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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바닥 peaceground.org> 보내는 편지 부분)

 

나는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메탈리카, 검은색, , 회색곰, 북극곰, 갈색곰 등등이라고 대답하고, 무엇을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바퀴벌레, 빨간색, , 굴국밥, 굴전, 굴무침, 굴을 넣은 김장김치 등등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나건,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을 하건, 베트남 전쟁이 역사의 흐름과 파워게임에서 무슨 의미가 있건, 나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반경 삼백미터 , 세상에서 메탈리카와 곰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이라크로 가는 길목에, 요르단에서 반전평화팀을 만났다.

잠시 들러서 인사나 나누고 헤어질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멀찍이 바라보기로 작정하고 봤는데, 반전평화팀 사람들의 첫인상이 어땠냐 하면, 뭔가 낯설었다.

요르단에 와서 아파트 바닥에 엎드려 피켓을 만들던 아가씨, 반전과 평화에 대해 말하며 한국도 이제 국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하던 아저씨, 열심히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왠지 그들이 머물던 아파트를 뭔가 중요하고도 역동적인 분위기로 만들던 아줌마.

뭔가 이면에 담겨진 거대한 동기와 생각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같지 않던 자태들.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에 운동권, 정치인, 시민 운동가, 기자 등등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파하, 하고 웃었다.

생각이 경계가 넓은 사람들이구나, 나와는 다르게.

확실히, ‘곰이 좋아요라는 문장 보다는국가가 과오를 저질렀다라는 문장 쪽이 넓어 보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목적의식이라면 쪽이 분명하다. 나는 간단하게, ‘화를 풀러 것이니까.

이들은 사회적, 정치적, 인간적 정의를 원하는 것일텐데(운동권이나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로 옭아매는 시스템도 그렇고, 둘이 서로의 말투만 마음에 들어도 만족스럽지 않은 인간이란 것도 그렇고, 인간들과 시스템들이 얼기설기 짜여있는 세상도 그렇고, 하나 한가닥을 들춰낼 수가 없는 깊이 복잡하게 단단히 짜여있는 최고급 양탄자 같은 아니었나(여기서 최고급이라 함은 복잡한 무늬와 단단한 짜임새를 강조하기 위한 것뿐이다). 복잡하고 단단한 최고급 양탄자의 무늬를 결국엔 통째로 재배치 하겠다는 것이, 바로 내가 느끼던 그들의 목적이었다. 어디서부터 올을 건드려서 무늬를 바꿀건지, 무늬를 바꾸다 보면 다시 양탄자 모양이 제대로 짜여지긴 건지, 아니 그래봐야 양탄자는 양탄자일텐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미가 있을까?

,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나름대로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딘가 세상 곳곳에 흩어져 바스락거리고 있을 , 어쨌든 로마가 망한 후에는 오토만 제국이 있었고, 영국이 휩쓸고 나면 미국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미국만 갖고 생각해봐도 베트남 전쟁을 말아먹었다지만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겠다는데.

 

세상의 흐름은, 그렇게 매번 맞닥뜨린 거대하고 비이성적인 힘에 맞서는 작은 사람들의 외침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 그저 그렇게 가는 것이지 않나.

이름만 바뀌어가며 시대마다 같은 패턴을 다양하게 반복해가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라는 허구 속에서, 그리고 허구 안에 자신도 모르게 갇힌 개개인들 속에서, 사람 사람들의 노력과 정열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질문은, 이라크에서 돌아온 , 약간은 다른 눈으로 사람들을 보게 , 전에는 아예 보지도 않았던 사회와 세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려고 하게 후에도,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다. 세상에 메탈리카와 곰과 함께, 낯선 질문이 살게 되었다.

의미가 있을까?

 

 

질문 2: 개인적이진 않지만,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생겨난 다소 논리적인 질문

(1 초에 쓰고 보낸 여행일기 중에서)

 

12월에 도착해서 지금이 1월이니, 팔레스타인에서 해를 넘겼다. (음력)설날은 아직이라서 새해 같은 기분은 들지 않지만, 손등이 벌써 쭈글쭈글해진 걸로 보아 나이가 먹었다는 실감이 난다.

지인을 만나러 아침부터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에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일이 늦어질 같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고, 예루살렘에서는 올드씨티의 성벽때문인지 낡은 핸드폰 탓인지, 핸드폰이 터지질 않아서 인상을 잔뜩 쓰고 네트워크가 잡히는 곳을 찾아 마냥 걸어다녀야 했다. 마침 네트워크가 칸이나 잡히는 곳에, 그러니까 다마스쿠스 게이트 바로 안쪽에 게이트 카페라는 데가 있길래, 우선 앉아서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자고 결정했다.

게이트 레스토랑의 아저씨는 요가의 달인이며 마사지도 하고 심지어 라스베가스에서도 살았다는데, 약간 하이퍼 스타일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레스토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의례적인 안부인사와 메리크리스마스와 새해인사와 작별인사를 보냈고, 아이들이라면 붙잡고서 정답게 들리는 무언가를 말했다. 내게도 간간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꾸준히 확인을 하되, 내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근처를 배회하지는 않는,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친절함을 갖춘 사람이었다.

나는 곳에서 핸드폰 네트워크가 사라질까봐 꼼짝않고 시간을 앉아있었다. 내가 있는 각도에는 다마스쿠스 게이트 바로 안쪽으로 드나드는 사람들과 과일가게, 잡화점, 옷가게 약간이 보일 뿐이었다.

내가 들어올 이스라엘 군인 명이 레스토랑과 시장길 사이의 골목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이들은 조금 지나자 다른 명의 군인들을 불러 레스토랑 옆에서 샌드위치를 먹었고, 다시 시장길로 나가서 어정거리다가,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사고(엄청 먹는다), 다시 어정거렸다. 여자아이가 약간 높은 위치에 있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와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더니, 이스라엘 군인들을 뚫어져라 구경하고 있었다.

때로는 젊은 남자아이들이 떼를 지어, 우에, 우에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명은 골목을 지나칠 때마다 내게 하이, 또는 헬로우, 하고 인사를 했다. ‘하이 때와우에, 우에 목소리 톤과 크기가 너무 달라서 유심히 쳐다봤다.

조금 지나자 길을 잃은 서양 아가씨가 내게 희안한 이름의 성지가 어디에 있는지 간절한 눈빛으로 물어봤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예루살렘에 뭐가 있는지조차 몰랐으며, 라틴어처럼 낯설게 들리는 크리스찬 성지가 어디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이퍼인 레스토랑 아저씨가 등장해서 엄청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줬고, 나는 덤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짐을 잔뜩 팔레스타인 아줌마가 골목을 돌아 사라졌고, 새로 듯한 자전거를 아이는 계단진 골목을 능숙하게 누비고 다녔고, 명절 선물(라마단 끝인에이드 푸트르 이슬람 명절인에이드 아드하크리스마스새해까지, 연말 연초에 엄청 놀았다. 그리고 1월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크리스마스와 새해도 기다리고 있다) 받은 틀림없어 보이는 무선 조종 자동차 장난감을 조종하던 소년이 지나갔다.

온통 검은 차림에 검은 모자에 옆으로 귀밑머리를 늘어뜨린 유대인들이 간간이 오고갔다.

그리고 레스토랑 아저씨가 차를 권하며 옆에 앉았다.

- 아저씨는 낙관적이신가 봐요.

- 그것만이 세상이지. 바깥 세계에 휘둘리고 살면 것을 놓쳐요.

-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인이든 팔레스타인 인이든, 바깥 세계에 예민하지 않나요?

- 그렇지. 하지만 생각해봐. 어느 저녁,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 샤워기 앞에서 물을 맞으며 있단 말이야. 그리고 뽀송뽀송해져서는 잠자리에 들지. 배에 손을 얹고 가만히 조용함과 스스로의 기운을 느끼는 거야. 순간을 생각해보라구. 순간은 나만의 것이잖아.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도, 우리 엄마도, 아무도 함께 없는 나만의 세계와 공간과 시간과 느낌이 있는 거라구. 거기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바깥세상 만이 남는거야,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 알아요, 그런거는. 동아시아 문화 출신인데다가 종교학까지 공부했으니, 그런 생각 자체에는 익숙하다구요. 아마도 우리 문화에서는, 그런 거에서 뭔가 깨달음을 얻거나 배우기엔,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걸지도 모르죠. 어렸을 불교에 빠져있었어요. 하지만 봐봐요, 내가 여기서 시간을 앉아 있으면서 군인들을 봤어요.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사먹더니만, 바로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검사하네요. 2003년에 여기에 왔던 친구 말로는, 때는 군인들이 지나가면서 발로 뻥뻥 노점을 걷어차고 그랬대요. 지금은 그보다는 나은 같으니 좋아해야 하나요. 며칠 크리스마스에는 라말라에 이스라엘 군이 나들이를 나왔다고 누가 그랬어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 기분 좋은 , 아는데, 니들이 점령당한 자들이란 잊지마,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런데 안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는 의미가 있어요? 깊이 깊이 한참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관두고 밖으로 나온 케이스에요.

- 의미가 있지.

마침 타이밍도 좋게 순간 기다리던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고, 네트워크를 놓칠까봐 허둥대면서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가느라 중요하고도 중요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예루살렘을 가로질러 약속장소로 가면서, 나는 같은 문장의 전혀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의미가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예루살렘에서, 지인이 바쁜 일이 생겨 약속이 미뤄졌고, 핸드폰이 고물이라 터지는 바람에 장소에서 시간을 앉아 오렌지 주스와 샤이를 마셨으며, 사과를 사먹는 군인들을 보았고, 지나다니는 팔레스타인 인들을 보았고, 지나다니는 이스라엘 인들을 보았고, 지나다니는 외국인들을 보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새해의 예루살렘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이스라엘의 정책이 군인들을 조종하고, 군인들의 태도가 나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는데, 안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옆에서 군인이 집을 부수고 나무를 뽑고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 옆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비틀어진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책임이란 어디까지인걸까?

 

 

질문 3: 돌아다니다 보니 것이 생겨서 생긴 질문

(돌아다니지 말아야겠다)

 

하이파에 놀러갔다. 하이파는 바다가 예쁜, 유서깊은 도시이며 지금은 이스라엘 땅이다. 우리나라에도 갓산 카나파니의 <하이파에 돌아와서>라는 소설이 번역되어 있다.

만나러 지인은 하이파의 아랍인들 지역(말하자면 남아있는 팔레스타인 인들이 모여사는 동네) 살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골목의 집이 <하이파에 돌아와서> 나오는 같다고 했고, 그래서 나와 수는 집을 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이파에 돌아와서> 나오는 바로 아파트에는, 집에 진실로 커다란 이스라엘 국기가 꽂혀 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온 이스라엘 가족의 대단한 애국심이랄까. 하이파의 지인은 거대한 이스라엘 기를 보더니, ‘열라 비쌌겠군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안의 팔레스타인들은, 미국의 흑인들이 그랬듯 사회에서 바닥층을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하이파의 지인이 무지 싫어하는 이스라엘식 표현으로 이스라엘리 아랍들이 사는 구역에는 집값도 안오른다. 이스라엘인들이 오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교육을 받고 자라며, 점점 바로 웨스트뱅크나 가자 지구의 실상과 멀어지고 있고, 이스라엘 안에서 고용인으로 일한다. 물론 하이파의 지인 같은 사람들도 있다. 그녀는 사진작가인데, 자신의 작품집에 하이파, 이런 이름들을 빼고,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다라고 박아두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스라엘 고용주가 없고 이스라엘 자본이나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었고, 확고한 성격이었다. 생각해보라, 매일 출근하는 일터의 사장이 이스라엘인이고 사는 곳이 이스라엘 땅이고 이스라엘 보험을 받으면서, ‘이스라엘리 아랍 아닌팔레스타인으로서 크게 말할 있는 얼마나 힘들지를. 그럴 있는 순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짜여져 있는 매일매일 일상이 흐르다보면, 이스라엘 땅의 팔레스타인 인들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리로 흡수되지 않을까. 차별 받고 궂은 일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층민이라는 계급으로서 저항하는 것과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으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인식 어쩌고를 따지기에는, 삶과 일상이라는 것이 너무 무겁고 빠르게 스며든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많이 사는 하이파는 텔아비브처럼 이스라엘 인들이 거의 차지하고 있는 곳과는 다른 분위기다. 나는 2003년에 텔아비브에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냥 사람들과 광경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변 근처라 그랬는지, 가게들은 활기에 넘쳤고, 다양한 패션, 심지어 비키니까지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해변에는 수영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천을 깔고 누워 책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엔 그들의 일상이 그렇게 있었다.

그렇게 바퀴가 한참 돌아가기 시작한 그들의 삶을 다른 이의 또는 일반적인 정의를 위해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서서히?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뮌헨>이라는 영화는, 비교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객관적으로 보려했다는 평으로 유대인들의 강한 비판을 받은 영화이다. 영화에서 총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던 어리버리한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 저명인사를 상대로 암살을 해나가면서 어떻게 냉철한 암살자가 되는지, 그리고 안에서 인간으로서 어떤 고민이 생기는지가 그려진다. 언뜻 보면, 너희에게도 우리에게도 땅과 삶은 소중하다는 , 그리고 폭력의 악순환이라는 그림이 그려지지만, 영화는 인물의 대사를 빌어 이스라엘이 줄창 해온 논리를 보여준다. ‘니들 팔레스타인 인들은 여기저기 열라 많은 아랍 나라들에 가면 아냐. 하지만 우리에겐 여기 , 이스라엘 말고는 곳이 없어.’라는.

나는 사실 논리보다 텔아비브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무서웠다. 거리를 걷고 있는 바쁜 학생과 활기찬 우유가게 아줌마와 한가로운 해변의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리는 여기밖에 없어라는 생각조차 있기는 걸까. 그들은 아예 그런 것도 잊어버린 ,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보였다. 학교 시간에 학교에 가고, 짬이 나면 해변에서 산책을 하거나 수영을 하고, 때론 애인과 다투거나 부모님께 혼이 나고, 늦잠을 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바삐 신호등을 건너는 그런 자연스러움.

여러군데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인들이 수십년 동안이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트고 살아오면서도 자기 동네를난민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저런 빼앗긴 자연스러움과 삶의 기반 때문이 아니었나.

개인으로서, 너희는 점령자이며 너머 벽에는 팔레스타인 인들이 노골적인 이스라엘의 폭력과 억압아래 고통받고 있으니 이제 일상을 벗어나서 커다란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라고 하는 얼마나 받아들일만한 일인걸까?

 

밖에서 보는 자가 아니라 상황 안에서 사는 자로서, 인식하고 행동하고 바꾼다는 가능하기는 한걸까? 어떻게?

 

 

 

(이 글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달' 에서 일했던 복태씨가 여행 중 쓴 것이다.

복태씨는 이 것과 이 다음 글인 <의미가 있을까>를 같은 글로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이 편지글이 먼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