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에서 유심으로

2015.05.05 04:50 from 크리스찬곰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흩어져 있는데 또 모여있어서 알아볼 수 있다

인상파라고 한다

왜 수업시간에 모네를 배웠던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유명사를 쓰지 않고 냈던 첫 레포트는 성적이 좋았고

마찬가지로 써냈던 기말 레포트 때 교수는 '이제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모네의 그림에 대해서 말을 하더라도 윤곽선을 그릴 줄 알아야 하는 단계가 있는 법이었다


말을 잘 못하는 건

말 하려고 하는 게 자꾸 흩어졌다 모였다 하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어쩌다 모여있는 것들을 어쩌다 언어에 가둬서 심지어 기억도 할 수 있지만

대개는 그 전에 다시 흩어져서 다른 데서 다른 모양새로 모인다

심지어 그것도 또 흩어진다

이건 말을 잘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말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지인은 스님이 되었다

난 그 친구가 나에게 화엄경을 보여주려고 스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에 대해서 얘기하자 스님은 '이제 공은 됐고 유심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사실 스님이 내게 던져줬던 건 공(연기)이나 유심이 아니라 화엄이었다

소설 화엄경은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지만, 친구가 권하면 같은 책도 다른 책이 될 수 있다

화엄은 다른 차원, 다른 층을 보여준다

내가 봤던 화엄이 긍정하는 건 삶과 전달이다

화엄의 빛은 고요하고 그 빛을 전하는 입들은 보살들이라, 거기서 중요한 건 관계성이다

전달은 삶에서 이루어진다

삶의 만남이 전달이 된다

가르치고 깨닫고 발전하는 목표지향적 임무가 아니라, 

어느 순간 그 상태인 두 존재가 만나서 그 순간의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관계성 안에서의 성장이다


+


한 개인 안에 모든 것을 잘, 가능한 완벽하게, 다 장착하라는 걸 우리는 어디서 가르치고 어디서 배운걸까

난 내 아이가 온전히 나 개인에게 의지한 채로 이 세상에 나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방편, 혹은 삶의 다른 시간들과 단절된 하나의 방법으로서 유치원협동조합이나 공동육아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정말 멋지게도 생각이 같은 지인들이 있지만 난 아직도 하염없이 수줍다

온갖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매력적이며 준비되어있는 개인인지를 발산하는 데 익숙해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행복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진실로 애매모호하지만 또 굉장히 명료한 어떤 자격선 밖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밀려난 자들이 불편하고, 멋지지 않고, 분위기를 망쳤다는 죄목으로 온 책임을 다 진다

난 밀리다 밀리다가 대체 내가 설정하지도 않은 그 기준선이 왜 그리 힘이 센지를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데

그건 대개 내가 뭔가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미묘한 입장이 낳는 커다란 실수를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닌데

나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이를 갈지는 않지만, 뭔가 알아가고 배우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같이 사는 법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