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며칠 전 일이다 광대가 5년 전 쯤에 홍대에서 살 때 한겨울이었고 이불을 털고 있었는데 홀연 나비가 한마리 날아갔었다고 한다 한겨울에,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같은 일인데, 하지만 워낙 시크한 광대는 마음을 쓰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 광대는 망원동에 있는 옥탑에 살고 있다 올겨울은 추워서 변기가 얼어서 잠시 고생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열심히 변기를 녹이고 있는데 그만 부엌에서 무당벌레가 나온 것이다 두 번의 매직. 나는, 당장 이름씨와 함께 여행을 떠나, 라고 말했고 광대는 아마도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해가 바뀌었고 설날이 지나면 음력 해도 바뀌게 된다 두 번이나 계시를 받은 광대는 대박이 터져 백만장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외 다른 ..
매고 다니는 가방이 무거워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땅을 보면서 걷는 편인데 어젯밤 퇴근 길에는 너무 추워서 문득 고개를 들었다 새로 이사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시장이 있고 그동안에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만 바빠서 몰랐는데 돌아보니 눈에 들어오는 문닫은 점포들이 갑자기 낯익었다 지금 살고 있는게 나중에 떠오를 때면 어떤 내음과 이미지들과 느낌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바람에 그걸 하마터면 놓칠뻔 한 것 같아서 마침 그 날, 추워서 고개를 들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이사간 집은 계단 밖에 있는 대문이 대박이다 직장이 숨막혀서 죽을 것 같았고 하지만 사람들이 다 좋아서 딱히 탓할 곳도 없었고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걷는 것조차 어색했었는데, 마음이 가는 한 사람 덕분..
중요한 건 '조롱'이나 '희화화'뿐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빽그라운드 이미지다 시대 속에 화석이 되어야 하는 '아랍'의 고정된 이미지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실제로 화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랍 세계가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서양의 대뇌피질인 것이다 인종의 용광로라, 문화의 혼합이라 말하지만 그 역시도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뿐이다 그 많은 인종과 종교와 문화의 만남에서 배운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랍과의 조우에서 어색함을 참을 수 없었던 서양은, 베일너머로 보이는 야릇한 에로티시즘과 지글지글 태양아래 수염을 달고 깊은 눈매로 노려보는 전사들의 야만성, 이란 이미지들을 '창조해냈다' 많은 미국인들을 웃겼던 국민가수 레이 스티븐스의 뮤직비디오인데 그들에게 이건 희화화라기 보다는..
요즘 기분이 좋지 않다 잘못한 건 없고 잘못된 것도 없는데 뭔가가 잘 맞지 않는다 불편하다 불편하다보니 만족스럽지 못해지고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초라하고 초라하니 조급해진다 난 그래도 이게 제자리걸음같은 내 생활에 서른살 방점 찍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정적이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스트레스는 심하게 받지만 상처를 받고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롤플레잉 해본 적이 없었던 역할들, 상황에 필요해서, 이기도 하고 상황이 자연스럽게 세팅이 되어서, 이기도 한데 의외로 많이 어색하진 않다 없던 면이야 애쓴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니 지금 보여지는 내 모습도 어딘가 있었던 내 모습인게 맞을 거다 그렇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뱉어진 말은 주워담을 수가 없다 이미 눈빛을 보냈다면 그것도 주워담을 수 없다 나쁜 자태 뿐만 아니라 어설픈 자태도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도 돌이킬 수 없다 그래도 살아 있다면 기회는 있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게 절대 없을 기회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양력설이라고 하더라도 새해가 바뀌기 전에는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살아있는 우리들에게는, 절대없는가능성 같은 거라도 있으니까요 멋진 노래를 부른 Vic Chesnutt도, 일년 만에 벌써 또 잊혀지는 팔레스타인, 가자도, 또 모두가 다 아는 그런 사람들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개인적인 기억들도 안녕안녕안녕 Vic Chesnutt의 멋진 노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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