질을 하고 말았다
아무도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알려주지를 않고 물어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열이 받았던 거다
나는 시스템의존적 인간인데, 그게 제대로 돌아가질 않으면 쉽게 열받는 편이다
그러지말자, 그러지말자, 그러지말자고 생각한다
누군가 죽어서 사흘이 지났었다고 한다
돌멩이로 무덤을 틀어막았고, 그래서 안에서 썩어가는 시체에서 썩어가는 냄새가 났다고 한다
예수님이 거기다대고 '돌을 치워라'고 말하자
죽은 자가 살아나서 걸어나왔다고 한다
막혀있는 돌을 치우고 안에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안에서 썩게 되니
돌을 치우라고.



+



하느님이 카인이 바친 제물이 마음에 안들어서 화를 내셨다고 했는데
성경에 그 이유가 나와있지 않아서 궁금했다
공부를 이끌던 봉사자분은 한참 버벅대더니,
하느님도 취향이 있지 않겠냐는 요지의 대답을 하고서 다음 시간에 수녀님이 대답해주실 거라고 했는데
그 다음 시간에 아무도 대답을 안해줬다
사실 그것도 성질을 부렸던 이유 중 하나다

하긴,
하느님도 취향이 있다는 얘기는
재밌긴 했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2 :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