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1'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6.21 죄를 사한다 (1)
  2. 2015.06.21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노신 산문집, 이욱연편역, 도서출판창

죄를 사한다, 라는 건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다

속죄를 해야한다

깊은 속죄를

속죄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써서 마치 안도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마냥

그런 자기합리화까지 무한정 덧붙여지는 속죄를 해야한다


이슬람에서는

용서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알라가

하지 않는 게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은

그 상대에게 속죄하고 용서를 받지 않으면

알라는 대신 용서하지 않는다


바그다드에서 머물렀던 곳은 시아파 동네였다

그 동네에는 똑똑한 쿠르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수많은 전설에 대해 끝도 없는 얘기를 해줬었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에 있는 검은 사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용맹한 쿠르드 전사들을, 아무도 모르게 주워가서 동굴에서 키우는 암콤

온갖 진니들

그리고 대신 용서하지 않는 전지전능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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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용사는 인생의 비참을 외면하지 않으며 눈 앞에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애통하고,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나 조물주는 항상 시간의 흐름으로 옛 흔적을 씻어내고 빛바랜 핏자국과 흐릿한 비애만을 남겨준다. 이 빛바랜 핏자국과 흐릿한 비애 속에서, 사람들은 또다시 목숨을 꾸역꾸역 부지해 가며, 사람들이 살고는 있으되 결코 사람의 세계가 아닌 현실을 지탱해 간다. 도대체 이런 세상이 언제 끝날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이런 세상에 살아 있다.

 나는 예전부터 뭔가를 써야 할 필요를 느꼈다. 3 18일에서 이미 두 주나 지났다. 망각이라는 이름의 구세주가 강림하려 한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

 18일 아침, 나는 오전에 군중들이 정부청사 앞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에 비보가 날아왔다. 호위병들이 발포, 사상자가 수 백이며, 유화진 군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이 소문이 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최대의 악의를 지니고서, 중국인들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서슴없이 진단을 내려왔었다. 그러나 나는 상상도 못했거니와 믿을 수도 없었따. 그들이 이다지도 비열하고 잔인할 줄을!

 더구나 언제나 미소를 띠고 그처럼 상냥하던 유화진 군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정부청사 앞에서 피를 흘렸다니!

 그러나 그날로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녀의 시체가 그 증거였다. 다른 시체 한 구는 양덕군 군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살해가 아니라 학살이라는 것도 입증되었다. 몸에 곤봉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명령을 내려, 그들을 <폭도>라 불렀다.

 이어, 유언비어가 꼬리를 물었다. 그들이 남에게 이용을 당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다.

 참상, -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유언비어, - 차마 귀를 열고 들을 수가 없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멸망해 가는 민족이 왜 침묵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침묵이여, 침묵이여! 만일 침묵 속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침묵 속에서 멸망할 뿐이다.

(유화진 군을 기념하며,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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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파티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는 잡아먹는 자도 있고 잡아 먹히는 자도 있다. 지금 남에게 먹히는 자도 전에 다른 사람을 먹은 적이 있으며, 지금 먹고 있는 자도 언젠가는 남에게 먹힌다. 그러나 지금 저는, 제 자신이 이 파티를 돕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항 선생, 선생은 제 작품을 읽어 보셨겠지요. 읽으셨다면 한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선생은 제 작품을 읽고서 의식이 흐려졌습니까, 아니면 맑아졌습니까, 침울해졌습니까, 아니면 활기있어 졌습니까? 만약 후자라면 저의 자가진단은 반 이상 실증된 셈입니다.

 중국 잔칫상에 오르는 요리 중에 취하란 요리가 있지요. 새우가 푸들푸들 살아 꿈틀거릴수록 먹는 사람은 유쾌하고 흡족해합니다. 저는 바로 이 취하요리를 거들고 있는 셈입니다. 성실하고, 그러면서도 불행한 청년의 머리를 깨어나게 하고, 그 감각을 예리하게 해줌으로써, 만일 그들이 재앙을 당할 경우 곱절의 고통을 맛보게 하였고 청년을 증오하는 자들로 하여금 깨어난 청년드르이 배가된 고통을 감상하면서 찌릿찌릿 쾌감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빨갱이 토벌군이건 혁명가 토벌군이건 간에, 유식한 자들, 예를 들어 학생을 체포하면, 노동자나 다른 비지식인들보다 훨씬 더 난폭하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그들의 고통스런 표정을 감상하면서 한층 각별한 쾌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상상이 틀리지 않다면 저의 자가진단은 완전한 실증을 얻은 셈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는 결국 아무런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고, 이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유항선생에 답하여, 1927) 




170.

 아무 것도 모르던 때가 행복했습니다. 앎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독약을 저에게 먹인 것은 선생님입니다. 저는 선생님에 의해 산 채로 술에 담궈졌습니다. 선생님, 제가 여기까지 이끌려 온 이상, 제가 가야 할 최후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제발 저의 신경을 마비시켜 주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게 행복하니까요. 다행히 선생님은 의학을 배우셨으니, 제가 작가 양우춘 선생을 흉내내어 <내 목을 돌려다오!>라고 외친다해도 어려울 게 없으실 겁니다.

 끝으로 권고드릴 게 있습니다. 선생님, 이제 좀 쉬십시오. 더 이상 군벌들을 위해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청년들을 지켜주십시오. 생활 문제에 쫓기신다면 <옹호> <타도>니 하는 글을 더 쓰시면 될 터이고, 위원 자리든 주임 자리든 선생님의 부귀 쯤은 염려하실 필요가 없겠지요. …

(앎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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