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씨는 그림을 그린다
또, 판화도 하고 가구도 만들었다
요리는 정말 잘하는데, 특히 해물탕과 고추김치를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나는 이름씨 그림을 하나 샀었다
이름씨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닌가
난 원래 음악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그때쯤 전시회를 보러 다니면서 부쩍 그림이 좋아지던 참이었다

이름씨의 그림은 획이 큼직큼직해서
부드러운데 좀 쓸쓸할 때도 있다
영화로 말하면 입자가 큰 저감도 필름을 쓸 때랑 비슷하다

내가 가져온 그림은 가운데 한 여자가 앉아있는데, 저녁같다
역광이라서 여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데
뒤에는 감질맛나게 거울이 살짝 비추고 있다

오랫동안 집이 없어서 그 그림을 산 후에도 한동안 이름씨네 집에 두었다가
가로수길 폐가 옆 집으로 이사가면서 드디어 내 집 벽에다 걸어두었고
최근에 본가로 들어가면서 내가 자는 방 서랍장 위에 올려뒀었다 



               이름씨가 좋아하는 고양이 사진으로 초상권 보호를 받은 이름씨. 뒤에 걸려있는 게 바로 그 그림이다.




엄마는 막 폐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무지 잘됐고, 암은 전이되지 않았고, 심지어 몸무게도 늘었다

엄마는 자전거를 잘 타는데도, 왠지 자꾸 넘어지고 다쳤었다
크게 안다쳤기 때문에 동네병원에만 들락거렸는데
어느날 갈비뼈가 다섯개나 부러져서 대학병원에 가게됐다
혹시 부러진 뼈가 다른 장기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하고 가슴사진을 찍어보다가
한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CT촬영을 해보겠냐고 했고
엄마는 과잉진료라면서 뾰루퉁해 있었는데, 아빠가 찍어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진에 폐에 있는 종양이 잡혔다
다른 장기는 멀쩡했고, 부러진 뼈도 시간이 되자 곧 나았다
결국 암이었던 그 종양은
한 쪽 폐 위에 예쁘게 자리를 잘 잡고는, 암치고는 얌전히 몇 달을 꼼짝않고 있었다
그쪽 폐를 1/3을 들어내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엄마는 심지어 오늘, 큰이모랑 같이 김장을 하고 계신다

나는 앞으로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엄마더러 그렇게 하라고 손을 잡고 이끈 것처럼 그렇게 잘 됐으니까



엊그제 엄마가 퇴원한 다음날,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방이 허전했다
서랍장 위에 있던 그림이 없어졌다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 방으로 가져갔다고 하셨다
엄마는 그 그림에 있는 사람이 삼신 할매 같다고 했다
꼭 애기를 가져다 주는 삼신 할매가 아니어도,
옛날 시골에는 부엌이나 큰방이나 대들보 아래 꼭 하나씩 있었던
집과 가족을 지켜주는, 그런 종류의 수호신 같다고 한다

- 창 틀 있는데다가 걸어놓고 보려고 했는데, 딱 이만큼이 남더라
그래서 엄마는 그림을 걸지 못하고 벽에 기대놓고서는
어떻게 걸 수 있을까 궁리 중이시다




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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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1.11.23 08:00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Favicon of https://gotothezoo.com BlogIcon GOM GOM LOVER 2011.11.23 06:30 신고

      비슷해, 언니랑 비슷해.
      힘든 일 겪었지만 그 와중에는 최선인 게 분명해.
      감사하면서 살아야해. 고마워요!
      쌀롱에서 오는 소식들으면서 나도 자극 많이 받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은 이렇게 잘 비켜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대강해버리면 좋지 않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