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상황

- 2014 8

2014 8월 현재,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상태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7 8일부터 한달 여간 이스라엘의 집중 폭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가자지구를 향해 대피소로 사용되던 UN 학교, 가자지구의 전력을 공급하던 화력발전소, 사상자를 받아야 하는 병원 등에 막무가내로 폭격을 했고, 17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고 90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 배경

- 빼앗긴 땅과 삶 점령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00년대초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그 지역의 땅에 주인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주해온 유럽 시오니스트들이 유럽 열강을 등에 업고 체계적인 인종청소를 통해 1948년 만든 국가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인구의 삼분의 이가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난민이 되었고, 지금도 귀환권을 거부당한 채 UNRWA의 명목상 관리 하에 주변 아랍국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흩어져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를 목표로 만들어진 국가로, 지금까지 유대국가임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과 공존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래로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으며 2006년 봉쇄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7년의 봉쇄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2008-9, 2012, 그리고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가자에 집중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서안(웨스트뱅크) 역시 명목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권한 하에 있는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법식민촌들(settlements)과 분리장벽으로 갈갈이 분해되어 있어서, 실질적인 경계가 무의미한 상황입니다..

그 땅에 이스라엘의 존재를 만들어내고 인정한 것은 서방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열강입니다. 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그 열강입니다. 그래서 지금 점령자인 이스라엘은 합법적인 국가로 국제사회의 일원이고, 점령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은 국가가 아닌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에 참여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지역Palestine territory 혹은 반국가집단인 것입니다(1988년에 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이 선언되었으며 미국 등 서방을 제외한 많은 유엔회원국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국경과 내부의 치안, 수자원, 난민귀환권, 이스라엘의 불법식민촌, 그리고 예루살렘 등에 관한 실질적인 통제권은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7 23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올라온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조사 결의안에 유일한 거부권을 던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한국정부는 서방 유럽국들과 함께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서방을 중심으로 한 주요언론을 통해 퍼져나가고, 그렇게 퍼져나간 그림은 실제로 힘을 가지고 현실로 고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1. 문화적 보이콧

 

빼앗긴 문화 - 뒤틀려가는 팔레스타인과 정상적인모습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도 삶이 있습니다. 웃고, 외식을 하고, 학점을 고민하고,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상에는 당연함이 빠져 있습니다. 희생자로서 정당함을 얻기 위해 희생자답게 혹은 저항자답게 굴어야 한다는 굴레가,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에 녹아서 당연함을 빼앗아 갑니다. 웃고 떠들고 카페에서 돈을 쓰고 사랑을 하고 그렇게 삶을 지켜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저항의 일부라는 얘기는, 막상 그걸 당연하게 살기는 힘든 일일 때가 많습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는 삶과 문화에 앞서 기획들이 난무합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자체를 비롯해서 도로 등의 인프라스트럭쳐와 공공, 문화, 교육사업들이 거의 전부 오슬로협정 이후 쏟아져 들어온 외국 엔지오들, 국제단체들, 외국 자본들로 굴러가게 되면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자기 땅과 문화를 지키려고 부여잡고 있으면서도 그 땅에 대한 소유와 책임감은 겪고 배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간극을 헤맵니다. 그저 좋아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예술을 즐길 기회가 없이 예술이 온갖 문화제와 치유프로그램과 극복이나 저항의 수단일 수밖에 없던 삶을 산 팔레스타인 젊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려는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서안에 계속 건설되고 있는 불법식민촌(settlements)를 빌미로 분리장벽 또한 계속 그 땅을 찢어놓고 있는데 그 장벽 건설현장에라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역설이 생계수단일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자유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문제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경험과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가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매력적이거나 익숙한 문화. 길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동네에서 자율적으로 열리는 벼룩시장, 출근 시간 간단한 요기거리를 들고 바삐 거리를 걷는 분주함. 우리는 아마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보다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정서적으로 더 공감하거나 익숙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가치와 정서를 의식적으로 이용합니다. 이스라엘은 각종 학술, 문화 행사를 유치하고 참여하며 이스라엘을 점령자나 학살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체계적으로 국가 브랜드를 세탁해 왔으며, 팔레스타인 내의 학술, 문화 행사는 조직적으로 방해, 금지해 왔습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의 삶에는, 그들이 가하는 점령의 폭력 때문에 스스로조차 뒤틀려가는 팔레스타인의 생명이 가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뺏은 것은 팔레스타인의 땅과 삶, 곧 문화입니다

 

빼앗긴 개념 정상화/일반화normalization = 가해자에 대한 무의식적, 암묵적 동조

팔레스타인의 죽음은 세계의 관심과 공감을 받지만 팔레스타인의 삶은 이스라엘누려야 하는 가치를 위해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가자에 폭격이 시작된 후에 가장 큰 바람이 된 것은 폭격 중지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원상태로의 복귀, 팔레스타인에게는 가족의 죽음과 끊긴 전기와 썩는 물과 파괴된 동네를 갖고서 다시 7년간의 봉쇄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폭격으로, 박탈된 인권과 무관심으로 돌아간 후, 이스라엘이 폭격의 이유로 지목한 어긋나는저항도 하지 말고 숨죽이고 죽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지 않는 동안에도 팔레스타인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있다는 사실은 잊혀지기 쉽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스라엘은 잠시 동안의 분쟁때문에 취소되었던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공연을 다시 개최하고 이스라엘인들은 비로소 그런 공연들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요.

2008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세계를 향해 세계적인 문화인사들이 던진 기념할 이유가 없다No Reason to Celebrate’라는 외침에는 여전히still’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기념할 이유가 없다! 60년이 된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단지 비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엔이 인정한 귀환권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수많은 유엔결의안을 어기면서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과 기타 아랍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후한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지원을 받으며 끊임없이 막무가내로 국제법을 어기고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점령이라는 틀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삶의 당연한 기본으로서 문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그 문장 자체는 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가 이제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리겠다고 주장할 때, 피해자는 여전히온 삶과 온몸으로 그 가해자가 만들어내는 매일의 점령을 현실로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구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 그 당연한문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여전히 가하고 있는 점령과 인종청소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 구조에 동감한 많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적, 문화적 보이콧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애와 미를 얘기하는 그들의 말과 삶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학술문화 보이콧 사례는 아래)

희망과 공존이라는 가치는, 점령자와 점령당한 자를 마치 동등한 것처럼 대하는 왜곡된 바탕에서는 설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정상화/일반화가 노골적인 폭력만큼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이 인식하지 못한 채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사회가 지켜야 하는 가치들이 표면적으로만 내걸린 곳에서는 현재와 여기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로서의 공감능력과 책임의식이 막연한 역사의 일반화에 묻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유대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고수하고 가자지구의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EIDF에서 희망과 공존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문화적 보이콧을 통해 가려지고 왜곡된 현실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려는 겁니다.

 

문화보이콧은 강제가 아니라 고민과 선택입니다.

학술적, 문화적 보이콧은 범위나 정도가 넓고 고민할 지점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문화예술 자체의 가치나 기회의 균등함을 이유로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반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학술문화 보이콧은 아직 담론화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 불분명한 상태에서 다양한 입장과 수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삶의 입장을 고수하더라도 그 선택은 찾아가고, 변화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의 아무런 경험과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의 말하기가 아닌, 고민할 지점들을 마주하는 담론화가 자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문화 보이콧을 말할 때는 개인의 취향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문화적 보이콧은, 정의를 위해서 카페에 가지 말고 음악을 듣지 말라는 단순한 강제가 아니라 그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죽음에 대해 공감하고 얘기한다면,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고민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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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