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사한다, 라는 건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다

속죄를 해야한다

깊은 속죄를

속죄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써서 마치 안도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마냥

그런 자기합리화까지 무한정 덧붙여지는 속죄를 해야한다


이슬람에서는

용서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알라가

하지 않는 게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은

그 상대에게 속죄하고 용서를 받지 않으면

알라는 대신 용서하지 않는다


바그다드에서 머물렀던 곳은 시아파 동네였다

그 동네에는 똑똑한 쿠르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수많은 전설에 대해 끝도 없는 얘기를 해줬었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에 있는 검은 사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용맹한 쿠르드 전사들을, 아무도 모르게 주워가서 동굴에서 키우는 암콤

온갖 진니들

그리고 대신 용서하지 않는 전지전능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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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없을지라도

온전히 소통의 단절, 혹은 오해, 혹은 무례함에 의해서만

돌아버리게 화가 날 때가 있다


그가 마치 우주의 귀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 그가 알아듣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알아듣고 나서의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곧 떠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자체가 문제였다

너무 큰 문제여서 나는 의지를 잃었고 과거를 잃었고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관성을 내 손으로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애정은 이미 오래 전에 잃은 상태였었음에도


소통에서 오는 건 관성의 병이다

그의 기억은 뒤틀린 그의 세계와 광기어린 그의 눈빛 반경 백미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알아듣는 것 뿐, 이라고 말했지만

당신의 성벽에는 흠집하나 내지 않겠어, 라고 말했지만

그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인지하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세상이 맨 아래부터 흔들릴 것이라던 사람들의 말은 틀렸다

그가 지어놓은 완벽한 성의 문제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쌓아올렸다는 것에 있다

존재는 그렇게 이어진 시간들의 관성이니까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 기억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잊어버리는 것들에는 공통점이나 방향성이 없다

그리고 난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공간도 그대로 다시 지어낼 수 있다

선별적으로 기억을 바꾸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를 이해했지만, 그와 같은 부류로 묶이는 건 극구 거부했다

그런 세밀한 것들을 놓치면 서사시의 맥락이 사라진다

맥락이 사라진 서사시에서 남는 건 영웅성, 대담한 모험담, 매력적인 개체로서의 인물들 뿐이다

그 지경에 갔을 때는 더 이상 서사시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다


그가 붙들고 있던 건 게임이었다

분명한 우와 열이 존재하는 세상의 게임에서 

그는 자신의 법칙이 호소력은 있지만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게 우월이란 순전히 관계의 문제, 그저 상대성 뿐인 상대성 그 자체의 병이었고

또 다른 게임일지라도 여전히 게임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였지만,

그에게 그것은 실체였고 법칙을 투영해야하는 세상이었다

어느날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가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이해를 하는 것도, 죽여버리는 것도 그나 그의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다행히도 선택지는 많았다

절대적으로 상대성의 문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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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2013.04.09 12:58 from 공간/서울 아닌 곳


 

반경삼백미터, 라는 게 있다

곰한테 있어서 겨울잠을 자려고 고심해서 마련한 곰굴같은 데다

그 반경 밖에 있는 건 사실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없는 것들인데,

문제는 항상 국경이다

 

국경에 있는 것들, 낯선 사람들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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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Dong-Ju(or Yun, Dong-Ju)   <Prologue>

"Let me have no shame
Under the heaven
Till I die
Even the sound of wind
passing the leaves
Pained my heart.
With a heart singing stars.
I will love all dying things.
... And I must step my path
That's been given to me.

Tonight also
The wind sweeps past among the stars."

(translation by The Korea Times, 2009)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해방 6개월 전에 일본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윤동주 시인

작곡가 윤형주의 아버지는 그 조카의 유해를 가지고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시도 노래다. 시 그 자체도 노래다. 작곡으로 시를 건드리지 말거라" 라고 윤형주에게 말했다고 한다.

 

 

 

+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세대에 이르자 폴 발레리는 1893년 시르크 데테 원형건물에서 개최된 라무뢰 연주회에 대하여 언급한 다음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홀의 맨 뒷자석에는 벽을 이루며 늘어서 있는 입석 손님들의 그늘 속에 한 기이한 감상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바로 각별한 호의를 입어 시르크 회관에 입장하곤 하는 스테판 말라르메였다. 그는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마력에 매혹되긴 하지만 동시에 고차원적인 라이벌 의식에서 오는 저 순결한 고통을 맛보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항변하고 잇었다. 그는 또한 위대한 언어예술가로서 저 음의 신들이 그들 나름대로 내뿜으로 퍼뜨리는 바를 판독하는 것이었다. 말라르메는 어떤 숭고한 질투심에 가득 차서 연주회장을 나섰다. 그는 너무나 강력한 음악이 그에게서 훔쳐간 신비스럽고도 중요한 그 무엇을 우리의 예술을 위하여 다시 찾아올 방법이 없을지 절망적으로 모색했다. 시인들은 그와 더불어 눈이 부시고 풀이 죽어가지고 시르크 회관을 나서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시인들, 눈부심, 풀죽음(눈부심이란 빛이 너무 강해서 눈이 먼다는 뜻)이라는 세 마디 말이 지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시인들이라면 필시 그럴 것이다......음악은 시에 너무 가까워서 시의 생명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 그 점이 바로 멜로디로 옮겨놓으면 불협화음으로 변해버리는 시의 위험이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내 시와 나란히 음악을 갖다놓는 것을 금지한다!"  ......

음악이란 것이 과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엄격한 방식으로......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

 

 

 

오, 그래야 하는 군, 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대로 깊이 깊이 공감하는 거다

마르셀 칼리페 Marcel Khalife는 시인 다르위시 Mahmoud Darwish의 시로 노래를 만들었고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 음악들은 아름답다

온 삶과 음악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마르셀 칼리페와

나는 느낄 수 없지만, 아름다운 아랍어의 운율을 현대적으로 끌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마흐무드 다르위시와

그들이 서로 바라보며 그 시와 음악을 사람들을 향해 뿜어내는 건

그 자체가 아름답고도 의미있는 예술이었다

 

나는 어어부프로젝프밴드를 몹시 좋아하는데

백현진의 '시'도 그의 음악과 함께 하나가 된다

그 음들이 아니면, 도무지 그 말들이 살아나지가 않는다

 

 

+

 

 

나는 해독이 안되는 세상을 분석하려 애쓰기 보다는

나 좋을 대로 쪼개고 재배열해서 멋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문제 상황이 생겼지만 도무지 적절하게 대처할 수가 없을 때면

그 문제가 아예 없었던 척을 한다

그 짓거리를 하다가 쌓여서 마음의 병을 키우긴 했지만

어쨌든 단기적으로는 꽤 효율적인 방법이다

 

최근에 본 시리아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나도 카메라 앞에서 솔직한 척, 드러낼 수 있는 범위가 있고(이것만으로도 꽤나 솔직하게 들춰낸 건 맞다)

카메라를 꺼주시겠어요, 한 다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테면

내가 이스라엘 트랜스라고도 불리는 싸이트랜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 디제이들을 몹시 좋아한다는 건 전자에 해당하고,

...

메탈리카가 텔아비브에서 공연을 했으며, 나는 침묵을 했고, 그 2009년을 내 인생에서 통째로 들어냈다는 사실은

후자에 해당한다

 

효율적으로 뭔가를 하려면

일반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방을 치울 때도 마찬가지다

서재에 있는 책상 오른쪽 두번째 서랍에는 내가 수집하는 지포라이터 부수물들이 들어 있는데

정리한 지가 오래돼서 껍데기랑, 손보지 않은 라이터 몇 개랑, 라이터 돌이랑 심지가 엉켜있어서

그것만 정리하는 데도 하루는 걸릴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절대 방을 치울 수가 없다

방을 치울 때도 디테일은 과감하게 무시하는 일반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음악과 시와 이야기(삶이라고도 한다)에 대해 헷갈리는 상태를 내버려두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친구들이 독일에 있는데

나는 소심하게 혼자 루프트한자 항공 보이콧에 참여 중이고

가장 싸고 편하게 독일에 갈 방법이 없어졌다

 

최근에 아픈 아기를 위해 결혼 신고를 하게 되는

어떤 비혼자 아가씨와 청년의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람이 시스템에 대항하는 게 어려운 건

폭력도 폭력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가능성(좀 더 편하거나 쉽거나...혹은 목숨을 구하거나 하여튼)을 눈 앞에 두고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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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THE CONNECTION.
"And suddenly, I looked at the bull. He had this innocence that all animals have in their eyes, and he looked at me with this pleading. It was like a cry for justice, deep down inside of me. I describe it as being like a prayer - because if one confesses, it is hoped, that one is forgiven. I felt like the worst shit on earth."

This photo shows the collapse of Torrero Alvaro Munera, as he realized in the middle of the his last fight... the injustice to the animal. From that day forward he became an opponent of bullfights.
Via McKenna Grace Fisher
Via Synthian Sharp





+





An Ex-Bullfighter Tells His Story

INTERVIEW BY TONI L. QUEROL
VICE.COM
PHOTO COURTESY OF ÁLVARO MÚNERA

A bull named Terciopelo [Velvet] gored the Colombian bullfighter Álvaro Múnera, aka “El Pilarico,” in 1984, confining him to a wheelchair for life. Múnera was 18 years old back then. His best friend, “El Yiyo,” was gored to death months later, and the manager of both bullfighters committed suicide three years after that.

Múnera became a hardcore animal rights defender and nothing less than the Antichrist for tauromachy [the art of bullfighting] aficionados. He currently works in the Council of the City of Medellín, using his position to defend the rights of disabled people and to promote anti-bullfighting campaigns.

vice.com: How did you decide to be a bullfighter?

Álvaro Múnera: I was born in Medellín, where my dad had taken me to see bullfights since I was four years old. The atmosphere at home was totally pro-taurino [taurino is the Spanish adjective for everything relating to bullfighting culture]. We didn’t talk about football or any other thing, it was just bulls. Bullfighting was the center of the world for my dad. Since I grew up immersed in this taurino atmosphere, it was logical that at the age of 12, I decided to be a bullfighter.

I started my career and five years later I became successful at the Medellín Fair. This was when Tomás Redondo, who was the manager of El Yiyo, agreed to be my manager too. He took me to Spain. I fought 22 times in Spain until on September 22 of 1984, I was caught by a bull. It gored me in the left leg and tossed me in the air. This resulted in a spinal-cord injury and cranial trauma. The diagnosis was conclusive: I would never walk again. Four months later I flew to the US to start physical rehab, and I seized the opportunity to go to college. The US is a totally anti-taurino country, and due to my former profession I felt like a criminal. I became an animal rights defender. Since then I’ve never stopped fighting for every living being’s right not to be tortured. I hope I will continue to do so until the very last day of my life.

vice.com: Did you ever think of quitting bullfighting before that bull confined you to a wheelchair?
Below right: Munera in his youth in Spain shortly before sustaining his life-changing injury.

Yes, there were several critical moments. Once I killed a pregnant heifer and saw how the fetus was extracted from her womb. The scene was so terrible that I puked and started to cry. I wanted to quit right there but my manager gave me a pat on my back and said I shouldn’t worry, that I was going to be an important bullfighting figure and scenes like that were a normal thing to see in this profession. I’m sorry to say that I missed that first opportunity to stop. I was 14 and didn’t have enough common sense. Some time later, in an indoor fight, I had to stick my sword in five or six times to kill a bull. The poor animal, his entrails pouring out, still refused to die. He struggled with all his strength until the last breath. This caused a very strong impression on me, and yet again I decided it wasn’t the life for me. But my travel to Spain was already arranged, so I crossed the Atlantic. Then came the third chance, the definitive one. It was like God thought, “If this guy doesn’t want to listen to reason, he’ll have to learn the hard way.” And of course I learned.

vice.com: Is there a lot of regret that you let it get to the point where you became paralyzed?

I think it was a beautiful experience because it made me a better human being. After convalescence and rehabilitation, I started working toward the goal of amending my crimes.

Many animal rights defenders applauded your decision, but many others say they can’t forgive you. They even call you “mass murderer” to this day.


TERCIOPELO, the bull that wounded Munera. Long departed,

There are people who think that I’m just resentful for the accident. That’s absurd. I’ve rebuilt my life and dedicated it to helping hundreds of disabled people get ahead, in addition to fighting for animal rights. On top of that, I don’t know of any resentful person defending his victimizer. A bull confined me to a wheelchair and another one killed my best friend! I should reasonably be the last person on earth to care about bulls.

But as for the people who cannot forgive me for what I did to so many bulls? I have to say that I understand them and agree, to some extent. My only hope is to have a long life so that I can amend my many crimes. I wish to have the pardon of God. If He doesn’t pardon me, He has good reasons not to do so.

vice.com: Chiquilín, another repentant bullfighter, claims to have seen bulls weeping. He says that he cannot kill even a fly nowadays.

I take my hat off to that man. He’s a real hero who learned his lesson through reason and thinking.

vice.com: Are you in touch with any other repentant bullfighters?

Truth be told, I don’t know if there are more repentant bullfighters. What is indeed known is that there are more and more ex-bullfighting aficionados every day. These are people who realized how macabre the show they were supporting really is, and so they stopped going to the bullrings. Sometimes they tell me their personal experiences and thank me for the articles I write.

vice.com: What was the decisive factor that made you an animal-rights defender?

When I went to the US, where I had to face an antitaurine society that cannot conceive how another society can allow the torture and murder of animals. It was my fellow students, the doctors, nurses, the other physically disabled people, my friends, my North American girlfriend, and the aunt of one of my friends, who said I deserved what happened to me. Their arguments were so solid that I had to accept that it was me who was wrong and that the 99 percent of the human race who are firmly against this sad and cruel form of entertainment were totally right. Many times the whole of the society is not to blame for the decisions of their governments. Proof of this is that most people in Spain and Colombia are genuinely anti-bullfighting. Unfortunately there’s a minority of torturers in each government supporting these savage practices.

vice.com: If the people of both countries are against bullfighting, why do bullfights still exist?

Well, I believe that bullfighting eventually will disappear if it doesn’t remove its elements of torture and death. There’s a generational shift in values, and most well-educated young people are against cruel traditions.

vice.com: In your articles you’ve associated tauromachy with a lack of culture and sophistication on the part of its aficionados. Isn’t this a bit simplistic? How do you explain that intelligent people like Ernest Hemingway, Orson Welles, John Huston, and Pablo Picasso were into bullfighting?

Look, to be a talented person doesn’t make you more human, more sensible, or more sensitive. There are lots of examples of murderers with a high IQ. But only those who have a sense of solidarity with other living beings are on their way to becoming better people. Those who consider the torture and death of an innocent animal a source of fun or inspiration are mean-spirited, despicable people. Never mind if they paint beautiful pictures, write wonderful books, or film great movies. A quill can be used to write with ink or blood, and many terrorists and drug dealers of the 21st century have university diplomas hanging on the wall. The virtues of the spirit, that’s what really counts in God’s eyes.

Thanks to Julio Ortega Fraile (findelmaltratoanimal.blogspot.com)
By TONI L. QUEROL 3 years ago

(http://open.salon.com/blog/addisonpg/2012/03/05/alvaro_munera_an_ex-bullfighter_tells_why_he_became_an_animal_rights_acti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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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라는 데서 일했었다
<팔다리>는 민주주의를 '지양'하는 단체였는데,
이끄는 역할을 하는 분 건강이 흐느적, 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일을 하는 단체 중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라는 데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팔연대>는 진짜 단체같다
그러니까 구성원이 바뀌어도 색은 달라질지언정 큰 맥락은 굴러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시기 팔연대의 특정 활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팔연대가 하는 일에 방긋 웃으며 응원을 하고, 참가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
댓글이라도 하나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팔연대의 활동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이거나(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취향을 말하는 거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것들에서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팔연대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만든 변화다


2.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는 문화교류 단체였다
사실 '문화'란 게 범위가 무지막지 하던데 우리가 주로 다뤘던 건,
잘 나가는 음악, 잘 나가는 글, 잘 나가는 그림, 등이었다
나는 때로 팔다리의 일들을 즐겼고, 어떤 일은 벌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권위적'이라며 투덜거렸다
팔다리를 이끌던 사람과 나는 기본적인 눈은 비슷했는데
취향, 특히 문화에 대한 취향은 달랐다
그는 컴퓨터에 손만 대도 망가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웃는 표정으로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작가였고, 난 음악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린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에 가서도 게스트하우스에 쳐박혀 술만 마셔대서 친구들을 걱정시켰고
('팔레스타인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나와서 좀 돌아다녀' 라는 말을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는 술집에 쳐박혀서 아락과 맥주를 마시며 꼬장을 부려댔다

나는 팔다리에서 문화에 대한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라말라에 넘쳐나는 문화적 활동들, 외국 NGO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한 발만 내디뎌도 우리 역시 그 반경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난 대부분 내 존재가 민폐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팔레스타인이건 어디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것에 대해서는 우선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가 다루었던 건 '질 좋은' '고급 문화'들이었는데,
좀 더 대중적인 것들, 특히 영화처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그들의 노력이 '조잡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눈은 항상, 계속, 쭉, 나를 따라다녔다


3.
나는 '분노'를 가지고 이라크에 갔었다
이라크에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도 안썼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야단을 치고, 걱정을 해줬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 쉽다는 스페인어와 남미에 가겠다는 막연한 인생계획과 전공이었던 불교를 갖다버리고
말도 안되게 어려운 아랍어와 종종 여행금지지역이 되는 분쟁지역들과
복잡한 역사를 무조건 같이 공부해야하는 이슬람으로 전향했다
전향해야했다
그렇게 되었다
사랑은 어쩌다가 싹텄다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실체가 뭐였든지간에 내 눈에 비친 것만 보자면
명예욕도 있었고, 관성도 있었고, 희생정신도 있었고, 모험심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시 말하지만 분노였다
대개 명예욕을 가진 인간들이 뻘짓을 해댔고
그래서 나는 그 인간들과 명예욕을 싸잡아서 욕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니' 라는 질문까지 들었지만 난 끄떡도 안했다
하찮고도 하찮아 보였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간혹 그런 그들을 위해 통역을 해야할 때면 토악질을 했다
성질이 나면 주변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런 나를 참아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뭔가를 찾아갔던 거다


4. 
나는 대학에서 동성애인권운동에 막연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은 그때도 명확했고, 인권운동단체들의 방식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대학에서 세미나를 구실로 몰려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게 내 방식이었는데
때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할 때면
'보여주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전혀 이상하지도 다를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우리들이, 게이고 레즈비언이고 트랜스젠더고 하여튼 그렇다는 걸
눈 앞에서 자꾸 얼쩡거려서 익숙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제를 열었고, 영화제에 참석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사랑에 빠졌다
난 첫사랑을 8년째 짝사랑 중이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그 인연 중에 청년이 있었고,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헷갈리지 않는 걸로 고민하기 보다는
레즈비언-이성애자-바이섹슈얼-에라모르겠다, 로 전향해갔고
그 과정이 결코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냥 그게 내 삶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부류 중 '정치적 레즈비언'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성애자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여성과의 연대를 섹슈얼한 부분까지 확장한 셈이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점들은 남아있다
나는 애초에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간이라, 그렇게 모호한 지점들이 눈에 밟히면 허공에 붕 뜬다
어떤 아가씨들은 성폭력의 경험을 안고 있다
그들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지언정 섹슈얼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때도 있다
또는 애초에 남자를 멀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여성 게이, 즉 레즈비언 사회 안에서 관계를 찾고 안착해 가는 것을
나는 '당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인정하거나 판단하거나 용납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삶이었다
나 자신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정치적 레즈비언들만은 싫었다
그들의 노력, 시도, 주장, 그게 뭐든 간에 거기에는 '가식'이 들어있었다
그건 실제로 그 삶을 '삶'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든 고통과 사랑과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5.
방법적인 타당성, 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주장은 노동자가,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퀴어운동은 이반들이,
때로는 '그들만이' '제대로'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들 말을 듣고 함께 웃어줄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거다

대안문화판에는 재수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나는 부모가 의사고 교수지만 학교를 자퇴했고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요, 하고 비스듬히 앉아서 말하는 인간들.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 분리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수박이 차있는 냉장고가 있는 본가와, 그럴듯한 대학에 적이 있었다
때로 나에게 그런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실속없는 환호보다는 진국, 그러니까 평생 나를 사랑해주시고 내 곁에 있어주신 부모님이 훨씬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내가 받고 태어난 환경과 내게 주어진 것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감사하되, 좀 다른 길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좌표를 잘 찍을 수 있도록
편협하되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나는 순식간에 '강남좌파'가 되었는데
즐기기로 했다
덕분에 강남구는 선거장소가 크게 바뀌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따박따박 투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6.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발을 딛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의 의미다
아무리 추워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난 팔레스타인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싸이트랜스, 라는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강한 쪽에 이스라엘 DJ들이 많아서 이스라엘트랜스,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공연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끼기도 한다
나는 싸이트랜스 파티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가슴이 조여든다
싸이트랜스에 대한 보이콧은 미뤄둔 상태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이다



7.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난 팔레스타인이, 이라크가 희생자라고 해서, 거기 내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가 '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이스라엘은 '악'이 맞다
그게 팔레스타인을 '선'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도 개새끼들은 널렸다
허벅지를 슥 만지고 가는 개새끼들도 있고, 저질스러운 욕설을 뱉는 것들도 있고
더 어렵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자 자태가 몸에 배서 오히려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고
난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으려드는 좋은 친구도 있었다

내가 Rim Banna를 알게 된 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라고 해서 Rim Banna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Rim Banna는 진실로 좋다

그 자태는 사실 명확하면서도 모호하다
정의가, 분노가, 의무가 예술로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정의나 그 분노나 그 의무가 예술에 앞서있다면
그건 훈련소에 맡겨놓은 강아지와도 같다
때로 반려동물 방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 푸들 꼬랑지를 꽃분홍으로 염색하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염색은 좋아하지 않는 편)
- 개가 저렇게 살 찔 때까지 먹이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론 별 생각 없는 편)
- 목줄이 너무 쪼여보여요, 동물학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진이 그렇게 나오는 것일 뿐 주인은 강아지를 사랑한다)
- 저럴 바엔 안락사시키는 게 낫지 않나요? (어려운 문제다)
- 저렇게 훈련을 잘 받은 강아지라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은 좋아하지 않지만 학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 어떤 훈련은 학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강아지는 이상한 걸 안 먹여도 살이 쪄가기도 한다

어렵다
명확하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떤 동기로든 예술로 다가갈 수 있다
좀 더 조심히 다가가는 게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그 애정이 살아있는 거라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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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하면 왠지
두더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두더지의 물고기 버전.

지인이 곰치국을 먹었다고 한다
난 요즘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데, 다 심리 상담과 약과 신앙과 나의 노력 덕분이다
아, 부모님이 항상 나를 기다려줬다는 게 먼저다
그래서 부모님과 놀러를 다니는데
어느 해안도로를 따라서 어느 해수욕장에 들어갔더니(고유명사 기억 잘 못함)
건물에 온통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하고 써 있었다
곰치국이 테레비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테레비를 안봐서 잘 모르겠다
곰치국을 먹고 온 지인은
'조낸 맛있어요'
라고 했다
하긴,
그러니까 온 사방이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이었겠지

곰치국, 하면 나는 두더지국, 하고 어감이 같다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고, 오히려 먹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냥 이름에서 나는 느낌이 그렇다
두더지국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마 오랫동안 페스코채식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페스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육고기는 안먹지만 물고기는 먹는다



   
    
 

   
  

곰치 곰치 곰치 곰치 곰치










곰치가 쳐다본다






나는 채식을 안 한지 오래됐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홍초불닭을 먹기 시작했고
수년 동안 안먹은 걸 보충하려는 듯, 고기를 골라먹기 시작했고
안주도 막 고기를 시켜 먹다가
몸이 아파버려서, 실은 고기 때문에 아픈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원래도 물고기는 좋아하는 편인데
아구찜도 잘 먹고 회도 잘 먹고 홍어도 엄청 잘 먹는다
그러니까 곰치국도 문제없다

하지만 굴이나 멍게는 싫다
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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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부터 엄마는 입을 거랑 먹을 거를 챙기고
아빠는 갈 곳을 꼼꼼하게 수첩에다 적었다
운전은 아빠가,
운전 못하는 나는 조수석에,
아픈 엄마는 뒷자석에 누워서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눈이 왔다
눈 비스무레한 싸레기가 전에 한번 오긴 했었지만
제대로 펄펄 내리는 눈은 처음이었다

                 

고치같은 자태의 엄마                                                                  사진기를 피하시는 아빠



갈매못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올라가보지 못했다.
삼차원입체십자가가 멋있다



가족여행에서 스타일따위는 중요하지 않은거다! 따뜻하면 제일 좋은거다!
이날 아침 엄마는 나를 위해 솜바지를 준비해놓으셨지
하지만 차마 그것만은 입을 수가 없었어
미적감각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항상 말해왔기에



                  

공세리는 영화촬영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을 바라보고 계셨다
성당에 들어가서 거금 만원을 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나와보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깔맞춘 아빠 엄마



점심에는 간장게장을 먹고 저녁에는 매운낙지볶음을 먹고
차 안에서는 엄마가 개인별로 싼 과일과 떡과 달걀과 고구마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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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Field>   by Gabriel Boray








나는 이 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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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beria>      by Echo and the Bunnymen, 2005



Where were we
Fearless and only ever scared of me
Peerless and tearless

That was me
Cold as ice
On my knees
Everynight
Snow white

Where were you
When all the doors were closing

It's you who chose

Not me
Cold as ice
On my knees
Everynight
Snow white

Where were we
When I was fearless and only ever scared of me
Peerless and tearless

Where am I
Still trying to find the light
That burns the northern sky
A rarer borealis

Born to be
Made of lights
On my knees
Everynight
Snow bright

Yeh thats me
Cold as ice
On my knees
Everynight
Snow white

Born to be
Made of lights
On my knees everynight
Snow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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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2011.10.02 13:15 from 공간/서울 아닌 곳


내가 갔던 베트남은
쉣이었다
태국에는 있었던 사람들의 여유나 편안한 눈길이
베트남에는 없었다
욕망과 사기와 무례가 드글드글해서
베트남에서는 하루빨리 떠나버리고 싶었고
떠나고 나서는 안도감이 들었다

김정환 시인이 본 베트남(하노이 서울 시편 - 문학동네)은
내 꺼랑 다르다



<공항>  - 하노이-서울 시편 1

100년 전쟁은 편안하다 하노이 공항
입국 절차도 하기 전에 별이 달린 군대 계급장
제복의 공안원은 시골처럼 꺼칠하고
여행가방은 귀성객의 보따리를 닮아가고
공습을 겨우 면한 역사 건물이
망가진 기념시계보다 편안하다.
문득, 5.16은 쓸데없이 육군 소장 박정희
라이방만 새까맣다.
쿠데타만 지독하고 지리멸렬하다.
100년 전쟁은 편안하다 제국주의(이 말도 벌써 소란하다)에 이긴 100년 전쟁은
사과도 사양하는
온화한 권위다.
이 말도 소란하다

6.25와 4.19, 그리고 5.16
숫자가 요란하다

우린 왜 그리 이를 악물고 살았던가



<첫 논과 밭>  - 하노이-서울 시편 2

좌우로 논이 펼쳐진다 첫눈이 내리듯
이전도 그후도 춥지 않은 첫눈 내리듯
그 위로 자상한 호치민 아저씨
입간판이 지나간다 가난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전망처럼
그래. 정말. 박정희 없는 60년대 혹은
반공교육 없는 70년대 같아. 냄새 숭한 빡빡머리 중고생 때
반공강연회에서 귀순간첩의 남파와 암약에서
드라마를 배운 나는
반공도 예술도 철저하지 못한
뒤늦게 그것이 다행인 나는
새마을운동이 저렇게는 안 되지
공장 건설도 저렇게는 안 되지
사랑의 남세스런 냄새를 처음 맡았던
대학 4년 때 베트남
'패망과 해방'이 겹치는 충격을 겪었던 나는
웬일인지 다시 군대 내무반 생활로 돌아와 있는
그게 지겹지만 운명인 듯 지겨움에 벌써 익숙해진
악몽을 꾸는 나는.
어쨌더나 그 세월 펼쳐진다 나무,
나무 사이로 첫눈 내리듯 논밭 펼쳐진다 공습의
흔적이 사람의 흔적으로 군데군데 묻어나느 하노이 외곽로
해체와 건설이 동시 진행되는 2차선 도로가 펼쳐진다
그럼. 그런 사소하고, 사소한 만큼 당연하지......
세월 펼쳐진다 '모종과 이중'의.



+



(반공교육 없는 70년대 같아. 냄새 숭한 빡빡머리 중고생 때
반공강연회에서 귀순간첩의 남파와 암약에서
드라마를 배운 나는
반공도 예술도 철저하지 못한
뒤늦게 그것이 다행인 나는
- 이 대목에서 웃었다. 흐흐흐)

내가 숫자 가득하고 천박한 우리의 6,70년대를 못 겪어서 그런가
아니면 딱 그만큼이 사소하고 일상인, 춥지 않은 베트남 첫눈의 '이전'을 못 봐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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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이런 건 원래 무섭지 않았다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총에 맞을 뻔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턴 좀 무서워졌다





             전에도 한 번 포스팅 한 적이 있는 다마스커스 칼
             칼은 좋아한다
             뭔가 매력적인 구석이 있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날이 5.5cm정도면 어디든 갖고 오가는데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내가 무서워하는 건 바로 이런거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뵤족이들
벌써 손가락 끝이 오글오글하다 

난 주사를 맞을 때도 소리를 지르고, 헌혈을 할 때도 소리를 지르고,
특히 링거 같은 것처럼 바늘을 쑤신 채로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난 손에 딱 잡히는 그 감을 좋아해서
그 정도 크기의 돌멩이나 나무조각이나 인형을 좋아한다
그리고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 양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뭐든지 한 손감이다
아마도 다루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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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화다. 1983년 여름이다. 앨버트 스터블바인 장군은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벽을 응시하고 있다. 벽에는 그가 받은 수많은 훈장들이 걸려 있다. 훈장들은 그가 오랫동안 눈에 띄는 경력을 쌓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미 육군의 정보 부대 지회관으로 1만 6000명의 병사들이 그의 휘하에 있다......
그는 훈장들 뒤쪽의 벽을 바라본다. 비록 생각하는 것 자체가 두렵긴 하지만 그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다. 그는 자신이 내려야 할 선택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자기 사무실에 그냥 있을 수도 있고 옆 사무실로 가고자 한다......
그는 일어나서 책상을 돌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생각한다. 원자는 주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공간이야! 그는 걸음을 빨리 한다. 나는 주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는 생각한다. 원자야! 내가 할 일은 그저 공간과 융합하는 거야......
그 순간 스터블바인 장군은 사무실 벽에 코를 쾅 들이박는다. 제기랄. 그는 생각한다. 스터블바인 장군은 왜 벽을 뚫고 가지 못하는지 아리송하다.

- 존 론슨 <염소들을 노려보는 사람들>

스터블바인 장군이 퇴역 후 부인과 함께 운영하는 사이트 : HealthFreedomUSA
"무슨 약으로 치료를 해야 할지를 규정하는 기업들(정부의 강요를 통해)의 간섭 없이 영양보충제(비타민, 광물질, 아미노산 등), 약초, 동종요법, 식이요법, (살충제, 제초제, 항생제에 오염되지 않은) 무공해 음식"에 몰두한다. 귀중한 체액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빠져있다.           

www.healthfreedomusa.org



                                                                                                   - 이상 전부 출처: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나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 이런 책을 읽는다.       
  리처드 도킨스 보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를 쓴 더글러스 애덤스가 삼백배 더 좋긴하다.       
  순전히 말투의 문제로!)      





우리나라에서 <초(민망한)능력자들>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개봉한 지도 몰랐기 때문에,
누가 저 이름을 말했을 때 뭔 소린지 못알아들었다

 
심지어 포스터도 이상함. 영화내용을 전혀, 조금도, 전실로 약간도 안보여주며, 게다가 의미심장하게 비추지도 않음     


이 영화가 지금 나온 시기가 마음에 든다
반전이라..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쩐지 전쟁들은 점점 더 다각도로 복잡해지니까 더불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문제다
히틀러가 있던 2차대전은 얼마나 독해하기 쉬웠던가
우리에게 일본에 핵폭탄이 투하된 일이 독해하기 하염없이 쉽듯이.

이들에게는 돌아볼 감정적 향수가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히피 스타일, 주장, 운동, 실천, 그게 뭐든간에
심지어 그게 결과적으로 그저 스타일뿐인 스타일, 무책임, 일탈, 중산층의 여유, 실패, 하여튼 뭐였든간에.

근데 중요한 건, 다시 말하지만 시기다
항상 현재가 중요한 거다
저 영화의 첫장면을 장식하는 스터블바인 장군의 벽치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나는 채식을 하다가 그만뒀고, 다시 물고기만 먹는 반편식을 하다가
역시 그만뒀다
그만 둔 이유는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안말할거다

다 알고 있듯이,
문방구에 볼펜 진열되어 있듯이 슈퍼에 진열되어 있는 닭들은
이미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마당을 돌아다니는 꼬꼬닭들하고는 거리가 멀다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에 가둬놓고, 빨리 커야 하니까 호르몬을 마구 주면서,
그러면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으니까 그건 항생제 기타등등으로 메꿔서
그렇게 키워진 닭상품들(불행한 현대의 닭들아..) .
오늘 광대가 한 말이다
그리고 더불어,
- 그런 건 절대 먹고 싶지 않아
라고 말했다

나의 모든 생각이 행동으로, 즉 삶으로 연장되는 걸 막는 건
바로 그놈의
-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최악의 해석법이다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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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봐야한다
이 장면이 최고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달에서 온 음악> 중 어떤 노래를 만났는데,
낯이 익었다
기억이 희미한 어떤 일을 떠올리게 하는 거였는데, (난 사실 어제 일도 가물가물하다)
굳이 영화로 말하자면, 저 장면이다
똑같이 낯이 익다


                                                                 <Little Victories>                    by  Giardini di Mir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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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들은 얘긴데,
큰 거 말고 작은 참치를 잡는 법이라고 했다
1. 돌고래가 지나간 뒤에는 꼭 참치 떼가 따라온다고 한다
2. 배에 작은 물고기를 잔뜩 싣고 가서 바다에 뿌린다
3. 그리고 비가 오는 것처럼 보이게 물을 분사한다
4. 반짝반짝하는 찌를 던진다
5. 그러면 눈이 침침해진 참치들이 그 찌를 먹이인 줄 알고 덥썩덥썩 문다
6. 그 때 참치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막 건져 올리면 된다
7. 집에 갈 때쯤이면 배에 참치가 한가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1번이다
돌고래를 따라다니는 참치라니
귀여웠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우리는 참치 잡을 때 돌고래를 해치지 않았음' 로고라는 게 있었다
 사람들이 참치는 맛있게 먹지만, 돌고래는 '사랑스러운 바다의 포유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치를 잡으면서 돌고래가 같이 당하는 거에 분노한 사람들이
참치캔을 보이콧 하고, 데모를 하고, 바다에 나가서 보초를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계 공통 기준은 없어서, 이 '돌고래를 보호하면서 잡은 참치캔 로고'는 종류가 많다

    
    
    
      

    
     
        
돌고래를 보호했다는 참치캔 로고들


 




돌고래 고기는 달다, 라는 구절이 있는 책을 어려서 읽은 거 같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노인과 바다>였을 것이다
배가 고파서 죽을 거 같은데, 배 위로 돌고래가 뛰어올라 왔던가,
그런데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그 배고픈 사람이 돌고래는 맛이 없다던가 해서 별로 먹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이 있는데
나는 영화를 먼저 봤다
이 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제일 처음에 나오는 돌고래쏭이다



돌고래들은 알고보면 인간들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한데,
지구멸망을 감지한 돌고래들이 '인간들아 잘있어, 물고기들아 고마웠어', 하면서
달 위로 날아간다
경고를 무시한 건 사람들 쪽이다




난 먹는 것 가지고 크게 뭐라하는 편은 아니라서,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나란히 유영을 하는 두 물고기가(아차 돌고래는 포유류) 
한쪽은 철저하게 먹잇감으로 보여지고 한쪽은 보호해야할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별 생각이 없다
참치는 맛있고, 돌고래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든다
하지만 참치와 돌고래의 엇갈린 상황이 자꾸 나를 잡아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 작가와 새를 좋아하는 동물학자가 함께 돌아다면서 쓴 책이 있다
<마지막 기회라니?>라는 책이다



엄청 재밌고 슬픈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유일하게 팬클럽에 가입한 <푼돈들> 팬카페에도 올렸었는데,

그때 <푼돈들>의 <다크박>님께서, <은하수...>를 무지 좋아하신다며, 한때 <습지를 탐방하는 생태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만들려고 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함께 하던 지인들이 떠나가는 바람에 안하게 되었다는데,
그 지인들이 돌아와서 그 책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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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랑 돼지가 땅에 묻혀서 죽었다
고통이 스민 땅에서는 독풀이 자라날 것이다
나중에 이 모든일이 잊혀졌을 때도
독풀이랑 독가스는 계속 자라나서
그걸 먹은 사람들이, 나는 잘못이 없었다, 를 외칠 때,
아니면 '마트'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살 때,
그리고 천국 가는 문 앞에서 '지은 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기억 대신에 편두통이 생길 것이다

우리 모두의 편두통
죽지도 않고 건강하게 살아서 머리는 깨질듯이 아픈 편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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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씨의 전공은 인기학과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파벌이나 기득권이라는 것도 더 심했던 것 같다
존경하던 교수님의 젊은 제자가 아직도 교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타대학 출신의 실력있는 교수님이 당시 정식 교수진에 포함되지 않았었던 거나
개념이란 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신부님이자 교수였던 사람이 여전히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점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학과장은 시험문제조차 말썽이 될 정도로 어설펐는데도
너무도 당연하고 어려울 게 뭐 있냐는 듯 성같은(화려해서가 아니라 견고해서) 학과장 실에 들어앉아있었는데,
그 테두리 밖에 있는 실력있는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왜 그렇게 어려워보였는지 모르겠다

아랍어를 전공하는 분들께도 비슷한 얘기들을 들었다
아랍어 교수직을 싹쓸이해서 지금까지 지켜내오고 계시는 아랍어 전공 1세대들.
우리나라에 있는 중동에 대한 모든 것도 그렇다
학계나 외교나 심지어 그나마 가장 탄탄했던 경제관계에서도
서아시아에 대한 이해는 전무했고 그나마 있는 몇몇 인간들 사이의 기득권 나눠먹기는 더욱 공고해졌던 것 같다

참 특이하다
경제논리들을 엄청 들먹이지만
왜 그렇게 말도 안되는 결론이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명확한 하나의 원칙이 있는 것 같다
<쥐고 있는 권력을 더 꽉 쥐는 것>
권력이란 건 때로 이동하여 때로 이편에, 혹은 저편에 힘을 실어주는 그런 게 아니라
이미 기정사실로 꽉 박혀있는 그런 거였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그래서 그들은 상대에게 <하대>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디서 너같은게 감히>, 라고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위 공권력이 보여줬던 그 비어있고 어리버리하고 스리슬쩍 한 자태만으로도
그들의 발표에는 신뢰가 가지 않았던 반면,
소위 음모론들은 강한 근거들을 갖추고는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왔다
<왜 쌩뚱맞게 이스라엘 대통령이, 뭐하러, 지금 우리나라에 온건지 생각해보라>던 지인도 있었다
<실상>은 뭔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 일어난 도미노는 가관이다

중국/러시아와의 외교에서 댓가없는 억지뿐인 딜로 망신거리가 된 건 실은 내 관심밖이지만,
소위 중동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단절되어가는> 과정에
진실로 이 정부의 계획이라든가 의지라는 것들이 들어가 있기는 한건지가 궁금하다
그들은 <하대할 꺼리>, 즉 기득권과 그것이 살아숨쉴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이렇게까지 놓아버릴 수 있는건가?
사람이란 게 원래 그러나?

...하고 생각하다보니
까먹을래야 까먹기도 쉽지 않은 사대강이 생각났다
하긴.
지들 손으로도 파헤쳐버리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기가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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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에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려고 하는 지인들이
홍대500에서 이야기마당을 열고 후원장터에 참가합니다
500에서 원래 열던 장터에 슥  ~

7월 25일 일요일 1시부터

peaceground.org 평화바닥
cafe.naver.com/obeg 오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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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어
겨울이 되면 제일 좋았던 게 뭐냐면
얼어붙은 호수로 놀러가는 거였는데,
거기에 가면 헤엄을 치던 청둥오리들이
물이 얼면서 얼음에 껴있는거야
그러면 가서 청둥오리들을 쭉쭉 뽑아서
구워먹었어
엄청 맛있었어


                                               - 모 어학원 중등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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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민간구호팀을 태운 배를
날려버렸다
해당 나라들이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하며 항의를 했지만
그런 것도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적극지지동조후원자인 미국일지라도
그 미국 시민권자를 국가살인을 하고도
오히려 미국에게 옹호받았던 그 기찬 이스라엘이 아니던가

그렇게 세계가 성토한지 며칠이 됐다고
이번에는 가자지구에 로켓포를 발싸, 또 죽었다
웃기지마,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말라죽이고 로켓포 쏘고 공습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 호들갑 떨거 없다치더라도,
지금, 이런 시기에?
보여주겠다고 작정한거겠죠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 위대한, 게다가 홀로코스트인지 롤러코스터인지 그거,
인간의 유수한 역사와 문화와 철학을 시험대에 올려놨던 바로 그 야만의 희생양이었던 불쌍한 우리, 이스라엘민족...
...이 아니던가.
신경쓸게 뭐가 있겠어.
설사 그 야만을 우리가 되풀이 하더라도.
설사 그 죽음을 우리가 똑같이 하더라도.

나는 또 무기력해지고
또 죽음이 뒤따라야만 비로소 그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반복에 길들여지고
하지만 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화,와 화,와 화,에는 좀처럼 면역이 생기질 않고
이 <화>는, 인간은 어쩔 수 없구나, 그 모든 걸 겪은 자들이 거기서 배우기는 커녕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
이게 바로 인간이고 사회고 역사고 바로 나구나, 하는 무희망에 또 젖어서
기력이 오히려 불끈 서버리는,
오기가 생기는,
죽는 그 단 한사람의 고통을 단 일분이라도 줄이는 것만이 의미가 되는

그런 기분에 빠져있다

난 잊지 않고있다
난 팔레스타인의 선인장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게 데모뿐인가요?
그러면 열심히 데모를 하겠습니다.

토요일에 봐요.
http://blog.jinbo.net/taiji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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