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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한 이야기들은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존나 싸구려 발정기가 될 수도 있고,
평이하게 일상적이 될 수도 있고,
그냥 그 사람의 옷차림에 특색이 있듯이, 그 정도로 일탈적일 수도 있다
블로그를 옮기면서
해도 될 이야기와 원래 없던 것처럼 버릴 이야기들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얼마전 쏟아버린 얘기라서,
이건 다시 해야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시작은 이렇다
사람사이의 관계가 섹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너무 많이 봐버린 것이다
1.
실은 '사랑'이란 건 상당히 스펙트럼이 넓다
그 중에서 굳이 이름을 붙일 때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 과 '남녀 사이의 사랑' 이라고 하면
그 정도로도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 쉽게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건 이성애자들 얘기고,
남성 게이들에게 '아직 제대로 아가씨를 못만나봐서 그래'
라거나
여성 게이, 그러니까 레즈비언들에게 '아직 진짜 청년을 몰라서 그래'
라는 등의 망언을 하는 이성애자들에게
굳이 자기 상태를 설명하고 싶은 게이들이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육체적인 끌림, 과 섹스'
그래서 게이들의 사랑은
인류가 그 오랫동안 쌓아오고 다듬어온
그 모든 철학과, 고차원의 고뇌와, 다분히 본능에 반하는 희생이 동반된
그런 '사랑'
이 아니라,
'섹스'에 더 촛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이성애자라면 자연스러울 것들은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미묘한 범위의 어긋남을 낳는다
아주 미묘한 어긋남.
어떤 곳에서의 룰은
다른 곳에서는 룰이 아닌 것이다
2.
한 아가씨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딱 한명과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주변 반경 안의 모두와 섹스를 했다
그 딱 한명과 섹스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 사람과는 '특별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관계가 주는, 역시 미묘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건 그 '특별한 관계'에 있던 딱 한명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애초에 도를 닦을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에 대해 관심을 접기로 한다
실은
그런 건 이미 술안주 거리로는 좋았지만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에는 그와는 취향이 달랐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으니,
자기 이야기를 술안주 거리로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예
관심을 접기로 했던 것이다
3.
그 특별한, 하지만 소외된 딱 한명에게(앞으로 이 사람은 A라고 한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멋진 청바지를 입고, 멋진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 사람은 A를 데리고
처음으로 밤이 내려앉은 길거리를 걷다가
좁은 계단이나 옥상을 찾아 잠을 자는 법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A에게는
베개를 가지고 다니는 취미가 있었다
어디에서든 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A에게는
방향을 잃은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구토증세가 있어서
너무너무 좋은 것을 가지게 되면
먼저 그 완벽함이 깨지는 것이 두려워 도망을 가는 버릇이 있었다
이건 그 유명한 '사랑하니까 떠난다'보다도 하위단계로
그저 토악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A의 증세였다
A가 그 사람과 그 당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떠난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토증 말고는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불행에 빠졌지만
왜 그런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더욱 슬펐던 것은
다른 모두 역시 마찬가지여서, A에게 당장 그 이유를 말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죄책감과 쪽팔림이 슬픔과 상실보다 크진 않았겠지만
A가 나를 찾아왔을 땐
그는 이미 길을 잃은 듯이 헤매고 있었다
자신의 발이 삼백개라는 걸 의식한 순간, 걷는 법을 까먹고 뒤집혀버린 지네처럼.
4.
A는 자유에 대한 거부감은 심했지만
시계는 좋아했다
내가 보기엔,
그는 자신의 구토증세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면 그 즉시 도망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방어벽을 만들었다
목적지가 보이는 순간
스스로 눈을 가리고, 방향을 틀되
자기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게 따블로 속이면서
결국엔 그 목적지에 닿으려는
일종의 이중 트랩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지만
자신이 그것을 벗어날 정도로 성장했는지 자신이 없었던 그는
계속해서 그 상태를 유지했고
그 결과 페티시즘이 탄생했다
여성용 콤비자동 로렉스
출처: A씨의 즐겨찾기 목록에 있는 방씨네 아빠시계 http://www.abbawatch.co.kr/
그는 자유를 싫어하지만
시계를 좋아한다
그가 자유를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1년 동안 메탈리카를 듣지 못한 것과 비슷할 것이다
난 98년, 첫번째로 메탈리카가 내한했을 때
앞에서 세번째 자리에서 공연을 보았고
살아있는 게 기쁠 정도의 감동을 맛본 후
집에 돌아와서 1년 동안 메탈리카 음악을 듣지 못했다
메탈리카를 들으려고 할 때마다 이상한 구토증세가 있었는데
나는 그게 A씨에게 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래서 '자유'라는 단어나 그 맥락에 거부감을 갖게 된,
혹은 그렇게 해서 구토증세를 벗어나려는 첫번째 트랩을 설치한 A씨는,
대신 그 시계를 차고 있는 그가 제공해 주었던 그 '자유'를
시계에 대한 페티시즘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노골적인 상징성을 숨기기 위한 두번째 트랩으로
그는 폭력을 선택한다
그것도
고대 투사들의 전통에서부터 볼 수 있는
'뒤에서 공격하기'의 방식으로.
이건 농담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A씨에게 시계와 폭력이란
자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구토증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만 필요한 도구일 뿐,
사실 그에겐 폭력에 대한 면역이 없다
실제로 그가 상당히 극한 폭력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는 고통 보다는 죽음을 택했고
다행히 그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아무도 죽지는 않았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페티시즘.
이렇게 말하니까 별거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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