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날의 그녀에 대한 기억

작성자 gotothezoo      

번호 53

조회수 2

작성일 2002-04-11 오전 11:36:12



섬에 갔었어

날적이에다 네게 할 말을 적어놨었는데

다음에 가보니까 날적이가 없어졌어

말끝에 울먹였다

나도 섬에 갔었다

오래전 얘기다

나 역시 날적이에 그녀에게 할 말을 적어놨었다

한 쪽이 다 찼었다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술 많이 마시지 말고

가게에 캐빈을 갖다놓으면

내가 매일매일 올텐데

술을 끊었다고 대답해줬다

그리고 여기 올 일이 있으면

친구를 대신 보내라는 말도 했다

사실 그럴필요는 없는 것이다

근처에는 똑같이 생긴 직영점이

딱 삼백미터 앞에 있으니까

술 많이 먹었어?

아니

그녀는 내 앞에서

만취한 적이 없다

난 그녀 앞에서

항상 잔뜩 취해있었다

그녀는 새벽까지 깨어있다가

새벽에 일어났고

나는 해지면 잠이 들어서

아침까지 자곤 했다

때로 새벽에 깨어 잠이 든 그녀를 볼 때가 있었는데

아주 드문 일이었다

같이 잘 때면

난 점점 벽으로 붙곤 했었다

어떤 것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괜찮아

그녀가 나를 안고 귀에다 말했다

난 그제서야 울기 시작했다

난 조금도 괜찮지 않다

우울은 일상에 묻혀서 지나갔다

난 사실 요즘 잠이 모자라서

책을 읽을 시간과 잠을 잘 시간을

어떻게 잘

배분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고민한다

하지만

난 괜찮다

는 따위의

근거없는 확신은

이제 관두기로 했다

그 쪽이 훨씬 솔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