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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머무른 기간은

십년 동안을 잡고 봐도 일년 하고 몇 개월 뿐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하고 커피집하고 술집만 왔다갔다 했다

팔레스타인 친구들이 좀 돌아다니라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지인들이 올 때 빼고는 콘서트나 문화행사나 시위나 가족방문이나 뭐든 간에

하여튼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갈 생각도 별로 없었다

망할 문화행사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다시 좀 자다가

빨래나 청소를 하고 고양이들 밥을 주고

라말라카페에 가면 언제나 친구들 중 누구라도 있었고

저녁까지 별 쓰잘데기 없는 농담에 수다를 떨다가

남편이 일하는 문화재단에 가는 길에 크나파 이백오십그람을 사먹고

가서는 개들이랑 놀고

퇴근할 때 쯤에 같이 술집에 가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고 나서

어쩐지 아침에 눈을 뜨면 집이었다

집에 있는 거실 창문은 사방이 막혀 있는 건물 뒷뜰로 이어져 있었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거기에 닭과 양들을 키워서

양들이 방충망을 뜯어먹는 것을 지켜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닭고기가 들어간 마끌루베를 먹은 날이면, 닭에게 주는 음식물 쓰레기에 닭고기가 섞이지 않게 조심해야했다

아침에는 번갈아 가면서 커피를 끓였다

난 아침마다, 점심에도, 오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먹던 그 아랍커피(혹은 터키쉬 커피)가 너무너무 그립다

친구들하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칼리드는 말을 잘하고 웃겼고, 수헤일은 말이 느리고 웃겼고, 아부 파르하는 듬직하고 웃겼고, 와하비는 잘 나타나진 않았지만 나타나면 웃겼다

지금은 브라질에서 환락을 즐기고 있는 칼리드는 나와 피로 맺어진 형제 같다

칼리드는 최근에 브라질에서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입양했다

"너무 섹시해 고양이는. 성격이 있잖아. 그래서 마돈나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했어."

새끼 고양이 마돈나

"그런데 집에 데리고 왔는데 자기 그림자를 보고 벌떡 놀라는 거야. 그게 왠지 너 생각이 나게 했어. 그래서 알리야라고 부를까봐."

새끼 고양이 알리야

나는 잘 짖고 잘 무니까 개 쪽에 더 가까워서 고양이 이름은 마돈나가 좋겠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두고 온 건 내 이름 만이 아니었다

성질이 더러웠지만 내가 각별히 예뻐했던 '할머니'라는 고양이는 내가 떠나오기 직전 집 안에다가 새끼를 네 마리 낳았다

그 즈음에 집 안에 새끼를 낳은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밖 어딘가에 새끼를 낳았는데 언젠가부터 집 안을 배회하면서 슬프게 울어댔다

새끼를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어느 날 한마리씩 눈을 떴고, 난 '알리야 이모다 내가 알리야 이모다'하면서 내 체취를 맡게 하려고 한마리씩 안아보았다

그 직후에 난 국경을 넘어야 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의 새끼 중에는 까만 고양이가 하나 있었다

그 까만 고양이가 지금은 어미가 되어서 내가 두고 온 여행 가방 속에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내가, 알리야 이모다,를 강조하지 않아도 그 애기들은 내 냄새를 알고 있겠지

내가 가면 알아볼텐데

명확하게 해야하는 것들이 있어서

법적인 건 아니었지만 난 이혼을 하기로 했다

귀국한 지 일년 째다

세고 있었던 건 아니다

법적인 건 아무 의미가 없고, 관계는 이어질 수도 끊어질 수도 있는 거지만

우주적인 책임은 남는다

깊은 책임, 우주적인 연속성

팔레스타인에서는 양을 키우면서 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뭘 키우면서 살까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