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기록하는 아가씨, 그 일을 말리려는 그 아가씨의 변호사 오빠.

각자의 위치에서 던져지는 말이 무지 공감되고 또 고민되었다.

그냥 어떤 일이 있었어, 그렇게 나빴어, 혹은 심각했어, 의 나레이터식 서술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그들이(그리고 우리도) 감추어 놓은 심리의 기복까지 드러나는 거다.

 

 

 

1.

감옥에 갔다 온 아리따운 아가씨는 자유분방한 차림이다.

에스틱한 큰 스카프를 두르고, 간식 겸 식사일 것 같은 과자통을 들고, 담배를 피우고, 말할 때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카메라 앞에서 한 얘기는, '다른 사람은 안그랬다던데 나만 남자 교도관 셋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다'는 내용이다.

 

근데 내가 더 공감했던 건, 그 아가씨가 카메라를 꺼달라고 한 후 말했던 내용이었다.

기준과 가치관이 다 사라져버린 심문실이라는 공간, 나에게 폭력이 닥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연기를 한다.

그 연기는 상관도 없는 내 친구들 이름을 대고 여기서 나가겠다는 그런 식의 거짓말이 아니다.

그건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그 연기는 그냥, 그 상황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까지한, 평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성격을 따온 듯한

그런 행동인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일관성이 흐트러지는 경험은,

때로 배신이나 인간적인 욕망의 추구 등 보다 저급으로 취급받지만 명확한 행동보다도 오히려 더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

카메라 앞에서 말했던 솔직한 내용들과 카메라 앞에서 말할 수 없었던 솔직한 내용들의 차이가 그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2.

감옥에 갔다 온 남자는 사색적이고 눈이 깊어보인다.

나는 그의 말 혹은 머리 스타일과 마른 체형 때문에 키파가 생각났다.

그는 자기가 왜 감옥에 갔는 지 모른다.

그래서 주변 모두를 의심하게 되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감옥에서는 어떤 이유로 복도 보일러에 손이 뒤로 묶인채 눈을 가리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그를 때린 사람 중에는 교도관이 아닌 청소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독 한 사람은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발차기를 날린다. 마치 그게 재밌다는 듯이.

폭력을 행하는 교도관(혹은 기타등등)과 두려움에 떨며 그것을 당하는 사람 사이에,

더 이상 정부 대 반군, 안정 대 혁명, 가치관과 이념 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시스템의 영향으로 굉장히 뒤틀려있으나 또한 굉장히 개인적인 관계만 남아있다.

나를 때린 나쁜 새끼, 잘 대해주는 좋은 사람, 청소부주제에 나를 때리다니......

 

폭력에 길들여져 간다.

그 폭력이란 게 바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환경에 익숙해져 간다.

비명 소리로 사람들을 알아보고, 누구 차례인지 세게 되고(마치 계단을 올라가며 세보듯이),

자신이 어디 갔다온 사이에 그 순서가 틀리면 비명이 아니라 추측했던 순서가 틀렸다는 그 사실에 신경을 쓰게 된다.

고문 당하는 비명소리에 인간적으로 아파하고 분노하는 게 '겪지 않은' 우리들이 추측할 수 있는 경험의 한계라면,

그것이 일상이 되는 환경의 사람들은 또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에 스스로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연극을 통해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겪게되는 우리도 마찬가지.

 

 

 

3.

카메라를 든 아가씨의 고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다.

이게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공감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직접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점(감옥에 갔다온 사람들의 얘기를 기록하며 간접적으로만 겪는다),

이 상황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확신하지 못하는 점(오빠와 논쟁을 할 때도, 왜 그 기록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타고난 것에 필연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아빠 소유의, 오빠가 쓰던 사무실을 쓰고 있고, 후에 감옥에 갔을 때 역시 변호사인 아빠와 오빠의 도움을 받게 된다)

등등이 나와 가장 비슷하니까.

그는 자기가 하는 이 기록이,

이 큰 상황, 혁명 혹은 내전이라는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우선 기록을 하고, 나중에 봐서 어떻게든 쓰이겠지, 라는 막연함

+그게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건지 아니면 혁명과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하는 건지에 대한 불명확함

이 있다.

당연하다.

그림 분석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은 자신이 어떤 소용돌이 안에서 결과적으로, 다시 말하지만 어떤 역할을 한 셈이 될지 알기 힘들다.

 

마지막에 이 아가씨가 행동을 취해서 감옥에 가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내 감정이입의 결과이다.

하지만 끝내 무슨 일인가로 그 아가씨는 감옥에 갔고, 말리던 오빠와 면회하는 상황에서 마주한다.

가슴이 먹먹했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도 뭐든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혹은 게다가), 그녀가 감옥에 간 게 혁명에 무슨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까를 생각해보면(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다)

대답이 없다.

감옥에서도 그녀는 아빠와 오빠의 힘으로 비교적 나은 대우를 받는다(그래서는 안된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족, 특히 아빠와의 관계를 걱정한다.

 

한 개인으로서 뭔가를 해야만 했던,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효용도 없고 가족에게 또다른 짐을 안겨줬을 뿐이며 스스로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게 바로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아닐까.

뭐 대단한 게 아니라.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 어떤 거대한 힘을 뿜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그런 수많은 개인들의 노력은 스러지고 막상 세상은 몇몇 강자들의 정책결정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지는,

후에 볼 일이다.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

한번 더 보고 싶고

배우들도 만나보고 싶은데

아쉽다

참고로 대사 번역은 쉣이었음

내가 초벌번역하고 남들더러 알아서 보라고 무책임하게 훽 던져놓을 때가 그 수준이다

돈 삼만얼마 받는 공연치고는 너무했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