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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워내기

2001/01/13 장난질에 놀아남

GOM GOM LOVER 2007. 5. 6. 02:03
 

제목  장난질에 놀아남 

보낸날짜  Sat, 13 Jan 2001 22:44:02 KST 

보낸이    

받는이   

소속기관    


열 살이 막 넘었을 때

난 원인없는 열병을 앓았다

어느 날 갑자기 열이 올라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을 때

모든 검사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엄마가 간이 침대에서 밤을 새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실때

의사들은 나의 증세를 흥미로워했다


열병을 앓기 전의 내 모습은 내게 너무 생소하다

나의 과거라고 하기엔 너무 이질적인 삶이었다


약물의 후유증에 따른 갑작스런 몸의 변화와 함께

어느 날 정신을 차리니 십 년간 익숙해왔던 삶과는 너무 다른 나를 받아들여야 했을 때

난 오만하게 미치지 않기 위해

변화의 이유를 필요로 했었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신은

십 년간 내게 주어졌던 삶이 잘못됐었다고 생각했나보다고

내가 감당하여 버티던지 스스로에 취해 떨어지던지

어쨌든 지금 이 삶에서 내가 살아가길 바랬나보다고

그래서 늦게나마

온몸이 터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열병을 주어

날 태초에 그가 선택했던 그 삶으로 집어넣었다보다...고


그렇게 다시 신이 원했던 모습으로 몇 년이 지났고

저항할 이유가 없어 그다지 순응하지도 않았던 제도권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나게 되었을 때

난 내게 있어서 특별한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느낌들을 경험했고

그것이 희미한 무형일지라도 어떤 나의 중심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소한 불만족의 시작은

다시 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단 한가지 좋아하는 담배를 즐기기엔 내 폐가 너무 약하고

그나마 의존할 수 있는 술에 기대기엔 내 위장이 너무 예민하고

위선을 해소할 탈출구인 춤을 추기엔 내게 새로 주어진 몸이 너무 굳어있다

음악을 들으려하나 소리들은 감성에 인지되지 않고

영화를 하려하나 영상들은 내가 가진 이미지에 흡수 되지 않고

기억에 대한 편집증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에도 내 기억은 시간을 갖지 않는 불구다


중독이나 금단증상은 그렇게도 내게 생소하면서

시간이 비어 정지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 서서히 미쳐가는 조바심은 또 왜...


의심은 의심을

막다른 길은, 지어낸것일지라도 그에 걸맞는 이유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난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신은 아마도

내가 아니라 너무도 예민한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 육체와 감성을 마비시켜버린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신보다 위대한 또 다른 신이 정해놓은대로

열 살 이후 금기였던 처음 그 삶을 우연히 하지만 천천히 찾아냈던 것이고

내가 그토록 찾으려 했던 내 삶에서의 애매한 퍼즐은

사실 그 두 신이 각자 사랑한 서로 다른 사람을 위해 저지르고 말았던

그 실수의 결과라고


항상 그렇듯 술에 취하기도 전에 토악질을 하고 나서

일년 내내 잔기침을 하게 만든 담배를 오랜만에 물었을 때

웃기게도 손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난 퍼즐의 이유를 찾은 듯

이렇게 도도해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