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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2 하이셈을 위한 기도

 



하이셈은 이라크 바그다드에 산다
얘기를 할 때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게 해준 친구다
우리는 뭐랄까, 비슷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하이셈이 전범재판(쉣같았던!) 일 때문에 한국에 와 있었을 때,
난 처음 학원 일을 시작했고 이러저러한 것들 때문에 잔뜩 골이 나 있었다

- 원장이 원장들 회의에 갔다오더니 갑자기 권위적이 됐어. 강사들은 잡아야 제맛이라고 배워왔나봐.
  어제는 복사기 양쪽을 전부 이면지로 채워서 자료 삼백만부가 전부 이면지에 찍혀나오다가 그것마저도 걸려서 죽을 뻔 했어.
  너무 화가 나서 옆 방 원장실에 들리라고 의자를 뻥뻥 걷어찼는데, 그런 내 성격마저 마음에 안들어.

라는 식의 나의 불평에 하이셈은,

- 그래, 무슨 일이든 처음은 다 익숙하지 않고 힘든 거 같아.
  문득 내가 처음 병원에서 일할 때가 생각나네. 나도 처음엔 모든 게 무섭고 쉽지 않았었어.
  이라크 북부에 있는 골 때리는 동네였거든. 어느날 당직을 서고 있는데 엄청 험하게 생긴 놈들이 장총을 메고 들어오더니
  나한테 총을 겨누는 거 있지.
  후덜덜이었는데 뭐 결국엔 아무일도 없었어.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너랑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지.

라고 위로를 해줬다
난 그만 하하하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 하이셈. 바보같은 원장 이야기 따위는 정말 바보같았어.

하지만 하이셈은 비교같은 건 하지 않는다
하이셈의 위로는 진심이고, 그래서 하이셈의 조언은 효과가 있다
그런 게 가슴이 찡한거다



                                                        2006년 서울, 지하철에 비친 하이셈과 나




하이셈이 태국에 있을 때
나는 뭔가를 하느라 시간도 돈도 없어서, 그 가까운 데를, 아니 그보다는 '갈 수 있는 데'를 가지 않았다
바빴다거나 돈이 없었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태국 가는 비행기표는
두 달만 술을 안마셔도 너끈히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술을 마시는 사이에 하이셈은 바그다드로 돌아가버렸고,
난 이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는 구실을 되찾게 되었다
바보같은 알리에야,
하이셈인데.


 

 

 





하이셈에게 연락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문드문 오는 답장은 너무도 딱딱했었다
- 안녕, dear 알리에. 잘 지내길 바래. 나도 잘 있어. 조만간 연락할게. 보고싶다.

그래서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 연락을 받았다

하이셈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종교인이다
하이셈에게는 이 세상 전부인 분이다
그 아버지가 아프시다고 한다
뇌졸중으로 말도 못하시고 움직이지도 못하신다
하이셈은 아버지 곁을 지키느라 슬프고 지쳐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편지를 맺었다
- 알리에, 그래서 너의 문제가 뭐라고 했었지? 좀 더 얘기 해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볼테니까.

나는 바보같고 멍청하고 나밖에 모르는 바보 멍청이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내 마음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그동안 '그래, 기도할게'라는 대답을 좀 하고 다녔었다
하지만 이제 성당에 다니고 있으니까 기도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담배를 피려다가 기도를 하려다가 그럼 좀 무례한 거 같아서 담배를 내려놓고 기도를 해봤다
하이셈의 아버지가, 정해진 생이 있더라도 그때까지는 가능한 굳건해지시기를,
그리고 하이셈이 이 모든 시기를 받아들이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고맙고 착한 사람들에게 따뜻함이 덮히기를,
기도했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