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없을지라도

온전히 소통의 단절, 혹은 오해, 혹은 무례함에 의해서만

돌아버리게 화가 날 때가 있다


그가 마치 우주의 귀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 그가 알아듣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알아듣고 나서의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곧 떠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자체가 문제였다

너무 큰 문제여서 나는 의지를 잃었고 과거를 잃었고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관성을 내 손으로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애정은 이미 오래 전에 잃은 상태였었음에도


소통에서 오는 건 관성의 병이다

그의 기억은 뒤틀린 그의 세계와 광기어린 그의 눈빛 반경 백미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알아듣는 것 뿐, 이라고 말했지만

당신의 성벽에는 흠집하나 내지 않겠어, 라고 말했지만

그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인지하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세상이 맨 아래부터 흔들릴 것이라던 사람들의 말은 틀렸다

그가 지어놓은 완벽한 성의 문제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쌓아올렸다는 것에 있다

존재는 그렇게 이어진 시간들의 관성이니까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 기억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잊어버리는 것들에는 공통점이나 방향성이 없다

그리고 난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공간도 그대로 다시 지어낼 수 있다

선별적으로 기억을 바꾸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를 이해했지만, 그와 같은 부류로 묶이는 건 극구 거부했다

그런 세밀한 것들을 놓치면 서사시의 맥락이 사라진다

맥락이 사라진 서사시에서 남는 건 영웅성, 대담한 모험담, 매력적인 개체로서의 인물들 뿐이다

그 지경에 갔을 때는 더 이상 서사시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다


그가 붙들고 있던 건 게임이었다

분명한 우와 열이 존재하는 세상의 게임에서 

그는 자신의 법칙이 호소력은 있지만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게 우월이란 순전히 관계의 문제, 그저 상대성 뿐인 상대성 그 자체의 병이었고

또 다른 게임일지라도 여전히 게임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였지만,

그에게 그것은 실체였고 법칙을 투영해야하는 세상이었다

어느날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가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이해를 하는 것도, 죽여버리는 것도 그나 그의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다행히도 선택지는 많았다

절대적으로 상대성의 문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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