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상황

- 2014 8

2014 8월 현재,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상태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7 8일부터 한달 여간 이스라엘의 집중 폭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가자지구를 향해 대피소로 사용되던 UN 학교, 가자지구의 전력을 공급하던 화력발전소, 사상자를 받아야 하는 병원 등에 막무가내로 폭격을 했고, 17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고 90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 배경

- 빼앗긴 땅과 삶 점령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00년대초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그 지역의 땅에 주인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주해온 유럽 시오니스트들이 유럽 열강을 등에 업고 체계적인 인종청소를 통해 1948년 만든 국가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인구의 삼분의 이가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난민이 되었고, 지금도 귀환권을 거부당한 채 UNRWA의 명목상 관리 하에 주변 아랍국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흩어져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를 목표로 만들어진 국가로, 지금까지 유대국가임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과 공존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래로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으며 2006년 봉쇄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7년의 봉쇄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2008-9, 2012, 그리고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가자에 집중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서안(웨스트뱅크) 역시 명목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권한 하에 있는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법식민촌들(settlements)과 분리장벽으로 갈갈이 분해되어 있어서, 실질적인 경계가 무의미한 상황입니다..

그 땅에 이스라엘의 존재를 만들어내고 인정한 것은 서방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열강입니다. 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그 열강입니다. 그래서 지금 점령자인 이스라엘은 합법적인 국가로 국제사회의 일원이고, 점령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은 국가가 아닌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에 참여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지역Palestine territory 혹은 반국가집단인 것입니다(1988년에 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이 선언되었으며 미국 등 서방을 제외한 많은 유엔회원국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국경과 내부의 치안, 수자원, 난민귀환권, 이스라엘의 불법식민촌, 그리고 예루살렘 등에 관한 실질적인 통제권은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7 23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올라온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조사 결의안에 유일한 거부권을 던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한국정부는 서방 유럽국들과 함께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서방을 중심으로 한 주요언론을 통해 퍼져나가고, 그렇게 퍼져나간 그림은 실제로 힘을 가지고 현실로 고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1. 문화적 보이콧

 

빼앗긴 문화 - 뒤틀려가는 팔레스타인과 정상적인모습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도 삶이 있습니다. 웃고, 외식을 하고, 학점을 고민하고,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상에는 당연함이 빠져 있습니다. 희생자로서 정당함을 얻기 위해 희생자답게 혹은 저항자답게 굴어야 한다는 굴레가,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에 녹아서 당연함을 빼앗아 갑니다. 웃고 떠들고 카페에서 돈을 쓰고 사랑을 하고 그렇게 삶을 지켜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저항의 일부라는 얘기는, 막상 그걸 당연하게 살기는 힘든 일일 때가 많습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는 삶과 문화에 앞서 기획들이 난무합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자체를 비롯해서 도로 등의 인프라스트럭쳐와 공공, 문화, 교육사업들이 거의 전부 오슬로협정 이후 쏟아져 들어온 외국 엔지오들, 국제단체들, 외국 자본들로 굴러가게 되면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자기 땅과 문화를 지키려고 부여잡고 있으면서도 그 땅에 대한 소유와 책임감은 겪고 배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간극을 헤맵니다. 그저 좋아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예술을 즐길 기회가 없이 예술이 온갖 문화제와 치유프로그램과 극복이나 저항의 수단일 수밖에 없던 삶을 산 팔레스타인 젊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려는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서안에 계속 건설되고 있는 불법식민촌(settlements)를 빌미로 분리장벽 또한 계속 그 땅을 찢어놓고 있는데 그 장벽 건설현장에라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역설이 생계수단일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자유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문제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경험과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가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매력적이거나 익숙한 문화. 길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동네에서 자율적으로 열리는 벼룩시장, 출근 시간 간단한 요기거리를 들고 바삐 거리를 걷는 분주함. 우리는 아마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보다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정서적으로 더 공감하거나 익숙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가치와 정서를 의식적으로 이용합니다. 이스라엘은 각종 학술, 문화 행사를 유치하고 참여하며 이스라엘을 점령자나 학살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체계적으로 국가 브랜드를 세탁해 왔으며, 팔레스타인 내의 학술, 문화 행사는 조직적으로 방해, 금지해 왔습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의 삶에는, 그들이 가하는 점령의 폭력 때문에 스스로조차 뒤틀려가는 팔레스타인의 생명이 가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뺏은 것은 팔레스타인의 땅과 삶, 곧 문화입니다

 

빼앗긴 개념 정상화/일반화normalization = 가해자에 대한 무의식적, 암묵적 동조

팔레스타인의 죽음은 세계의 관심과 공감을 받지만 팔레스타인의 삶은 이스라엘누려야 하는 가치를 위해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가자에 폭격이 시작된 후에 가장 큰 바람이 된 것은 폭격 중지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원상태로의 복귀, 팔레스타인에게는 가족의 죽음과 끊긴 전기와 썩는 물과 파괴된 동네를 갖고서 다시 7년간의 봉쇄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폭격으로, 박탈된 인권과 무관심으로 돌아간 후, 이스라엘이 폭격의 이유로 지목한 어긋나는저항도 하지 말고 숨죽이고 죽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지 않는 동안에도 팔레스타인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있다는 사실은 잊혀지기 쉽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스라엘은 잠시 동안의 분쟁때문에 취소되었던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공연을 다시 개최하고 이스라엘인들은 비로소 그런 공연들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요.

2008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세계를 향해 세계적인 문화인사들이 던진 기념할 이유가 없다No Reason to Celebrate’라는 외침에는 여전히still’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기념할 이유가 없다! 60년이 된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단지 비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엔이 인정한 귀환권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수많은 유엔결의안을 어기면서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과 기타 아랍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후한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지원을 받으며 끊임없이 막무가내로 국제법을 어기고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점령이라는 틀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삶의 당연한 기본으로서 문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그 문장 자체는 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가 이제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리겠다고 주장할 때, 피해자는 여전히온 삶과 온몸으로 그 가해자가 만들어내는 매일의 점령을 현실로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구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 그 당연한문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여전히 가하고 있는 점령과 인종청소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 구조에 동감한 많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적, 문화적 보이콧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애와 미를 얘기하는 그들의 말과 삶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학술문화 보이콧 사례는 아래)

희망과 공존이라는 가치는, 점령자와 점령당한 자를 마치 동등한 것처럼 대하는 왜곡된 바탕에서는 설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정상화/일반화가 노골적인 폭력만큼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이 인식하지 못한 채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사회가 지켜야 하는 가치들이 표면적으로만 내걸린 곳에서는 현재와 여기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로서의 공감능력과 책임의식이 막연한 역사의 일반화에 묻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유대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고수하고 가자지구의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EIDF에서 희망과 공존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문화적 보이콧을 통해 가려지고 왜곡된 현실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려는 겁니다.

 

문화보이콧은 강제가 아니라 고민과 선택입니다.

학술적, 문화적 보이콧은 범위나 정도가 넓고 고민할 지점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문화예술 자체의 가치나 기회의 균등함을 이유로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반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학술문화 보이콧은 아직 담론화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 불분명한 상태에서 다양한 입장과 수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삶의 입장을 고수하더라도 그 선택은 찾아가고, 변화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의 아무런 경험과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의 말하기가 아닌, 고민할 지점들을 마주하는 담론화가 자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문화 보이콧을 말할 때는 개인의 취향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문화적 보이콧은, 정의를 위해서 카페에 가지 말고 음악을 듣지 말라는 단순한 강제가 아니라 그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죽음에 대해 공감하고 얘기한다면,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고민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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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20150102

2017.07.02 03:43 from 게워내기

61년 이후 프랑스 최대, 최악의 테러라는 샤를리 에브도 사태는 이틀 뒤 용의자들이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되며 끝났다. 이 사건으로 편집장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를 포함한 12명이 사망했고, 이들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괴한이 용의자들이 사살되던 날 벌인 인질극으로 인질 네 명이 사망했다.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외친 용의자들이 북아프리카 계 프랑스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자국민에 의해 파리 한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다. 유럽에서는 무슬림 이민자들이 사회 문제시 된 지가 한참이고 반이슬람 정서가 이미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 시점에, 프랑스는 이 우려의 현실화의 충격적인 현장이 되었다.

 

1.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사회의 어떤 중심적인 가치가 훼손되었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이 훼손하려 한 희생자의 업적을 지속시키고 심지어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편에 서겠다는 선언을 함축한 내가 샤를리다 Je Suis Charlie’라는 한마디가 전세계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의 메아리를 불러왔다. 카투니스트들의 연대적 만평과 기사도 줄을 잇고 있다. 어조의 차이가 있지만 이 대부분은 펜 대 총 즉 표현의 자유 대 물리적인 테러, 자유주의 대 극단적 이슬람주의, 서구의 세속주의 대 무슬림 사회의 종교적이고 집단적 가치를 말한다. 똘레랑스(관용)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는 무엇보다 사회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의 존재 기반이 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훼손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아마도 프랑스 사회가 가장 공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권위주의와 금기에 도전했던 68 혁명의 정신과 볼테르가 말했다는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일 것이다. 2011년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만평으로 비판을 받았을 때, 샤를리 에브도가 보였던 반응 역시 무함마드를 풍자할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풍자할 수 없게 된다였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몰아갈지라도, 그 원칙 자체를 훼손하는 모든 금지에 대해서는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한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장은 안팎의 비난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회가 가진 경험과 보편적 가치를 모두 고려하여, 약자를 보호하고 부당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강력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보편적 가치마저도 변화, 수정되어갈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 방법론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변화를 조율하고 현 상황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모든 사건은 사실 큰 흐름 속의 맥락이며, 사회가 말하는 가치 역시 역사에 대한 그 사회의 독해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유럽국가들과 프랑스가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파시즘을 겪은 그들의 경험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게 되더라도 인류에 대해 행해진 범죄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서 제외된다. 프랑스는 1990년에 제정된 게소법Gayssot Act에 따라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이 불법인 나라들 중 하나이다. 2005Vincent Reynouard라는 프랑스인이 홀로코스트? 그 뒤에 가려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Holocauste ?Cequel'onvous cache...)”라는 16쪽의 팜플릿을 만들자, 프랑스는 유럽 국 간의 공조를 통해 심지어 벨기에에 살고 있는 그를 체포, 인도받아 프랑스 법정에 세우고 벌금과 1년형을 선고했다. 이런 법의 존재는 어떤 명확한 사실 관계의 왜곡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이 경계를 갖지 않고 모호하게 사회를 지배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육십 년이 넘게 국제법을 어기면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합당한 비판이나 분석과 닿아있는 시오니즘 관련 홀로코스트 연구나 발언조차 어느 정도의 자가 검열을 거치게 된다. 유럽은 실제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과 안티세마이티즘 사이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스라엘은 점령에 대한 비판을 안티세마이티즘, 민족과 종교에 대한 박해로 왜곡하여 공적으로 문제 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역사의 집단적 경험은 여전히 이 법안의 기조를 용인한다.

이렇듯 수정을 허용해왔던 동일한 원칙이 무슬림 인구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떤 예외도 없는 무게를 가지고 적용될 우려가 있다. 물리적 테러에서 한번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도가 정해지면, 정의를 지키기 위한 조심성으로 인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야 하는 수많은 담론들이 애초에 무력해진다는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옹호를 지키고, 동시에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제까지 정도의 비판을 이어갈 수 있는 여유가 지금 프랑스 사회에 남아 있을까? 언론이 갖는 폭력성은 과연 물리적인 테러보다 덜 파괴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거리끼지 않고 다양한 담론을 쏟아낼 수 있는 분위기는 남아 있는지? ‘나는 샤를리다 Je Suis Charlie’의 홍수 속에 나는 아흐마드다 Je Suis Ahmed’라는 목소리가 비집고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무슬림 이름을 가진 아흐마드 메라빗Ahmed Merabet은 이번 테러 현장에서 사망한 경찰관이다. 그는 한 명의 프랑스 경찰공무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가 자신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조롱과 무례를 범한 샤를리 에브도를 지키려다 죽은 이미지로서 부각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틀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샤를리적 자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말 뿐인 자유주의자를 대변하는 샤를리가 아닌 아흐마드의 상징성이 볼테르의 그 한 문장에 좀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에게 틈을 내어주었다는 똘레랑스에 대한 후회로 인해, 상식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샤를리 에브도에게는 무한한 포용으로, 내부의 다양성과 문화 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원적 가치를 단호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엇보다 그런 양극화 상황은 이번 사태로 인해 급작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최근 번역도 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한 소설이 그러한 양극화의 현실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그린 복종(Soumission)’이라는 책으로 공쿠르상 수상자인 작가 미셸 우엘베크가 썼다. 2022년 대선에 국민전선(FN, 실존하는 프랑스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신생 무슬림형제단 만이 남게 되면서 우경화를 우려한 사람들이 이슬람 정당을 선택한다. 그 결과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후의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금지되고, 일부다처제가 들어오며, 학교에서 꾸란을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최근의 반이슬람 정서, 그리고 이슬람 주도 사회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책은 이미 프랑스 안에서도, 작가의 극우적 해석에 대한 통렬한 비난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옹호가 엇갈린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은, 이 책의 모든 전제가 대선에서 기존의 온건한 좌우파정당이 모두 탈락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파시즘을 연상케하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현실에 존재하는 모습을 그린 이슬람 정당뿐이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경제파탄과 우경화로 인해 서구문화와 무슬림 이민자 사이의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그려졌을지라도 이 책은 그러한 현재 프랑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무슬림 인구의 숫자가 차지하고 있는 상당한 비중 때문에 설득력을 가진다. 반이민정책, 낙태반대, 프랑스주권 강화 등의 주장을 해온 실제 극우 정당인 FN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적인 접근과, 그러한 입장을 지키려다 결국 이슬람화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역시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사회는 이미 파시즘을 직접 겪고 그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있었던 만큼, 개인들의 합리적인 판단이 국민전선이 아닌 이슬람 정당을 선택한다는 상상도 개연성이 있다. 이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과 북아프리카/중동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현재의 고민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의 무슬림 추정 인구는 오륙백 만 명으로 유럽 최대 수준이며, 현실에서도 이들은 점점 더 동화되지 못하고 이방인, 타자, 심지어 침입자로 남아 있다. 현재 이슬람의 전형적인 관행들은, 진정한 이슬람 가치들이 무엇인지 대한 치열한 고민이 아니며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존재했던 세속적인 아랍국들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은 무슬림들이 현존하는 이슬람 정권들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점점 더 공고히 받아들여가고 있으며, 여기에서 가치의 충돌이 일어난다. 파시즘을 겪은 서구 유럽 사회가 자기들만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절대화시켜 가는 동안, 서구의 식민, 압제, 전쟁을 다각도로 겪은 전세계의 무슬림 인구 역시 급격히 이슬람화 되어간 것이다.

중동지역은 서구에 의한 분쟁과 분열로 인한 이슬람화가 절대적이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더라도, 현재 이슬람주의자들의 무대가 된 이라크와 시리아는 모두 중동/이슬람 세계에서 역사가 깊고 문화적으로 강대했던 나라들로 한때 이슬람화를 경계했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을지언정 종교적으로 보수적이거나 극단적인 행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을 선두로 한 서구가 건드린 건 인권과 종교적 합리성이 바닥을 치는 아라비아 반도의 친미국가들이 아니라, 바로 레반트 지역의 세속정권들이었다. 이들이 무너진 자리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피폐해진 민중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인 대안을 제시한 이슬람 세력들이었다. 이후, 곧 이라크에서는 순니-시아 연합 무산된 후 장기집권으로 인한 갈등이, 시리아에서는 극한 분열과 외세가 개입된 내전이 이어졌다. 이 혼란의 틈을 타고 등장한 이름이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인 IS이다. 규모를 키운 IS가 처음 국가임을 선언을 했을 때, 특히 레반트 지역의 아랍/무슬림 사회의 즉각적인 반응은 비웃음과 우려였다. 이 지역의 무슬림 공동체는 단일 종교를 내세운 국가가 얘기하는 종교가 얼만큼 허상이며 얼만큼 정치적으로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미 겪었다. IS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의 성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구와 아라비아 반도의 친서방 국가들을 비롯한 외세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상황에서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강대국의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고 있던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별다른 대안이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IS가 제시하는 저항의 이미지로부터 해소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럽 무슬림 이민자의 2, 3세대들이 뿌리깊은 문화적 차별과 경제적 박탈감, 그리고 최근의 유럽의 경제불황으로 심해진 사회의 우경화로 인해 구석으로 밀리다가 그 중 무시할 수 없는 수가 IS에 몰려든 것이 이를 보여준다. IS에서 군사력과 폭력성만큼 주목해야 할 부분이 그들의 조직력과 이미지를 이용한 호소력이다.

아랍 영웅물 만화를 만드는 요르단의 술레이만 바킷Suleiman Bakhit은 아랍/무슬림 세계에 긍정적인 이야기와 긍정적인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극단주의자들과 수치심(shame)과의 관계였다. 폭력이란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무슬림 개개인과 이슬람 공동체를 정화하여 이 수치심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과정이며, 그런 수치심을 이용한 영웅주의로 치장한 것이 현재의 극단주의 집단들이다. 술레이만은 중동의 가장 큰 문제는 IS가 아니다. 영웅주의로 가장한 테러리즘이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건강한 영웅, 무엇보다 남녀 모두가 등장하는 영웅물 만화를 통해 대안적인 영웅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진정한 이슬람적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고착되어 가고 있는 이슬람 사회 내부를 향해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이런 상상력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슬림 사회의 자생력을 결정할 것이다. 유럽에 뿌리를 내린 무슬림들의 경우에는 북아프리카나 중동지역과는 또 다른 상황에 있다. 이들은 타자가 아닌 유럽 사회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공존을 위한 가능성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3.

2004년 프랑스는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복장을 착용하는 것을, 201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이는 여성들이 강제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상황을 막고, 프랑스의 세속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 법은 직접적으로 무슬림 인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립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얼굴을 가리는 것에는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뿐 아니라 마스크, 헬멧 등이포함되어 있으며, 이 법의 목적 역시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이 법안들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히잡을 쓸 자유를 훼손하는 법이자 무슬림 인구와 이슬람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존을 위한 법이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분열의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디까지가 극단성조차 지켜져야 하는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금기에 대한 금지인지를 결정하는 기반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프랑스 헌법의 대답이 세속주의인 반면, 무슬림들은 종교의 숭고함과 그것을 선택할 자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프랑스의 세속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되 종교가 국가적 권한을 가질 수 없으며 어떤 종교적인 강제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슬람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다른 모든 종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럽 역사의 일부로 이미 상당 부분 세속화가 이루어진 데 비해,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또한 초창기부터 이슬람 공동체, 즉 움마를 운영하는 과제를 지고 있었던 이슬람은 기독교와 달리 생활규범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히잡이 과연 이슬람에서 지켜야 하는 종교적 관행인지 여부를 떠나서도, 프랑스의 세속주의는 많은 면에서 무슬림들의 일상과 부딪히기 쉽다. 종교로 대표되지만 사실 보다 뿌리 깊은 문화와 가치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식 다양성과 관용이란, 무슬림들에게는 오히려 불평등과 강요가 된다. 이렇게 이질적인 특성으로 인해, 프랑스 일반 대 동화되지 않는 무슬림 이민자의 구도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번 테러의 범인인 쿠아치 형제(Said Kouachi, Chérif Kouachi)는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관련 테러 대책에 대해 다른 어떤 유럽국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무슬림 인구를 관리할 수는 없어서그 뚫린 틈 사이로, 이런 충돌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슬림 이민자들이 그저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프랑스 사회에 찾아온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되돌아 볼 것은 61년 프랑스에서는 일어났던 또 다른 테러이다.

1961년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1954-1962)를 치르는 중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것처럼 들리지만, 이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프랑스에 대항한 알제리 독립전쟁, 혹은 알제리 혁명이다. 1999년까지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전쟁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알제리 사태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알제리가 독립을 하게 된 1962년까지까지 132년 동안 계속되었다. 독립전쟁이 한창이었던 61 10 17, 야간통행금지에 대항하여 알제리인들이 대규모 비무장시위를 조직했다. 그리고 파리 경찰은 이 시위를 대규모로 유혈진압 한다. 파리 경찰은 알제리인 시위대들이 의식을 잃거나 죽을 때까지 구타한 후 센느강에 던졌다. 어느 정도까지 말하는 것이 축소이고 과장인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당시 생미쉘 다리에 내걸렸듯이 여기 우리가 알제리 인들을 센느에 던져버렸으며, 그와 함께 르몽드의 표현처럼 정의는 센느강에 던져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때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망자 숫자는 3명이었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인 파리의 10은 상영금지를 당했다. 실제 사망자는 200여명까지도 추정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알 수 없다. 이 날의 책임자는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이름이 거론되던 사람이 당시 파리 경찰국장인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이지만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며, 센느강 주변의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의 모습에, 불과 오십여 년 전 알제리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제국주의의 패악을 부려왔던 또 다른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내에서 피식민지인으로 분류되고 프랑스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채 버려져도 괜찮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서 젊은 무슬림 인구들이 왜 튕겨져 나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그들에게 이 역사를 각인시킨 그 사회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

오늘 참담한 테러를 겪은 프랑스 사회가 그 정신을 잇고자 하는 건 68혁명이지만, 이 지경까지 와서 진실로 돌아봐야 하는 것은 61 10월의 학살이다. 이는 너희도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적 힘빼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흐름 끝에 지금 여기에 서 있는지,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를 고민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필요하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를 단순히 고정화된 프랑스 사회에 외부에서 유입되어 온 이질적인 존재라는 구도에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타자의 피를 딛고 자기들끼리 이룬 다양성과 관용의 문화는 그 타자와 접촉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편리한 자기들끼리만의 천국으로 돌아갈 선택을 하기 쉽다. 표면적인 자유, 관용, 다양성, 민주주의의 허상을 넘어서 진정한 공존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불편하고 지리하고 알 수 없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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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에 대한 회의 

 

번호:1 글쓴이:  서정적인곰

조회:5 날짜:2004/07/13 15:45

 

군대와 관련한 시위를 하는

모 단체의 경우는

기존의 시위 방식을 거부하고

그러니까 일종의 쇼 같은 걸 기획하는 것이

취미이다

그들이 대학로에서 했던 캠페인에서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얼굴에 하얀 페인트 칠을 하고

놀거나 율동을 하거나

때로는 노래를 불렀다

아니, 솔직한 나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들은 수줍게 놀거나 율동을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라고 할 수 있다

그 모습의 어설픔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다만 내 주관적인 시각의 도도함을 말하고자 한다거나

또는 그들의 의지나 열정 때로는 노력이라는 것에 대해

판단judge를 하려는 것 보다는

고착화된 이상 또는 관성에 몸을 내던지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방법

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때문이다

 

운동권의 관성은 노가다라고 했다

그 안의 시스템에 종속되어

주어진 이슈에 대해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만들어 온 소위 '효율적'이라고 하는

결론일 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또한 그 시스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미묘하고 복잡하고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역시 관심이 없고

내가 관심이 있는 부분은

실질적인 표현에 있어서의 그들의 방법론

그리고 그 안에서 그러한 관성을 따라가는

개개인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방법론

이라는 부분이다

 

안티 문화는 때로

아니 상당히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반대하고자 하는 대상과

내용면에서는 반대극의 입장을 취하고 있겠지만

사실 맥락에서 본다면

같은 줄기의 끝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류급 안티로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우선의 반감과 경계심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는

젊은 선생

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있을 수 있겠고

소위 진보적이며 자유로운 사상과 분위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래서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싸잡아 비웃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꼬뮨의 고교자퇴생들과 같은

발달된 형태도 있다

문희준의 빠순이들을 공격하는 행태는

그 내용의 합리성과는 상관없이 때로는 관성이 되어

역시 그 내용의 합리성과는 상관없이

라디오헤드와 그 음악을 좋아하는 집단전체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상당부분은

바로 그러한 관성의 소유자들이

'진보' '서브컬쳐', '자유', '소수' 등의 단어를 앞에 붙이고 다니는 경우에 등장하는

구역질나는 자부심이다

 

관성을 따라간다는 것에 대해

환경이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하지는 않는다고 하면

개개인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가지는

무책임과 의식없음은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 대해 삼자개입을 하며

함께 가겠다고 선언함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

운동

에서까지 보여지는 방법에 대한 관성은

그 결과가 미치는 파급효과에 상관없이

다만 너무도 익숙하여 당연시 되는 틀은 비록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의식과 의지가 진실로 기특하고

또 기특해야만 하는

그런 자위들로 합리화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안이 없는 자는 말도 하지 말것이며

때로는 역사가 이루어 온 것에 대한 책임까지 얼떨결에 져야하는

그런 사태에 대한 근거이기도 하다

 

기존의 시위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과 다른 또다른 시위문화를 택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누군가는 판을 만들었겠지만

사실 그들은 천재거나 혁명가가 되지 않는 이상

그 판을 떠난 존재가치가 흐지부지 되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선택할 판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다양성을 희망하고 애써 등장한 어떤 판의 경우엔

그만 기존의 운동문화와 내용면에서만 다를 뿐

마찬가지의 고착화라는 서글픈 길을 걷게 된다

새로운 시위문화는

얼굴에 하얀칠을 한다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나체시위를 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촛불시위에 참가하여

깃발 아래 모이는 취향

프로그램을 받아보는 취향

그렇게 보낸 세 시간에 만족스러워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 모르는 건 아닌 것이다

 

이런 투박한 일반화나

도도한 시각의 표출같은 것은

사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판의 존재가 절실한 게으른 나의 현재 상황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관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만 깃발아래 모이는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한다고 믿어지는 것과 해야하는 것을 혼동하지 않고

조촐하지만 멋진 깃발 아래 모인다거나

다만 시위와 텔레비전에서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근거없는 권력이 만들어 나눠주는 수동적인 프로그램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조금 더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을 만든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옷을 벗기가 너무도 수줍은 한 아가씨에게 나체시위를 강요하는

그런 비효율적인 운동은 안해도 될 것이고

그런 어설픔을 지켜봐야하는 가슴아픈 일도 없지 않을까

 

사회의 틀을 깨는 것이 너무도 혁명적이라

부담스러워 하는 복지지상주의자 타입들에게 필요한 것은

면벽수도가 첫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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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에 대한 회의2-퀴어담론 

 

번호:5 글쓴이:  서정적인곰

조회:4 날짜:2004/07/13 16:35

 

야오이 취향의 소녀들과

급진적 페미니즘 분리주의자들이 선언한 정치적레즈비어니즘에 대해선

다만 성질이 날 뿐이지만

여기에 대한 발목잡기 또는 지지

둘 다에 해당하는 근거로

방법적 우월론이라는 게 있다

이것은 바로

 

1.

페미니즘은 아가씨들이, 막시즘은 노동자들이, 퀴어담론은 퀴어들이(때론 '만이')

잘 알고 잘 할 수 있다

 

2.

성역할 담론에서는 페미니즘이, 경제사회론은 막시즘이, 사회분석론은 진보론 쪽이

우월하다

 

라는 것인데

첫번째 것은

모 담론의 반경 안에 있는 당사자들이

그 담론의 당사자라는 기본적인 동어반복에 기초한 것으로

상당히 타당하지만

한국식 핫도그에서 소세지 위에 잘못 붙은 밀가루 반죽과 같은

그런 요소들이 결합 채로 진화할때 문제가 생기고

두번째 것은

메탈리카 육집에 대한 옹호론자들 중 일부가 펼쳤던

모던락이 메탈에 우선한다는 알수 없는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려운 것은

광신도들을 가려내는 기준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믿음에 대한 판단이라는 부분인데

그런 어려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진실성이 가미된 자부심

이라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명제를 애써 납득한다고 하면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이 우월한 방법들이

'선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현실이다

 

퀴어담론이 물위로 올라오게 된 계기는

종로의 어두운 빌딩 계단에서

한 게이소년이 알 수 없는 칼에 맞아 죽었기 때문도 아니고

가열찬 퀴어운동가들의 캠페인이 빛을 보아서도 아니었으며

군대내의 성폭력 중 일부가 보여주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

때문도 아니었다

시작은 두가지로

하나는 퀴어담론이

소수문화, 특수문화라는 낭만적인 코드를 뒤집어쓰고

영화와 만화, 소설에서

감각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부터였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다양성과 관용이라는 이십일세기의 대원칙에 합류하여

엘리트층(이라고 불리우는 판)에서

진보성향의 필수아이템으로 자리잡으면서 부터였다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방법적인 예의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인데

게이들이 ''이라고 불렀던

이태원의 게이클럽 지퍼가 문을 닫으면서

엄청난 자금을 들여 어메이징쑈와 함께 문을 열었던

쥐바G-bar(현재의 쥐스팟G-spot)

그 이름의 변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클럽씬에서 권태기를 맞은 일반 클러버들에게 문을 활짝 열면서 시작된 상황

그러니까 북적북적한 게이바에서

때로 멋진 게이들과 때로 멋진 일반들이 몸을 부대끼며 춤을 추는 상황에서

나의 게이지인들이 의례 하듯 크루징을 할때

일반청년이 그러한 게이들의 자태에 대해

개인적으로 구역질이 나던말던간에 그러나 정중하게

(어쨌든 그곳은 게이클럽이다)

아니, 난 게이가 아니랍니다

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의 수준이다

 

처음 말했던 야오이소녀들과 정치적레즈비언들에게

나는 한점의 관대함도 보여줄 생각이 없지만

그것은 삶에 관한 진실성을

스타일 또는 수단

으로 이용해먹는다는 것에 대한 성질풀이이고

담론에서 그들을 제외할 생각이 없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라는 입장을 가진 집단은

당연하게도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들 스스로에게도 기회를 박탈하는

몹시 잔인한 관성을 띄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름에 대한 아이템 정도로

담론을 수집하는 자태 역시

쓸데없는 뻐기기 성향만 부추기면서

막상 필요할 때 단란주점에서 아가씨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는 등의

이중인격으로 분리되어버릴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이것은 1번과 2번에 대해

선택과 그 부정적인 면에 관해서만 말한 것이니

사실 제대로 된 보수의 입장을 고수하는 측에게는 물론

발 디딜 곳을 마련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다

 

어쨌든

애써 노력하는 것은 박수를 받을 일이지만

다양성과 관용이라는 명제가 갖는 권위가

그 다양성과 관용을 아우른다는 집단으로 하여금

오히려 다양성과 관용을 잃게 만드는 관성에 대해서는 조심성을 잃게 해버렸다는

의례 권위라는 게 하는 그런 일을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다

 

시시껄렁한 일반 소설가가 쓴 레즈비언 연애소설이

사회적 퀴어진보주의자가 쓴 포스트모더니즘과 퀴어에 관한 장문의 글보다

때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더 현실성이 있어서라는 단순함을 넘어서

때로는 부정에 대한 부정으로서 일탈을 해버리게 되는

또다른 슬픈 현실 때문이다

 

틀의 틀의 틀의 틀에 대한 고찰을 한 철학가들과

중도의 길을 애써 퍼트리려고 했던 붓다에 대해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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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는 감성을 통제한다 

 

번호:13 글쓴이:  서정적인곰

조회:2 날짜:2004/08/28 14:42

 

사례1.

반복되는 카테고리를 가진 자태가

감정에 관성을 준 결과로

말하자면 수봉이 부른 명곡 '그때그사람'의 가사에서도 나오듯

이라는 무서운 감정범주가 만들어진다

 

 

 

사례2.

그다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시스템의 구성에 따라 무엇인가를 하게 된 누군가가

그 행위의 과정에 몰입하고

결과에 집착한다-또는 신경을 쓴다

예비역들의 군대얘기가 대표적이다

 

 

 

사례3.

섹스를 한 후 사랑에 빠졌다는 보고가 있다

 

 

 

모호한점1.

진실의 절대성 여부가 모호하다

 

 

 

모호한점2.

그래서 '그러한' 감성의 '진실성'여부가 모호하다

 

 

 

모호한점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호함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일으킨다

 

 

 

부작용의 최소화법1.

단호한 결단

 

 

 

부작용의 최소화법2.

울지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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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gotothezoo       

 

비가왔다, 오토바이를 탔다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작성일 2004-07-08 오전 5:04:30

 

 

비나 눈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옷이 흠뻑 젖고 안경이 물방울로 얼룩이 져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게 됐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안경 위로 부딪히는 빗물에 야경의 불들이 번져서

눈을 가늘게 뜨지 않으면

앞을 볼 수가 없다

 

소매없는 셔츠만 입어서 춥고

또 옷이 잔뜩 젖어서 춥다

 

터널을 지날때는 매연냄새가

동호대교를 건널때는 강물에서 올라온 비린내가 나더니

강남 쪽으로 넘어오자

쇠와 아스팔트의 냄새가 빗물에 섞여왔다

재건축 중인 곳이 많아서일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옷과 신발이 젖어서 우울하지만

비는 내음을 강하게 만든다

때로 허공에서 돌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나는 비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었다

 

오늘은 한강 냄새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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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

2007.05.05 18:14 from 게워내기

..

그리고 몇달 전부터

그들이 나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본래 기억이 없는 나는

오년이라는 시간을 거스른 이미지들을 뒤져야했다

때론 아련한 감성마저도 사라져서

내음만 남아있는

그런 기억들까지도

 

그들은 나를 좋아했고

자신들이 내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괴로워했고

그래서 내게서 도망갔다고 했다

나는 어땠냐면

그들을 진실로 좋아했고

그들이 내게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일부러 드러낼 필요도 없이

드러낼 수 밖에 없었으며

그들이 떠나갈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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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gotothezoo       

 

글쎄 말이야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작성일 2004-05-24 오후 1:25:20

 

 

 

 

 

...놀라운 걸

내게 일어났던 거의 모든 일들을

앞뒤 순서 없이 고리로 이리저리 엮어서

한 솥에 넣어 뒤적뒤적

잡탕을 그것도 뜨거운 불에 달구어 볶은 잡탕을 만들려는 게

 

내가 또다른 신이라고 불렀던

그의 뜻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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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gotothezoo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작성일 2004-05-11 오후 6:03:10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맞는 말이다

 

알수없는 그의 목소리

낯선 그의 반응

그의 모습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반응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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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gotothezoo       


smith에게 보내는 쪽지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작성일 2003-11-14 오전 1:36:40

술을 마셨어

세상엔 내 맘대로 안되는 일이

많지

어떤 오해는

다시 오해를 부르고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그럴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술을 마시면

붉어지는 부분이 있어

원숭이에게 물린 곳

강도한테 맞은 곳

손바닥

그런데

기억안나는 상처도 많다

어디서 다쳤더라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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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gotothezoo       

 

10월의 마지막 날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작성일 2003-10-31 오전 3:44:21




이년 전에 함께 살았던 한 지인은

시월의 마지막 밤을 항상 기념하곤 했었다

그렇다고 별다르게 하는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만 매일 그랬던 것 처럼

혼자서 소주 한병을 깠고

아주 오래된 노래 '시월의 마지막 밤'을 부르는 게 다였다

난 아쉬워하는 그녀를 위해

시계를 십 분 앞으로 돌려놓았고

우리는 모두가 십일월을 맞고 있을 때

여전히 시월의 마지막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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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얻은 경험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271  조회수 21

작성일 2003-09-25 오전 4:38:01

   




내가 강도만난 얘기 해줬나

어느날 혼자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청년이 다가오더니 끼릭 총을 장전하고 들이대는 것이지

살면서 총을 본 적이 있어야 실감도 나고 무섭기도 할거 아니야

장난감 총 같아 보이더라구

그래서 머리를 들이밀면서 쏴봐라 쏴봐라 그랬거든

강도가 수줍은 사람이었나봐

안 쏘더라구

대신 장전한 총으로 뒤지게 패더군

맞고 가방 뺐겼지

돈은 거의 없었는데 사람들한테 받은 자잘한 것들이 아쉬울 뿐이야

또 어느 건물에서 걸어가다가

아래층으로 뚫린 구멍에 쑥 빠졌었다

공사가 덜 끝나서 철근 구조물이 삐죽삐죽 나와있는 데로 곧장 떨어졌지

턱이 죽 찢어져서

병원가서 두 바늘 꿰맸다

주사맞기 싫다고 졸라 울어댔더니

병원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내 몸을 잡고 주사를 놔버렸어

씨발

졸라 아팠어

다른 건 어땠냐면

꽤 괜찮았지

멋진 코트를 입을 수 있는 날씨가 아니어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런 건 뭐

참을 수 있어



요가를 하는 지인은

매일 칠분동안 복식호흡을 하면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

왜 그런 걸 하냐고 물으니까

요가라서 한다는 거야

역시 무엇을 하던

세상은 살기 쉬운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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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2 결국

2007.05.05 17:53 from 게워내기
 

결국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95  조회수 2 

작성일 2003-03-12 오전 1:48:14




넌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어

난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지

아마도

듣고 싶었던 말을 듣지 못해서

화가 났었던 것 같아

그 연극은 왜 했던 거지

삼십초 동안의 연극 때문에

평생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

아니면

평생 해 왔던 연극 중에

삼십초 간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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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09 새벽에

2007.05.05 17:52 from 게워내기
 

새벽에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92  조회수 3

작성일 2003-02-09 오전 2:38:42



오랜만에 다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녀의 집에서 항상 들었던 Blur와

비교적 최근에 산 앨범이지만 이상하게도 낯익은 Bran Van 3000과

아주 예전부터 들었던 Stratovarius와

당연히 듣는 The Beatles와

그리고

그리고 어떤 내음이 있다

난 갑자기

내가 지금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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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해야할 때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91  조회수 4 

작성일 2003-02-05 오전 1:18:23

이유들은

상황이 있은 후에 생긴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너무도 적절한 이유들은

한 삼백개 쯤 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

말을 함으로써 상황을 고정시키곤 한다

약간의 거짓이나 약아빠짐이 없을 때 조차

같은 상황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조금도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때로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만큼

너무도 낯설게 느낄 때가 있다

게다가 이십사년 째 살면서 익숙해진 판단기준은

멋대로 지레짐작함을 초래하여 때로는 후에

미안함과 민망함과 후회감을 들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만

때로는

너무도 눈에 잘 보였던

딱 그만큼

맞아떨어질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아닌 걸 맞다고 하는 삼류급 구라인지

눈속임을 위한 약아빠짐인지

스스로를 만족시키려는 자기최면인지

순간을 무마하려는 어설픈 변명인지

그렇다고 애써보려는 자기합리화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솔직한, 솔직함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야 하는 게 중요해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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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1 Fall

2007.05.05 17:45 from 게워내기
 

Fall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77  조회수 0

작성일 2002-10-21 오후 3:48:29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장난처럼 모든 것이 달라졌었다

검은 색의 옷들은 다 내다버렸지만

사실 중요한 건 검은 옷들이 아니라

찬바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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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gotothezoo





밥을 먹고

의례 그러한 사람들과 만나

의례 그러한 얘기들을 하고

의례 그러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루한 사람들은

축제에 가면

술보다 좀 더 강렬하고

덜 지저분한

일종의 사이다와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축제에도 역시

그러한 사람들과 그러한 음식들과 그러한 얘기들이 있다

대부분이 그렇다


모든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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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억에 관해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66  조회수 2

작성일 2002-07-05 오전 6:44:14

   

일관성있는 감정상태라는 것이 있을까

...말이다

우연히 그와 마주쳤을 때

난 진실로

심장이 멎는 게 어떤 건지 알았다

그날 밤엔 어김없이

거짓말처럼 소주가 필요하게 되고

오뎅국물에 소주 한병을 다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오늘 새벽

삼십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난 잠시 그와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가 했던 말들

그가 나에 대해서 했던 말들

나는 진실했던 것이었나

그것들은 방어심리에 의한 구라일 뿐이었나

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오늘 새벽에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역시 난 괜찮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잘 흘러갔고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었으며

난 너무 어렸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며

냉정함과 우울함을 오고가는

시소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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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날들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62  조회수 2

작성일 2002-06-07 오후 12:34:56

잠이 조금씩 늘고 있다

옥탑으로 돌아오면

때로

이불을 펼 새도 없이 잠이 들었다

불이 켜져 있거나

음악 소리가 들리거나

또는 맨바닥에서 잘 때면

난 꿈을 꾸곤 한다

아주 오래 전 부터 그랬었다


꿈에

사람들이 나왔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있었던

옛날이거나

아니면 서로 다른 표정을 가지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어색함을 느끼며 바라보게 되는

현재이거나

어쨌든 내가 그들을 만날 때면

주위에 그리운

가슴아픈 내음이 가득했다


나의 지인들은 때로

나의 수줍음을 냉정함으로 착각하거나

또는 나의 가벼운 조크를 또다른 룰로 착각하여

가슴아파하곤 했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어떤 사람들은

가끔 냉정한 내 모습을 수줍음으로 착각하거나

내가 그들 앞에서 삼백번을 강조했던 룰을

가벼운 조크 같은 것으로 착각하여

내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꿈에서 그들은 모두

나에게 웃고 있었다



나는 때로 노래를 부르고

여러가지 전염병에 관한 설명을 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해하기 어려운 공 사상에 대해

유창하며 놀랍도록 타당한 해석을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때로 숨기며

하루종일 웃으며

그리고 종종 벽 뒤로 숨어버리는

그런 짓을 하기도 한다


깨어나면 보통

불이 켜져 있거나 이불이 접혀 있거나

음악이 나오고 있는 옥탑방이며

난 조금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꿈속에서

실컷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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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2 롯데리아

2007.05.05 17:37 from 게워내기
 

롯데리아


작성자 gotothezoo (gotothezoo)      

번호 57

조회수 1

작성일 2002-05-02 오후 12:02:28


모모씨는

무엇인가를 하다가 내게 문득

물었다

이런 거 싫어하나?

내게는 어떤 것이 있어서

마치 내가 롯데리아를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듯이

그렇게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모모씨는 조심성이 많기 때문에

나는 의식을 하지 못하는 때

또 문득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 롯데리아적인 거겠지만

어쨌든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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