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웠던 일월에






나는 가방 하나 들고서 국제미아가 되었다






비가 내리고나서 오분이 지나면 온 거리가 강물이 되기 때문에






상점들이 다 문을 닫았다






길에서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는 마음이 놓였는데,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자 불안해졌다






여긴 중앙난방이란 게 없고, 그땐 뜨거운물주머니hot water bottle이 뭔지 몰랐던 때라






호스텔에 있었지만 길거리에서 자는 기분이었다






담요 밖으로 바람이 불 때 마다 가슴이 아렸다













어딘가에서 통하는 법칙은,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신호를 잘 볼 줄 모르는데다가 따를만한 본능적 촉각 같은 것도 없어서,






그냥 호스텔 거실에서 처음 본 할머니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하얀머리를 머슴아처럼 짧게 잘랐고






얼룩말 무늬의 스타킹을 신고서, 희망 따위 개나 주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 쫓겨났어요,






하고 내가 말하자






- 그들은 자기들 일을 하는 것 뿐이야, 일, 일, 직장, 매일 출근해서 퇴근하는 그거 말이야,






라고 할머니가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들의 일이 무언지도 제대로 모른채






내 머릿속에서 합리적인 것과 정다운 것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일을 하고 있었던 거고,






그래서 나는 쫓겨났던 거다











 



할머니는 압달리의 금요장터 수끄주무아, 가 설 때마다






인형을 한두마리씩 집어왔다






그 중 어떤 건 호텔에서 머무르는 다른 사람에게 아내 하라며 주고,






어떤 건 특별히 예뻐하며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너무 일찍 세상을 뜬 어린 영혼들이 아직도 장난질을 잊지 못하고 돌아다니고 있어서,






한번은 카드가 없어지고, 한번은 전화기에서 중요한 사람의 번호가 지워지고,






또 한번은 애써 아껴둔 팔라펠 샌드위치가 없어졌다






굉장히 큰 샌드위치였기 때문에 어딘가에는 꼭 있을 것만 같아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찾아다녔다














마침내 할머니랑 같이 노는 나한테까지 영향이 와서






내 체크카드는 자발웨입데, 라는 동네의 드와르바리스, 라는 장소의 아랍뱅크 ATM에서만 현금을 뽑았다






하루 작정하고 그 지역을 다 돌며 ATM이란 ATM에는 전부 카드를 쑤셔봤지만






되는 데는 오직 거기 하나였다






관공서에는 복사기가 없어서 비자연장을 하는데 필수인 여권복사를 하려면






밖으로 나가 점포에서 돈을 내고 직접 해야한다






그리고 동전을 받는 그 점포에는 왠지 거스름돈이 없어서 근처 가게에서 초코우유를 사먹어야 했고,






돌아와보니 창구에 앉아있는 직원이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직원은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앞에서 커피를 타먹고 있었는데






그 자체가 자연스러워 보였다













 예뻐하는 인형을 안고 활짝 웃는 엘가 할머니















그리고 어느샌가 날이 더워졌다






올해 날씨는 매 달마다 이상했는데, 사월도 마찬가지였다






지구 전체가 그렇다고 하는데, 한군데 살다보면 거기만 그런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상황이 나아졌냐 하면,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몇 번 대처 좀 해봤다고 해서, 이상한 게 안 이상한 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도를 그려주는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숨어있는 보물을 세 개쯤 찾아냈고, 단골집들이 생겼고






다시 예전처럼 어느 정도 구경꾼의 자태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왠지 밤이 되면 난 여전히 춥고, 겨울옷을 치운지가 오래됐는데도 담요는 치우지 않았고,






담요 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아린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