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

2011.10.29 15:02 from 공간/서울

나는 중등부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강사는 선생님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애들앞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나' 아니면 '강사'라고 부른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내 골반을 풀어주던 선생님이 직업을 물어보시더니,
- 무서운 선생님이시죠?
하고 물어봤다
내가 벼락맞은 것처럼 놀라서
- 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학부모님인줄 알았음;;)
했더니
내 온 몸이 경직되고 굳어있다고 했다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보통 그렇다고 한다

나는 성적이 나쁜 건 본체만체 하는 편이지만,
숙제를 제대로 안 해온 아이들이 있으면 개처럼 짖는다
그렇게 세 번을 안넘기고, 그 다음에는 가방을 싸게 한다
가방 싼 애를 끌고 교무실에 가서는, 애가 보는 앞에서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서
<학습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수업을 할 수가 없으니 돌려보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보강 날짜를 통보한다
애들은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으면서 바짝바짝 굳어간다

옆 반 동료 강사가 
- 이러면 되니 안되니. 잘못했니 안했니
하고 훈계를 할 때,

- 이 개새끼 눈깔아 공부하기 싫으면 학원을 끊고 다닐거면 공부를 해 하고말고는 니네 부모님하고 쇼부를 봐서 결정할 것이지 다 큰 것들이 줏대도 없이 끌려온 것처럼 기어와서는 강사랑 기싸움 하지마 죽여버릴테다 멍멍멍
하면서 짖어댄다
특히 머리 큰 애들이 돈과 강사 비율제의 권력구도를 이미 파악하고서
'데스크에 말할 거에요' 라든가 '이런 거 엄마한테 말해도 돼요?'
(그러니까 데스크를 통해 강사에 대해 컴플레인을 하거나 학원을 그만두면, 강사에게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이용하는 거임)
이러는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아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모든 어드밴티지조차 절대 주지 않고 물어뜯는다
항상 촛점은
<네가 잘못했다>나 <반성해라>가 아니라
<네가 어떤 놈이든 나는 관심없으니 어설픈 기싸움을 신청해서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들면 죽여버리겠다>가 주제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기본적으로 포용하는 선생의 자세란 건 애초에 없다

애들은 나를 <개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평소에 애들을 개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애들이 학원얘기를 하다가 <개새> 얘기가 나오면서
지들이 같은 학원에 다닌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건 귀엽다. 예전 별명은 <미친개>였다
나는 쇠파이프나 빨래방망이(애들은 엑스칼리버라고 불렀다)로 애들을 팼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제정신일 때는 애들에게 설명하려고 애는 쓴다
애가 우두커니 버려져 있을 때
그 애의 팔을 붙들고 말을 걸지, 랩실로 쫓아버릴 지는 
나한테는 순전히 선택의 문제지만
애들에게는 삶의 문제다
나는 개싸가지같은 놈들이 아니면 대개는, 애들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가서 말을 건다

내 방 벽에는 단어시험 결과와
내 반에서만 보는 독해 복습 시험 결과를 적어두는 표가 있다
처음에는 애들이 자기 점수가 공개적으로 적힌다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발표나 대답하는 것도 꺼린다
나는 수없이 반복적으로, 나는 니들이 맞고 틀리고는 관심이 없고 내가 관심 없는 거에는 니들도 관심 끄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경을 써야하는 건 뭘 알고 뭘 모르는 지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좋은 선생님의 방향은 최소한 알고 있고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법도 최소한 알고는 있기 때문이다
애들은 서서히 벽에 붙어있는 시험 결과에 무덤덤해진다
어떤 애들은 60개 단어 시험 커트라인 54개 중에서, 열심히 해와도 30점대 후반을 지속적으로 치는 애들이 있다
표에 써진 결과에 지속적으로 30몇점이 수번 이상 반복되면
난 그 놈의 커트라인을 40개로 줄인다
대신 40개는 넘으라고 강요한다
그게 불공평하다며, 어떤 애들은 지들은 왜 54개를 넘어야 하고 어떤 애는 40개만 넘으면 되냐고 항의한다
나는, 그게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장치이고, 그런 장치가 있을 때 니들은 덕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보지는 않는 범위에 속해 있다고 말해준다
그런 게 손해가 되는 아이들은 상위 영쩜일프로나 그렇다고.
애들은 대개는 이해를 한다

한 소년은 숙제가 듬성듬성이었다
처음에는 대강 해왔다는 생각에 개처럼 짖었지만
두고 보니 그건 걔 성격이었다
그래서 애한테 숙제를 다시 설명하고 당분간 수업 끝나고 남아서 하고 가라고 했고, 소년은 동의했다
어느날 그놈 어머님이 애가 맨날 남고 늦게 온다며 상담전화를 하셨다
애는 벌벌 떨다가 나한테 뭐라고 상담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나는 그놈 엄마한테,
이놈의 현재 상태는 실력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은 시간이 걸려야 하니까 남기는 거라고 말씀드렸었다
어머님은 거듭, <그놈이 숙제를 제대로 안했나요> 하고 물어보셨고
나는 거듭, <제대로 안한 건 아니고 시간 문젭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놈은 그날 내 손을 꼭 잡았었는데,
그 의미를 미처 몰랐던 나는 그 다음 시간에 그 놈의 어떤 점을 개처럼 물어잡고 또 개처럼 짖고 개처럼 팼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렇게 쳐맞고도 그 다음에도 내 손을 꼭 잡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난 때로는 애들의 이해심이 어른들 꺼보다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은 한번 생긴 믿음을 잘 안버린다

+

그러니까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쁜 강사이기도 한 거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하는 거다
고민은 여러 지점에서 시작된다

얼마전 아무 이유없이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나를 이해하고 내 행동방식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욕>을 먹거나 내가 <화>를 내는 건 상처가 되는 거다

중3아이들은 학기가 끝났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제 고등부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한 놈이 단독 면담을 하다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야단 친 거에 비해서 너무 서럽게 울길래 교무실 문을 닫고 말을 해보라고 했다
- 야단 칠 때 욕 좀 하지 마세요
그게 첫마디였다
- 이제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그 말을 이제서야 하냐. 알았다 앞으로 1, 2 학년 애들한테는 신경쓸게
유언같던 그 말이 어찌나 가슴을 찌르던지.
또 뭐가 서운했냐고 물어봤더니
하나를 더 털어놨고
거기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아이는 눈물을 삼켰다
또 말해보라고 했더니, 이제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질을 했다
뭔가 기분이 풀린거다
대신 이제 마음껏 욕을 못하게 된 나는 왠지 뭔가 서먹서먹해져서 애를 먹었다

어쨌든 아이들의 이해심은 상상을 뛰어넘고
동시에 원초적인 화나 욕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도 상상을 뛰어넘는 게 확실하다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나쁜 강사이기도 한데
수 년째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모든 게 여전히 어려울 게 확실하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