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의 힘

2011.11.06 12:14 from 크리스찬곰

레크리에이션 약물로 경험할 수 있는건
뭐 쫌 많이 어렵긴 하겠지만 다른 발화제가 있어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읽는 어린이였는데,
그 책 중 마법을 배우는 아이가 있었다
마법은 짠, 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 집중력 훈련을 해야하는데
집을 떠올리고 방을 떠올리고 바닥에 있는 벽돌을 떠올리고 그 벽돌의 패인부분이 보이고 감촉이 느껴질 때쯤
눈을 떠보니 땀을 흘리며 헉헉대고 있더라는 대목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마법을 부려보고 싶어서 그걸 한 번 따라해봤는데
집 단계에서 포기했다
난 기억에 이미지가 없고, 이미지를 잘 떠올리지 못한다

최면도 비슷하다
그 상황 안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그정도는 아니고, 좀 더 노력하며 집중해서 뭔가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정도다
재밌는 건,
그 정도로도 울고 웃고, 맺힌 부분에서 감정이 평소보다 크고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거다
물론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걸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왜이리 기도하는 게 힘든지, 자꾸 미루고 피하게 된다
그날 해야하는 얘기를 하는 기도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서나 밤에 자기 전에 시간맞춰 행동하려고 애쓰는 기도도 있고,
근데 힘든 건, 집중해서 나 자신을 바라보거나 고백을 하는 기도다

나는 멋진 대모님이랑 쌍으로 갖고 있는 빨간색 장미묵주가 있다
카톨릭 성물은 의식적으로 비싼 걸 피하기 위해 금이나 은, 이런 게 많지 않아서 다른 악세사리보다 많이 저렴한 편인데,
그 중에서도 이태리제나 이스라엘(썅!!)제를 쫌 쳐주는 것 같다
이스라엘(썅!!)제는 뭐, 성지 개념이 들어가 준 것 같고..(이 얘기는 나중에 또 하겠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지금까지도 하느님...은 커녕 예수님...도 그렇고, 그래서 가장 편안한 마리아님...에게도 감정이 닿지 않아서
가끔 엄마아빠를 그 자리에 놓고서
내가 한없이 받은 거, 용서 받은 거, 사랑 받은 거 생각하면
아 진짜 눈물이 줄줄 나온다
뭐 그렇다고 평소에 효도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뭐야 이건..

                     내꺼랑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생긴 5단 장미 묵주(출처: 명동 가톨릭 성물 www.catholic-holygift.co.kr)



어쨌든,
묵주기도를 하는데
감정이 잘 닿지 않고, 내가 바라는 거, 내가 보는 게 뭔지도 모르겠어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손을 휘젓고 있는 나 자신을 떠올려 봤다
(심지어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조차 나한테는 사치다. 허공이 딱이다)
나는 분노의 화염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에
허공+화염+나 이렇게 세개가 한세트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휘휘 휘젓고 있는 거였는데
그 다음에는 온전한 내가 아니라 가슴팍에 커다란 연필심 같은 걸 꽂고 나타났다
그 거대한 연필심이 창이 꽂혀있는 것처럼 앞뒤로 길게 나와있을 때는 차라리 나았는데,
어느날부터는 매끈하게 잘려서 딱 내 몸 가운데 까만 원통이 박혀있는 형태였다
그게 더 깝깝하고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화염을 헤치고 뭔가 코앞에 어렴풋이 등장했는데
낡은 느낌의 고풍스러운 탁자같은 거였다
처음에 난 그게 상상 속의 성당(실제 성당에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에서 내가 팔을 괴고 기도하는 탁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화염이 더 가시고 그 고풍스러운 탁자의 자태가 드러났는데
탁자로 착각할만큼 무지 커다란 십자가였다
오마이갓
내 취향의 십자가니까 내꺼가 맞는 거 같은데
내가 지고 있지는 않았고 그냥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누군가 그 십자가를 지고 있는데
엄마든 아빠든 예수님이든, 하여튼 나는 아니었다
열라 무거워보이는, 쇠로 된, 묵직한, 고풍스러운 내 십자가를!
항상 남이 지고 있었다
가슴팍에 딱 맞는 사이즈의 연필심을 꽂고 화염방사를 하고 있는 나는
그냥 멍청히 있거나 손을 휘휘 젓거나 가끔 기도를 하는 게 다다


  
 





내 머리스타일과 같다는 이유만으로 선발된 기도 소녀
(출처: 마리아사랑넷
www.mariasarang.net)




심지어 깨달은 사람조차도 그동안의 관성을 버리기 위한('죄'나 '업'보다 난 '관성' 쪽이 더 와닿는다) 
오랜 노력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돈오점수파에 한 표다
뿅, 하고 이루어지는 치유나 변화는 당연히 없겠지
공부나 운동처럼
꾸준히 조금씩 집중하고 노력하다보면
어느날 쪼끔은 가까이 다가가 있는 나를 볼 수 있을테다
기도를 하면서 비로소, 카톨릭 기도와 내가 좋아하는 불교 사이에 엄청 많은 공통점이 실제로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세례받은지 얼마나 됐다고 미사를 두 번씩이나 빼먹고
묵주기도는 안한지 오래고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 생각해봤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더라도, 힘든 기도를 꾸준히 오랫동안 애써하면서
몸이 익히려 한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