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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면서 이야기를 만난다
1. 체크포인트와 벽.
몇 년 전 비행기를 타러 요르단 국경을 넘어 텔아비브에 왔었다
바다, 호텔들, 해변을 뛰어다니는 커다란 강아지,
비키니를 입고 거리를 걸어다니는 멋진 아가씨들과 청년들,
소매 없는 옷에 팔에는 문신이 있던 우유가게 아줌마.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내가 한국에서 그나마 몇 번 읽었던 글들에는
높이가 팔미터나 되고 사람의 생활과 숨통을 한꺼번에 끊어버릴 것 같다는
분리장벽이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면
이 광경이 끝이 나고
모욕적인 체크포인트와 공상과학 영화의 암울한 미래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분리장벽들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공간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스쳐가는 칼란디아 검문소 앞에서
그 벽을 보았다
그냥 차를 타며 지나가는 광경이었다
밤이었고, 사람들은 없었고, 벽과는 꽤나 가까웠지만 그다지 가깝지는 않았고
삼 초 만에 스쳐지나가서
오히려 그 이미지가 꼿꼿하게 박혔다
마치 분리장벽에 대한 그 많은 기사들의 한 줄이 살아난 것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칼란디아 검문소가 나누고 있던
라말라와 그 밖 사이의 연속성 없는 이상한 이질감은
라말라의 따뜻한 집과 좋은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도 즐겁고 평온한 며칠을 보내는 동안에
다시 현실감을 잃고
수많은 글들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일관성있는 자극이 없으면 곧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2. 광장.
수와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카탄파운데이션(A.M. Qattan Foundation)의 게스트하우스이다
이 곳은 도시 중심부와 가까워서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작아저씨의 아내인 살마가 말했다
첫 날 작아저씨가 길을 알려주러 우리와 함께 라말라를 돌기 시작했을 때
처음 간 곳이 중심부에 있는 두 개의 광장이었다
첫번 째 광장은 조금 더 작고 기둥 아래 작은 사자들이 조각되어 있다
두번째 광장에도 네 마리의 사자들이 있는데
광장도 더 크고, 사자들도 훨씬 큰 조각상이다
그 네 마리의 사자들 중 한마리는
두툼한 팔목에, 그러니까 앞다리에, 자기 머리만한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수와 작아저씨의 글들을 읽었다
수의 글을 보고
라말라에는 광장이 두 개가 있고 광장마다 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아저씨 글은 사자의 손목시계에 대한 글이었는데
사자는, 라마나, 뒤를 보는 새나, 까치나, 호랑이 처럼
작아저씨의 글에 나오는 많은 동물들 중 하나로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라말라에 와서
길을 알려주는 작아저씨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이야기들 속 한가운데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서가는 작아저씨와 수 뒤에서 혼자 하하 웃었다
그리고 사자의 손목시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컸다
대단한 사자.
3. 키파의 고양이들과 작아저씨네 키위.
키파는 한국에서도 작은 고양이를 만나서 데리고 다녔었는데
키파의 글에서 고양이들은 그의 젖형제라고 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샴세흐를 키파의 집에 놀러갔을 때 만났다
샴세흐는 집을 오랫동안 비웠던 키파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그에게 냉정하게 구는 걸로 벌을 주기로 결심을 했다
우리들은 키파의 방에 앉거나 누워서 음악을 들으며 아락을 마시며 고양이들을 느끼고 있었고
문득 키파가 샴세흐를 불렀을 때
나는 그녀가 방향을 틀어 문 바로 밖에 있는 책상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나를 벌주고 있어,
라고 키파가 말했고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마침내 키파가 일어서서 샴세흐를 찾으러 갔을 때
그때까지 샴세스는 그 책상위에 꼼짝 앉고 있었다
마치, 아까 당장 찾으러 오지 않고
왜 이제서야 왔냐는 것처럼
토라진 아가씨가 그러듯이
샴세흐는 키파한테서 등을 돌리고 내 부츠에 화풀이를 했다
작아저씨는
시냇물이 키위처럼 킁킁 냄새를 맡으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국 방문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썼었다
작아저씨와 살마의 집에 놀러가서
우리는 시냇물이 따라한 키위의 킁킁거림을 보았다
키위는 진실로 키위 같은 색과 느낌의 털을 가지고 있고,
키위보다는 훨씬 길쭉한 몸에,
얼굴은 쪼삣하고 눈이 예쁜 다섯살짜리 강아지다
라말라에 온 후로 간간히, 꽤나 자주
일정한 간격의 총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바그다드에서 한번 총을 든 강도를 만난 것으로도 약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키위는 라말라에 이스라엘 군이 쳐들어 왔을 때
삼주짜리 아기 강아지였다고 했다
삼주밖에 안됐을 때
벌써 세상의 모든 총소리와 폭탄소리를 들었던거다
이것도 작아저씨의 글에서 읽은 것이다
키위는 막 짖었고, 수와 나의 냄새를 킁킁 맡더니,
곧 우리를 좋아해서 쓰다듬어 달라고 다가오곤 했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강아지가 다가와서
눈을 깜빡깜빡 하며 쳐다보고, 짖거나 으르릉거리거나,
공을 깔록깔록 빨면서 놀거나,
몸을 부비는 것은,
그냥 낯선 강아지가 다가와서 몸을 부비는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이 글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의 회원이었던 복태씨가
팔레스타인 여행 중에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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