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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서울

조개, 안녕.

GOM GOM LOVER 2009. 11. 27. 12:32

의사 처방을 받은 게 저저번주,
"알러지 약을 먹으면서 어패류를 피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육년 째 육지 동물을 먹지 않는 반쪽 채식주의자다
페스크테리안 pescetarian 이라고도 하는데 고기는 먹지 않고 어패류와 유제품 등은 먹는다

나같은 사람은 어패류를 먹지 않으면 풀만 씹어야 하는데,
그거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풀만 먹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열정적이지도 않은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 음식이란, 고기나 어패류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난 식당을 갈 수 없게 된다
회식을 할 때나 술자리가 생길 때면 아마 배가 고픈채로 술을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조개구이와 새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사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는 종로에 있는 조개와 새우구이 무한리필집에 가서
배부르게 먹었다


                                                                  <Fish - Winter>                   by Svetlana Rumak







그리고 밤새 아팠다



















내 몸과 나는 사이가 안좋다
내 몸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1.
학생 때, 난 공부보다 음악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왼손은 심하게 힘이없고 심하게 떨었고 심하게 느렸기 때문에
피아노, 기타, 북을 차례로 포기해야 했다
아니, 좋아, 난 음악적 소질도 없어.
어쨌든 내 왼손은 지금, 심지어 핸드폰 게임을 할 때도 중간에 경련을 일으키며 힘이 안들어갈 정도로 약해졌다


2.
또,
중독에 약한 내가 유일하게 비껴가지 못한 게 담배인데
난 어려서부터 기관지에 문제가 있다
난 담배를 끊을 수가 없고, 덕분에 가끔 심하게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사람들과 담배연기가 가득한 대형 무도장에서
몇 번 호흡곤란으로 정신줄을 놓기도 했다
아는 언니 덕분에 공짜로 들어갔던 Tiesto 파티도 그렇게 중간에 나와야 했다


3.
게다가,
고양이를 진실로 좋아하는 데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
고양이를 만지지 못한다
이름씨네 집에는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데,
난 그 중에서 <부엉이>라는 고양이를 제일 예뻐한다
<부엉이>를 한번 만지고 나면
약할 때는 콧물과 재채기, 심할 때는 집에서 오한 발열로 드러누울 작정을 해야한다
그래서 난 하루 약 2시간 정도를 인터넷을 뒤지며 고양이 사진을 보는데 쓴다


4.
그리고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마시지 못한다
항상 나는 '좋아하는 것' 쪽이 '이성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 쪽을 이기는 편이라
아프든 말든 술을 부어넣기로 결심한지가 십년이 좀 넘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힘들었던 게 맥주였는데
올해부터 맥주를 입에 대면 또 발열과 오한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맥주는 완전히 못마시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맥주는 칭따오와 아이스하우스, 그리고 호가든이었다.
아, 팔레스타인의 따이베 맥주가 세계 최고!


5.
걷기를 좋아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항상 무겁고 큰 가방을 메고 다니지만,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어서 실은 난 그 둘다 하면 안된다
그 얘기를 처음 들은 게 이십대 때였고
난 도대체 왜 그 나이의 내가 퇴행성 관절염따위를, 그것도 무릎에 걸려야 하는 건지
절대 이해가 안갔다
심할 때는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왼쪽과 오른쪽에 번갈아 나타나서 걷지를 못했고,
놀라서 찾아간 정형외과에서는 수십만원짜리 신발 깔창을 권해주었다
의사에 대한 내 오랜 불신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 와중에
어패류 금지 진단을 받았던 건데
왜 6년동안이나 없던 어패류 알러지가 갑자기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게 하필 내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어패류인지도 모르겠다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