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2011.12.08 04:48 from 동선



나는 병원을 두 군데 다니는데
하나는 한의원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이다
양쪽 병원에서는 내가 다른 쪽을 다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다니고 있다는 건 모른다
한의원 쪽에서는 상담을 공들여해주고, 병원 쪽에서는 약을 공들여지어준다

문제라고 할 것도 없지만,
문제가 뭐냐면
나는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데 익숙하지가 않은데
이제는 일주일에 2번, 서로 다른 사람에게 반복해서 내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한의사는 인내심이 많고
양의사는 얘기보다는 약의 효과에 더 관심이 많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나더러
그냥 다들 가지고 있는 문제 같은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까 '너무 심각해'지면 안된다는 투다
내가 심각한데 왜 심각해지면 안된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매번 설명하기도 귀찮지만,
다들 가지고 있는 문제여도 그냥저냥 살 수 있는 사람한테는 문제가 아니고
그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거나, 일상에 변화가 뚜렷해졌다거나, 몸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또 흥미로운 건
내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한걸음 떨어져 있었던 주변의 지인들이 나의 변화를 더 눈치채고
위로를 해주고
손을 내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무엇보다 그 따뜻한 손들이 너무 필요해서 심지어 독일에까지 국제전화를 걸던 중이었다
성당에서 혼자 앉아있다가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잡고서 온 건가 하는 생각에
조금 흔들거렸다

그러고 보니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꼭 보듬어주고 계시는 아빠엄마의
품은
왜 항상 미안하기만 하고 부담이고 귀찮았을까
왜 먼저 사랑하고 기쁘고 좋다는 게 앞서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병원(들)을 다니면서 좋은 점은
엄마아빠와 처음으로 나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런 게 처음이라 어색해하실 줄 알았는데
우리 아빠엄마는 웬만한 변화나 충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으신다
나랑 오빠를 키우면서 뱃속에 부처가 들어앉으셨다

+    

나는 상담을 할 때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일'을 중심으로 얘기했었다
예를 들면 10살 때 원인모를 열병으로 아팠던 거, 그리고 스테로이드를 치료약으로 복용했던 거, 그 부작용.
사실 그거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학창시절 얘기를 하다가 고3 때 대학을 안가고 동굴에서 도닦으려고 하다가 발각돼서
학교랑 집안을 뒤집어놨던 얘기가 나왔다
왜 그 이야기는 미리 안했냐며 의사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놀랐겠지만, 그 일을 꾸민게 난데 내가 놀라고 충격받을 게 뭐람,
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상당히 둔한 편이어서,
자신에게 뭐가 충격이었고 뭐가 일상이었는지 구분을 못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렇잖아도 상담중에는
평소라면 감정변화 없이 나열할 수 있는 10가지 이야기들 중에
유독 어떤 것들에는 격렬하게 반응을 하면서 울 때가 있다
지난주 상담 때 나는
예수님이 불쌍하다면서 숨을 못쉬게 울었고
정신이 들고 나서는 기분이 멍 했다
생뚱맞게 예수님이 그렇게까지 불쌍했었나
내 안에 누가 뭔 생각을 하면서 들어앉아있는 건지 모를지경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뜬금없이 크리스찬이 된 건지도 모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했었는데.

그리고서 아빠가 말해서 문득 알게 됐는데,
나는 어렸을 때는 없던 고소공포증이 언젠가부터 생겼다
언젠가부터 커다란 가방에 '모든 것'을 다 넣고 다녔고
언젠가부터 얇고 뾰족한 게 무서웠다

- 다들 크고 나면 집을 떠나고 싶어해. 그래도 실제로 그러는 애들은 별로 없어.
  그런데 너랑 오빠는 그러더라. 진짜로 가더라.
라고 엄마가 말했다
아, 나랑 오빠가 그랬었구나
하지만 엄마아빠를 떠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우리 부모님은 많이 괴로웠을텐데도
항상 체면보다는 나를 먼저 챙겼다
내가 고3때 대학을 안가겠다고 등교거부를 하며 버틸 때도
한발 물러서 달랑 수능성적표만 쥐어주고 또 버틸 때도
부모님 입장에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대학을 가겠다면서 우길 때도,
지금이나 그때나 학생과 학부모의 입지와 체면은 성적과 대학이름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한데도
엄마아빠는 한번도 그런 의미로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나를 다그치지 않았었다
정말로 내 마음이 어떤 건지를 먼저 걱정해주셨다
나는 그걸 항상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진실로 느끼고 있다

도움의 손길을 잡았더니
세상이 좀 넓어진 기분이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