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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인간

2011.03.05 20:42 from 모텔 동물원

내가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비싸거나 쓸데없는 사치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나한텐 그게 싫어할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눈에 전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지겨운 유산소운동처럼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는 가게들을 빙빙 도는 게 싫을 뿐이지
쇼핑 자체는 오히려 좋아한다
그래서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쇼핑 목록만 모아놓은 폴더가 있는데
그 이름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이다

                 

이것은 가급적 비싼 걸로 퍼온 샤넬 가방.                            이것이 내 눈에 예뻐보이는 가방. 빈티지 좋아하는 거 맞음.
역시 예뻐보이지 않는다.                                              이래뵈도 이태리 장인이 만든 거임   출처: windee.co.kr




실제로 미적감각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건을 대할 때 무럭무럭 솟아나는 사랑이 생명체한테는 없을 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실제로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일관성 있게 행동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온갖 추한 것들을 보면,
꼭 사지는 않더라도 틈틈이 가게나 온라인 쇼핑몰들을 방문하면서
취향과 감각을 유지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 뿌리내린 자존심은
크고 예외적인 일이 닥쳤을 때도 거의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미적감각이란 게 나의 경우엔 전적으로 취향에 달려있다는 건데,
그래서 예를들어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난 소개팅이나 선을 통한 인간관계를 전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착한 사람'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에게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언제나 항상 돌아오는 것은 '취향'문제다
나는 말투만 마음에 안들어도 상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를 들기 위해 데려온 고양이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고양이의 예                             아주 마음에 드는 고양이의 예
(고양아 미안해, 사실 너도 예뻐)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나의 그 취향이 요즘 극히 소모적이라고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옷을 사는 게 소모적이진 않지만 그 옷을 입는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모적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게 소모적이지는 않지만 내가 모든 사람의 모든 주제에 무기력을 느끼는 상태라면
좋지 않다
비판하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나 화낼만한 주제를 곱씹으며 화를 방출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좋지 않다
좋지 않아

모로코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라고들 하는지 생각해본다
가본 적은 없다
시리아에 갔다왔던 지인은 감탄을 했었다
난 아직 그 지인의 결혼 축의금도 미처 주지 못했다
이 세상과 나의 첫 연결고리인 지인들과 음식과 분쟁이나 전쟁, 음악, 영화제를 열까 미술을 좀 더 알아볼까 하는 것들,
아무생각 없이 우선은 여행을 가야하는 지 고민하는 것,
지난 추억과 사람들을 더듬는 것,
등등을 다 빼버리고나면

아랍(이 거대한 정의!)과 아랍인이 주는 원초적인 매력이 있는데,
나는 때로 그것을 갖기 위해서 앞서 말한 그 모든 지인들과 음식과 전쟁과 기타등등을 내가 소모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 반대든가

나는 원래 남미에 가고 싶었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고, 잘 하지도 못하고, 그 상태가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멕시코나 쿠바에 가서 음악을 듣고 싶었다
게다가 데낄라가 진실로 대단한 파티용 술이라는 것도 아주 객관적이고 명백한 사실이니까

내가 만난 아랍의(그래봐야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소위 전형적인 나의 이상형이었냐하면
그렇다!
기억 속의 내음과 목소리들은 그렇게나 이상적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떠나오기 전 날,
나는 술에 잔뜩 취해서 한국에서 하던 것과 똑같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장 게스트하우스로 튀어오라고 명령조로(나의 영어 말투는 명령조라고들 한다) 말했고,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술을 마시고 있던 그는 그대로 차를 타고 실제로 날라왔다
오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가 났고
그걸 고치느라 한 시간을 길에서 보냈고
그 길은 모두가 알다시피 점령상태로, 거기에서 인내나 운이나 로맨스를 바란다는 것은
어떤 팔레스타인 관련 책자나 기사에도 나올 일이 없는 얘기였지만 실제로 그는 그 일을 벌였으며
그래도 차를 고칠 방법이 없어서 그 와중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라말라로 왔다
그가 멋지게 문을 열고 등장했을 때 난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는데
그는 나더러 '마즈누나', 즉 미쳤다고 말했고
난 잘 생각해보라고,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라고 대답했다
차를 몰았고 마침내 차를 다 고쳤던 그의 친구는 두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그를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점령이라니

새삼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미친 건 나나 그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미치지 않는 대신에
소모적이 되었다

아랍은(다시 말하지만 그 광대한 단어의 범위라니!)
사실 내가 거기로 돌아가야 할 삼백만 개의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책이나 영화나 또는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동방견문록 같은 이미지에서조차
너무도 실제적으로 원초적이고 매력적일 지 모른다
난 아마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것에, 단지 그것에만 끌렸을 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만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내게 돌을 던지지도 목을 베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소모적인 인간
내게는 이유가 필요하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