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귀뚜라미

2011.01.06 07:16 from 동선

새로 이사온 집은
그 유명한 가로수길에 있다
그렇긴하지만 계약직전까지 갔다가 까만색 벽지를 안해준다고 해서 파토가 났던,
아차산 역 근처의 집보다 더 싸다

살다보면 이유를 알게 되는데,
우선 복도 밖으로 폐가가 보인다
이런 사람 많은 동네에 폐가라니, 서울도 사실은 허점투성이다
폐가에는 감나무가 있는데
어느날 아침에 까치가 앉아있는 걸로 보아, 폐가이긴해도 흉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현관문 아래에 일쩜오쎈치 정도의 틈이 있는데
왜 문을 그따위로 만들었는지는 진실로 모르겠다
올겨울은 유난히 일찍부터 추워서
그 틈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난 폐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궁리를 하다가
빨간 천으로 현관을 둘러버렸다

가끔 아침에는 밖에서 까마귀가 우는데
도시에 까마귀가 있다는 건 많이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밤에 우는 고양이는 알고는 있었지만 익숙하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아기가 떼거지로 우는 줄 알고서 여전히 꿈 속인줄 알았었다
비몽사몽에 고양이란 걸 알고나서는 마음이 따뜻해져서
다시 푹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귀뚜라미가 산다
난 주변을 잘 살피는 편이 아니어서 정확히 언제 귀뚜라미가 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득문득 귀뚤귀뚤 소리를 듣게 될 때가 있다
아,
겨울에 귀뚜라미라니
게다가 내 방은 차갑고 먹을 것도 없는데

그래서 생각해봤다
아마도 냉장고 전기코드에서 나는 소리가 그렇게 들리는 게 아닐까, 라고.
하지만 그게 전기코드 소리라면 집에 불이 날 지도 모른다
귀뚜라미 쪽이 안전하다

난 소리에 예민하긴 한데 그렇다고 분석적인 건 아니어서
예전 청평사에서는 새벽에 개구리가 우는건지 매미가 우는건지 구분을 못했고
전화로 통화하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귀뚜라미와 불,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다니
난감하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