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의 취미

2016.02.14 02:45 from 공간/서울

논리회로에 이상이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느라 큰 그림을 어긋내지 말고

해결하려하든가 아니면 감성회로도 들여다보든가 해야겠다

남편이 꿈을 꾸었다

차가 거칠게 달려오는 오르막 길이 있었는데

오르막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고 차들은 거칠게 달려 오기 때문에 사고가 잦은 곳이 있었다고 한다

나와 남편과 혜란언니가 그 곳을 지나는데,

내가 차가 거칠게 달려와서 사람을 쳐대는 꼴을 증명하겠다며

그 길로 씩씩하게 걸어갔다고 한다

아 나는 그렇다

모두가 다 아는 걸, 지켜보면 그냥 보이는 걸, 굳이 증명하겠다고 

차로 뛰어드는 안타까운 멍청함

모모아저씨는 자해하면서까지 증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해결도 아니고 증명을 위해, 드러내기 위해 자해하는 건 안 된다

안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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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상

2016.01.18 02:45 from 공간/서울

아침에 일어나면 돌궐 커피를 끓인다

사무실 책상이 나란히 붙어 있기 때문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일어나자마자 보통 랩탑을 켜니까

보통 일을 바로 시작한다

보통 번역을 하고 편집을 한다

나는 초벌을 하고 남편이 편집을 한다

원고가 난장판이 된다

남편은 밥을 하고 짜이를 끓이고

난 설거지를 한다

난 바닥을 쓸고 남편이 닦는다

온수매트를 샀는데 겁나 좋다

내가 말을 걸면, 남편이 관련 자료를 찾아 말을 부풀려준다

그러면 말들이 온 방을 오고 가고

뭔가 윤곽이 잡힌다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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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ats the soul

2016.01.13 08:02 from 공간/서울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극복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믿음은 불안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다


나는 나 자신은 할 수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방법을 알아서

도움을 요청했다

딱 그것만 제외한 모든 이야기들이 돌아왔다


난 또 허공에 손을

하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랬더니 두 가지가 잡혔다


허상에 쌓여있던 악의의 간절한 손짓과

나와 같던 또다른 누군가의 손


그래서 손을 내저은 보람은 최소한 있었다, 라고

진실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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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사한다, 라는 건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다

속죄를 해야한다

깊은 속죄를

속죄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써서 마치 안도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마냥

그런 자기합리화까지 무한정 덧붙여지는 속죄를 해야한다


이슬람에서는

용서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알라가

하지 않는 게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은

그 상대에게 속죄하고 용서를 받지 않으면

알라는 대신 용서하지 않는다


바그다드에서 머물렀던 곳은 시아파 동네였다

그 동네에는 똑똑한 쿠르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수많은 전설에 대해 끝도 없는 얘기를 해줬었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에 있는 검은 사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용맹한 쿠르드 전사들을, 아무도 모르게 주워가서 동굴에서 키우는 암콤

온갖 진니들

그리고 대신 용서하지 않는 전지전능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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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없을지라도

온전히 소통의 단절, 혹은 오해, 혹은 무례함에 의해서만

돌아버리게 화가 날 때가 있다


그가 마치 우주의 귀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 그가 알아듣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알아듣고 나서의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곧 떠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자체가 문제였다

너무 큰 문제여서 나는 의지를 잃었고 과거를 잃었고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관성을 내 손으로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애정은 이미 오래 전에 잃은 상태였었음에도


소통에서 오는 건 관성의 병이다

그의 기억은 뒤틀린 그의 세계와 광기어린 그의 눈빛 반경 백미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알아듣는 것 뿐, 이라고 말했지만

당신의 성벽에는 흠집하나 내지 않겠어, 라고 말했지만

그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인지하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세상이 맨 아래부터 흔들릴 것이라던 사람들의 말은 틀렸다

그가 지어놓은 완벽한 성의 문제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쌓아올렸다는 것에 있다

존재는 그렇게 이어진 시간들의 관성이니까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 기억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잊어버리는 것들에는 공통점이나 방향성이 없다

그리고 난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공간도 그대로 다시 지어낼 수 있다

선별적으로 기억을 바꾸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를 이해했지만, 그와 같은 부류로 묶이는 건 극구 거부했다

그런 세밀한 것들을 놓치면 서사시의 맥락이 사라진다

맥락이 사라진 서사시에서 남는 건 영웅성, 대담한 모험담, 매력적인 개체로서의 인물들 뿐이다

그 지경에 갔을 때는 더 이상 서사시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다


그가 붙들고 있던 건 게임이었다

분명한 우와 열이 존재하는 세상의 게임에서 

그는 자신의 법칙이 호소력은 있지만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게 우월이란 순전히 관계의 문제, 그저 상대성 뿐인 상대성 그 자체의 병이었고

또 다른 게임일지라도 여전히 게임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였지만,

그에게 그것은 실체였고 법칙을 투영해야하는 세상이었다

어느날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가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이해를 하는 것도, 죽여버리는 것도 그나 그의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다행히도 선택지는 많았다

절대적으로 상대성의 문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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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집의 호박

2015.05.05 06:35 from 공간/서울



내가 사는 집은 지렁이집이다

지렁이가 주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전부 지렁이에게 주는데, 그러면 조금 지나서 모두가 탐내는 흙이 생기고 음식물 쓰레기는 사라진다

어느 날에는 비가 들쳐서 지렁이들이 단체로 탈출을 하는 바람에 물을 걷어내고 지렁이들을 주워담아야 했다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주는 건 좋은데, 스티로폼 박스 속에 지렁이-음식물-흙, 에서 끝나는 관계여서 고민을 좀 했다

나무를 심을까

그리고 누군가가 먹은 호박씨가 자랐다



그런데 이 호박싹은 '웃자란' 거라서 생명으로서 기능이 약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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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을 드린다


계약관계로 돈 주고 복 받는 거나, 마치 인과관계인양 배우는 노력해서 뭘 이루는 거나, 이성 안에서 분석해서 결론을 내는 것 말고, 치성을 드린다

치성은 소원이 있을 때 드린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정돈한다

여전히 헤매는 와중에 돌아보고 둘러본다

요르단의 지인들은 그걸 '추구한다'고 불렀다

독실한 무슬림인 형은 '진정한 종교인은 추구하는 거다. 그게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자유이자 의무이다'고 말했고, 무신론자 좌파인 동생은 끄덕였다


그립다

그립고 후회된다

그립고 후회되고 원망스럽고 막막하고 고맙다


다음 단계라는 데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제자리 걸음을 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랬고

지금은 여전히 그렇게 생겨먹은 데다가 작정까지 하고 한다

손을 잡아주면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게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꼭 가야하나 그 다른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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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그림 파라독스

2014.07.10 07:14 from 공간/서울


큰 그림을 보며서 동시에 중심을 지키려는 자들이

어쩔 수 없게 갖게 되는 이율배반이 있다

게다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거칠고 단단하게 그 가치를 지키려고 애써왔다면

혹은 그래서 그것을 삶의 기조로 만들기까지 했다면

그러면 그 흐름의 일관성을 위해서 그들은 때로 주변을 왜곡한다

똑같은 현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서 모든 것을 바꾼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굉장히 인간적인 왜곡, 뒤틀림을 말하는 거다

때로는 보상심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진실로,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그동안 지켜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 때문에 그렇기도 한다

그래서 중심을 지키기 위해 그 중심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 얘기를 쓰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기억들이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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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굴 재오픈

2014.06.10 08:44 from 공간/서울



이 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냐면

진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들으면 좀 활동적일 것 같은 자취를 가지고 있지만

실은 생긴대로, 내 상식 안에서 했던 일들이고

거기에다 공감능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어서

뭔가에 도전하여 이루거나, 노력해서 얻거나, 바꿔본 경험이 없다

그렇게 해서 배운 것도 없다

그래서 머리를 두 갈래로 묶고 다니면서 아래위로 똑같이 소리를 질러대는 삼십 대 어린애였다


그런데 지난 이 년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르륵 잠겨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점점 작아져서 사라지면 딱 편할 것 같은 그런 거였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보이는 만큼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내 세상의 중심에 여전히 서서 물고기 둥지를 들여다보는 여전한 곰 같았다


무엇보다 오해, 뒤틀린 소통에 대한 괴로움이 깊이 남아서

내가 노력한 만큼 겉으로는 참 괜찮은데

그 괴로움이 속에서 뭉쳐져, 단단히 굳어져, 언젠가 독이 될까봐 무서웠다

어떻게 될 지는 아직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게 되면서 할 말도 같이 잃었다

아랍어를 배우러 갔었는데, 말을 잃고 돌아왔다


평생 구경꾼의 자태로 살면서 

어찌 알아보고 찾아온 쑈꾼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걸로 내 세상을 만들어왔었는데

내가 뛰어들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자리가 눈 앞에 펼쳐지자, 나는 죽으려고 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먼저 편하고 싶었다

몸에 밴 버릇이 그렇게 스며나왔다

문득 생각나면 자다 일어나서 얼굴을 박박 긁을 수도 있는, 그런 쪽팔린 사소한 괴로움이었다

그렇게 돌같이 암만으로 돌아왔을 때

바다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다시 얼굴을 박박 긁었다


전달자와 통로는 좀 다르다

전달자는 교육자 같기도 하고 영업직 같기도 해서 취향에 안 맞지만

통로는 열리기만 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나는 조각보 보자기 같은, 통로 같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는 게 느려서 가는 길이 멀지만

가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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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습관과 능력을 관통하는

어떤 특징이란 게 있다

다부진 체격의 사람을 보면 왠지 성격이 강단질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일종의 경험치나

혹은 다윈을 모독하는 다윈주의자들의 참으로 합당한 상상력에서 나온 

골상학 등도 같은 맥락인데,


예를 들어 나는 괜찮은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지력이 있고

그런데 막상 나 자신의 본질은 개새끼고

그래서 수집품의 세부사항은 지력의 힘을 빌어 그럴 듯 하게, 하지만 결국 전체 콜렉션은 뭔가가 어설픈 쌈마이가 나오는 것.

그리고 내 몸도 그와 마찬가지로

괜찮은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기는 자기파괴적이고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딱히 문제가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센치씩 어긋나있다


내 삶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 있다

내 취향에 대해서도, 지식이나 행동 습관에 대해서도,

혹은 손가락 하나까지도 마찬가지다

끊어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지만, 막상 있다고 해서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닌

내 손가락들.


+


월요일에는 엄마와 인사동을 걸었다

엄마는 종종 작은 오리나 개구리들을 사곤 했었지만, 그날은 그냥 걷기만 했다

우리 엄마한테 이제 작고 예쁜 것들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엄마가 내게 직접 하지 못한 그 말을, 중간에서 듣게 된 좋은 친구가 전해줬다

나는 남편과 부모 사이에서, 그 둘이 아닌 또다른 물리법칙 때문에 여기로도 저기로도 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중간에서 국제미아에 과부노릇을 할 참이기 때문이다

그 전전날, 엄마는 당신이 결혼 때 받은 반지 두 개를 나에게 줬었다

징징대지 말고, 둘이 하나씩 나눠갖고, 담배 끊고, 미래를 생각하라면서.


나는 저런 사람의 딸이 될 자격이 있는걸까, 

그리고 또 저런 사람의 아내가, 저런 사람의 친구가, 저런 사람의 지인이 될 자격이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인사동을 걷다가

보자기 같은 게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개새끼로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이야, 뭘 해도 일센치 씩 어긋나는 걸...

그런데 그 와중에 보자기 같은 것도 있는 거다

길어서 잘리고 짧아서 남겨진, 그냥 모자란 것들이 모여서 된 예쁜 거.

뭔가 어긋난 넝마들을 가지고서

또 그 본질을 속이지 않고서도 만들 수 있는 

예쁘고 쓸모있는 거


+



타고난 교만이나 가식이나 분노를 눌러주는

별 거 아닌 일상적인 면역체가 있다

예를 들어, 길에서 억압된 분노를 쏟아내는 멍멍이에게는

웃으면서 '아 미안해요' 하고 가볍게 먼저 걸어오는 말이

목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자극이 일상적으로 반복 되면, 단단한 성질일지라도 뭔가 다른 모양새로 바뀌기도 하는데,

그 한 땀 한 땀을 길을 가며 우연히 만나길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게 가족이나 친구나 책이나 노래 처럼 바로 옆에서 습관처럼 주어질 때는

일종의 뜨개질이 된다

말하자면, 존재론적 보자기를 만드는 일상적인 뜨개질인 거다


나는 좋은 것들을 주변에 많이 가지고 있구나

언젠가 월급을 굉장히 많이 번 적이 있는데, 딱 그 즈음에 아팠다

그래서 그걸 전부 병원에 다니며 상담에 약에 재활에 운동에 쏟아부어야 했다

나는 그 전에도 후에도 그렇게 많은 월급을 받은 적이 없고

그 돈이 없었더라면 병원에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은 얼마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거다, 따위 속세의 교훈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우주가 하는 미묘한 뜨개질 얘기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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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2013.04.09 12:58 from 공간/서울 아닌 곳


 

반경삼백미터, 라는 게 있다

곰한테 있어서 겨울잠을 자려고 고심해서 마련한 곰굴같은 데다

그 반경 밖에 있는 건 사실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없는 것들인데,

문제는 항상 국경이다

 

국경에 있는 것들, 낯선 사람들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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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대개 아련하게 떠오른다고 하는데(나도 그렇다)

어떤 일을 현재, 지금 여기에서 겪으면서도 아련한,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은 추억이 되면

가슴을 저민다

 

과거의 관성과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버린 후

나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과 악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단순한 물리법칙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은

꼭꼭 감추어져 보이지 않았었다

너무 낯설어서

나는 심지어 놀라지도 않았다

 

초겨울 목이면 겨울냄새가 났었다

술이 깰 즈음 새벽에도

새벽냄새가 났고

비가 오려고 할 때는 젖은 시멘트 냄새가 났다

지금은 가을에도, 새벽에도, 비가 올 때도

그저 춥다

 

다시 또 여름이 왔고, 내가 올해 하려던 일들은 실은

지난 여름이든가 아니면 그 전 해 여름에 하려던 것이었다

그렇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면 얼굴이 달라져 있다

남아있는 기억은 없지만

몸은 손끝에 붙은 자취까지도 떨어져나가질 않는다

그리고 어떤 노래들은 확실히,

그리고 정확히,

그 시절을 불러온다

  

 

 

 

나의 두려움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온 것이다

내 분노도 가슴이 아니라 몸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걸 참으려면 몸의 떨림이 멈출 때까지 울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리튬을 내 마음대로 끊은 것에 대한

단순한 화학적 반응이라고 한다

 

 

 

 

 

+

 

 

 

 

 

I'm dreaming about the day when I can see you there...my side

by my side

...

 

I stop to say hello

'cause I think you should know, b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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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Dong-Ju(or Yun, Dong-Ju)   <Prologue>

"Let me have no shame
Under the heaven
Till I die
Even the sound of wind
passing the leaves
Pained my heart.
With a heart singing stars.
I will love all dying things.
... And I must step my path
That's been given to me.

Tonight also
The wind sweeps past among the stars."

(translation by The Korea Times, 2009)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해방 6개월 전에 일본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윤동주 시인

작곡가 윤형주의 아버지는 그 조카의 유해를 가지고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시도 노래다. 시 그 자체도 노래다. 작곡으로 시를 건드리지 말거라" 라고 윤형주에게 말했다고 한다.

 

 

 

+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세대에 이르자 폴 발레리는 1893년 시르크 데테 원형건물에서 개최된 라무뢰 연주회에 대하여 언급한 다음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홀의 맨 뒷자석에는 벽을 이루며 늘어서 있는 입석 손님들의 그늘 속에 한 기이한 감상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바로 각별한 호의를 입어 시르크 회관에 입장하곤 하는 스테판 말라르메였다. 그는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마력에 매혹되긴 하지만 동시에 고차원적인 라이벌 의식에서 오는 저 순결한 고통을 맛보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항변하고 잇었다. 그는 또한 위대한 언어예술가로서 저 음의 신들이 그들 나름대로 내뿜으로 퍼뜨리는 바를 판독하는 것이었다. 말라르메는 어떤 숭고한 질투심에 가득 차서 연주회장을 나섰다. 그는 너무나 강력한 음악이 그에게서 훔쳐간 신비스럽고도 중요한 그 무엇을 우리의 예술을 위하여 다시 찾아올 방법이 없을지 절망적으로 모색했다. 시인들은 그와 더불어 눈이 부시고 풀이 죽어가지고 시르크 회관을 나서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시인들, 눈부심, 풀죽음(눈부심이란 빛이 너무 강해서 눈이 먼다는 뜻)이라는 세 마디 말이 지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시인들이라면 필시 그럴 것이다......음악은 시에 너무 가까워서 시의 생명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 그 점이 바로 멜로디로 옮겨놓으면 불협화음으로 변해버리는 시의 위험이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내 시와 나란히 음악을 갖다놓는 것을 금지한다!"  ......

음악이란 것이 과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엄격한 방식으로......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

 

 

 

오, 그래야 하는 군, 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대로 깊이 깊이 공감하는 거다

마르셀 칼리페 Marcel Khalife는 시인 다르위시 Mahmoud Darwish의 시로 노래를 만들었고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 음악들은 아름답다

온 삶과 음악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마르셀 칼리페와

나는 느낄 수 없지만, 아름다운 아랍어의 운율을 현대적으로 끌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마흐무드 다르위시와

그들이 서로 바라보며 그 시와 음악을 사람들을 향해 뿜어내는 건

그 자체가 아름답고도 의미있는 예술이었다

 

나는 어어부프로젝프밴드를 몹시 좋아하는데

백현진의 '시'도 그의 음악과 함께 하나가 된다

그 음들이 아니면, 도무지 그 말들이 살아나지가 않는다

 

 

+

 

 

나는 해독이 안되는 세상을 분석하려 애쓰기 보다는

나 좋을 대로 쪼개고 재배열해서 멋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문제 상황이 생겼지만 도무지 적절하게 대처할 수가 없을 때면

그 문제가 아예 없었던 척을 한다

그 짓거리를 하다가 쌓여서 마음의 병을 키우긴 했지만

어쨌든 단기적으로는 꽤 효율적인 방법이다

 

최근에 본 시리아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나도 카메라 앞에서 솔직한 척, 드러낼 수 있는 범위가 있고(이것만으로도 꽤나 솔직하게 들춰낸 건 맞다)

카메라를 꺼주시겠어요, 한 다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테면

내가 이스라엘 트랜스라고도 불리는 싸이트랜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 디제이들을 몹시 좋아한다는 건 전자에 해당하고,

...

메탈리카가 텔아비브에서 공연을 했으며, 나는 침묵을 했고, 그 2009년을 내 인생에서 통째로 들어냈다는 사실은

후자에 해당한다

 

효율적으로 뭔가를 하려면

일반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방을 치울 때도 마찬가지다

서재에 있는 책상 오른쪽 두번째 서랍에는 내가 수집하는 지포라이터 부수물들이 들어 있는데

정리한 지가 오래돼서 껍데기랑, 손보지 않은 라이터 몇 개랑, 라이터 돌이랑 심지가 엉켜있어서

그것만 정리하는 데도 하루는 걸릴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절대 방을 치울 수가 없다

방을 치울 때도 디테일은 과감하게 무시하는 일반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음악과 시와 이야기(삶이라고도 한다)에 대해 헷갈리는 상태를 내버려두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친구들이 독일에 있는데

나는 소심하게 혼자 루프트한자 항공 보이콧에 참여 중이고

가장 싸고 편하게 독일에 갈 방법이 없어졌다

 

최근에 아픈 아기를 위해 결혼 신고를 하게 되는

어떤 비혼자 아가씨와 청년의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람이 시스템에 대항하는 게 어려운 건

폭력도 폭력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가능성(좀 더 편하거나 쉽거나...혹은 목숨을 구하거나 하여튼)을 눈 앞에 두고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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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THE CONNECTION.
"And suddenly, I looked at the bull. He had this innocence that all animals have in their eyes, and he looked at me with this pleading. It was like a cry for justice, deep down inside of me. I describe it as being like a prayer - because if one confesses, it is hoped, that one is forgiven. I felt like the worst shit on earth."

This photo shows the collapse of Torrero Alvaro Munera, as he realized in the middle of the his last fight... the injustice to the animal. From that day forward he became an opponent of bullfights.
Via McKenna Grace Fisher
Via Synthian Sh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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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Bullfighter Tells His Story

INTERVIEW BY TONI L. QUEROL
VICE.COM
PHOTO COURTESY OF ÁLVARO MÚNERA

A bull named Terciopelo [Velvet] gored the Colombian bullfighter Álvaro Múnera, aka “El Pilarico,” in 1984, confining him to a wheelchair for life. Múnera was 18 years old back then. His best friend, “El Yiyo,” was gored to death months later, and the manager of both bullfighters committed suicide three years after that.

Múnera became a hardcore animal rights defender and nothing less than the Antichrist for tauromachy [the art of bullfighting] aficionados. He currently works in the Council of the City of Medellín, using his position to defend the rights of disabled people and to promote anti-bullfighting campaigns.

vice.com: How did you decide to be a bullfighter?

Álvaro Múnera: I was born in Medellín, where my dad had taken me to see bullfights since I was four years old. The atmosphere at home was totally pro-taurino [taurino is the Spanish adjective for everything relating to bullfighting culture]. We didn’t talk about football or any other thing, it was just bulls. Bullfighting was the center of the world for my dad. Since I grew up immersed in this taurino atmosphere, it was logical that at the age of 12, I decided to be a bullfighter.

I started my career and five years later I became successful at the Medellín Fair. This was when Tomás Redondo, who was the manager of El Yiyo, agreed to be my manager too. He took me to Spain. I fought 22 times in Spain until on September 22 of 1984, I was caught by a bull. It gored me in the left leg and tossed me in the air. This resulted in a spinal-cord injury and cranial trauma. The diagnosis was conclusive: I would never walk again. Four months later I flew to the US to start physical rehab, and I seized the opportunity to go to college. The US is a totally anti-taurino country, and due to my former profession I felt like a criminal. I became an animal rights defender. Since then I’ve never stopped fighting for every living being’s right not to be tortured. I hope I will continue to do so until the very last day of my life.

vice.com: Did you ever think of quitting bullfighting before that bull confined you to a wheelchair?
Below right: Munera in his youth in Spain shortly before sustaining his life-changing injury.

Yes, there were several critical moments. Once I killed a pregnant heifer and saw how the fetus was extracted from her womb. The scene was so terrible that I puked and started to cry. I wanted to quit right there but my manager gave me a pat on my back and said I shouldn’t worry, that I was going to be an important bullfighting figure and scenes like that were a normal thing to see in this profession. I’m sorry to say that I missed that first opportunity to stop. I was 14 and didn’t have enough common sense. Some time later, in an indoor fight, I had to stick my sword in five or six times to kill a bull. The poor animal, his entrails pouring out, still refused to die. He struggled with all his strength until the last breath. This caused a very strong impression on me, and yet again I decided it wasn’t the life for me. But my travel to Spain was already arranged, so I crossed the Atlantic. Then came the third chance, the definitive one. It was like God thought, “If this guy doesn’t want to listen to reason, he’ll have to learn the hard way.” And of course I learned.

vice.com: Is there a lot of regret that you let it get to the point where you became paralyzed?

I think it was a beautiful experience because it made me a better human being. After convalescence and rehabilitation, I started working toward the goal of amending my crimes.

Many animal rights defenders applauded your decision, but many others say they can’t forgive you. They even call you “mass murderer” to this day.


TERCIOPELO, the bull that wounded Munera. Long departed,

There are people who think that I’m just resentful for the accident. That’s absurd. I’ve rebuilt my life and dedicated it to helping hundreds of disabled people get ahead, in addition to fighting for animal rights. On top of that, I don’t know of any resentful person defending his victimizer. A bull confined me to a wheelchair and another one killed my best friend! I should reasonably be the last person on earth to care about bulls.

But as for the people who cannot forgive me for what I did to so many bulls? I have to say that I understand them and agree, to some extent. My only hope is to have a long life so that I can amend my many crimes. I wish to have the pardon of God. If He doesn’t pardon me, He has good reasons not to do so.

vice.com: Chiquilín, another repentant bullfighter, claims to have seen bulls weeping. He says that he cannot kill even a fly nowadays.

I take my hat off to that man. He’s a real hero who learned his lesson through reason and thinking.

vice.com: Are you in touch with any other repentant bullfighters?

Truth be told, I don’t know if there are more repentant bullfighters. What is indeed known is that there are more and more ex-bullfighting aficionados every day. These are people who realized how macabre the show they were supporting really is, and so they stopped going to the bullrings. Sometimes they tell me their personal experiences and thank me for the articles I write.

vice.com: What was the decisive factor that made you an animal-rights defender?

When I went to the US, where I had to face an antitaurine society that cannot conceive how another society can allow the torture and murder of animals. It was my fellow students, the doctors, nurses, the other physically disabled people, my friends, my North American girlfriend, and the aunt of one of my friends, who said I deserved what happened to me. Their arguments were so solid that I had to accept that it was me who was wrong and that the 99 percent of the human race who are firmly against this sad and cruel form of entertainment were totally right. Many times the whole of the society is not to blame for the decisions of their governments. Proof of this is that most people in Spain and Colombia are genuinely anti-bullfighting. Unfortunately there’s a minority of torturers in each government supporting these savage practices.

vice.com: If the people of both countries are against bullfighting, why do bullfights still exist?

Well, I believe that bullfighting eventually will disappear if it doesn’t remove its elements of torture and death. There’s a generational shift in values, and most well-educated young people are against cruel traditions.

vice.com: In your articles you’ve associated tauromachy with a lack of culture and sophistication on the part of its aficionados. Isn’t this a bit simplistic? How do you explain that intelligent people like Ernest Hemingway, Orson Welles, John Huston, and Pablo Picasso were into bullfighting?

Look, to be a talented person doesn’t make you more human, more sensible, or more sensitive. There are lots of examples of murderers with a high IQ. But only those who have a sense of solidarity with other living beings are on their way to becoming better people. Those who consider the torture and death of an innocent animal a source of fun or inspiration are mean-spirited, despicable people. Never mind if they paint beautiful pictures, write wonderful books, or film great movies. A quill can be used to write with ink or blood, and many terrorists and drug dealers of the 21st century have university diplomas hanging on the wall. The virtues of the spirit, that’s what really counts in God’s eyes.

Thanks to Julio Ortega Fraile (findelmaltratoanimal.blogspot.com)
By TONI L. QUEROL 3 years ago

(http://open.salon.com/blog/addisonpg/2012/03/05/alvaro_munera_an_ex-bullfighter_tells_why_he_became_an_animal_rights_acti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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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세요..
1. 왕재산 사건 1심 판결문
2. 고철,님이 정리해주신 간단 정리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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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잡아넣는다
2. 당연히 그들은 변호인단과 함께 증거를 수집해서 논리적으로 무죄를 주장한다
3. 그 증거들을 근거로 반국가단체 결성은 무죄라고 결론이 난다(구형 최고 무기징역)
4. 대신 그들이 적극적으로 증거를 제시하고 무죄를 주장했다는 이유로(방어권 남용) 가중처벌까지 더해서, 법원은 유죄를 선고한다(1심 판결 최고 9년)
5. ......
6. 이해가 가는가?
.
.
.
.
.
.

7. 안가면 당신은 정상인.

이번 판결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판결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고백하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왕재산 사건'
놀랍도록 어처구니없는 간첩사건
언론은 이 뻔한 논리없음조차 다룰 생각이 아예,
아예 없다


민주주의를 글로 배워서 그러나...


아니지, 민주주의는 우리가 저들에게 주권을 합법적으로 내맡긴 거 맞지
그럼, 민주주의를 너무 제대로 배워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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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 깔맞춤

2012.02.27 01:11 from 공간/서울

나는 이 광고가 마음에 든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저 사람들이 따로따로 나온 컷들(예를 들어 뒷줄 가운데 있는 청년은 피자를 입에다 구겨넣고 있다)도 있는데
그게 더 좋다


스타일은 때로
표면적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소피스트들은 '자신의 철학에 맞게' 옷과 신발까지 깔맞춤을 했다고 하던데.

가끔 노숙자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왜 중국이나 한국이나 팔레스타인이나(다른 나라는 아직 못겪어봤음)
노숙자들의 패션은 그렇게나 멋진 것일까
특히 정신이 약간 나간 사람들(예를 들어 허공에 대고 말을 한다든가)의 경우가
특히 더 그렇다


+


첫단추를 잘못 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애써 묻어두었더니
나중에는 애쓰지 않아도 혼자 잘 묻혔을 뿐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거기다가 얼마나 공을 들여 둘둘 감싸고 동여매고 틀어막고
옷을 껴입히고 장신구를 달아댔는지
그걸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찾아야 할텐데
매번 여전히 '그때의' 스타일을 잃지 않은 고고한 의복들(최근 사들인!)을 입고 있으니
또 매번 그걸 벗겨내는 반복반복반복반복을 하는 중이다

내 눈이 가려져 남이 보이지 않을 때는 어찌나 당당했던지.

십자로 짓이겨져 붙어있던 눈은 떠졌는데
대신 화염을 내뿜던 입이 십자로 봉인되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뭐가 그리 두려운지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엄마아빠가 오자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내게 담요를 덮어주려는 걸 내가 싫다고 했는데,
엄마는
'가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추울까봐 그러는 거야.'
라고 하셨다

그 말,
실제로도 들어본 적 있다



+



어딜가든, 무엇을 걸치든,
내가 한 가운데 연필심을 박고 있는한
내가 걸어가는 곳마다 시커멓게 자취가 남는 건 바뀌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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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귤

2012.01.21 04:28 from 공간/서울

설거지하고 있는데 엄마가 식탁에다 귤을 까두었다
- 귤이 하나 냉장고에 남아있었어. 얼마나 외로웠을까, 먹어줘야지
하고 엄마가 말했다
최근에 베란다에 둔 배랑 사과가 맛있어서 냉장고를 확인 안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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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라는 데서 일했었다
<팔다리>는 민주주의를 '지양'하는 단체였는데,
이끄는 역할을 하는 분 건강이 흐느적, 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일을 하는 단체 중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라는 데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팔연대>는 진짜 단체같다
그러니까 구성원이 바뀌어도 색은 달라질지언정 큰 맥락은 굴러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시기 팔연대의 특정 활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팔연대가 하는 일에 방긋 웃으며 응원을 하고, 참가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
댓글이라도 하나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팔연대의 활동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이거나(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취향을 말하는 거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것들에서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팔연대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만든 변화다


2.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는 문화교류 단체였다
사실 '문화'란 게 범위가 무지막지 하던데 우리가 주로 다뤘던 건,
잘 나가는 음악, 잘 나가는 글, 잘 나가는 그림, 등이었다
나는 때로 팔다리의 일들을 즐겼고, 어떤 일은 벌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권위적'이라며 투덜거렸다
팔다리를 이끌던 사람과 나는 기본적인 눈은 비슷했는데
취향, 특히 문화에 대한 취향은 달랐다
그는 컴퓨터에 손만 대도 망가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웃는 표정으로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작가였고, 난 음악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린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에 가서도 게스트하우스에 쳐박혀 술만 마셔대서 친구들을 걱정시켰고
('팔레스타인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나와서 좀 돌아다녀' 라는 말을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는 술집에 쳐박혀서 아락과 맥주를 마시며 꼬장을 부려댔다

나는 팔다리에서 문화에 대한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라말라에 넘쳐나는 문화적 활동들, 외국 NGO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한 발만 내디뎌도 우리 역시 그 반경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난 대부분 내 존재가 민폐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팔레스타인이건 어디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것에 대해서는 우선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가 다루었던 건 '질 좋은' '고급 문화'들이었는데,
좀 더 대중적인 것들, 특히 영화처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그들의 노력이 '조잡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눈은 항상, 계속, 쭉, 나를 따라다녔다


3.
나는 '분노'를 가지고 이라크에 갔었다
이라크에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도 안썼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야단을 치고, 걱정을 해줬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 쉽다는 스페인어와 남미에 가겠다는 막연한 인생계획과 전공이었던 불교를 갖다버리고
말도 안되게 어려운 아랍어와 종종 여행금지지역이 되는 분쟁지역들과
복잡한 역사를 무조건 같이 공부해야하는 이슬람으로 전향했다
전향해야했다
그렇게 되었다
사랑은 어쩌다가 싹텄다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실체가 뭐였든지간에 내 눈에 비친 것만 보자면
명예욕도 있었고, 관성도 있었고, 희생정신도 있었고, 모험심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시 말하지만 분노였다
대개 명예욕을 가진 인간들이 뻘짓을 해댔고
그래서 나는 그 인간들과 명예욕을 싸잡아서 욕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니' 라는 질문까지 들었지만 난 끄떡도 안했다
하찮고도 하찮아 보였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간혹 그런 그들을 위해 통역을 해야할 때면 토악질을 했다
성질이 나면 주변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런 나를 참아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뭔가를 찾아갔던 거다


4. 
나는 대학에서 동성애인권운동에 막연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은 그때도 명확했고, 인권운동단체들의 방식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대학에서 세미나를 구실로 몰려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게 내 방식이었는데
때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할 때면
'보여주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전혀 이상하지도 다를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우리들이, 게이고 레즈비언이고 트랜스젠더고 하여튼 그렇다는 걸
눈 앞에서 자꾸 얼쩡거려서 익숙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제를 열었고, 영화제에 참석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사랑에 빠졌다
난 첫사랑을 8년째 짝사랑 중이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그 인연 중에 청년이 있었고,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헷갈리지 않는 걸로 고민하기 보다는
레즈비언-이성애자-바이섹슈얼-에라모르겠다, 로 전향해갔고
그 과정이 결코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냥 그게 내 삶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부류 중 '정치적 레즈비언'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성애자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여성과의 연대를 섹슈얼한 부분까지 확장한 셈이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점들은 남아있다
나는 애초에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간이라, 그렇게 모호한 지점들이 눈에 밟히면 허공에 붕 뜬다
어떤 아가씨들은 성폭력의 경험을 안고 있다
그들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지언정 섹슈얼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때도 있다
또는 애초에 남자를 멀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여성 게이, 즉 레즈비언 사회 안에서 관계를 찾고 안착해 가는 것을
나는 '당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인정하거나 판단하거나 용납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삶이었다
나 자신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정치적 레즈비언들만은 싫었다
그들의 노력, 시도, 주장, 그게 뭐든 간에 거기에는 '가식'이 들어있었다
그건 실제로 그 삶을 '삶'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든 고통과 사랑과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5.
방법적인 타당성, 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주장은 노동자가,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퀴어운동은 이반들이,
때로는 '그들만이' '제대로'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들 말을 듣고 함께 웃어줄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거다

대안문화판에는 재수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나는 부모가 의사고 교수지만 학교를 자퇴했고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요, 하고 비스듬히 앉아서 말하는 인간들.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 분리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수박이 차있는 냉장고가 있는 본가와, 그럴듯한 대학에 적이 있었다
때로 나에게 그런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실속없는 환호보다는 진국, 그러니까 평생 나를 사랑해주시고 내 곁에 있어주신 부모님이 훨씬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내가 받고 태어난 환경과 내게 주어진 것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감사하되, 좀 다른 길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좌표를 잘 찍을 수 있도록
편협하되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나는 순식간에 '강남좌파'가 되었는데
즐기기로 했다
덕분에 강남구는 선거장소가 크게 바뀌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따박따박 투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6.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발을 딛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의 의미다
아무리 추워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난 팔레스타인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싸이트랜스, 라는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강한 쪽에 이스라엘 DJ들이 많아서 이스라엘트랜스,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공연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끼기도 한다
나는 싸이트랜스 파티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가슴이 조여든다
싸이트랜스에 대한 보이콧은 미뤄둔 상태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이다



7.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난 팔레스타인이, 이라크가 희생자라고 해서, 거기 내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가 '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이스라엘은 '악'이 맞다
그게 팔레스타인을 '선'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도 개새끼들은 널렸다
허벅지를 슥 만지고 가는 개새끼들도 있고, 저질스러운 욕설을 뱉는 것들도 있고
더 어렵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자 자태가 몸에 배서 오히려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고
난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으려드는 좋은 친구도 있었다

내가 Rim Banna를 알게 된 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라고 해서 Rim Banna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Rim Banna는 진실로 좋다

그 자태는 사실 명확하면서도 모호하다
정의가, 분노가, 의무가 예술로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정의나 그 분노나 그 의무가 예술에 앞서있다면
그건 훈련소에 맡겨놓은 강아지와도 같다
때로 반려동물 방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 푸들 꼬랑지를 꽃분홍으로 염색하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염색은 좋아하지 않는 편)
- 개가 저렇게 살 찔 때까지 먹이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론 별 생각 없는 편)
- 목줄이 너무 쪼여보여요, 동물학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진이 그렇게 나오는 것일 뿐 주인은 강아지를 사랑한다)
- 저럴 바엔 안락사시키는 게 낫지 않나요? (어려운 문제다)
- 저렇게 훈련을 잘 받은 강아지라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은 좋아하지 않지만 학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 어떤 훈련은 학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강아지는 이상한 걸 안 먹여도 살이 쪄가기도 한다

어렵다
명확하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떤 동기로든 예술로 다가갈 수 있다
좀 더 조심히 다가가는 게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그 애정이 살아있는 거라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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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하면 왠지
두더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두더지의 물고기 버전.

지인이 곰치국을 먹었다고 한다
난 요즘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데, 다 심리 상담과 약과 신앙과 나의 노력 덕분이다
아, 부모님이 항상 나를 기다려줬다는 게 먼저다
그래서 부모님과 놀러를 다니는데
어느 해안도로를 따라서 어느 해수욕장에 들어갔더니(고유명사 기억 잘 못함)
건물에 온통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하고 써 있었다
곰치국이 테레비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테레비를 안봐서 잘 모르겠다
곰치국을 먹고 온 지인은
'조낸 맛있어요'
라고 했다
하긴,
그러니까 온 사방이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이었겠지

곰치국, 하면 나는 두더지국, 하고 어감이 같다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고, 오히려 먹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냥 이름에서 나는 느낌이 그렇다
두더지국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마 오랫동안 페스코채식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페스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육고기는 안먹지만 물고기는 먹는다



   
    
 

   
  

곰치 곰치 곰치 곰치 곰치










곰치가 쳐다본다






나는 채식을 안 한지 오래됐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홍초불닭을 먹기 시작했고
수년 동안 안먹은 걸 보충하려는 듯, 고기를 골라먹기 시작했고
안주도 막 고기를 시켜 먹다가
몸이 아파버려서, 실은 고기 때문에 아픈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원래도 물고기는 좋아하는 편인데
아구찜도 잘 먹고 회도 잘 먹고 홍어도 엄청 잘 먹는다
그러니까 곰치국도 문제없다

하지만 굴이나 멍게는 싫다
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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