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라는 데서 일했었다
<팔다리>는 민주주의를 '지양'하는 단체였는데,
이끄는 역할을 하는 분 건강이 흐느적, 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일을 하는 단체 중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라는 데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팔연대>는 진짜 단체같다
그러니까 구성원이 바뀌어도 색은 달라질지언정 큰 맥락은 굴러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시기 팔연대의 특정 활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팔연대가 하는 일에 방긋 웃으며 응원을 하고, 참가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
댓글이라도 하나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팔연대의 활동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이거나(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취향을 말하는 거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것들에서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팔연대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만든 변화다


2.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는 문화교류 단체였다
사실 '문화'란 게 범위가 무지막지 하던데 우리가 주로 다뤘던 건,
잘 나가는 음악, 잘 나가는 글, 잘 나가는 그림, 등이었다
나는 때로 팔다리의 일들을 즐겼고, 어떤 일은 벌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권위적'이라며 투덜거렸다
팔다리를 이끌던 사람과 나는 기본적인 눈은 비슷했는데
취향, 특히 문화에 대한 취향은 달랐다
그는 컴퓨터에 손만 대도 망가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웃는 표정으로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작가였고, 난 음악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린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에 가서도 게스트하우스에 쳐박혀 술만 마셔대서 친구들을 걱정시켰고
('팔레스타인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나와서 좀 돌아다녀' 라는 말을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는 술집에 쳐박혀서 아락과 맥주를 마시며 꼬장을 부려댔다

나는 팔다리에서 문화에 대한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라말라에 넘쳐나는 문화적 활동들, 외국 NGO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한 발만 내디뎌도 우리 역시 그 반경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난 대부분 내 존재가 민폐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팔레스타인이건 어디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것에 대해서는 우선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가 다루었던 건 '질 좋은' '고급 문화'들이었는데,
좀 더 대중적인 것들, 특히 영화처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그들의 노력이 '조잡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눈은 항상, 계속, 쭉, 나를 따라다녔다


3.
나는 '분노'를 가지고 이라크에 갔었다
이라크에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도 안썼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야단을 치고, 걱정을 해줬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 쉽다는 스페인어와 남미에 가겠다는 막연한 인생계획과 전공이었던 불교를 갖다버리고
말도 안되게 어려운 아랍어와 종종 여행금지지역이 되는 분쟁지역들과
복잡한 역사를 무조건 같이 공부해야하는 이슬람으로 전향했다
전향해야했다
그렇게 되었다
사랑은 어쩌다가 싹텄다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실체가 뭐였든지간에 내 눈에 비친 것만 보자면
명예욕도 있었고, 관성도 있었고, 희생정신도 있었고, 모험심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시 말하지만 분노였다
대개 명예욕을 가진 인간들이 뻘짓을 해댔고
그래서 나는 그 인간들과 명예욕을 싸잡아서 욕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니' 라는 질문까지 들었지만 난 끄떡도 안했다
하찮고도 하찮아 보였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간혹 그런 그들을 위해 통역을 해야할 때면 토악질을 했다
성질이 나면 주변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런 나를 참아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뭔가를 찾아갔던 거다


4. 
나는 대학에서 동성애인권운동에 막연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은 그때도 명확했고, 인권운동단체들의 방식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대학에서 세미나를 구실로 몰려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게 내 방식이었는데
때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할 때면
'보여주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전혀 이상하지도 다를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우리들이, 게이고 레즈비언이고 트랜스젠더고 하여튼 그렇다는 걸
눈 앞에서 자꾸 얼쩡거려서 익숙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제를 열었고, 영화제에 참석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사랑에 빠졌다
난 첫사랑을 8년째 짝사랑 중이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그 인연 중에 청년이 있었고,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헷갈리지 않는 걸로 고민하기 보다는
레즈비언-이성애자-바이섹슈얼-에라모르겠다, 로 전향해갔고
그 과정이 결코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냥 그게 내 삶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부류 중 '정치적 레즈비언'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성애자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여성과의 연대를 섹슈얼한 부분까지 확장한 셈이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점들은 남아있다
나는 애초에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간이라, 그렇게 모호한 지점들이 눈에 밟히면 허공에 붕 뜬다
어떤 아가씨들은 성폭력의 경험을 안고 있다
그들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지언정 섹슈얼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때도 있다
또는 애초에 남자를 멀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여성 게이, 즉 레즈비언 사회 안에서 관계를 찾고 안착해 가는 것을
나는 '당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인정하거나 판단하거나 용납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삶이었다
나 자신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정치적 레즈비언들만은 싫었다
그들의 노력, 시도, 주장, 그게 뭐든 간에 거기에는 '가식'이 들어있었다
그건 실제로 그 삶을 '삶'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든 고통과 사랑과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5.
방법적인 타당성, 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주장은 노동자가,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퀴어운동은 이반들이,
때로는 '그들만이' '제대로'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들 말을 듣고 함께 웃어줄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거다

대안문화판에는 재수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나는 부모가 의사고 교수지만 학교를 자퇴했고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요, 하고 비스듬히 앉아서 말하는 인간들.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 분리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수박이 차있는 냉장고가 있는 본가와, 그럴듯한 대학에 적이 있었다
때로 나에게 그런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실속없는 환호보다는 진국, 그러니까 평생 나를 사랑해주시고 내 곁에 있어주신 부모님이 훨씬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내가 받고 태어난 환경과 내게 주어진 것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감사하되, 좀 다른 길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좌표를 잘 찍을 수 있도록
편협하되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나는 순식간에 '강남좌파'가 되었는데
즐기기로 했다
덕분에 강남구는 선거장소가 크게 바뀌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따박따박 투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6.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발을 딛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의 의미다
아무리 추워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난 팔레스타인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싸이트랜스, 라는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강한 쪽에 이스라엘 DJ들이 많아서 이스라엘트랜스,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공연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끼기도 한다
나는 싸이트랜스 파티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가슴이 조여든다
싸이트랜스에 대한 보이콧은 미뤄둔 상태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이다



7.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난 팔레스타인이, 이라크가 희생자라고 해서, 거기 내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가 '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이스라엘은 '악'이 맞다
그게 팔레스타인을 '선'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도 개새끼들은 널렸다
허벅지를 슥 만지고 가는 개새끼들도 있고, 저질스러운 욕설을 뱉는 것들도 있고
더 어렵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자 자태가 몸에 배서 오히려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고
난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으려드는 좋은 친구도 있었다

내가 Rim Banna를 알게 된 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라고 해서 Rim Banna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Rim Banna는 진실로 좋다

그 자태는 사실 명확하면서도 모호하다
정의가, 분노가, 의무가 예술로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정의나 그 분노나 그 의무가 예술에 앞서있다면
그건 훈련소에 맡겨놓은 강아지와도 같다
때로 반려동물 방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 푸들 꼬랑지를 꽃분홍으로 염색하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염색은 좋아하지 않는 편)
- 개가 저렇게 살 찔 때까지 먹이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론 별 생각 없는 편)
- 목줄이 너무 쪼여보여요, 동물학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진이 그렇게 나오는 것일 뿐 주인은 강아지를 사랑한다)
- 저럴 바엔 안락사시키는 게 낫지 않나요? (어려운 문제다)
- 저렇게 훈련을 잘 받은 강아지라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은 좋아하지 않지만 학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 어떤 훈련은 학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강아지는 이상한 걸 안 먹여도 살이 쪄가기도 한다

어렵다
명확하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떤 동기로든 예술로 다가갈 수 있다
좀 더 조심히 다가가는 게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그 애정이 살아있는 거라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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