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대화2

2011.11.23 07:25 from 공간/서울

열심히 노력을 한다면,
종교인인 경우, 열심히 기도를 한다면,
또는 착하게 산다면

그러면 마땅히 와야하는 결과는 뭘까

그게 공부에서는 좋은 성적이고
사회적으로는 남에게 인정받는, 소위 성공이고
건강하거나 병이 낫는 거고
큰 키, 멋진 외모,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면

좋지 않다

그냥 확률적으로, 숫자로 따져봐도
'소위' 서울대연고대를 가는 아이들의 수는,
적다. 적게 정해져있다
'소위' 변호사가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소위' 삼성에 들어가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있다. 적다
성인 남자 키 평균이 174인가라고 하던데
그 와중에 키 180이상인 근사한 남자친구가 생기는 경우는
(그것도 나는 가만히 있는데 무작정 와서는 '너같은 애는 처음이야' 하며 나를 열렬히 사랑해주는 경우는)
그냥 확률상으로 적다

그렇게 숫자로 '적게' 정해져 있는 게
기도나 노력이나 선행으로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거꾸로,
성적이 안나오거나, 몸이 아프거나, 돈이 없거나, 외모가 마땅치 않을 때는
(확률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게 되는데도)
열심히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착하게 굴지 않은,
하여튼 뭐가 돼도 자기가 잘못해서 '벌 받은' 게 되어버린다


+


실제로 그런 가치관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쪽팔려하고 비난하고 불행해하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성적이 아이들을 결정하는(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때로는 말 그대로 성적이 그 아이가 '된다'. 성적이 낮은 아이는 가치가 낮아지고, 성적이 높은 아이는 그냥 가치가 높아진다) 시스템에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적이 안나오면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 걔가 초등학교 때 어학원을 보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맞벌이를 하느라 종합학원에 보내놓고 신경을 안썼어요. 그래서 듣기가 다른 거에 비해 약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애한테 미안하고 답답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모 외국어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때 서먹서먹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부모님 직업을 거수로 답하라고 했었는데,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 등등 사이에서 단 두명이었던 자영업자(소위 '장사하시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 순간 자기 부모들이 쪽팔렸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해준 부모가.

'남자친구 키가 컸으면 좋겠어' 가 아니라, '키 180도 안되는 남자를 왜 만나?' 하는 분위기에서는
둘만 있을 때는 좋은 애인을
자기 친구들에게는 소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쪽팔려서.
그리고 '겨우 그 정도' 남자를 만나고 있는 자기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는 그냥 공부를 못하는 것 뿐이다. 엄마도 아이도 잘못된 건 없다
사실 대다수의 부모들은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이 아니다. 소위 서민이다. 그건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스스로가 분열되는 그런 기준이라면
그건 애인의 잘못이 아니다. 본인이 가치가 없어서도 아니고.
 

+


나는 잠시 길거리에서 놀았었어
지금은 강사하니까 그나마 이렇게 치마도 입고 깔끔하지만 (BGM: 야유 '우~우~')
그때는 피어싱에 문신에 머리는 지금처럼 땋고서
꽃무늬만 보면 환장해서 분리수거함 같은 데서 주운 꽃무늬들을 이렇게 막 두르고 다녔었다고

어느날 새벽에 나같은 친구들하고 헤롱헤롱 노는데
양복 잘 빼입은 새끼들하고 시비가 붙은 거야
여러분이 나 보면 알겠지만, 내가 성질은 더러워도 먼저 시비를 걸거나 하진 않아
피곤하니까!
별 일도 아닌 걸로 파출소에 갔는데
그래도 경찰, 하면 뭔가 억울하고 그럴 때 제대로 판단을 내려줘야하는 거잖아
그런데, 들어갈 때부터 대우가 다른거야
그 양복놈들한테는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 앉아서 이거 쓰세요'고
우리한테는 삿대질을 하면서 '니들은 꼴이 그게 뭐냐.' 이랬어
지나가던 개새끼는 '부모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키워놓으면 저러고 다니고...쯧쯧쯧' 이러는데
그 혀차는 소리가 얼마나 분한지 모를거다
근데 말했잖아, 별일 아니었다고
경찰새끼 한 놈이 실수를 한거지
정도껏하고 입을 다물것이지 지 말에 지가 취한거라, 이랬어
'니들 중에 서울대연고대, 아니지 모모모모 대학(이렇게 한 일고여덟개를 주워 세면서) 거기 다닌 놈들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보내주겠다'
병신
우리 중에 있었거든, 그 대학 중 하나를 다니던 애가.
코 앞에 학생증을 들이밀고는
벙쪄 있을 때 우리를 다 끌고 파출소를 걸어나왔지

(BGM: 탄성 '이야~')

왜, 통괘하냐?

(BGM: 대답 '네~')

통쾌하지
근데 봐라
이거 통쾌한 얘기가 아니야, 졸라 답답한 얘기지
만약 우리 중에 그 대학 다니는 애가 없었으면,
그럼 어땠을까?
억울하게 뒤집어 썼겠지
그럼, 대학이 우리 자신의 성품이나 그 때 있었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없지
그러니까 이건 통쾌한 게 아니야
(소위) 좋은 대학, 좋은 집안, 돈, 권력이 없으면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야

그럼 너네는 통쾌하게 살 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아니면 확률상 소위 좋다는 대학에 안가더라도 억울하게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나야 학원 강사지만.


+



나는 그래서,
언뜻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그놈의 경쟁 사회가 싫다

출발점은 엄청 불공평한 주제에
게다가 그 목표라는 것도 때로는 우스운데,
결국 모두가 확률적으로 낮은 어떤 목표를 향해가야하고,
무엇보다도 확률적으로 높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싸그리, 게다가 스스로 개새끼가 되어버리는 그게 싫다
그냥 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럽고 쪽팔리고 하찮아지는
그게 뭐야


+


...라고 애들한테 말했다
나는 애들한테는 내 고민을 거의 전부 다 얘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말고사기간이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야 했고
본문암기를 하나라도 틀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엉엉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