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상황

- 2014 8

2014 8월 현재,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상태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7 8일부터 한달 여간 이스라엘의 집중 폭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가자지구를 향해 대피소로 사용되던 UN 학교, 가자지구의 전력을 공급하던 화력발전소, 사상자를 받아야 하는 병원 등에 막무가내로 폭격을 했고, 17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고 90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 배경

- 빼앗긴 땅과 삶 점령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00년대초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그 지역의 땅에 주인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주해온 유럽 시오니스트들이 유럽 열강을 등에 업고 체계적인 인종청소를 통해 1948년 만든 국가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인구의 삼분의 이가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난민이 되었고, 지금도 귀환권을 거부당한 채 UNRWA의 명목상 관리 하에 주변 아랍국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흩어져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를 목표로 만들어진 국가로, 지금까지 유대국가임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과 공존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래로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으며 2006년 봉쇄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7년의 봉쇄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2008-9, 2012, 그리고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가자에 집중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서안(웨스트뱅크) 역시 명목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권한 하에 있는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법식민촌들(settlements)과 분리장벽으로 갈갈이 분해되어 있어서, 실질적인 경계가 무의미한 상황입니다..

그 땅에 이스라엘의 존재를 만들어내고 인정한 것은 서방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열강입니다. 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그 열강입니다. 그래서 지금 점령자인 이스라엘은 합법적인 국가로 국제사회의 일원이고, 점령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은 국가가 아닌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에 참여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지역Palestine territory 혹은 반국가집단인 것입니다(1988년에 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이 선언되었으며 미국 등 서방을 제외한 많은 유엔회원국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국경과 내부의 치안, 수자원, 난민귀환권, 이스라엘의 불법식민촌, 그리고 예루살렘 등에 관한 실질적인 통제권은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7 23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올라온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조사 결의안에 유일한 거부권을 던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한국정부는 서방 유럽국들과 함께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서방을 중심으로 한 주요언론을 통해 퍼져나가고, 그렇게 퍼져나간 그림은 실제로 힘을 가지고 현실로 고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1. 문화적 보이콧

 

빼앗긴 문화 - 뒤틀려가는 팔레스타인과 정상적인모습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도 삶이 있습니다. 웃고, 외식을 하고, 학점을 고민하고,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상에는 당연함이 빠져 있습니다. 희생자로서 정당함을 얻기 위해 희생자답게 혹은 저항자답게 굴어야 한다는 굴레가,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에 녹아서 당연함을 빼앗아 갑니다. 웃고 떠들고 카페에서 돈을 쓰고 사랑을 하고 그렇게 삶을 지켜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저항의 일부라는 얘기는, 막상 그걸 당연하게 살기는 힘든 일일 때가 많습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는 삶과 문화에 앞서 기획들이 난무합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자체를 비롯해서 도로 등의 인프라스트럭쳐와 공공, 문화, 교육사업들이 거의 전부 오슬로협정 이후 쏟아져 들어온 외국 엔지오들, 국제단체들, 외국 자본들로 굴러가게 되면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자기 땅과 문화를 지키려고 부여잡고 있으면서도 그 땅에 대한 소유와 책임감은 겪고 배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간극을 헤맵니다. 그저 좋아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예술을 즐길 기회가 없이 예술이 온갖 문화제와 치유프로그램과 극복이나 저항의 수단일 수밖에 없던 삶을 산 팔레스타인 젊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려는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서안에 계속 건설되고 있는 불법식민촌(settlements)를 빌미로 분리장벽 또한 계속 그 땅을 찢어놓고 있는데 그 장벽 건설현장에라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역설이 생계수단일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자유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문제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경험과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가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매력적이거나 익숙한 문화. 길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동네에서 자율적으로 열리는 벼룩시장, 출근 시간 간단한 요기거리를 들고 바삐 거리를 걷는 분주함. 우리는 아마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보다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정서적으로 더 공감하거나 익숙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가치와 정서를 의식적으로 이용합니다. 이스라엘은 각종 학술, 문화 행사를 유치하고 참여하며 이스라엘을 점령자나 학살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체계적으로 국가 브랜드를 세탁해 왔으며, 팔레스타인 내의 학술, 문화 행사는 조직적으로 방해, 금지해 왔습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의 삶에는, 그들이 가하는 점령의 폭력 때문에 스스로조차 뒤틀려가는 팔레스타인의 생명이 가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뺏은 것은 팔레스타인의 땅과 삶, 곧 문화입니다

 

빼앗긴 개념 정상화/일반화normalization = 가해자에 대한 무의식적, 암묵적 동조

팔레스타인의 죽음은 세계의 관심과 공감을 받지만 팔레스타인의 삶은 이스라엘누려야 하는 가치를 위해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가자에 폭격이 시작된 후에 가장 큰 바람이 된 것은 폭격 중지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원상태로의 복귀, 팔레스타인에게는 가족의 죽음과 끊긴 전기와 썩는 물과 파괴된 동네를 갖고서 다시 7년간의 봉쇄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폭격으로, 박탈된 인권과 무관심으로 돌아간 후, 이스라엘이 폭격의 이유로 지목한 어긋나는저항도 하지 말고 숨죽이고 죽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지 않는 동안에도 팔레스타인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있다는 사실은 잊혀지기 쉽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스라엘은 잠시 동안의 분쟁때문에 취소되었던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공연을 다시 개최하고 이스라엘인들은 비로소 그런 공연들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요.

2008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세계를 향해 세계적인 문화인사들이 던진 기념할 이유가 없다No Reason to Celebrate’라는 외침에는 여전히still’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기념할 이유가 없다! 60년이 된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단지 비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엔이 인정한 귀환권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수많은 유엔결의안을 어기면서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과 기타 아랍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후한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지원을 받으며 끊임없이 막무가내로 국제법을 어기고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점령이라는 틀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삶의 당연한 기본으로서 문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그 문장 자체는 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가 이제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리겠다고 주장할 때, 피해자는 여전히온 삶과 온몸으로 그 가해자가 만들어내는 매일의 점령을 현실로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구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 그 당연한문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여전히 가하고 있는 점령과 인종청소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 구조에 동감한 많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적, 문화적 보이콧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애와 미를 얘기하는 그들의 말과 삶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학술문화 보이콧 사례는 아래)

희망과 공존이라는 가치는, 점령자와 점령당한 자를 마치 동등한 것처럼 대하는 왜곡된 바탕에서는 설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정상화/일반화가 노골적인 폭력만큼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이 인식하지 못한 채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사회가 지켜야 하는 가치들이 표면적으로만 내걸린 곳에서는 현재와 여기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로서의 공감능력과 책임의식이 막연한 역사의 일반화에 묻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유대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고수하고 가자지구의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EIDF에서 희망과 공존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문화적 보이콧을 통해 가려지고 왜곡된 현실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려는 겁니다.

 

문화보이콧은 강제가 아니라 고민과 선택입니다.

학술적, 문화적 보이콧은 범위나 정도가 넓고 고민할 지점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문화예술 자체의 가치나 기회의 균등함을 이유로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반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학술문화 보이콧은 아직 담론화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 불분명한 상태에서 다양한 입장과 수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삶의 입장을 고수하더라도 그 선택은 찾아가고, 변화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의 아무런 경험과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의 말하기가 아닌, 고민할 지점들을 마주하는 담론화가 자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문화 보이콧을 말할 때는 개인의 취향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문화적 보이콧은, 정의를 위해서 카페에 가지 말고 음악을 듣지 말라는 단순한 강제가 아니라 그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죽음에 대해 공감하고 얘기한다면,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고민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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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20150102

2017.07.02 03:43 from 게워내기

61년 이후 프랑스 최대, 최악의 테러라는 샤를리 에브도 사태는 이틀 뒤 용의자들이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되며 끝났다. 이 사건으로 편집장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를 포함한 12명이 사망했고, 이들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괴한이 용의자들이 사살되던 날 벌인 인질극으로 인질 네 명이 사망했다.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외친 용의자들이 북아프리카 계 프랑스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자국민에 의해 파리 한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다. 유럽에서는 무슬림 이민자들이 사회 문제시 된 지가 한참이고 반이슬람 정서가 이미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 시점에, 프랑스는 이 우려의 현실화의 충격적인 현장이 되었다.

 

1.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사회의 어떤 중심적인 가치가 훼손되었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이 훼손하려 한 희생자의 업적을 지속시키고 심지어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편에 서겠다는 선언을 함축한 내가 샤를리다 Je Suis Charlie’라는 한마디가 전세계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의 메아리를 불러왔다. 카투니스트들의 연대적 만평과 기사도 줄을 잇고 있다. 어조의 차이가 있지만 이 대부분은 펜 대 총 즉 표현의 자유 대 물리적인 테러, 자유주의 대 극단적 이슬람주의, 서구의 세속주의 대 무슬림 사회의 종교적이고 집단적 가치를 말한다. 똘레랑스(관용)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는 무엇보다 사회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의 존재 기반이 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훼손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아마도 프랑스 사회가 가장 공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권위주의와 금기에 도전했던 68 혁명의 정신과 볼테르가 말했다는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일 것이다. 2011년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만평으로 비판을 받았을 때, 샤를리 에브도가 보였던 반응 역시 무함마드를 풍자할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풍자할 수 없게 된다였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몰아갈지라도, 그 원칙 자체를 훼손하는 모든 금지에 대해서는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한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장은 안팎의 비난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회가 가진 경험과 보편적 가치를 모두 고려하여, 약자를 보호하고 부당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강력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보편적 가치마저도 변화, 수정되어갈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 방법론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변화를 조율하고 현 상황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모든 사건은 사실 큰 흐름 속의 맥락이며, 사회가 말하는 가치 역시 역사에 대한 그 사회의 독해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유럽국가들과 프랑스가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파시즘을 겪은 그들의 경험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게 되더라도 인류에 대해 행해진 범죄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서 제외된다. 프랑스는 1990년에 제정된 게소법Gayssot Act에 따라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이 불법인 나라들 중 하나이다. 2005Vincent Reynouard라는 프랑스인이 홀로코스트? 그 뒤에 가려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Holocauste ?Cequel'onvous cache...)”라는 16쪽의 팜플릿을 만들자, 프랑스는 유럽 국 간의 공조를 통해 심지어 벨기에에 살고 있는 그를 체포, 인도받아 프랑스 법정에 세우고 벌금과 1년형을 선고했다. 이런 법의 존재는 어떤 명확한 사실 관계의 왜곡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이 경계를 갖지 않고 모호하게 사회를 지배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육십 년이 넘게 국제법을 어기면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합당한 비판이나 분석과 닿아있는 시오니즘 관련 홀로코스트 연구나 발언조차 어느 정도의 자가 검열을 거치게 된다. 유럽은 실제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과 안티세마이티즘 사이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스라엘은 점령에 대한 비판을 안티세마이티즘, 민족과 종교에 대한 박해로 왜곡하여 공적으로 문제 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역사의 집단적 경험은 여전히 이 법안의 기조를 용인한다.

이렇듯 수정을 허용해왔던 동일한 원칙이 무슬림 인구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떤 예외도 없는 무게를 가지고 적용될 우려가 있다. 물리적 테러에서 한번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도가 정해지면, 정의를 지키기 위한 조심성으로 인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야 하는 수많은 담론들이 애초에 무력해진다는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옹호를 지키고, 동시에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제까지 정도의 비판을 이어갈 수 있는 여유가 지금 프랑스 사회에 남아 있을까? 언론이 갖는 폭력성은 과연 물리적인 테러보다 덜 파괴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거리끼지 않고 다양한 담론을 쏟아낼 수 있는 분위기는 남아 있는지? ‘나는 샤를리다 Je Suis Charlie’의 홍수 속에 나는 아흐마드다 Je Suis Ahmed’라는 목소리가 비집고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무슬림 이름을 가진 아흐마드 메라빗Ahmed Merabet은 이번 테러 현장에서 사망한 경찰관이다. 그는 한 명의 프랑스 경찰공무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가 자신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조롱과 무례를 범한 샤를리 에브도를 지키려다 죽은 이미지로서 부각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틀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샤를리적 자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말 뿐인 자유주의자를 대변하는 샤를리가 아닌 아흐마드의 상징성이 볼테르의 그 한 문장에 좀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에게 틈을 내어주었다는 똘레랑스에 대한 후회로 인해, 상식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샤를리 에브도에게는 무한한 포용으로, 내부의 다양성과 문화 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원적 가치를 단호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엇보다 그런 양극화 상황은 이번 사태로 인해 급작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최근 번역도 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한 소설이 그러한 양극화의 현실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그린 복종(Soumission)’이라는 책으로 공쿠르상 수상자인 작가 미셸 우엘베크가 썼다. 2022년 대선에 국민전선(FN, 실존하는 프랑스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신생 무슬림형제단 만이 남게 되면서 우경화를 우려한 사람들이 이슬람 정당을 선택한다. 그 결과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후의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금지되고, 일부다처제가 들어오며, 학교에서 꾸란을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최근의 반이슬람 정서, 그리고 이슬람 주도 사회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책은 이미 프랑스 안에서도, 작가의 극우적 해석에 대한 통렬한 비난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옹호가 엇갈린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은, 이 책의 모든 전제가 대선에서 기존의 온건한 좌우파정당이 모두 탈락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파시즘을 연상케하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현실에 존재하는 모습을 그린 이슬람 정당뿐이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경제파탄과 우경화로 인해 서구문화와 무슬림 이민자 사이의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그려졌을지라도 이 책은 그러한 현재 프랑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무슬림 인구의 숫자가 차지하고 있는 상당한 비중 때문에 설득력을 가진다. 반이민정책, 낙태반대, 프랑스주권 강화 등의 주장을 해온 실제 극우 정당인 FN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적인 접근과, 그러한 입장을 지키려다 결국 이슬람화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역시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사회는 이미 파시즘을 직접 겪고 그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있었던 만큼, 개인들의 합리적인 판단이 국민전선이 아닌 이슬람 정당을 선택한다는 상상도 개연성이 있다. 이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과 북아프리카/중동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현재의 고민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의 무슬림 추정 인구는 오륙백 만 명으로 유럽 최대 수준이며, 현실에서도 이들은 점점 더 동화되지 못하고 이방인, 타자, 심지어 침입자로 남아 있다. 현재 이슬람의 전형적인 관행들은, 진정한 이슬람 가치들이 무엇인지 대한 치열한 고민이 아니며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존재했던 세속적인 아랍국들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은 무슬림들이 현존하는 이슬람 정권들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점점 더 공고히 받아들여가고 있으며, 여기에서 가치의 충돌이 일어난다. 파시즘을 겪은 서구 유럽 사회가 자기들만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절대화시켜 가는 동안, 서구의 식민, 압제, 전쟁을 다각도로 겪은 전세계의 무슬림 인구 역시 급격히 이슬람화 되어간 것이다.

중동지역은 서구에 의한 분쟁과 분열로 인한 이슬람화가 절대적이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더라도, 현재 이슬람주의자들의 무대가 된 이라크와 시리아는 모두 중동/이슬람 세계에서 역사가 깊고 문화적으로 강대했던 나라들로 한때 이슬람화를 경계했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을지언정 종교적으로 보수적이거나 극단적인 행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을 선두로 한 서구가 건드린 건 인권과 종교적 합리성이 바닥을 치는 아라비아 반도의 친미국가들이 아니라, 바로 레반트 지역의 세속정권들이었다. 이들이 무너진 자리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피폐해진 민중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인 대안을 제시한 이슬람 세력들이었다. 이후, 곧 이라크에서는 순니-시아 연합 무산된 후 장기집권으로 인한 갈등이, 시리아에서는 극한 분열과 외세가 개입된 내전이 이어졌다. 이 혼란의 틈을 타고 등장한 이름이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인 IS이다. 규모를 키운 IS가 처음 국가임을 선언을 했을 때, 특히 레반트 지역의 아랍/무슬림 사회의 즉각적인 반응은 비웃음과 우려였다. 이 지역의 무슬림 공동체는 단일 종교를 내세운 국가가 얘기하는 종교가 얼만큼 허상이며 얼만큼 정치적으로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미 겪었다. IS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의 성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구와 아라비아 반도의 친서방 국가들을 비롯한 외세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상황에서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강대국의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고 있던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별다른 대안이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IS가 제시하는 저항의 이미지로부터 해소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럽 무슬림 이민자의 2, 3세대들이 뿌리깊은 문화적 차별과 경제적 박탈감, 그리고 최근의 유럽의 경제불황으로 심해진 사회의 우경화로 인해 구석으로 밀리다가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수가 IS에 몰려든 것이 이를 보여준다. IS에서 군사력과 폭력성만큼 주목해야 할 부분이 그들의 조직력과 이미지를 이용한 호소력이다.

아랍 영웅물 만화를 만드는 요르단의 술레이만 바킷Suleiman Bakhit은 아랍/무슬림 세계에 긍정적인 이야기와 긍정적인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극단주의자들과 수치심(shame)과의 관계였다. 폭력이란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무슬림 개개인과 이슬람 공동체를 정화하여 이 수치심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과정이며, 그런 수치심을 이용한 영웅주의로 치장한 것이 현재의 극단주의 집단들이다. 술레이만은 중동의 가장 큰 문제는 IS가 아니다. 영웅주의로 가장한 테러리즘이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건강한 영웅, 무엇보다 남녀 모두가 등장하는 영웅물 만화를 통해 대안적인 영웅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진정한 이슬람적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고착되어 가고 있는 이슬람 사회 내부를 향해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이런 상상력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슬림 사회의 자생력을 결정할 것이다. 유럽에 뿌리를 내린 무슬림들의 경우에는 북아프리카나 중동지역과는 또 다른 상황에 있다. 이들은 타자가 아닌 유럽 사회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공존을 위한 가능성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3.

2004년 프랑스는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복장을 착용하는 것을, 201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이는 여성들이 강제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상황을 막고, 프랑스의 세속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 법은 직접적으로 무슬림 인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립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얼굴을 가리는 것에는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뿐 아니라 마스크, 헬멧 등이포함되어 있으며, 이 법의 목적 역시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이 법안들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히잡을 쓸 자유를 훼손하는 법이자 무슬림 인구와 이슬람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존을 위한 법이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분열의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디까지가 극단성조차 지켜져야 하는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금기에 대한 금지인지를 결정하는 기반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프랑스 헌법의 대답이 세속주의인 반면, 무슬림들은 종교의 숭고함과 그것을 선택할 자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프랑스의 세속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되 종교가 국가적 권한을 가질 수 없으며 어떤 종교적인 강제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슬람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다른 모든 종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럽 역사의 일부로 이미 상당 부분 세속화가 이루어진 데 비해,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또한 초창기부터 이슬람 공동체, 즉 움마를 운영하는 과제를 지고 있었던 이슬람은 기독교와 달리 생활규범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히잡이 과연 이슬람에서 지켜야 하는 종교적 관행인지 여부를 떠나서도, 프랑스의 세속주의는 많은 면에서 무슬림들의 일상과 부딪히기 쉽다. 종교로 대표되지만 사실 보다 뿌리 깊은 문화와 가치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식 다양성과 관용이란, 무슬림들에게는 오히려 불평등과 강요가 된다. 이렇게 이질적인 특성으로 인해, 프랑스 일반 대 동화되지 않는 무슬림 이민자의 구도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번 테러의 범인인 쿠아치 형제(Said Kouachi, Chérif Kouachi)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관련 테러 대책에 대해 다른 어떤 유럽국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무슬림 인구를 관리할 수는 없어서그 뚫린 틈 사이로, 이런 충돌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슬림 이민자들이 그저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프랑스 사회에 찾아온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되돌아 볼 것은 61년 프랑스에서는 일어났던 또 다른 테러이다.

1961년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1954-1962)를 치르는 중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것처럼 들리지만, 이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프랑스에 대항한 알제리 독립전쟁, 혹은 알제리 혁명이다. 1999년까지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전쟁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알제리 사태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알제리가 독립을 하게 된 1962년까지까지 132년 동안 계속되었다. 독립전쟁이 한창이었던 61 10 17, 야간통행금지에 대항하여 알제리인들이 대규모 비무장시위를 조직했다. 그리고 파리 경찰은 이 시위를 대규모로 유혈진압 한다. 파리 경찰은 알제리인 시위대들이 의식을 잃거나 죽을 때까지 구타한 후 센느강에 던졌다. 어느 정도까지 말하는 것이 축소이고 과장인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당시 생미쉘 다리에 내걸렸듯이 여기 우리가 알제리 인들을 센느에 던져버렸으며, 그와 함께 르몽드의 표현처럼 정의는 센느강에 던져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때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망자 숫자는 3명이었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인 파리의 10은 상영금지를 당했다. 실제 사망자는 200여명까지도 추정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알 수 없다. 이 날의 책임자는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이름이 거론되던 사람이 당시 파리 경찰국장인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이지만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며, 센느강 주변의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의 모습에, 불과 오십여 년 전 알제리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제국주의의 패악을 부려왔던 또 다른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내에서 피식민지인으로 분류되고 프랑스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채 버려져도 괜찮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서 젊은 무슬림 인구들이 왜 튕겨져 나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그들에게 이 역사를 각인시킨 그 사회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

오늘 참담한 테러를 겪은 프랑스 사회가 그 정신을 잇고자 하는 건 68혁명이지만, 이 지경까지 와서 진실로 돌아봐야 하는 것은 61 10월의 학살이다. 이는 너희도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적 힘빼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흐름 끝에 지금 여기에 서 있는지,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를 고민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필요하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를 단순히 고정화된 프랑스 사회에 외부에서 유입되어 온 이질적인 존재라는 구도에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타자의 피를 딛고 자기들끼리 이룬 다양성과 관용의 문화는 그 타자와 접촉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편리한 자기들끼리만의 천국으로 돌아갈 선택을 하기 쉽다. 표면적인 자유, 관용, 다양성, 민주주의의 허상을 넘어서 진정한 공존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불편하고 지리하고 알 수 없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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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의 취미

2016.02.14 02:45 from 공간/서울

논리회로에 이상이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느라 큰 그림을 어긋내지 말고

해결하려하든가 아니면 감성회로도 들여다보든가 해야겠다

남편이 꿈을 꾸었다

차가 거칠게 달려오는 오르막 길이 있었는데

오르막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고 차들은 거칠게 달려 오기 때문에 사고가 잦은 곳이 있었다고 한다

나와 남편과 혜란언니가 그 곳을 지나는데,

내가 차가 거칠게 달려와서 사람을 쳐대는 꼴을 증명하겠다며

그 길로 씩씩하게 걸어갔다고 한다

아 나는 그렇다

모두가 다 아는 걸, 지켜보면 그냥 보이는 걸, 굳이 증명하겠다고 

차로 뛰어드는 안타까운 멍청함

모모아저씨는 자해하면서까지 증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해결도 아니고 증명을 위해, 드러내기 위해 자해하는 건 안 된다

안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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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상

2016.01.18 02:45 from 공간/서울

아침에 일어나면 돌궐 커피를 끓인다

사무실 책상이 나란히 붙어 있기 때문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일어나자마자 보통 랩탑을 켜니까

보통 일을 바로 시작한다

보통 번역을 하고 편집을 한다

나는 초벌을 하고 남편이 편집을 한다

원고가 난장판이 된다

남편은 밥을 하고 짜이를 끓이고

난 설거지를 한다

난 바닥을 쓸고 남편이 닦는다

온수매트를 샀는데 겁나 좋다

내가 말을 걸면, 남편이 관련 자료를 찾아 말을 부풀려준다

그러면 말들이 온 방을 오고 가고

뭔가 윤곽이 잡힌다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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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ats the soul

2016.01.13 08:02 from 공간/서울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극복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믿음은 불안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다


나는 나 자신은 할 수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방법을 알아서

도움을 요청했다

딱 그것만 제외한 모든 이야기들이 돌아왔다


난 또 허공에 손을

하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랬더니 두 가지가 잡혔다


허상에 쌓여있던 악의의 간절한 손짓과

나와 같던 또다른 누군가의 손


그래서 손을 내저은 보람은 최소한 있었다, 라고

진실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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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사한다, 라는 건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다

속죄를 해야한다

깊은 속죄를

속죄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써서 마치 안도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마냥

그런 자기합리화까지 무한정 덧붙여지는 속죄를 해야한다


이슬람에서는

용서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알라가

하지 않는 게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은

그 상대에게 속죄하고 용서를 받지 않으면

알라는 대신 용서하지 않는다


바그다드에서 머물렀던 곳은 시아파 동네였다

그 동네에는 똑똑한 쿠르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수많은 전설에 대해 끝도 없는 얘기를 해줬었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에 있는 검은 사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용맹한 쿠르드 전사들을, 아무도 모르게 주워가서 동굴에서 키우는 암콤

온갖 진니들

그리고 대신 용서하지 않는 전지전능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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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진정한 용사는 인생의 비참을 외면하지 않으며 눈 앞에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애통하고,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나 조물주는 항상 시간의 흐름으로 옛 흔적을 씻어내고 빛바랜 핏자국과 흐릿한 비애만을 남겨준다. 이 빛바랜 핏자국과 흐릿한 비애 속에서, 사람들은 또다시 목숨을 꾸역꾸역 부지해 가며, 사람들이 살고는 있으되 결코 사람의 세계가 아닌 현실을 지탱해 간다. 도대체 이런 세상이 언제 끝날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이런 세상에 살아 있다.

 나는 예전부터 뭔가를 써야 할 필요를 느꼈다. 3 18일에서 이미 두 주나 지났다. 망각이라는 이름의 구세주가 강림하려 한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

 18일 아침, 나는 오전에 군중들이 정부청사 앞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에 비보가 날아왔다. 호위병들이 발포, 사상자가 수 백이며, 유화진 군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이 소문이 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최대의 악의를 지니고서, 중국인들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서슴없이 진단을 내려왔었다. 그러나 나는 상상도 못했거니와 믿을 수도 없었따. 그들이 이다지도 비열하고 잔인할 줄을!

 더구나 언제나 미소를 띠고 그처럼 상냥하던 유화진 군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정부청사 앞에서 피를 흘렸다니!

 그러나 그날로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녀의 시체가 그 증거였다. 다른 시체 한 구는 양덕군 군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살해가 아니라 학살이라는 것도 입증되었다. 몸에 곤봉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명령을 내려, 그들을 <폭도>라 불렀다.

 이어, 유언비어가 꼬리를 물었다. 그들이 남에게 이용을 당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다.

 참상, -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유언비어, - 차마 귀를 열고 들을 수가 없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멸망해 가는 민족이 왜 침묵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침묵이여, 침묵이여! 만일 침묵 속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침묵 속에서 멸망할 뿐이다.

(유화진 군을 기념하며, 1926)

 

 

167

 전에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파티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는 잡아먹는 자도 있고 잡아 먹히는 자도 있다. 지금 남에게 먹히는 자도 전에 다른 사람을 먹은 적이 있으며, 지금 먹고 있는 자도 언젠가는 남에게 먹힌다. 그러나 지금 저는, 제 자신이 이 파티를 돕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항 선생, 선생은 제 작품을 읽어 보셨겠지요. 읽으셨다면 한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선생은 제 작품을 읽고서 의식이 흐려졌습니까, 아니면 맑아졌습니까, 침울해졌습니까, 아니면 활기있어 졌습니까? 만약 후자라면 저의 자가진단은 반 이상 실증된 셈입니다.

 중국 잔칫상에 오르는 요리 중에 취하란 요리가 있지요. 새우가 푸들푸들 살아 꿈틀거릴수록 먹는 사람은 유쾌하고 흡족해합니다. 저는 바로 이 취하요리를 거들고 있는 셈입니다. 성실하고, 그러면서도 불행한 청년의 머리를 깨어나게 하고, 그 감각을 예리하게 해줌으로써, 만일 그들이 재앙을 당할 경우 곱절의 고통을 맛보게 하였고 청년을 증오하는 자들로 하여금 깨어난 청년드르이 배가된 고통을 감상하면서 찌릿찌릿 쾌감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빨갱이 토벌군이건 혁명가 토벌군이건 간에, 유식한 자들, 예를 들어 학생을 체포하면, 노동자나 다른 비지식인들보다 훨씬 더 난폭하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그들의 고통스런 표정을 감상하면서 한층 각별한 쾌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상상이 틀리지 않다면 저의 자가진단은 완전한 실증을 얻은 셈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는 결국 아무런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고, 이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유항선생에 답하여, 1927) 




170.

 아무 것도 모르던 때가 행복했습니다. 앎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독약을 저에게 먹인 것은 선생님입니다. 저는 선생님에 의해 산 채로 술에 담궈졌습니다. 선생님, 제가 여기까지 이끌려 온 이상, 제가 가야 할 최후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제발 저의 신경을 마비시켜 주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게 행복하니까요. 다행히 선생님은 의학을 배우셨으니, 제가 작가 양우춘 선생을 흉내내어 <내 목을 돌려다오!>라고 외친다해도 어려울 게 없으실 겁니다.

 끝으로 권고드릴 게 있습니다. 선생님, 이제 좀 쉬십시오. 더 이상 군벌들을 위해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청년들을 지켜주십시오. 생활 문제에 쫓기신다면 <옹호> <타도>니 하는 글을 더 쓰시면 될 터이고, 위원 자리든 주임 자리든 선생님의 부귀 쯤은 염려하실 필요가 없겠지요. …

(앎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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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중

2015.06.20 16:02 from 아랍의 꽃저녁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어야 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광야와 사막에서 미치광이의 위, 예언자의 아래인 언어를 들어야 했던 아랍의 시인들은

뉴욕 뒷골목, '동양'의 신비와 깨달음을 어설프게 지껄여대는 자칭 히피와 자칭 수피와 자칭 여인들 사이에서

뒤틀린 사막을 잘못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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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없을지라도

온전히 소통의 단절, 혹은 오해, 혹은 무례함에 의해서만

돌아버리게 화가 날 때가 있다


그가 마치 우주의 귀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 그가 알아듣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알아듣고 나서의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곧 떠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자체가 문제였다

너무 큰 문제여서 나는 의지를 잃었고 과거를 잃었고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관성을 내 손으로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애정은 이미 오래 전에 잃은 상태였었음에도


소통에서 오는 건 관성의 병이다

그의 기억은 뒤틀린 그의 세계와 광기어린 그의 눈빛 반경 백미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알아듣는 것 뿐, 이라고 말했지만

당신의 성벽에는 흠집하나 내지 않겠어, 라고 말했지만

그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인지하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세상이 맨 아래부터 흔들릴 것이라던 사람들의 말은 틀렸다

그가 지어놓은 완벽한 성의 문제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쌓아올렸다는 것에 있다

존재는 그렇게 이어진 시간들의 관성이니까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 기억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잊어버리는 것들에는 공통점이나 방향성이 없다

그리고 난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공간도 그대로 다시 지어낼 수 있다

선별적으로 기억을 바꾸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를 이해했지만, 그와 같은 부류로 묶이는 건 극구 거부했다

그런 세밀한 것들을 놓치면 서사시의 맥락이 사라진다

맥락이 사라진 서사시에서 남는 건 영웅성, 대담한 모험담, 매력적인 개체로서의 인물들 뿐이다

그 지경에 갔을 때는 더 이상 서사시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다


그가 붙들고 있던 건 게임이었다

분명한 우와 열이 존재하는 세상의 게임에서 

그는 자신의 법칙이 호소력은 있지만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게 우월이란 순전히 관계의 문제, 그저 상대성 뿐인 상대성 그 자체의 병이었고

또 다른 게임일지라도 여전히 게임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였지만,

그에게 그것은 실체였고 법칙을 투영해야하는 세상이었다

어느날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가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이해를 하는 것도, 죽여버리는 것도 그나 그의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다행히도 선택지는 많았다

절대적으로 상대성의 문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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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ek Lucia?

2015.05.20 07:53 from 아랍의 꽃저녁

"all I need is a glass of wine to love you and to see the world,

and you need all those mysteries and colors just to see me and to fall in love with the world?

I will be gone but my first child will not be without her father

and she will finally bury me in the proper place.

until then, I will not go and I will not return."


said Lucia.

long ago.


and what happened to her great great great granddaughter of her first child, me, the one who cannot even understand her words?

the only thing I truly know is that something she wanted to say is there inside of me, sleeping and waiting.

so what if the history doesn't allow anything to reveal those words again, never again?

I decided not to take the burden all alone. that is the only reasonable thing I can understand.


where are you and your words Lucia, if I am those words then why Im still as light as a feather and floating above the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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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first child, my great great great grandmother, failed to bury Lucia anywhere, since she left abroad by force never to come back.

all the revolutions, wars, changes, and people failed to stop repeating themselves.

and what about me?

Im even more vulnerable than any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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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 know that like me, everyone else has the sam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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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은 없어졌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집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자라지 않는 자식을 가진 부모 마음은 어떨까
나한테는 영원히 새끼고양처럼
이제 열쇠는 됐고
독해, 혹은 해독을 할 수 있는 자를 찾는 게 급하다
아주아주 급하다
하지만 자기가 받은 특별한 느낌이 자기가 줄 수 있는 어떤 것인 줄 아는 착각이 사방팔방 천지다
송충이밭을 지나듯 잘 지나가려면 주의력과 꼼꼼함이 필요할텐데
그런 건 어디서 구하지

마녀의 약이나 무당의 잡탕죽 같은 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금단의 열매에는 목이 몇 개나 달린 괴물이 괜히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뒤돌아보면 처음부터 난 알고 있었는데 왜 지금 당장 일은 보이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그림: Milan Paštéka   고맙: Bu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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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집의 호박

2015.05.05 06:35 from 공간/서울



내가 사는 집은 지렁이집이다

지렁이가 주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전부 지렁이에게 주는데, 그러면 조금 지나서 모두가 탐내는 흙이 생기고 음식물 쓰레기는 사라진다

어느 날에는 비가 들쳐서 지렁이들이 단체로 탈출을 하는 바람에 물을 걷어내고 지렁이들을 주워담아야 했다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주는 건 좋은데, 스티로폼 박스 속에 지렁이-음식물-흙, 에서 끝나는 관계여서 고민을 좀 했다

나무를 심을까

그리고 누군가가 먹은 호박씨가 자랐다



그런데 이 호박싹은 '웃자란' 거라서 생명으로서 기능이 약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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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에서 유심으로

2015.05.05 04:50 from 크리스찬곰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흩어져 있는데 또 모여있어서 알아볼 수 있다

인상파라고 한다

왜 수업시간에 모네를 배웠던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유명사를 쓰지 않고 냈던 첫 레포트는 성적이 좋았고

마찬가지로 써냈던 기말 레포트 때 교수는 '이제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모네의 그림에 대해서 말을 하더라도 윤곽선을 그릴 줄 알아야 하는 단계가 있는 법이었다


말을 잘 못하는 건

말 하려고 하는 게 자꾸 흩어졌다 모였다 하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어쩌다 모여있는 것들을 어쩌다 언어에 가둬서 심지어 기억도 할 수 있지만

대개는 그 전에 다시 흩어져서 다른 데서 다른 모양새로 모인다

심지어 그것도 또 흩어진다

이건 말을 잘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말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지인은 스님이 되었다

난 그 친구가 나에게 화엄경을 보여주려고 스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에 대해서 얘기하자 스님은 '이제 공은 됐고 유심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사실 스님이 내게 던져줬던 건 공(연기)이나 유심이 아니라 화엄이었다

소설 화엄경은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지만, 친구가 권하면 같은 책도 다른 책이 될 수 있다

화엄은 다른 차원, 다른 층을 보여준다

내가 봤던 화엄이 긍정하는 건 삶과 전달이다

화엄의 빛은 고요하고 그 빛을 전하는 입들은 보살들이라, 거기서 중요한 건 관계성이다

전달은 삶에서 이루어진다

삶의 만남이 전달이 된다

가르치고 깨닫고 발전하는 목표지향적 임무가 아니라, 

어느 순간 그 상태인 두 존재가 만나서 그 순간의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관계성 안에서의 성장이다


+


한 개인 안에 모든 것을 잘, 가능한 완벽하게, 다 장착하라는 걸 우리는 어디서 가르치고 어디서 배운걸까

난 내 아이가 온전히 나 개인에게 의지한 채로 이 세상에 나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방편, 혹은 삶의 다른 시간들과 단절된 하나의 방법으로서 유치원협동조합이나 공동육아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정말 멋지게도 생각이 같은 지인들이 있지만 난 아직도 하염없이 수줍다

온갖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매력적이며 준비되어있는 개인인지를 발산하는 데 익숙해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행복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진실로 애매모호하지만 또 굉장히 명료한 어떤 자격선 밖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밀려난 자들이 불편하고, 멋지지 않고, 분위기를 망쳤다는 죄목으로 온 책임을 다 진다

난 밀리다 밀리다가 대체 내가 설정하지도 않은 그 기준선이 왜 그리 힘이 센지를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데

그건 대개 내가 뭔가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미묘한 입장이 낳는 커다란 실수를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닌데

나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이를 갈지는 않지만, 뭔가 알아가고 배우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같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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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머무른 기간은

십년 동안을 잡고 봐도 일년 하고 몇 개월 뿐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하고 커피집하고 술집만 왔다갔다 했다

팔레스타인 친구들이 좀 돌아다니라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지인들이 올 때 빼고는 콘서트나 문화행사나 시위나 가족방문이나 뭐든 간에

하여튼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갈 생각도 별로 없었다

망할 문화행사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다시 좀 자다가

빨래나 청소를 하고 고양이들 밥을 주고

라말라카페에 가면 언제나 친구들 중 누구라도 있었고

저녁까지 별 쓰잘데기 없는 농담에 수다를 떨다가

남편이 일하는 문화재단에 가는 길에 크나파 이백오십그람을 사먹고

가서는 개들이랑 놀고

퇴근할 때 쯤에 같이 술집에 가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고 나서

어쩐지 아침에 눈을 뜨면 집이었다

집에 있는 거실 창문은 사방이 막혀 있는 건물 뒷뜰로 이어져 있었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거기에 닭과 양들을 키워서

양들이 방충망을 뜯어먹는 것을 지켜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닭고기가 들어간 마끌루베를 먹은 날이면, 닭에게 주는 음식물 쓰레기에 닭고기가 섞이지 않게 조심해야했다

아침에는 번갈아 가면서 커피를 끓였다

난 아침마다, 점심에도, 오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먹던 그 아랍커피(혹은 터키쉬 커피)가 너무너무 그립다

친구들하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칼리드는 말을 잘하고 웃겼고, 수헤일은 말이 느리고 웃겼고, 아부 파르하는 듬직하고 웃겼고, 와하비는 잘 나타나진 않았지만 나타나면 웃겼다

지금은 브라질에서 환락을 즐기고 있는 칼리드는 나와 피로 맺어진 형제 같다

칼리드는 최근에 브라질에서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입양했다

"너무 섹시해 고양이는. 성격이 있잖아. 그래서 마돈나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했어."

새끼 고양이 마돈나

"그런데 집에 데리고 왔는데 자기 그림자를 보고 벌떡 놀라는 거야. 그게 왠지 너 생각이 나게 했어. 그래서 알리야라고 부를까봐."

새끼 고양이 알리야

나는 잘 짖고 잘 무니까 개 쪽에 더 가까워서 고양이 이름은 마돈나가 좋겠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두고 온 건 내 이름 만이 아니었다

성질이 더러웠지만 내가 각별히 예뻐했던 '할머니'라는 고양이는 내가 떠나오기 직전 집 안에다가 새끼를 네 마리 낳았다

그 즈음에 집 안에 새끼를 낳은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밖 어딘가에 새끼를 낳았는데 언젠가부터 집 안을 배회하면서 슬프게 울어댔다

새끼를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어느 날 한마리씩 눈을 떴고, 난 '알리야 이모다 내가 알리야 이모다'하면서 내 체취를 맡게 하려고 한마리씩 안아보았다

그 직후에 난 국경을 넘어야 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의 새끼 중에는 까만 고양이가 하나 있었다

그 까만 고양이가 지금은 어미가 되어서 내가 두고 온 여행 가방 속에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내가, 알리야 이모다,를 강조하지 않아도 그 애기들은 내 냄새를 알고 있겠지

내가 가면 알아볼텐데

명확하게 해야하는 것들이 있어서

법적인 건 아니었지만 난 이혼을 하기로 했다

귀국한 지 일년 째다

세고 있었던 건 아니다

법적인 건 아무 의미가 없고, 관계는 이어질 수도 끊어질 수도 있는 거지만

우주적인 책임은 남는다

깊은 책임, 우주적인 연속성

팔레스타인에서는 양을 키우면서 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뭘 키우면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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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을 드린다


계약관계로 돈 주고 복 받는 거나, 마치 인과관계인양 배우는 노력해서 뭘 이루는 거나, 이성 안에서 분석해서 결론을 내는 것 말고, 치성을 드린다

치성은 소원이 있을 때 드린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정돈한다

여전히 헤매는 와중에 돌아보고 둘러본다

요르단의 지인들은 그걸 '추구한다'고 불렀다

독실한 무슬림인 형은 '진정한 종교인은 추구하는 거다. 그게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자유이자 의무이다'고 말했고, 무신론자 좌파인 동생은 끄덕였다


그립다

그립고 후회된다

그립고 후회되고 원망스럽고 막막하고 고맙다


다음 단계라는 데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제자리 걸음을 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랬고

지금은 여전히 그렇게 생겨먹은 데다가 작정까지 하고 한다

손을 잡아주면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게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꼭 가야하나 그 다른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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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014년 8월.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보이콧

 

2014년 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이스라엘의 봉쇄 이후 세번째라고 하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EBS국제다큐영화제, EIDF가 열렸다. 올해 EIDF가 내세운 이름은 이스라엘, 이었다.

그런 시기적인 맥락이 동력이 되어 이스라엘이 가진, 정확하게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이름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영화인들과 활동가들(팔레스타인 평화연대와 PACBI), 개인들이 연대한 문화보이콧 연대쪽이 내건 이름(점령, 학살자인 이스라엘)이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이름이기 이전의 그냥 저기 존재하는 또하나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미국, 영국, 프랑스, 대만, 한국, 이스라엘,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이를 뚫고 나왔고, 문화보이콧 연대의 요구는 순식간에 받아들여지고 EIDF는 브랜드 이름으로의 이스라엘을 행사에서 모두 철수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니까, 프로젝트로서 이번 문화보이콧 운동은 성공인 셈이다.

시기적인 맥락이 동력이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가자지구 폭격, 그 전에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그 전에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제도적? 폭력, 고문, 감금, 살인, 모욕, 강탈,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이름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라는 사실은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학술/문화적 보이콧을 포함한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운동을 전세계에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우리가 잊기 쉬운 건 이 단순한 순서상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번에 특히, EBS가 '처하게 된' 상황에서 본다면 '하필', 지금 그 맥락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동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는 사회나 시대를 분석하려는 게 아니라, 그 알 수 없는 힘에 영향을 받는 우리들이 던지는, 개인적으로 너무 합리적이거나 타당해보이는 질문들이 나오는 과정을 대안 없이 이야기해보고, 혹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들이 우리의 앞길을 얼마나 막거나 결정해버릴 수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드러내보고 싶다.

두 가지 말할 부분이 있다.

첫째로, 학술문화보이콧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삶의 가치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전략이다. 그래서 EIDF를 상대로 한 문화보이콧 운동은 성공이고, 문화보이콧 자체가 상대를 배제해버리려는 모습으로 비춰질지라도 그 안에 상대가 악이거나 우리가 선이거나 하는 가치로서의 이분법이 없으며, 무엇보다 문화보이콧을 행동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스로 그 안에 침잠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일깨우는 기능이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화보이콧연대에 참여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고, 앞으로 학술문화보이콧을 행동으로 옮길 때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둘째로, 학술문화보이콧을 포함한, 개개인과 사회가 관계를 맺고 서로를 해석하는 큰 틀과 그 안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강력하게 드러나는 구체적인 판단, 반응, 행동지점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삶의 태도 문제로 즉각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문화보이콧을 삶의 한 선택으로서 취할 때, 그동안 살아온 삶의 다른 지점들과 상충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시급하게 받게되는 것이다. 문화보이콧이 결국 삶의 문제라고 말할 때, 그건 이 지점에 대한 것이었다. 문화보이콧이 가치로서 지배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문화보이콧을 선택하게 만드는 우리 각자의 삶의 흐름 안에서 구체적인 충돌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한다는 의미다. 


1. 질문들

- 이스라엘 다큐특별전을 기획한 EBS다큐영화제 측으로부터 처음 나온 질문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잘못을 이스라엘 국민, 즉 이스라엘 감독 개개인과 그 작품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러면 이스라엘 감독들은 무엇을 찍으라는 겁니까?"였다. 여기에는 질문 그 자체와 질문을 한 쪽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스라엘 특별전을 기획했고 '하필' 시기가 그래서 '난데없이' 나쁜놈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그들 입장의 상황을 둘 다 볼 수 있다. 

또, 정치가 예술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하면 안 되듯이, 정치적인 입장으로 예술과 그 가치나 역할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광주 비엔날레에서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이 이슈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 작품을 철수시킨 윤장현 광주시장은 운동가 출신이다. 

그럼 우리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해주는 입장에만 있느냐 하면, 아니다. EIDF보이콧의 다음 단계로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열었던 땡땡영화보기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퀴어를 다룬 영화 <성스러운 도시> 상영회가 있었다. 보이콧연대에 참가했으며 이 행사를 진행한 손희정 선생님은, "BDS운동(보이콧 운동)이 힘을 받고 전면에 나서면서, 그 안의 소수자 목소리, 즉 퀴어나 여성의 목소리가 묻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의 목소리를 냈다. 또 참가했던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강명진씨에게도 "이스라엘 퀴어단체 쪽에서 연대를 요청할 때 어떻게 응할지," 즉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입장 사이에서 시급한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 목소리를 내왔던 개인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진지한 고민이 주어졌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에게 문화보이콧이 낯설어서 생기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확고한 입장을 갖게 되어 막힘이 없게 될 때가 오는 그런 편한 것들이 아니다.

이미 우리보다 백만배나 더 관련 담론에 노출되어 있던 곳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국의 Tricycle Theater는 UK Jewish Film Festival(UKJFF)에 대한 

대화, 화해, 협력이 이런 고착된, 즉 문제시되는 국면에 해결책이 될 것이며,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될 것이라는 성명서가 나왔다. 대화, 화해, 문화, 다양성. " We both profoundly hope that those who take differing views on the events of the last few weeks will follow our lead and come together to acknowledge that dialogue, reconciliation and engagement will resolve points of difference and ensure that cultural diversity thrives in all communities. "




2. 보이콧, 특히 학술문화보이콧에 대해 생각할 것들.

보이콧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자체의 당위성, 그리고 보이콧의 대상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리감이다.

비교적 받아들여지기 쉬운 상품 보이콧에서도 그 대상이 맥도날드나 소타스트림 탄산수라면, 햄버거나 탄산수를 먹는 게 일상적 동선과 심하게 겹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이상한 결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맥도날드 대신에 버거킹을 갈 수도 있고, 수제 햄버거를 먹을 수도 있고, 짜장면을 먹으러 갈 수도 있다. 소다스트림의 탄산수 역시,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 탄산수가 뭐고 소다스트림은 또 어디 있는 거라고 보이콧을 하라는 건지 잘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소다스트림 탄산수를 사먹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냥 주변에 널려있지도 않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다. 이건 의지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오는 거리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삼성처럼 범위가 넓어지거나 존슨앤존슨처럼 보이콧 이유에 거리감이 있을 때는, 일상의 당위성이 우선순위를 되찾는다. 간단하게, 삼성의 지배성 자체를 보이콧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사방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애써 htc 핸드폰을 구해서 썼는데도 문득 삼성화재 보험을 들고 있던 건 잊고 있거나, 아버지가 '역시 에이에스는 삼성이지'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그저 흔하게 써서 계속 써온 샴푸, 클렌저, 로션이 존슨앤존슨 제품인지

그런데 하물며 이스라엘산 자몽이야. 자몽을 사러가서 굳이 원산지를 확인하고 이스라엘산 딱지가 보이면 단호하게 내려놓는, 그 일상적 행동이 사소할 수 있는 데 비해, 그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는 보다 강하고 분명한 공감을 요구한다. 그럼, 잘 보이지도 않는 글씨로 적혀 있는 이스라엘산 레몬을 사용한 레몬음료 캔은? 그런 걸 보이콧 할 구체적인 목적이 보이지 않는데 굳이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보이콧이 공고한 가치가 아니라 선택적인 전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다양하게 드러나는 선택의 모습들을 받아들이기 쉽다. 맥도날드를 보이콧하면서 버거킹에 간다고 비웃을 일은 꼭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이유로 그 선택을 취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콧은 상징적일 수도 있고 전략적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가치일 수는 없다. 


학술문화 보이콧, 특히 문화보이콧의 경우에는 이 거리감의 문제가 갑자기 문제가 된다. 우리가 살아온 관성이 있고, 그 관성이 내세우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를, 대단히 중요해서가 아니라 해오던 것이라서, 그 해오던 것이 공격을 받는 경우에 열과 성을 다해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3-1 이스라엘. 우리가 생각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3. 팔레스타인. 우리가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4. 다시, 질문들

- 피해자나 약자가 선이라서 편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건 피해자나 약자가 아니며, 운동의 바른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피해자나 약자의 몫이 아니다.

- 시급하거나 중요한 문제인가가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방향성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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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그림 파라독스

2014.07.10 07:14 from 공간/서울


큰 그림을 보며서 동시에 중심을 지키려는 자들이

어쩔 수 없게 갖게 되는 이율배반이 있다

게다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거칠고 단단하게 그 가치를 지키려고 애써왔다면

혹은 그래서 그것을 삶의 기조로 만들기까지 했다면

그러면 그 흐름의 일관성을 위해서 그들은 때로 주변을 왜곡한다

똑같은 현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서 모든 것을 바꾼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굉장히 인간적인 왜곡, 뒤틀림을 말하는 거다

때로는 보상심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진실로,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그동안 지켜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 때문에 그렇기도 한다

그래서 중심을 지키기 위해 그 중심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 얘기를 쓰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기억들이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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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계

2014.07.03 13:46 from 아랍의 꽃저녁


내 본명은 아랍어로 '눈들'과 비슷한 소리가 난다

내가 평소에 쓰는 이름은 아랍어로 '여기'랑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있는 눈들이다

난 평생 구경꾼이었고, 아주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내 이름은 한자어로 강 위의 구름이다

망원동에 있는 내가 일하는 도서관은 위층이 옥상인데

같이 있는 사람이 담배를 피러가면서 간이 의자를 갖다놨다

의자 하나만 놓았는데도 거기에 앉아 있으면 옥상이 전부 내 꺼 같게 되었다

옥상도 하늘도 다 내꺼 같다


+


내 이름은 구름이에요

형체가 없죠

그래서 난 경계에 약해요, 정의하기라는 것도 어렵고

내가 단어를 잘 이해 못하고 또 창문을 잘 못여는 건

다 그 때문이에요

다들 이방인인 국경에서 다들 나만 이방인인 것처럼 쳐다보는 것도

혼자 있을 때면 왠지 문이 잠겨서 열 수가 없는 것도

수없이 많은 열쇠를 손에 쥐고서 열 문을 찾지 못하는 것도

다 내 이름이 구름이라서 그런거에요


+


이 세상은 언제나 미로같은데

수많은 층계나 문들로 된 미로가 아니라

사막이나 바다같은 미로다

길을 잃을 수가 없어서 찾을 수도 없는 그런 데다


나는 이년 전에 열쇠를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 열쇠가 해야하는 게 다 보였다

하지만 문이 없었다


내가 겪었다고 미워하지 말자

아니고, 내가 겪었으니까 미워하지 말자

이런 나도 옥상에 있는 구름 아래에 의자 하나를 놓고 앉아있으니까

이렇게 만족스러운 사람인데

그라고 해서 그런 게 없던 게 아닌데

모르는 게 아니면 내 속에서 독이 되게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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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굴 재오픈

2014.06.10 08:44 from 공간/서울



이 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냐면

진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들으면 좀 활동적일 것 같은 자취를 가지고 있지만

실은 생긴대로, 내 상식 안에서 했던 일들이고

거기에다 공감능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어서

뭔가에 도전하여 이루거나, 노력해서 얻거나, 바꿔본 경험이 없다

그렇게 해서 배운 것도 없다

그래서 머리를 두 갈래로 묶고 다니면서 아래위로 똑같이 소리를 질러대는 삼십 대 어린애였다


그런데 지난 이 년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르륵 잠겨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점점 작아져서 사라지면 딱 편할 것 같은 그런 거였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보이는 만큼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내 세상의 중심에 여전히 서서 물고기 둥지를 들여다보는 여전한 곰 같았다


무엇보다 오해, 뒤틀린 소통에 대한 괴로움이 깊이 남아서

내가 노력한 만큼 겉으로는 참 괜찮은데

그 괴로움이 속에서 뭉쳐져, 단단히 굳어져, 언젠가 독이 될까봐 무서웠다

어떻게 될 지는 아직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게 되면서 할 말도 같이 잃었다

아랍어를 배우러 갔었는데, 말을 잃고 돌아왔다


평생 구경꾼의 자태로 살면서 

어찌 알아보고 찾아온 쑈꾼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걸로 내 세상을 만들어왔었는데

내가 뛰어들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자리가 눈 앞에 펼쳐지자, 나는 죽으려고 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먼저 편하고 싶었다

몸에 밴 버릇이 그렇게 스며나왔다

문득 생각나면 자다 일어나서 얼굴을 박박 긁을 수도 있는, 그런 쪽팔린 사소한 괴로움이었다

그렇게 돌같이 암만으로 돌아왔을 때

바다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다시 얼굴을 박박 긁었다


전달자와 통로는 좀 다르다

전달자는 교육자 같기도 하고 영업직 같기도 해서 취향에 안 맞지만

통로는 열리기만 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나는 조각보 보자기 같은, 통로 같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는 게 느려서 가는 길이 멀지만

가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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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Hussein Al-Barghouti

Do not guide me to the moonlit path
daughter of my uncle
The guided must walk the path of the guide
Each must forge his own path. 

Do not guide me to the moonlit path
while the flute is on the lips of the mermaid
This is too little--
Guide me to the truth
and leave me silent,
like the mountains of the Galilee.

(Translated by Amal Eqeiq. With special thanks to Ibrahim Muhawi for editorial assistance/ 사이트는 아래에)


<무제>

달 비추이는 길로 나를 인도하지 마오

내 삼촌의 딸이여.

이끌리는 자는 각자의 길은 잊고서

인도하는 자의 길을 걸어야만 하니.


달 비추이는 길로 나를 인도하지 마오

플룻이 아직 인어의 입술 위에 놓여있을 때는.

이는 너무도 부족하니--

진실에게로 나를 인도해주오

그리고 적막 속에 나를 두오,

갈릴리의 산들과 같이

(번역 오류는 제 탓)

http://www.jadaliyya.com/pages/index/3101/poems-by-hussein-al-bargho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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