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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야 잘가.

GOM GOM LOVER 2007. 9. 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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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냄새

고소하고 따뜻한 봄이 냄새

봄이 털

복슬복슬하고 곱슬거리고 하얗고 부드러운 털

봄이 표정

그 표정들, 봄이 눈, 나를 보고 있으면 그 큰 눈 속에 내가 비쳤다

그러면 나는

봄이야 무슨 생각해?

하고 물어봤었다

봄이야 무슨 생각해



봄이가 갔다

8월 23일 목요일에

수술을 하다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봄이는 엄살이 없어서

어쩌다가 방에 갇혀도 짖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가만히 방문을 긁고 그러면

우리가 알아채고 급히 방문을 열어주면서

너는 어째 참 바보같이

짖지도 않고 그런다고

얼마냐 답답했냐고, 그랬다

그렇게 엄살이 없고

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참 잘먹고

하루에 한두번씩은 꼭 굵직한 똥을 잘 싸서

우리 봄이는 건강도 하다고

그렇게 먹는데도 살도 많이 안찌고

잔병치레도 안하고

그 흔하다는 피부병도 안걸리고

코도 촉촉하다고

그랬었다


왼쪽 무릎이 안좋아서

나이먹으면 걷지 못할까봐

그렇게 걷는 걸 좋아하고

뚝방 소리만 나오면, 나갈까, 하는 소리만 나오면

잘 짖지도 않는애가 그렇게 짖고

그런데 나이먹으면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 못할까봐

그것만 걱정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메는 보대기도 하나 샀었다

크기도 꼭 맞아서

봄이는 내 가슴팍 언저리에 꼭 안겨

그 좋아하는 산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느날부터 살이 좀 빠졌는데

그걸 그냥 넘겼다

그렇게 많이 먹는데 살도 안찐다고

살 좀 빠져서 좋겠다고

그렇게 무심하게 넘겼다

사람이 아닌데,

말도 못하는 애가

평소에 그렇게 엄살도 없어서

좀 아파도

먼저 아프다고는 안했을걸,

조금만 한번만 더 돌아봤으면

보였을텐데

그걸 그냥 넘겼다


장염이라고 약을 받아먹고는

삼일동안인가 똥을 싸지 못해서

그래서 배가 부은 건줄 알았다

그 때 그렇게 좋아하는 간식 한번 더 줄걸

배 아플까봐 안주고

배탈났을때는 굶는 것도 좋다면서

그렇게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마지막에는 기운이 더 없었을 것이다


자궁에 물이 찼다고

수술을 해야하는데,

봄이는 원래 심장이 안좋아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마중나올 겸

봄이를 보대기에 넣어서 나왔던 모양인데

나는 그때까지도 심각한 줄을 몰랐다

그렇게 무심하고

무심했다


새벽에 들어갔는데

그 몇시간 새에 배가 잔뜩 불러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봄봄아, 언니 왔어, 언니가 좋아? 했더니

내 코를 핥았다

제일 좋아하던 쿠션에 누웠는데

머리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더 심해져서

머리랑 다리만 조금씩 흔들거리는데도

왠지 더 버둥거리는 것 같아

엄마가 화장실에 데리고 가면

몸도 못가누면서 누운채로

그렇게 오줌을 쌌다

봄이야, 괜찮다고

그냥 누워서 오줌싸도 되니까

편하게 있어, 해도

멍한 표정으로 몸을 점점 더 가누지 못해가면서도

꼭 오줌이 마려우면

죽을 듯이 버둥거리면서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봄봄,하고 불러도

더 이상 핥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현관 자리 위에서 병원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봄이가 문득 몸을 돌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평소에 거울보는 걸 싫어했던 봄이라서

봄이가 거울을 다 보네, 하고 말했었다


그러면서도 난

엄살이 없는 봄이가

수술이 끝나면

기운을 내서 벌떡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엇다


동물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이 봄이 체온을 재고

기운이 너무 없어서 링거를 맞아야 한다고

그렇게 봄이를 두고 나올 때,

왜 꼭 안아주지 못했는지

기껏 의사선생님 품에 있는 봄이한테 뽀뽀만 몇번 하고

눈 마주칠 기운도 없어진 봄이를

그렇게 쳐다만 보고

난 왜 그 마지막 순간을 그렇게 보내버렸을까


학원에서 수업이 끝나고

문자를 받았다

봄이가 깨어났으니 연락하라는 아빠의 문자.

하지만 전화를 했을 때

'봄이 못깨어났어'라는 아빠의 말이 귀를 울렸다

문자는 오타였다

봄이가 못깨어났다는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봄이는 양평에

엄마인 똘순이가 묻혀있는 덩굴 밑에 묻어줬다

한복을 입고

발을 앞으로 쭉 뻗고

그 따뜻하고 복슬복슬하고 좋은 냄새가 나던 봄이는

인형처럼 그냥 굳어있었다


밤마다 휴식같지도 않은 휴식이라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놀아달라는 봄이를 쫓아보내고

쉬는 날 피곤하다고 산책도 안시키고

그렇게 내버려둔 시간들이

나한테 다 덮쳐왔다

내 무릎 위에 앉아있던 봄이의 따뜻한 체온

봄이 눈 속에 나

목에 코를 문지르면 가만히 있던 그 표정

자기 물건에 손을 대거나 하면

귀를 종긋 세우고 높게 짖곤 했었다


그렇게 갑자기 갈 줄 알았으면

봄이를 꼭 안고서

봄이 냄새도 실컷 맡고

뽀뽀도 실컷 해주고

제일 좋아하던 간식도 실컷 줬을텐데


난 내 앞에 있던 그 시간들을

그냥 그렇게 보내버렸었다


나는 지금도 집에 들어가면

몸을 구부려 뛰어나온 봄이에게 뽀뽀를 하고

키가 작은 봄이가 깡충깡충 뛰지 않아도 되게

손으로 앞발을 잡아준다

그리고 밤마다

봄이가 제일 좋아했던 그 쿠션을 안고 잔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도 없다




이제 많이 울지는 않게 되었지만

항상 목 아래가 콱 막혀있고

코 끝에서는 차갑고 먹먹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우리 봄이

봄이야

봄봄


봄봄

언니가 좋아?

언니도 봄이가 좋아

봄봄

푹 자

그 앞에 고추밭이 있어서

고추 따러 간다고 하면 몰래 가서 볼 수 있어

겨울이 되면

그 앞에 호수도 잘 보인대

푹 자고 있으면

언니가 놀러 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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