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Salt of This Sea>
 



어린이들에게 자존감은 스스로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면 안된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외부로부터도 지켜져야 한다
사람은,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쉽게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흘긋 훑는 눈길,
뒤에서 속삭이다가 킥킥대는 웃음,
면접,
명절 때 친지들의 목적없고 경박하고 잔인한 질문들,
옛 애인의 결혼식, 
비뚤어진 자식 새끼들,
산부인과 의사의 무례함,
성적 공개,

그리고 이스라엘 세관.

이스라엘 세관을 통과하면서
무표정으로 목소리도 높이지 않으면서 반복하는 질문들 앞에 삼십분을 서 있으면
당신은 당신에게 문제가 없으며 당신이 옳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될 수도 있다
- 어디서 왔냐
- 방문 목적이 무엇이냐
- 왜 지금 방문한거냐
- 직업이 뭐냐
- 다른 신분증이 있냐
- 어디서 머무를 거냐
- 이스라엘에 아는 사람이 있냐
- 그 친구를 어떻게 만났냐
- 종교는 무엇이냐
- 아랍어를 할 줄 아냐
- 이스라엘은 처음 온거냐
- 처음이 아니면 왜 다시 온거냐
- 이 모든 건 당신의 security를 위한 것이다
...
...그리고 이 질문들은 한 세번쯤 다시 반복된다
그리고 당신의 인종(아랍인이냐 아니냐)과 국적에 따라
질문의 내용이나 강도와 당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단순하고도 치명적인 수단을 훈련받는 사람들은 멋진 현대인이 될 수 있다
난 어수룩하고 바보같고 초라하고,
당하고, 피해자이고, 약하고, 돈이 없고, 키가 작고, 어깨가 구부정하고, 쉽게 쫄고, 말을 더듬는 걸
아이들이 얼마나 경멸하는 지 잘 알고 있다
자존감의 절반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자꾸 되새겨야 한다



+



가자에 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매번 있는 참상에서 '다시'라고 말하는 기준마저도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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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인간

2011.03.05 20:42 from 모텔 동물원

내가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비싸거나 쓸데없는 사치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나한텐 그게 싫어할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눈에 전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지겨운 유산소운동처럼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는 가게들을 빙빙 도는 게 싫을 뿐이지
쇼핑 자체는 오히려 좋아한다
그래서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쇼핑 목록만 모아놓은 폴더가 있는데
그 이름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이다

                 

이것은 가급적 비싼 걸로 퍼온 샤넬 가방.                            이것이 내 눈에 예뻐보이는 가방. 빈티지 좋아하는 거 맞음.
역시 예뻐보이지 않는다.                                              이래뵈도 이태리 장인이 만든 거임   출처: windee.co.kr




실제로 미적감각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건을 대할 때 무럭무럭 솟아나는 사랑이 생명체한테는 없을 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실제로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일관성 있게 행동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온갖 추한 것들을 보면,
꼭 사지는 않더라도 틈틈이 가게나 온라인 쇼핑몰들을 방문하면서
취향과 감각을 유지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 뿌리내린 자존심은
크고 예외적인 일이 닥쳤을 때도 거의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미적감각이란 게 나의 경우엔 전적으로 취향에 달려있다는 건데,
그래서 예를들어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난 소개팅이나 선을 통한 인간관계를 전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착한 사람'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에게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언제나 항상 돌아오는 것은 '취향'문제다
나는 말투만 마음에 안들어도 상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를 들기 위해 데려온 고양이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고양이의 예                             아주 마음에 드는 고양이의 예
(고양아 미안해, 사실 너도 예뻐)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나의 그 취향이 요즘 극히 소모적이라고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옷을 사는 게 소모적이진 않지만 그 옷을 입는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모적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게 소모적이지는 않지만 내가 모든 사람의 모든 주제에 무기력을 느끼는 상태라면
좋지 않다
비판하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나 화낼만한 주제를 곱씹으며 화를 방출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좋지 않다
좋지 않아

모로코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라고들 하는지 생각해본다
가본 적은 없다
시리아에 갔다왔던 지인은 감탄을 했었다
난 아직 그 지인의 결혼 축의금도 미처 주지 못했다
이 세상과 나의 첫 연결고리인 지인들과 음식과 분쟁이나 전쟁, 음악, 영화제를 열까 미술을 좀 더 알아볼까 하는 것들,
아무생각 없이 우선은 여행을 가야하는 지 고민하는 것,
지난 추억과 사람들을 더듬는 것,
등등을 다 빼버리고나면

아랍(이 거대한 정의!)과 아랍인이 주는 원초적인 매력이 있는데,
나는 때로 그것을 갖기 위해서 앞서 말한 그 모든 지인들과 음식과 전쟁과 기타등등을 내가 소모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 반대든가

나는 원래 남미에 가고 싶었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고, 잘 하지도 못하고, 그 상태가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멕시코나 쿠바에 가서 음악을 듣고 싶었다
게다가 데낄라가 진실로 대단한 파티용 술이라는 것도 아주 객관적이고 명백한 사실이니까

내가 만난 아랍의(그래봐야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소위 전형적인 나의 이상형이었냐하면
그렇다!
기억 속의 내음과 목소리들은 그렇게나 이상적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떠나오기 전 날,
나는 술에 잔뜩 취해서 한국에서 하던 것과 똑같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장 게스트하우스로 튀어오라고 명령조로(나의 영어 말투는 명령조라고들 한다) 말했고,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술을 마시고 있던 그는 그대로 차를 타고 실제로 날라왔다
오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가 났고
그걸 고치느라 한 시간을 길에서 보냈고
그 길은 모두가 알다시피 점령상태로, 거기에서 인내나 운이나 로맨스를 바란다는 것은
어떤 팔레스타인 관련 책자나 기사에도 나올 일이 없는 얘기였지만 실제로 그는 그 일을 벌였으며
그래도 차를 고칠 방법이 없어서 그 와중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라말라로 왔다
그가 멋지게 문을 열고 등장했을 때 난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는데
그는 나더러 '마즈누나', 즉 미쳤다고 말했고
난 잘 생각해보라고,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라고 대답했다
차를 몰았고 마침내 차를 다 고쳤던 그의 친구는 두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그를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점령이라니

새삼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미친 건 나나 그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미치지 않는 대신에
소모적이 되었다

아랍은(다시 말하지만 그 광대한 단어의 범위라니!)
사실 내가 거기로 돌아가야 할 삼백만 개의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책이나 영화나 또는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동방견문록 같은 이미지에서조차
너무도 실제적으로 원초적이고 매력적일 지 모른다
난 아마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것에, 단지 그것에만 끌렸을 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만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내게 돌을 던지지도 목을 베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소모적인 인간
내게는 이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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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음악이 함께 하던 좋은 곳 황금시절 이야기...
때 : 현재
장소 : 팔레스타인
시 : 마흐무드 다르위시
노래 : 사브린 Sabreen










<소원에 관하여>

내게 말하지 마라
알제리에 가서 빵 장수나 되어
혁명가와 같이 노래나 불렀으면 하고!

내게 말하지 마라
예멘에 가서 목동이나 되어
세월의 봉기를 노래했으면 하고!

내게 말하지 마라
하바나에 가서 카페의 점원이나 되어
서러운 이들의 승리를 위해 노래나 불렀으면 하고!

내게 말하지 말라
아스완에 가서 나 어린 짐꾼이나 되어
바위들을 위한 노래나 불렀으면 하고!

*

나의 벗이여
나일 강이 볼가 강으로 쏟아질 리 없고
콩고 강이나 요르단 강 또한 유프라테스 강으로 쏟아지지 않나니!
모든 강은 그만의 시원始原 과.. 흐름과.. 삶이 있다네!
나의 벗이여! .. 우리의 땅을 불모지가 아니라네
모든 땅은 그 만의 태생을 갖고 있고
모든 새벽은 그 만의 혁명의 약속을 갖고 있나니!


                                                                    - 마흐무드 다르위시 <올리브 잎새들>(1964) 중 / 번역 송경숙







노래: 팔레스타인 음악 단체 사브린 Sab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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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린,의 노래 <비둘기가 옵니다 -_->
노래가 죽음이니 우연히라도 여기 들어온 사람들은 플레이 단추를 꼭 눌러주세요 -_-







                                      Jayy Al-Hammam (The Doves are Coming)                     
                                                               Poem by Hussein Barghouthi / Song by Sabreen (1994)























사브린.
1980년 작은 음악 밴드로 시작한 팔레스타인 음악 그룹
"모두를 위한 음악"
음악을 통한 아이들 교육, 강사 교육, 대안 악기 제작,
음악을 통한 표현과 소통

그리고 희망

난무하는 워크샵들, 유행들, 패턴들이 아닌
실질적인 희망
그래서 오래 못가고 스러지기 쉬운 아슬아슬한 희망












 

                                          카리스마 작살의 카밀리야 주브란 씨 Kamilya Jubran




리드 보컬인 Kamilya Jubran 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없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종류의 분노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사람과 음식과 냄새와 사랑과 다툼과 음악과 유머, 잘난척과 소박함 그리고 담배가 넘쳐났다
그 강한 내음들을 비켜내고 뒤집고 파고 파고 파고 파고 파들어가야
그들의 분노라고 추측되는 것이 거기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위의 내음들은
가짜가 아니었다
분노를 가리기 위한 어떤 안개 같은 게 아니었다

그건 진짜 삶이었다








그래서
책으로 공부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다시 생각했다

난 실은
미처 문화적 충격을 겪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에 본 모 시험 범위에 포함되었던 것인데
낯선 문화를 만나게 되면
1. 멋모르고 매료되다가
2. 당황하고 화나며 그 문화의 합리성을 믿지 않다가
3. 천천히 그것을 극복하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4. 그리고 마침내 두 문화를 익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는 내용이 있다

나는 1번에서 막 2번에 발을 걸치려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1번의 상당히 큰 비중을 Sabreen 이 차지하고 있다

 

 








     Sabreen 의 1994년 앨범  < جــاي الــحــمــام   Here Comes the Do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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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랜,
눈을 감고 들어야합니다
꼭.

플레이 버튼 안누르면 안나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문화교류단체에서 일할 때
<타한눈+>라는 행사가 있었다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등의 음악, 영화, 동화, 글 등을 소개하는 거였는데
그 때 알게 된 음악들이 많다

당시 초대가수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쏭'씨는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에 붙인 곡을 썼었다
그런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음악들을 주고받았었는데

이건 나에게는 앞에서 나온 <Camel of My Soul> 에 이은 2등
'쏭'씨에게는 1등짜리 노래였다





+




그리고 이건,
노래를 듣기전에 가사를 번역한 것.

노래를 들은 후엔
쓰레기가 되었다

글로 볼때는 정확히 이런 어조였는데
곡을 들으니 이건 아니었다




Ya Jammal                                  by Rim Banna(2005)


자말씨는 내 마음을 찢어놓네, 떠나겠다고 하다니.

난 말했지, 자말씨, 인내심을 가져.

그가 대답했지, 인내심 따위는 남아있지 않아.

 

난 말했어, 자말씨, 어디로 갈건데?

그가 말했지, 남부 사막으로.

내가 말했어, ‘뭘 가지고 갈건데.’

그가 말했지, ‘미스카랑 에센스.’

 

내가 말했지, ‘말해봐봐, 넌 문제가 뭐야.’

그가 말했어, ‘애인을 갈망하는 것.’

내가 물었어, ‘치유사를 만나봤어?’

그가 대답했지, ‘구십 명이나

 

난 말했지, ‘자말씨, 나도 데려가.’

그가 말했어, ‘안돼. 가뜩이나 무거운데.’

내가 말했지, ‘자말씨, 나 걸어갈께.’

그가 말했어, ‘안돼, 가뜩이나 길도 먼데.’

 

난 말했어, ‘수천 년도 걸을께. 네 눈을 따라 갈께.’

그가 말했지, ‘이봐, 비둘기야, 이민자의 삶은 미르(씁쓸한 풀 종류)만큼 쓰다고.’

 

자말씨는 내 마음을 찢어놨지, 떠나겠다고 했을 때.

그가 남긴 거라곤 내 뺨에 흐르는 눈물뿐.







                     멋쟁이 림반나 Rim Bann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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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  낯선 세상을 만나서, 질문이 생겼다

 

평화바닥과는 2003년에 요르단에서 만났다. 이라크에 가는 길목이었다.

당시 반전평화팀으로 요르단과 이라크에 있었던 사람들이나, 지원연대로 한국에 있었던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탄생한 것이 평화바닥이다.

나는 당시 순전히 참 논리에 맞지 않는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는 구나라는 논리적 생각을하던 끝에, ‘왜 말도 안 되는, 게다가 유치하게 뻔히 보이는 괴상한 이유로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고 난리야라는 감정이 앞서게 되는 바람에, 화를 풀러 이라크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메탈리카, 검은색, , 회색곰, 북극곰, 갈색곰 등등이라고 대답하고, 무엇을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바퀴벌레, 빨간색, , 굴국밥, 굴전, 굴무침, 굴을 넣은 김장김치 등등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나건,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을 하건, 베트남 전쟁이 역사의 흐름과 파워게임에서 무슨 의미가 있건, 나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난 내 반경 삼백미터 안, 내 세상에서 메탈리카와 곰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이라크로 가는 길목에, 요르단에서 반전평화팀을 만났다.

잠시 들러서 인사나 나누고 헤어질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멀찍이 바라보기로 작정하고 봤는데, 반전평화팀 사람들의 첫인상이 어땠냐 하면, 뭔가 낯설었다.

먼 요르단에 와서 아파트 바닥에 엎드려 피켓을 만들던 아가씨, 반전과 평화에 대해 말하며 한국도 이제 국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하던 아저씨, 열심히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왠지 그들이 머물던 아파트를 뭔가 중요하고도 역동적인 분위기로 만들던 아줌마.

뭔가 이면에 담겨진 거대한 동기와 생각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던 그 자태들.

이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에 운동권, 정치인, 시민 운동가, 기자 등등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파하, 하고 웃었다.

생각이 경계가 넓은 사람들이구나, 나와는 다르게.

확실히, ‘곰이 좋아요라는 문장 보다는국가가 과오를 저질렀다라는 문장 쪽이 더 넓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목적의식이라면 내 쪽이 더 분명하다. 나는 간단하게, ‘화를 풀러온 것이니까.

이들은 사회적, 정치적, 인간적 정의를 원하는 것일텐데(운동권이나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로 옭아매는 시스템도 그렇고, 단 둘이 서로의 말투만 마음에 안 들어도 만족스럽지 않은 그 인간이란 것도 그렇고, 그 인간들과 시스템들이 얼기설기 짜여있는 이 세상도 그렇고, 뭐 하나 한가닥을 들춰낼 수가 없는 깊이 복잡하게 단단히 짜여있는 최고급 양탄자 같은 거 아니었나(여기서 최고급이라 함은 그 복잡한 무늬와 단단한 짜임새를 강조하기 위한 것뿐이다). 그 복잡하고 단단한 최고급 양탄자의 무늬를 결국엔 통째로 재배치 하겠다는 것이, 바로 내가 느끼던 그들의 목적이었다. 어디서부터 올을 건드려서 그 무늬를 바꿀건지, 무늬를 바꾸다 보면 다시 양탄자 모양이 제대로 짜여지긴 할 건지, 아니 그래봐야 양탄자는 양탄자일텐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미가 있을까?

한 명 한 명,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나름대로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딘가 세상 곳곳에 흩어져 바스락거리고 있을 때, 어쨌든 로마가 망한 후에는 오토만 제국이 있었고, 영국이 휩쓸고 나면 미국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그 미국만 갖고 생각해봐도 베트남 전쟁을 말아먹었다지만 또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겠다는데.

 

세상의 큰 흐름은, 그렇게 매번 맞닥뜨린 거대하고 비이성적인 힘에 맞서는 작은 사람들의 외침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그저 그렇게 가는 것이지 않나.

이름만 바뀌어가며 매 시대마다 똑 같은 패턴을 다양하게 반복해가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그 시스템이라는 허구 속에서, 그리고 그 허구 안에 자신도 모르게 갇힌 개개인들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들의 노력과 정열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지 난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약간은 다른 눈으로 사람들을 보게 된 후, 전에는 아예 보지도 않았던 사회와 세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려고 하게 된 후에도,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다. 내 세상에 메탈리카와 곰과 함께, 낯선 질문이 살게 되었다.

의미가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 사람을 만났더니, 상황이 보였다

 

2003, 나는 이라크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요르단에서 모래가 퍼석퍼석한 사막을 걸어서 한 이삼십분 가면 이라크가 나오겠거니 싶었다. 이라크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막연한 단어들만 가지고 비행기를 탔다. ‘전쟁’, ‘사담’, ‘반전’, ‘이라크’, 그런 그냥 단어들.

내게 해외여행의 첫 인상이란 어떠냐 하면, 사람들이 배경에 묻히는 느낌이다. 바그다드 길거리의 낯선 이라크 인들의 자태는, 그 낯선 이라크의 풍경에 붙어 있는 일종의 한 이미지일 뿐이었다. 바그다드에 처음 도착해서 약속장소로 차를 타고 가며 창 밖을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그랬는데, 그 약속장소였던 어느 집 앞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사람도 얼마 없던 그 동네에서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가던 소녀는, 나를 딱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다가(걔가 보기에 난 어딘가 좀 이상하게 생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로 직선방향으로 강아지가 뛰어오듯 다다다다 뛰어와서는, 양쪽 볼에 뽀뽀를 쪽쪽 하더니, 다시 제 엄마에게로 다다다다 뛰어갔다.

삼 초 만의 일이었다.

그 여자애는 미처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내 세계로 뛰어들어와서는 완벽한 인상을 남겼다.

그 삼 초 만에 나는 완전히 주저앉았다.

아 맞다, 이라크에도, 사람이 있었지. 나처럼, 살아 있는 사람이.

돈오점수라고 하던가. 아이가 내게 준 느낌은 바그다드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구가 생기면서,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점점 넓어져 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라크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몇 명이 죽었다는 뉴스가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내 친구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모두에게 전화를 돌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내 친구가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친구나 가족이 죽거나 다쳤겠구나.

안타까운 자동차 사고나 병사에 대한 얘기와는 좀 다르다. 누군가, 정의와 평화와 민주주의와 하여튼 온갖 좋은 것들의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의 친구와 가족을 죽거나 다치게 한 얘기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를 여행중이다. 라말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 이 도시 저도시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 예루살렘에 나가려던 날이었다. 게으르게 퍼져있던 나와 수는 고심고심 끝에 어느 월요일, 마음을 먹고 예루살렘에 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차로 이십분 거리나 될까, 실제로 간다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벽과 체크포인트가 없다면 먼 곳은 아니다.

그 동안 이것저것 우리를 안내해주고 알려준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예루살렘 가는 버스를 아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냥 버스일 뿐인데 간단하게 모른다고 대답하는 그가 낯설었었다.

어찌어찌 예루살렘을 잘 찾아 가서, 연말 명절을 앞두고 난리통인 올드씨티의 골목들을 걷다가, 오랜만의 나들이와 인파로 기진맥진이 되어 라말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화요일, 그러니까 바로 그 다음날 예루살렘의 한 사진 전시회에 초대를 받은 것이 생각났다.

수와 나는 동시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냥 간 것도 아니고, 나름 고민해서 날을 정해 모처럼 나간 예루살렘 나들이었는데, 바로 그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있는 전시회를 까맣게 잊고 그 난리를 떨었다니. 그러니까 내일 또 예루살렘에 가야한단 말야? 라면서, 우리는 큭큭거렸다.

저녁 때, 여러모로 우리를 돌봐주고 있는 살마 아줌마와 작 아저씨의 차를 타고 연주회에 가는 길에 나는 살마 아줌마한테, 아줌마, 우리 완전 한심해요. 오늘 예루살렘 갔다왔거든요, 모처럼. 근데 내일 예루살렘에서 있는 사진 전시회에 초대받은 걸 까먹었지 뭐에요. 우리 내일 예루살렘에 또 가게 생겼어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연주회에서 멋진 우드(아랍 기타)와 두르벡(팔레스타인 북) 등등의 연주를 들으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팔레스타인의 초록색 신분증을 가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 살마가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예루살렘에 있던 이모를 눈앞에 두고도 거의 찾아뵙지 못했다는 얘기 말이다. 정확히는 찾아뵙고 싶어도 이스라엘에 의해 금지 당했던 얘기였다.

웨스트뱅크의 이것저것을 척척 가르쳐주던 친구가 예루살렘에 가는 버스를 모르는 것은, 그가 차로 몇십 분 거리의 예루살렘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인들이나 아니면 예루살렘 거주증을 가지고 있는 예루살레마이트, 그리고 이 땅과 전혀 상관없는 외국인들이나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예루살렘을 눈 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경솔하게내뱉은 질문과 농담이 미안한 게 아니었다. 점령당한 땅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알게 된 분노만도 아니었다.

뭔가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에서 알게 되는, 자연스럽지 않은 현실에 대한 현실감 같은 것이었다.

내게는 그냥 농담이었을 뿐인데. 게다가 대단한 농담도 아니었다. 지금 남아프리카나 프랑스에 가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오히려 팔레스타인에게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남아프리카나 프랑스가 가까운 곳이다. 그 모든 벽들과 체크포인트, 그리고 신분증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구체적인 공간을 뒤틀고, 게다가 농담이 농담이 될 수 있는 상황까지 뒤틀어버렸다.

, 예루살렘에 또 가게 생겼어요.’

공존과 당위성과 신이라는 이름으로 농담이 슬픈 해프닝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세 번째 이야기 상황을 들여다보니, 문화가 보였다

 

나와 수는 주로 숙소가 있는 라말라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 숙소는 카탄 재단(A.M. Qattan Foundation)이라는 문화단체에서 준 게스트하우스이다.

카탄 재단은, 쿠웨이트 등지에서 돈을 많이 번 카탄이라는 팔레스타인 할아버지가 차린 재단이다. 카탄 할아버지는 그 많은 돈으로 성을 짓는 대신에(실제로 나블루스에는 어떤 떼부자가 언덕 꼭대기에 성을 지어놓아서 사람들이 농담으로 써먹기 좋아했다), 팔레스타인에 교육과 문화가 발전하고 퍼지는데 기반이 될만한 걸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덕분에 카탄 할아버지는 2007년 말에서야, 노년의 몸을 이끌고 팔레스타인에 다시 들어오도록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운 좋게도 나와 수는 카탄 할아버지의 귀향을 옆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말하자면 재단 이사장이 팔레스타인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카탄 파운데이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많은 돈, 한국에서는눈먼 돈이라고도 부르는 그걸로 무엇을 했냐하면, 무지하게 좋은 일들을 했다.

도서관을 짓고, 도서관에 책을 채우고,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전시회와 연주회를 열고,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학교들에 기자재를 갖다주고, 영화 동아리들을 만들고, 선생님들을 상대로 한 워크샵을 열고, 교육 분야에 대한 조사자료와 책들을 펴내고, 외국 예술가들을 초청하고, 해외 단체들과 연계를 맺었다.

카탄에 문화 및 예술 분야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시인이기도 한 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는 자신감과 확신이 가득한 태도로, 팔레스타인에는 새로운 문화예술 흐름이 흐르고 있으며 카탄 파운데이션이 여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문화예술 흐름이란, 점령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시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나 영화로 점령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시대차이, 장르 차이를 좀 무시해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적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카탄 재단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최고의 예일수도 있다. 문화 단체들만 보아도, 어떤 식으로든 특히 유럽 쪽의 펀드가 넘쳐난다는 이 웨스트뱅크, 특히 라말라에서, 그 돈의 출처와 흐름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힘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원금이라면 다 받는다는 단체도 물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또한 그 문화, 그러니까 전시회, 공연, , 등등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생필품의 물가가 높은 팔레스타인, 특히 라말라에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굳이 들춰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감이 온다. 거리와 시장에는 일하는 어린애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게다가 지나가면서 허벅지를 훑고 가는 버릇없는 남자애들을 마주할 때면 아주 확 그냥 발로 차버리고 싶다. 동양인이라고 옆에서 휙, , 야반야반(일본), 시니시니(중국) 이러는 것은 일상으로 겪는 일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라말라의 공기와 거리와 사람들에는, 뭔가 이들의 색깔이 묻어난다. 정기적으로 국제영화제와 댄스페스티벌이 열리고, 국제 종교음악제가 열리고,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은 유럽과 아랍을 중심으로 한 해외 각국에서 활동하면서 활발한 문화교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구체적인 것들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들은 바로 뭔가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문화의 분위기와 흐름이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장에서도, 길에서도, 집들에서도, 오랜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점령에 대항하는 끈질김을 갖고, 그러면서 그 뭔가 자기 색깔을 붙잡고야 마는 그 단단한 공기가 느껴진다.

만약, 내가 너무도 노골적인 폭력과 점령이라는 것에 잔뜩 화가 나서 팔레스타인에 왔다가, 그저 점령당한 자들로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이어가는 메마름과 삭막함만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가슴으로 공감하고 함께 간다는 강한 느낌은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은, 땅은 이름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또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들의 한 손짓 발짓이 만들어내는 삶과 그 삶의 색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또한 팔레스타인은 그런 것들을 놓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더 그 삶과 문화를 강하게 피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곳이면 당연한 온갖 모순과 약점과 복잡함을 함께 안고 있더라도, 꽃으로 피어나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그런 어떤 것이 있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줬다.




 

 

네번 째 이야기 문화 속에, 뭔가가 있었다

 

4살 때부터 이십년 동안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어렸을 때는 병아리와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동네 구석구석을 파헤집었고, 커서는 집에서 오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아파트 화단에 병아리를 묻었고, 어린시절 친구들과 약속 편지를 묻었고, 먹다 남긴 쥐포도 묻곤 했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가 예전에는 배추밭이고 공터여서, 여름에는 배추흰나비를 잡는다며 뛰었고, 겨울에는 공터에 스케이트장이 열려서 초코우유와 쥐포를 사먹었다.

그 슈퍼, 그 세탁소, 그 문방구, 그 은행, 그 사람들. 있는 것들, 없어진 것들, 새로 생긴 것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내 어린 시절의 삶과 기억을 만들었다. 몇 년 전 바로 근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만, 아직도 옛날 살던 동네를 가면 뭔가가 어려있는 익숙함과 편안함과 애틋함이 느껴진다.

장소는 딛고 서라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위에 삶이 생기는 토대이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시간을 만들고 쥐고 있는 덩어리다. 장소 위에서 삶이 생기고 그게 모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그게 문화라는 이름을 갖고, 그 오랜 시간들이 그 장소 곳곳에 스며들게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땅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엊그제는 라말라에 있는 이라는 바에 가서 영화를 만드는 요세프 아저씨를 만났다. 요세프는 첫번 째 인티파다 때부터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영화 장비를 사 들였고,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의 도시와 역사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들을 만들어왔다. 내가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저씨가 최근 문화적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만화와 영화, 교육용 동영상, 성교육 프로그램들을 상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난민촌에 들고가는 건, 돈이나 고기가 아니라 이야기들이었다. 세상 여기저기서 만들어진 이야기들. 게다가 웨스트 뱅크에는 정식 영화관은 하나 뿐인 상황에서 말이다.

아저씨는 지금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쓰고 있다. 지원을 받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을테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시나리오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그렇듯이.

팔레스타인에는 돌던지는 소년들과 무너진 건물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또 체크포인트와 분리장벽과 이스라엘 정착촌과 정착민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봇대와 길이 있다. 또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대학들과 토론하는 학생들과 기자들과 엔지오들이 있다. 또 시인과 화가와 영화인들과 춤꾼들과 가수들이 있다. 또 아이스크림 집과 각종 술을 파는 바와 맛있는 팔라펠(양념해 다진 콩의 일종을 튀긴 것) 샌드위치와 씨디, 디비디 가게가 있다. , 쿵후 도장과 울퉁불퉁한 남자들이 근육에 힘주는 광고를 하는 헬스장도 있다.

점령도 이들에겐 일상의 조건이다. 점령이 녹아있는 그 일상에서, 그들은 이야기를 찾아낸다.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알아간다.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도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와 정체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이어갔다던 그 유명한 전설이 있지 않은가. 헐리우드의 한 유명한 영화인이 예술적인 흐름과 복잡한 플롯 속에 강하게 배어있는 유대인들에 대한 동정과 존경을 표현하는 영화를 만들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한 미국 시트콤에서 노골적이지 않은 전형적인 미국인이자 유대인인 등장인물이 하누카를 소재로 웃음을 주며, 김치가 한국음식으로 알려지고 있다면 베이글은 유대인들이 시작한 음식으로 스타벅스와 함께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전설을 이스라엘이란 단계에서 진정 공포스릴러 반 휴머니즘 장르로 바꾸는 대 반전을 이루어내서 스스로를 깎아먹고 있으니, 이 재미없는 이야기만으로도 그들의 한계가 보인다.

 

팔레스타인 인들은, 이집트건(가자지구는 67년 전쟁 이전 이집트 하에 있었다) 요르단이건(웨스트뱅크는 67년 전쟁 이전 요르단 하에 있었다) 아니면 이스라엘이건, 그 땅과 거기에 뿌리박은 삶과 문화와 그 역사를 잊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 최소한 여행하면서 내가 본 팔레스타인은 그렇다.

48년 나크바, 67년 나크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그런 사건들로서 뿐 아니라 그 때마다 독특하게 그것을 반영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새겨 넣은 으로서 팔레스타인이 더 기억되는 때가 오면, 거기까지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이야기이지 않을까.

그 이야기가 그 다음,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내가 가져간 심수봉의 노래들이 어떤 팔레스타인 친구에게는 처음 듣는 한국노래가 되고, 수가 기억하고 찾아간 한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자기 가족 중 누군가를 기억하며 찾아온 먼 나라 동양인을 만나게 되며,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선인장이스라엘 선인장이라고 부르지 않아서 팔레스타인의 선인장이라는 이름이 오래오래 남게 되면, 참 좋지 않을까.

 

그래서, 먼 길을 돌아왔지만, 오 년 전 요르단에서 이라크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반전평화팀원들, 그 중 몇몇인 지금의 평화바닥 사람들이 왜 찬 바닥에 엎드려 대자보를 쓰고 있었는지도, 왜 그들 식으로 목소리를 내며 공감을 하려 하고 있었는지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여전히 사회는 단단히 짜여져 있는 듯 보이고, 역사는 마냥 되풀이만 되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높은 분들 몇 마디에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고, 제조업 하나 제대로 허가(이스라엘의)가 나지 않아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는 이런 고립된 지역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카탄 파운데이션의 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가 아니, 희망은 있어. , 사람을 믿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어디서 힘을 얻을거야하고 강한 어조로 말할 때 그가 좋았다.




 

 

안부 인사를 가장한 질문

 

나는 아직도 내 세계에 그 질문을 가지고 있다.

의미가 있을까?’

그 질문을 가지고 내 세계 밖 세상을 만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여전히 막막하지만 내 식대로 그 대답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

평화바닥 사람들은 어떻게,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앞의 <질문들이 더 생겼다>와 이 글은 같은 출발에서 시작하지만 마무리가 다르다.
분명 이걸 쓰고 있을 때의 복태씨는
의무감에 시달리고 있었거나 매우 긍정적인 상태였을 것이다.
복태씨는 의무감에 시달리는 데 약하니
아마도 긍정적인 상태였던 쪽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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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면서
이야기를 만난다

 

 

1. 체크포인트와 .

 

비행기를 타러 요르단 국경을 넘어 텔아비브에 왔었다

바다, 호텔들, 해변을 뛰어다니는 커다란 강아지,

비키니를 입고 거리를 걸어다니는 멋진 아가씨들과 청년들,

소매 없는 옷에 팔에는 문신이 있던 우유가게 아줌마.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내가 한국에서 그나마 읽었던 글들에는

높이가 팔미터나 되고 사람의 생활과 숨통을 한꺼번에 끊어버릴 같다는

분리장벽이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면

광경이 끝이 나고

모욕적인 체크포인트와 공상과학 영화의 암울한 미래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분리장벽들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공간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스쳐가는 칼란디아 검문소 앞에서

벽을 보았다

그냥 차를 타며 지나가는 광경이었다

밤이었고, 사람들은 없었고, 벽과는 꽤나 가까웠지만 그다지 가깝지는 않았고

만에 스쳐지나가서

오히려 이미지가 꼿꼿하게 박혔다

마치 분리장벽에 대한 많은 기사들의 줄이 살아난 것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칼란디아 검문소가 나누고 있던

라말라와 사이의 연속성 없는 이상한 이질감은

라말라의 따뜻한 집과 좋은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도 즐겁고 평온한 며칠을 보내는 동안에

다시 현실감을 잃고

수많은 글들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일관성있는 자극이 없으면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2.
광장.

 

수와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카탄파운데이션(A.M. Qattan Foundation) 게스트하우스이다

곳은 도시 중심부와 가까워서

어디든 쉽게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작아저씨의 아내인 살마가 말했다

 

작아저씨가 길을 알려주러 우리와 함께 라말라를 돌기 시작했을

처음 곳이 중심부에 있는 개의 광장이었다

첫번 광장은 조금 작고 기둥 아래 작은 사자들이 조각되어 있다

두번째 광장에도 마리의 사자들이 있는데

광장도 크고, 사자들도 훨씬 조각상이다

마리의 사자들 한마리는

두툼한 팔목에, 그러니까 앞다리에, 자기 머리만한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수와 작아저씨의 글들을 읽었다

수의 글을 보고

라말라에는 광장이 개가 있고 광장마다 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아저씨 글은 사자의 손목시계에 대한 글이었는데

사자는, 라마나, 뒤를 보는 새나, 까치나, 호랑이 처럼

작아저씨의 글에 나오는 많은 동물들 하나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라말라에 와서

길을 알려주는 작아저씨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이야기들 한가운데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서가는 작아저씨와 뒤에서 혼자 하하 웃었다

그리고 사자의 손목시계는

내가 생각했던 보다 훨씬 컸다

대단한 사자.


  
 





  

3. 키파의 고양이들과 작아저씨네 키위.

 

키파는 한국에서도 작은 고양이를 만나서 데리고 다녔었는데

키파의 글에서 고양이들은 그의 젖형제라고 했다

사라진 알았던 샴세흐를 키파의 집에 놀러갔을 만났다

샴세흐는 집을 오랫동안 비웠던 키파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그에게 냉정하게 구는 걸로 벌을 주기로 결심을 했다

우리들은 키파의 방에 앉거나 누워서 음악을 들으며 아락을 마시며 고양이들을 느끼고 있었고

문득 키파가 샴세흐를 불렀을

나는 그녀가 방향을 틀어 바로 밖에 있는 책상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나를 벌주고 있어,

라고 키파가 말했고

시간 지났을까, 마침내 키파가 일어서서 샴세흐를 찾으러 갔을

그때까지 샴세스는 책상위에 꼼짝 앉고 있었다

마치, 아까 당장 찾으러 오지 않고

이제서야 왔냐는 것처럼

토라진 아가씨가 그러듯이

샴세흐는 키파한테서 등을 돌리고 부츠에 화풀이를 했다

 

작아저씨는

시냇물이 키위처럼 킁킁 냄새를 맡으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국 방문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썼었다

작아저씨와 살마의 집에 놀러가서

우리는 시냇물이 따라한 키위의 킁킁거림을 보았다

키위는 진실로 키위 같은 색과 느낌의 털을 가지고 있고,

키위보다는 훨씬 길쭉한 몸에,

얼굴은 쪼삣하고 눈이 예쁜 다섯살짜리 강아지다

라말라에 후로 간간히, 꽤나 자주

일정한 간격의 총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바그다드에서 한번 총을 강도를 만난 것으로도 약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키위는 라말라에 이스라엘 군이 쳐들어 왔을

삼주짜리 아기 강아지였다고 했다

삼주밖에 안됐을

벌써 세상의 모든 총소리와 폭탄소리를 들었던거다

이것도 작아저씨의 글에서 읽은 것이다

키위는 짖었고, 수와 나의 냄새를 킁킁 맡더니,

우리를 좋아해서 쓰다듬어 달라고 다가오곤 했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강아지가 다가와서

눈을 깜빡깜빡 하며 쳐다보고, 짖거나 으르릉거리거나,

공을 깔록깔록 빨면서 놀거나,

몸을 부비는 것은,

그냥 낯선 강아지가 다가와서 몸을 부비는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다르다


   
      






 

(이 글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의 회원이었던 복태씨가
팔레스타인 여행 중에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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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반나의 2005년 앨범 The Mirror of My Soul 에 수록된 곡 (역시 2005년 2005년 2005년.........)

The Carmel of My Soul




 




<Kurmul el Rooh   كرمل الروح   Mt. Carmel of My Soul>        by  ريم بنا  Rim Banna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소리지르네

오 내 영혼의 카멜이여

그에게 하이파 바다의 공기 한 줌을 가져다 주렴

그에게 야파 바다의 바람 한 줌을 가져다 주렴

그가 갇힌 감옥의 추위와 더위를 가시게 해주렴

오 내 영혼의 카멜이여

그를 가엽게 여겨주오

네가 나보다 그와 가까이 있으니

 

오 내 영혼의 카멜이여

그는 외롭다네

오 내 영혼의 카멜이여

그는 내 영혼이네

 

ريم بنا - كرمل الروح

 

وأصرخ من قاع الرّوح

يا كرمل الرّوح

إجلب له هواء بحر حيفا

أحضر له نسيم بحر يافا

يلطّف برد زنزانته وحرّها

يا كرمل الرّوح

كن حنونًا عليه

فأنتَ أقرب منّي إليه

 

يا كرمل الرّوح

أنه وحيد

 

يا كرمل الرّوح

إنه روحي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를 떠올리면 음악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겁니다.
이 곡에 나오는 Camel은, 정확하진 않지만 팔레스타인의 산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또 현재 '이스라엘' 땅으로 되어 있는 하이파와 야파는
바다가 아름다운 역사깊은 도시이구요.

일제시대 만주에 있던 독립군들이나 '조선인'들이
설악산, 지리산을 그리면서
동해의 바람 한 줌을 가져다 주오, 섬진강의 바람 한 줌을 가져다 주오
하고 노래했다고 생각해보세요.)







                                                                                              Rim Banna 의 2005년 앨범 The Mirror of My Soul
 



림 바나는
팔레스타인 씽어송롸이터로 1966년 갈릴리의 나자렛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노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식과 감성을 반영한다.
거기엔 그들의 문화와 역사,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그녀의 노래에는 팔레스타인 해안 지역의 생생한 색감과 그 지역에서 퍼지던 노래들이 담겨 있고,
고대 카나나이트의 운율과 언덕에 박혀 있는 흰 돌들이 녹아 있고, 올리브 나무,
과수원의 경계를 긋던 선인장들, 팔레스타인 언덕마다 퍼져 있는 포도나무 등을 담겨 있다.
 
그녀의 노래는 아랍 음악의 현대적인 해석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쓰기도 하지만,
마흐무드 다르위시
, 타우픽 자야드, Tawfik Zayyad, 사미 알 까심 Samih El-Qassim, 주하이라 사바그 Zuhaira Sabbagh
등의 시를 가사에 쓰기도 했다
.

 

림 바나는 동요 모음집도 직접 냈다.
이 동요의 가사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시골과 도시 각지의 민담들, 민요들, 문화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이 지역에 내려오는 문화 유산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민족적
, 지역적, 국가적 정체성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림 바나는 또한,
요람 노래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자장가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서 대중 앞으로 이끈 유일한 가수이기도 하다.
이 자장가들 역시 팔레스타인 민담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동안 침실에서 엄마로부터 아기에게로 조용히 전해져내려왔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에서 일하면서 준비했던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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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 폭격이 쏟아졌다

가해자는 이스라엘,
미국,
...이 지역의 실질적인 주인 행세를 하다가 벙찐지가 한참인 유럽?
...그리고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를 애용하는 모든 지구인들?




노래는 dEUS 의 2005년 앨범 Pocket Revolution 에 있는
Include Me Out 이다
 

Where have i seen this before?
When will i feel it again?
Somebody opened a door
I'm afraid to walk in
Imagination will kill
If imagination stands still
I read it in open book
read it in open book

Oh man, i read it in books of laughter
Oh man, i read it in books of pain

What are you talking to me
Cause i'm not really there
Like a spirit that's free
I'm as light as the air

Oh man, i'm as light as the air and floating
Oh man, i'm as light as the air and floating

Take me on
Where the fire winds blow
Of where a fallen leaf stays
for days
on your shoulder

Cause all i need
Is to find my own
And that summering drone
Illicit and golden

Oh lord where have i seen this before
Oh lord when will i feel it again

Read it in every move
Read it in every game
Read it in what you do
Read it in everything

Oh man, as light as the air and floating
Oh man, as light as the air and floating
Take me on
Where the fire winds blow
Cause when time stands still
I wait until
It's over
And all i need
Is to find my own
And the summering drone
Illicit and golden



(가사에 맞춰서 영상을 만들었지만
가사를 해석하진 않았다
한국어, 영어, 아랍어 중 하나만 썼으면 좋겠다
그 중 난 한국어를 잘하고, 영어는 잘하지만 좀 더 공부해야하고, 아랍어는 더듬거리면서 읽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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