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14년 8월.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보이콧

 

2014년 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이스라엘의 봉쇄 이후 세번째라고 하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EBS국제다큐영화제, EIDF가 열렸다. 올해 EIDF가 내세운 이름은 이스라엘, 이었다.

그런 시기적인 맥락이 동력이 되어 이스라엘이 가진, 정확하게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이름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영화인들과 활동가들(팔레스타인 평화연대와 PACBI), 개인들이 연대한 문화보이콧 연대쪽이 내건 이름(점령, 학살자인 이스라엘)이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이름이기 이전의 그냥 저기 존재하는 또하나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미국, 영국, 프랑스, 대만, 한국, 이스라엘,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이를 뚫고 나왔고, 문화보이콧 연대의 요구는 순식간에 받아들여지고 EIDF는 브랜드 이름으로의 이스라엘을 행사에서 모두 철수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니까, 프로젝트로서 이번 문화보이콧 운동은 성공인 셈이다.

시기적인 맥락이 동력이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가자지구 폭격, 그 전에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그 전에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제도적? 폭력, 고문, 감금, 살인, 모욕, 강탈,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이름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라는 사실은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학술/문화적 보이콧을 포함한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운동을 전세계에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우리가 잊기 쉬운 건 이 단순한 순서상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번에 특히, EBS가 '처하게 된' 상황에서 본다면 '하필', 지금 그 맥락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동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는 사회나 시대를 분석하려는 게 아니라, 그 알 수 없는 힘에 영향을 받는 우리들이 던지는, 개인적으로 너무 합리적이거나 타당해보이는 질문들이 나오는 과정을 대안 없이 이야기해보고, 혹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들이 우리의 앞길을 얼마나 막거나 결정해버릴 수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드러내보고 싶다.

두 가지 말할 부분이 있다.

첫째로, 학술문화보이콧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삶의 가치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전략이다. 그래서 EIDF를 상대로 한 문화보이콧 운동은 성공이고, 문화보이콧 자체가 상대를 배제해버리려는 모습으로 비춰질지라도 그 안에 상대가 악이거나 우리가 선이거나 하는 가치로서의 이분법이 없으며, 무엇보다 문화보이콧을 행동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스로 그 안에 침잠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일깨우는 기능이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화보이콧연대에 참여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고, 앞으로 학술문화보이콧을 행동으로 옮길 때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둘째로, 학술문화보이콧을 포함한, 개개인과 사회가 관계를 맺고 서로를 해석하는 큰 틀과 그 안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강력하게 드러나는 구체적인 판단, 반응, 행동지점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삶의 태도 문제로 즉각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문화보이콧을 삶의 한 선택으로서 취할 때, 그동안 살아온 삶의 다른 지점들과 상충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시급하게 받게되는 것이다. 문화보이콧이 결국 삶의 문제라고 말할 때, 그건 이 지점에 대한 것이었다. 문화보이콧이 가치로서 지배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문화보이콧을 선택하게 만드는 우리 각자의 삶의 흐름 안에서 구체적인 충돌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한다는 의미다. 


1. 질문들

- 이스라엘 다큐특별전을 기획한 EBS다큐영화제 측으로부터 처음 나온 질문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잘못을 이스라엘 국민, 즉 이스라엘 감독 개개인과 그 작품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러면 이스라엘 감독들은 무엇을 찍으라는 겁니까?"였다. 여기에는 질문 그 자체와 질문을 한 쪽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스라엘 특별전을 기획했고 '하필' 시기가 그래서 '난데없이' 나쁜놈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그들 입장의 상황을 둘 다 볼 수 있다. 

또, 정치가 예술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하면 안 되듯이, 정치적인 입장으로 예술과 그 가치나 역할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광주 비엔날레에서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이 이슈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 작품을 철수시킨 윤장현 광주시장은 운동가 출신이다. 

그럼 우리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해주는 입장에만 있느냐 하면, 아니다. EIDF보이콧의 다음 단계로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열었던 땡땡영화보기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퀴어를 다룬 영화 <성스러운 도시> 상영회가 있었다. 보이콧연대에 참가했으며 이 행사를 진행한 손희정 선생님은, "BDS운동(보이콧 운동)이 힘을 받고 전면에 나서면서, 그 안의 소수자 목소리, 즉 퀴어나 여성의 목소리가 묻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의 목소리를 냈다. 또 참가했던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강명진씨에게도 "이스라엘 퀴어단체 쪽에서 연대를 요청할 때 어떻게 응할지," 즉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입장 사이에서 시급한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 목소리를 내왔던 개인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진지한 고민이 주어졌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에게 문화보이콧이 낯설어서 생기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확고한 입장을 갖게 되어 막힘이 없게 될 때가 오는 그런 편한 것들이 아니다.

이미 우리보다 백만배나 더 관련 담론에 노출되어 있던 곳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국의 Tricycle Theater는 UK Jewish Film Festival(UKJFF)에 대한 

대화, 화해, 협력이 이런 고착된, 즉 문제시되는 국면에 해결책이 될 것이며,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될 것이라는 성명서가 나왔다. 대화, 화해, 문화, 다양성. " We both profoundly hope that those who take differing views on the events of the last few weeks will follow our lead and come together to acknowledge that dialogue, reconciliation and engagement will resolve points of difference and ensure that cultural diversity thrives in all communities. "




2. 보이콧, 특히 학술문화보이콧에 대해 생각할 것들.

보이콧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자체의 당위성, 그리고 보이콧의 대상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리감이다.

비교적 받아들여지기 쉬운 상품 보이콧에서도 그 대상이 맥도날드나 소타스트림 탄산수라면, 햄버거나 탄산수를 먹는 게 일상적 동선과 심하게 겹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이상한 결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맥도날드 대신에 버거킹을 갈 수도 있고, 수제 햄버거를 먹을 수도 있고, 짜장면을 먹으러 갈 수도 있다. 소다스트림의 탄산수 역시,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 탄산수가 뭐고 소다스트림은 또 어디 있는 거라고 보이콧을 하라는 건지 잘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소다스트림 탄산수를 사먹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냥 주변에 널려있지도 않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다. 이건 의지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오는 거리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삼성처럼 범위가 넓어지거나 존슨앤존슨처럼 보이콧 이유에 거리감이 있을 때는, 일상의 당위성이 우선순위를 되찾는다. 간단하게, 삼성의 지배성 자체를 보이콧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사방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애써 htc 핸드폰을 구해서 썼는데도 문득 삼성화재 보험을 들고 있던 건 잊고 있거나, 아버지가 '역시 에이에스는 삼성이지'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그저 흔하게 써서 계속 써온 샴푸, 클렌저, 로션이 존슨앤존슨 제품인지

그런데 하물며 이스라엘산 자몽이야. 자몽을 사러가서 굳이 원산지를 확인하고 이스라엘산 딱지가 보이면 단호하게 내려놓는, 그 일상적 행동이 사소할 수 있는 데 비해, 그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는 보다 강하고 분명한 공감을 요구한다. 그럼, 잘 보이지도 않는 글씨로 적혀 있는 이스라엘산 레몬을 사용한 레몬음료 캔은? 그런 걸 보이콧 할 구체적인 목적이 보이지 않는데 굳이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보이콧이 공고한 가치가 아니라 선택적인 전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다양하게 드러나는 선택의 모습들을 받아들이기 쉽다. 맥도날드를 보이콧하면서 버거킹에 간다고 비웃을 일은 꼭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이유로 그 선택을 취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콧은 상징적일 수도 있고 전략적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가치일 수는 없다. 


학술문화 보이콧, 특히 문화보이콧의 경우에는 이 거리감의 문제가 갑자기 문제가 된다. 우리가 살아온 관성이 있고, 그 관성이 내세우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를, 대단히 중요해서가 아니라 해오던 것이라서, 그 해오던 것이 공격을 받는 경우에 열과 성을 다해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3-1 이스라엘. 우리가 생각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3. 팔레스타인. 우리가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4. 다시, 질문들

- 피해자나 약자가 선이라서 편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건 피해자나 약자가 아니며, 운동의 바른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피해자나 약자의 몫이 아니다.

- 시급하거나 중요한 문제인가가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방향성의 문제이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