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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슬리 싸롱에서, 레슬리씨가 말했다
-하운, 그런 건 그냥 일어나는 일이야. 내 얘기를 해줄까
의당 해야할 얘기들 끝에, 한나씨 가방 속에서 나온 책 한권이 만들어낸 깜짝쇼(다행히도 이전보다는 덜 충격적이었던)에 놀란후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레슬리씨가 얘기해준 무시무시한 이야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은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별로 맞진 않았었는데
그래서 기억나는 부분은,
여섯번인지 삼백번인지 우연에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여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
그렇게 맺어지는 관계들
그게 연쇄작용을 일으켜서 만든 누군가의 삶에 대한 대목이었다
여섯번인지 삼백번인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정확히 이 말을 했던 적이 전에도 한번 있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게 이해가 잘 안가서
내 식대로 짜맞추기를 해왔고
주어진 이름도 거부하는 주제에 왠지 거기에는 이름이 필요해서
<매직>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서랍에 잠가뒀었다
정확히는 <마법같은 요소들>이라고 누가 말했다
모자에서 토끼가 나오거나 입에서 비둘기가 나오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레슬리씨의 마법같은요소들은, 심지어 국경을 넘나들면서
그 많은 나라 중에 하필 한국, 하필 서울이기까지 하는데
그래서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위안을 얻어야 할지 절망감을 느껴야 할지
잠시 헷갈렸다
하지만 크게 웃을 수 있었던 건 분명하다
재밌는 싸롱이었어



요즘에는 Parov Stela를 듣고 있다
그러면서 레이디가가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며칠 전에는 최근에 내가 보고싶어하는 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열두시가 되면 잠이 오는 사람이라, 나는 속으로 그를 신데렐라라고 부른다
그 청년은 요즘 잘 시간이 되면 데낄라를 마시고 싶어하는데
그런 게 두번 뿐이기는 하지만 병째로 시키기 때문에 체감 빈도수를 따지자면
마치 샷잔으로 다섯잔 씩, 일주일동안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면 데낄라를 마신 기분이다
그것도 열두시가 넘어, 자야하는 시간에.

빨래를 하지 말걸, 좋은 냄새가 다 사라져버렸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빨래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담배가 받지 않는 날은 왠지 옷에 담배냄새가 더 쉽게 배기 때문에
어쨌든 간에 좋은 냄새에는 시간이 함께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공간에 대한 집착은 심한 편이지만
시간을 쫓아다니는 것은 여러모로 벅차다

아니,
그렇다고 돌이나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냐하면
난 물을 훨씬 더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물을 줄까 다이아몬드를 줄까, 라고 한다면
당연히 다이아몬드쪽이다
빚을 갚아야 한다
빚도 좋은 냄새처럼 시간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벅차다



자꾸 해야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지 말자
루즈한 네트워크, 그건 여기 있으니까 당분간은 이름도 붙이지 말아야겠다
나한테 필요한 건 휴식과 독서, 그리고 냉철하고도 이성적인 판단력이다

이렇게 자꾸 되뇌이면 된다고
믿을만한 책에 써 있었다

+

그런데 요즘엔
왜 자꾸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게 되는 걸까








                         <Charleston Butterfly>                 by Parov Ste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