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14년 8월.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보이콧

 

2014년 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이스라엘의 봉쇄 이후 세번째라고 하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EBS국제다큐영화제, EIDF가 열렸다. 올해 EIDF가 내세운 이름은 이스라엘, 이었다.

그런 시기적인 맥락이 동력이 되어 이스라엘이 가진, 정확하게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이름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영화인들과 활동가들(팔레스타인 평화연대와 PACBI), 개인들이 연대한 문화보이콧 연대쪽이 내건 이름(점령, 학살자인 이스라엘)이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이름이기 이전의 그냥 저기 존재하는 또하나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미국, 영국, 프랑스, 대만, 한국, 이스라엘,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이를 뚫고 나왔고, 문화보이콧 연대의 요구는 순식간에 받아들여지고 EIDF는 브랜드 이름으로의 이스라엘을 행사에서 모두 철수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니까, 프로젝트로서 이번 문화보이콧 운동은 성공인 셈이다.

시기적인 맥락이 동력이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가자지구 폭격, 그 전에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그 전에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제도적? 폭력, 고문, 감금, 살인, 모욕, 강탈,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이름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라는 사실은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학술/문화적 보이콧을 포함한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운동을 전세계에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우리가 잊기 쉬운 건 이 단순한 순서상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번에 특히, EBS가 '처하게 된' 상황에서 본다면 '하필', 지금 그 맥락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동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는 사회나 시대를 분석하려는 게 아니라, 그 알 수 없는 힘에 영향을 받는 우리들이 던지는, 개인적으로 너무 합리적이거나 타당해보이는 질문들이 나오는 과정을 대안 없이 이야기해보고, 혹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들이 우리의 앞길을 얼마나 막거나 결정해버릴 수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드러내보고 싶다.

두 가지 말할 부분이 있다.

첫째로, 학술문화보이콧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삶의 가치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전략이다. 그래서 EIDF를 상대로 한 문화보이콧 운동은 성공이고, 문화보이콧 자체가 상대를 배제해버리려는 모습으로 비춰질지라도 그 안에 상대가 악이거나 우리가 선이거나 하는 가치로서의 이분법이 없으며, 무엇보다 문화보이콧을 행동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스로 그 안에 침잠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일깨우는 기능이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화보이콧연대에 참여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고, 앞으로 학술문화보이콧을 행동으로 옮길 때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둘째로, 학술문화보이콧을 포함한, 개개인과 사회가 관계를 맺고 서로를 해석하는 큰 틀과 그 안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강력하게 드러나는 구체적인 판단, 반응, 행동지점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삶의 태도 문제로 즉각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문화보이콧을 삶의 한 선택으로서 취할 때, 그동안 살아온 삶의 다른 지점들과 상충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시급하게 받게되는 것이다. 문화보이콧이 결국 삶의 문제라고 말할 때, 그건 이 지점에 대한 것이었다. 문화보이콧이 가치로서 지배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문화보이콧을 선택하게 만드는 우리 각자의 삶의 흐름 안에서 구체적인 충돌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한다는 의미다. 


1. 질문들

- 이스라엘 다큐특별전을 기획한 EBS다큐영화제 측으로부터 처음 나온 질문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잘못을 이스라엘 국민, 즉 이스라엘 감독 개개인과 그 작품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러면 이스라엘 감독들은 무엇을 찍으라는 겁니까?"였다. 여기에는 질문 그 자체와 질문을 한 쪽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스라엘 특별전을 기획했고 '하필' 시기가 그래서 '난데없이' 나쁜놈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그들 입장의 상황을 둘 다 볼 수 있다. 

또, 정치가 예술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하면 안 되듯이, 정치적인 입장으로 예술과 그 가치나 역할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광주 비엔날레에서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이 이슈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 작품을 철수시킨 윤장현 광주시장은 운동가 출신이다. 

그럼 우리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해주는 입장에만 있느냐 하면, 아니다. EIDF보이콧의 다음 단계로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열었던 땡땡영화보기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퀴어를 다룬 영화 <성스러운 도시> 상영회가 있었다. 보이콧연대에 참가했으며 이 행사를 진행한 손희정 선생님은, "BDS운동(보이콧 운동)이 힘을 받고 전면에 나서면서, 그 안의 소수자 목소리, 즉 퀴어나 여성의 목소리가 묻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의 목소리를 냈다. 또 참가했던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강명진씨에게도 "이스라엘 퀴어단체 쪽에서 연대를 요청할 때 어떻게 응할지," 즉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입장 사이에서 시급한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 목소리를 내왔던 개인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진지한 고민이 주어졌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에게 문화보이콧이 낯설어서 생기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확고한 입장을 갖게 되어 막힘이 없게 될 때가 오는 그런 편한 것들이 아니다.

이미 우리보다 백만배나 더 관련 담론에 노출되어 있던 곳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국의 Tricycle Theater는 UK Jewish Film Festival(UKJFF)에 대한 

대화, 화해, 협력이 이런 고착된, 즉 문제시되는 국면에 해결책이 될 것이며,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될 것이라는 성명서가 나왔다. 대화, 화해, 문화, 다양성. " We both profoundly hope that those who take differing views on the events of the last few weeks will follow our lead and come together to acknowledge that dialogue, reconciliation and engagement will resolve points of difference and ensure that cultural diversity thrives in all communities. "




2. 보이콧, 특히 학술문화보이콧에 대해 생각할 것들.

보이콧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자체의 당위성, 그리고 보이콧의 대상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리감이다.

비교적 받아들여지기 쉬운 상품 보이콧에서도 그 대상이 맥도날드나 소타스트림 탄산수라면, 햄버거나 탄산수를 먹는 게 일상적 동선과 심하게 겹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이상한 결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맥도날드 대신에 버거킹을 갈 수도 있고, 수제 햄버거를 먹을 수도 있고, 짜장면을 먹으러 갈 수도 있다. 소다스트림의 탄산수 역시,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 탄산수가 뭐고 소다스트림은 또 어디 있는 거라고 보이콧을 하라는 건지 잘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소다스트림 탄산수를 사먹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냥 주변에 널려있지도 않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다. 이건 의지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오는 거리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삼성처럼 범위가 넓어지거나 존슨앤존슨처럼 보이콧 이유에 거리감이 있을 때는, 일상의 당위성이 우선순위를 되찾는다. 간단하게, 삼성의 지배성 자체를 보이콧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사방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애써 htc 핸드폰을 구해서 썼는데도 문득 삼성화재 보험을 들고 있던 건 잊고 있거나, 아버지가 '역시 에이에스는 삼성이지'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그저 흔하게 써서 계속 써온 샴푸, 클렌저, 로션이 존슨앤존슨 제품인지

그런데 하물며 이스라엘산 자몽이야. 자몽을 사러가서 굳이 원산지를 확인하고 이스라엘산 딱지가 보이면 단호하게 내려놓는, 그 일상적 행동이 사소할 수 있는 데 비해, 그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는 보다 강하고 분명한 공감을 요구한다. 그럼, 잘 보이지도 않는 글씨로 적혀 있는 이스라엘산 레몬을 사용한 레몬음료 캔은? 그런 걸 보이콧 할 구체적인 목적이 보이지 않는데 굳이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보이콧이 공고한 가치가 아니라 선택적인 전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다양하게 드러나는 선택의 모습들을 받아들이기 쉽다. 맥도날드를 보이콧하면서 버거킹에 간다고 비웃을 일은 꼭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이유로 그 선택을 취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콧은 상징적일 수도 있고 전략적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가치일 수는 없다. 


학술문화 보이콧, 특히 문화보이콧의 경우에는 이 거리감의 문제가 갑자기 문제가 된다. 우리가 살아온 관성이 있고, 그 관성이 내세우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를, 대단히 중요해서가 아니라 해오던 것이라서, 그 해오던 것이 공격을 받는 경우에 열과 성을 다해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3-1 이스라엘. 우리가 생각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3. 팔레스타인. 우리가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4. 다시, 질문들

- 피해자나 약자가 선이라서 편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건 피해자나 약자가 아니며, 운동의 바른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피해자나 약자의 몫이 아니다.

- 시급하거나 중요한 문제인가가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방향성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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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보이콧 ㄱ. 상품 보이콧

우리는 아무래도 필요 기능을 구입한다기보다는

스타일, 만족, 소속감 등 욕망을 구입하는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이스라엘 상품에 대한 보이콧이 자그마치 일순위가 되었다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against Israel) 운동은 2007년 설립된 운동으로

이스라엘 제품, 회사, 문화, 학술기관 등 전반에 대한 국제적인 보이콧을 포함한다 (http://www.bdsmovemen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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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팔연대 뎡야님 덕분에!) / 손봐주신 분 : 오수연

http://mondoweiss.net/2012/03/beinarts-zionist-bds-can-only-help-entrench-the-occupation.html#comments

 

 

 


Beinart’s ‘Zionist BDS’ will only help entrench the occupation

by Gabriel Ash on March 20, 2012 24

 

 

들어가기전에.

 

- Peter Beinart

: 피터 바이나트. 미국의 정치인. 71년에 태어나 혈기왕성한 젊은놈. 유대이주민 출신. 집안이 인권, 학문, 비평 등이 가득한 분위기였다고 함.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찬성했다가 후에 철회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비판하는 등, 자유주의, 인도주의, 법치주의적 관점을 취해서 특히 중동문제에 있어서 대안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음. 하지만 실제로는 시오니스트임(이건 독실한 유대인인 것과는 별개의 정체성임). 그는 이스라엘에게 부과된 '과도한' 비도덕성 때문에 이스라엘의 존재가 흔들리는 것을 경계한다. 2012년 책 <시오니즘의 위기 The Crisis of Zionism>을 써서, Green Line 을 침범한 이스라엘 영역을 '비민주적 이스라엘'로 규정했다. 또한 최근 세계적으로 퍼져가는 이스라엘 제품, 문화, 학술활동에 대한 보이콧을 옹호하면서, 비민주적 식민촌settlements 제품에 대한 보이콧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대한 비판을 먼저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건국이념과 존재 자체(Green Line 이내의), 그리고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몸체로 공고히 하고, BDS 등 보이콧 운동을 포함한 반이스라엘 운동으로부터 그 몸체를 보호하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 Green Line

: 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주변 중동국가 사이에 맺어진 휴전협정에서 결정된 경계선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67년 6일전쟁이후 점령지인 서안지구West Bank, 가자지구Gaza Strip, 골란 고원Golan Heights, 시나이반도Sinai Peninsula와 이스라엘 사이의 경계를 말할 때 쓰인다. Beinart의 개념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동,서 모두 Green Line내부, 이스라엘 영토에 속한다.

 

-  Tzipi Livni  

 : 치피 리브니. 역시 청렴하고 강단지고 원칙주의자 이미지를 가졌음. 외무장관, 야당당수였음. 군사적인 이미지의 가족력. IDF에서 복무했고 꽤 중요한 임무도 맡았다고 함. 가자지구 봉쇄와 폭격, 특히 2009년 가자학살인 Operation Cast Lead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영국에서 영장이 발부되기도 함. "가자지구에 줄 건 다 줬는데?'"라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름. 이국가 해결책two-states solution을 줄곧 주장한다. 

 

 

 

 

Peter Beinart argument for why boycott only settlements' goods never made any sense. According to Beinart,

 

boycotting anything inside the green line invites ambiguity about the boycott’s ultimate goal — whether it seeks to end Israel’s occupation or Israel’s existence. (New York Times, March 18, 2012 )


But that is simply not true. The Boycott is a strategy for pressure, not a strategy of representation. If I don't buy Avocados from Israel, this is not because Israelis use avocados to oppress Palestinians. It is because I send a message that I am willing to take punitive action against Israel. The actual pressure is not a representation of the offense, just as the prison term that I would like Tzipi Livni to serve is not a representation of the crime of bombing civilians.


왜 식민촌(settlement)의 제품만을 보이콧해야하는 지에 대한 피터 바이나트Peter Beinart의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았다. 다음은 Beinart의 주장 중 일부이다.
   

Green Line 내부의 모든 것(그러니까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내 불법 식민촌settlement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덧붙임)을 보이콧하는 건 보이콧의 원래 목적 - 그것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는 것이든 이스라엘 존재 자  체를 없애려는 것이든 -을 흐린다. (뉴욕 타임즈, 2012, 3월 18일)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보이콧은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지 항의를 위한 전략이 아니다.  내가 이스라엘 산 아보카도를 사지 않는다면, 그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데 아보카도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내가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처벌적 행동을 취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실제적인 압박은 위법 행위에 대한 항의가 아니다. 내가 치피 리브니Tzipi Livni감옥에서 복역하기를 바라는 수감 기간이 그가 저지른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라는 범죄에 대한 항의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   

 

Beinart is taking advantage of the fact that the BDS movement does not offer a blueprint for a resolution in order to read into a purely strategic question, what pressure is effective, a symbolism that simply isn't there. There is no logical reason why, for example, a "Zionist BDS" of the kind Beinart envisages would not boycott high tech products made in Tel Aviv on the basis of an explicit demand that Israel return to the 67 borders.


 

Beinart는 BDS 운동이 분쟁 해결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고 있다. 어떤 압박이 효과적인가 하는 순전히 전략적인 질문을 가당치 않은 상징주의로 해석하기 위해서 말이다. 예를 들어, 베나르트가 생각하는 “Zionist BDS"가, 왜 이스라엘이 67년 국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요구에 근거하여 텔아비브에서 만들어진 첨단 제품들을 보이콧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

 

Most of the left critique of Beinart focuses on his misguided attachment to a state that is Jewish for Palestinians and democratic for Jews. I completely concurs with that critique but I think it is equally important to understand Beinart's strategy.


대부분의 좌파 비평가들은 Beinart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유대적이고 유대인들에게는 민주적인 일국가(일국가 해결책 - 이스라엘)에 엉뚱하게 집착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나도 그 점에는 완전히 동의하지만, 또한 Beinart의 전략을 이해하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For a few years now, the Reut Institute has emerged as the strategic brain of a coordinated approach to defending Israel from the international grassroots struggle against it, and most importantly from BDS, which the Reut institute dubbed a "strategic threat" to Israel. The Reut institute proposes a strategic defense based on a number of principles, of which I want to highlight three that are most important (see for e.g.: link to http://www.reut-institute.org/)


• Countering the growing grassroots solidarity with Palestinians by aping its key methods, including relying on networks, community work and division of labor between local work and global coordination.
• A big tent approaches that accepts the legitimacy of criticism of Israel, even harsh, provided that the "red line" of "denying Israel's right of self-determination" is not crossed.
• Driving a wedge between those who support BDS but are not committed to supporting full Palestinian rights and those who do. According to Reut, the latter, called "catalysts," are relatively few but have an enormous impact. They can therefore be isolated and neutralized.

 

몇 년동안 Reut Institue는, 이스라엘을 그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풀뿌리 투쟁, 특히 가장 중요하게는 BDS 운동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조직적 접근책을 내놓는 전략 두뇌로 부상했다. 그들은 BDS를 이스라엘에 대한 “전략적 위협”이라고 명명했다.  Reut Institue는 몇가지 원칙에 근거한 방어 전략을 제시했는데, 나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참조: link to http://www.reut-institute.org/)


• 점점 커져가는 팔레스타인과의 민중 연대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의 핵심 방식을 모방한다. 현지와 국제적 협동 간에 네트워크, 커뮤니티를 통해 일하고 노동을 분리하는 방식 등. 
• 이스라엘에 대한 합법적인 비판이나 더한 것도 받아들이는 대통합적 접근법을 취한다. 이스라엘의 자결권을 거부한다는 ‘마지노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BDS를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모두 지지하는 데는 열성적이지 않는 사람들과 둘 다에 열성적인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Reut에 따르면, “촉매자catalysts"라고 불리는 후자는 비교적 소수지만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분리시켜 중화해야 한다.

 

There is a lot to be said about this reactionary agenda, but it serves no purpose to deny that the Reut institute makes a reasonably good effort to provide intelligence and strategy services for a "counter-insurgency" campaign against BDS based on the familiar "winning hearts and minds" model.


 이 반동적인 아젠다에 대해서 할 말은 많지만, 말해봤자 Reut Institue가 “민심을 얻는” 그 익숙한 모델을 바탕으로 BDS에 대항하는 “내란 진압” 캠페인을 위한 영리하고 전략적인 방편을 제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In responding to his right-wing critics, Beinart effectively defended his own effort by highlighting its compliance with the Reut institute's template:



Let’s imagine you’re some left-leaning Christian denomination. You’ve recently sent some of your ministers to the West Bank and they’ve come back appalled because, well, most people who see the occupation up close come back appalled. They want to do something. Their local BDS activists tell them to boycott Israel. Their local Jewish organizational officials tell them that doing so would be anti-Semitic.

 

Right now, they have no way to oppose Israel’s occupation without opposing Israel’s existence. Zionist BDS offers them that alternative. Without it, the Jewish organizations may pressure them into not boycotting Israel this year, but every time they go back and see the settlements expanding further, they’ll be more inclined to do so. And the more they see the one state reality that settlements are creating, the more they’ll embrace for practical reasons what BDS activists embrace for ideological ones: a future that dismantles Israel as a Jewish state. (Beinart, The Daily Beast, March 20, 2012 )


 

Beinart는 우파쪽의 비평에 답하면서, Reut institute의 틀을 따른다는 점을 강조하여 효과적인 방어를 펼쳤다.

당신이 좌경의 크리스찬 계파라 치자. 당신은 최근 성직자들을 서안지구the West Bank로 파견했는데 그들은 완전히 질려서 돌아왔다. 대부분 점령을 직접 본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뭐라도 하기를 원한다. 그들 나라의 BDS 활동가들이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보이콧하라고 부추긴다. 그들 나라의 유대 단체들은 그것이 반유대주의(anti Semitic, 히틀러 이후 이 단어는 서양 지성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되었다 - 덧붙임)라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에 반대해야만 한다. 시오니스트 BDS는 그들에게 바로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이스라엘 전체가 아닌 식민촌settlement에 대한 보이콧을 의미함). 시오니스트 BDS가 없다면, 유대 단체들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체를 보이콧하지 않도록 올 한해는 어찌어찌 강제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현지에 가서 식민촌settlement가 확장되는 걸 보고 올 때마다 또 보이콧을 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리고 식민촌settlement이 만들어내는 일국가 상황의 현실을 더 많이 볼수록, 더욱 그들은 BDS 활동가들이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받아들이는 것을 실천적인 이유로 받아들일 것이다: 유대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해체되는 미래. (데일리 비스트, 2012년 3월 20일)

 

Thus, the virtue of a Boycott of the settlements that Beinart highlights is that it would drain support for BDS by separating soft supporters from the BDS leadership, offering an alternative that allows criticism of Israel but doesn't threaten it too much, and working with wavering organizations, individuals and communities in a manner that copies the BDS model. The limitation of the boycott to the settlements is a convenient branding, since it isn't material to any of Beinart's professed goals.


 그러므로 Beinart가 강조하는 식민촌settlement 보이콧의 장점은 BDS에 대한 지지를 말라붙게 하는 것이다. 온건한 지지자들을 BDS 지도부와 갈라놓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담되 너무 위협적이지는 않은 대안을 제시하며, BDS 모델을 모방한 방식으로 조직, 개인, 커뮤니티들을 뒤흔드는 것이다. 보이콧을 식민촌settlement에 제한하는 것은 편리한 이미지화작업branding(이스라엘이 잘하는 - 덧붙임)이다. 그것이 Beinart의 어떤 공언된 목표에도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I'll be charitable and accept that Beinart honestly believes that his proposed strategy can also end the occupation. It is worth noting that this is not the opinion of the Reut Institute which has no interest in ending anything.


난 Beinart가 자신이 제안한 전략이 점령 또한 끝낼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해주겠다. 이것이 어떤 것도 끝낼 생각이 없는 Reut Institute의 관점이 아니다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Surely, a credible and persistent commitment by Israel for a peace that establishes a Palestinian state and brings about an “end of conflict” would weaken the grounds of Israel's delegitimization. However, the viability of the peace process is undermined by several structural obstacles, such as the effective actions of the resistance network to sabotage it and the constitutional and political crisis within Palestinian politics. This reality necessitates an Israeli strategy to fight delegitimization within the context of political stalemate. (Eran Shayshon, The Jewish Journal, 4/27/2010)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가의 설립과 “분쟁 종식”을 가져올 평화를 믿음직하고 끈기있게 약속한다면, 틀림없이 이스라엘을 비합법화하고자 하는 토대는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 협상 과정의 생존력은 몇몇 구조적 장애로 인해 훼손된다. 예컨대, 협상을 방해하는 저항 세력의 실전적인 활동과 팔레스타인 정치권 내부의 법적, 정치적 위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정치적 교착상태라는 맥락 안에서 비합법화와 싸우는 이스라엘의 전략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 (Eran Shayshon, The Jewish Journal, 4/27/2010)


In other words, ending the occupation would be nice, but it can't be done because the Palestinians aren't ready, so let's focus on what's important, defending Israel.


즉, 점령을 끝내는 건 물론 좋지만, 팔레스타인이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으며, 그러니까 중요한 것, 즉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Beinart's proposal, if it were to put to work, would be a joint effort by deluded but honest folks and cynical strategists like Shayson. There is little chance that it would achieve even the limited goals of ending the occupation. Why? Because the strength of BDS is tied to its Palestinian leadership and the way it puts Palestinian concerns at the center of the struggle. It is this commitment that both captures the imagination of solidarity activists and creates dynamics that sidestep distractions, build unity and focus energies on effective action. The movement that Beinart proposes would be, in contrast, led by Jews and put Jewish concern at its center. Jews, however, are not those who are oppressed by Israeli apartheid. Thus, a large part of the energy and commitment that Beinart movement will have to mobilize in order to succeed will always be derivative. Beinart himself describes his key motivation as fear over the destruction of Zionism. Beinart's movement will have to mobilize primarily on the basis of that fear which is generated by BDS rather than on the basis of principles of justice that demand the end of the occupation (that is not to deny that Beinart truly finds the occupation abhorrent). Fear is a reactive driver. As long as BDS advances, such an anti-BDS movement built on fear could theoretically piggy back on it and grow as well. But if the Shayson strategy succeeded in weakening BDS, a critical mass of Beinart's activists would go home, and the occupation would continue. It's like mistaking a thermostat for a water heater.


 Beinart의 제안이 만약 실현된다면, 그건 상황을 잘못 짚긴 했지만 착해빠진 사람들과 Shayson(Reut 대가리 중 하나 - 덧붙임)처럼 시니컬한 전략가들의 합작의 결과일 것이다. 점령을 끝내기 위한 그 제한된 목표조차 달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 BDS의 힘은 그 팔레스타인 지도부,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투쟁의 중심에 놓는 방식에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대 활동가들의 상상을 잡아내면서 동시에 분산을 피하고 통합을 이루어 에너지를 효과적인 행동에 쏟는 원동력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결의이다. 반면에, Beinart가 제안한 이 운동은 유대인들이 이끌고 있으며 유대인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인종차별로 억압박는 쪽이 아니다. 그래서 Beinart운동이 성공하기 위해 동원해야하는 에너지와 결의의 대부분은 제 것이 아닐 수밖에 없다. Beinart 자신이 그의 주된 동기가 시오니즘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Beinart의 운동은 점령을 끝내라는 정의의 원칙이 아닌 BDS에 대한 두려움을 기초로 동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렇다고 Beinart가 점령을 진짜로 싫어한다는 걸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두려움은 반작용적인 동기요인이다. BDS가 세력을 키워가는 한, 그 두려움에 기초한 그러한 반-BDS 운동 또한 거기에 편승해서 자라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Shayson 전략이 BDS를 약화시키는데 성공한다면 Beinart의 활동가들의 마지막 보루가 빠져나갈 것이고, 점령은 계속될 것이다. 이건 마치 온도조절기를 온수기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willingness of the New York Times to publish such calls as well as the deep similarities between Beinart's proposal and Reut's model of counter-insurgency, this development should be taken seriously. Beinart wants to offer an alternative big tent to BDS. Criticizing the ideological premises of this effort is important. But it is also important to say to those who are still dreaming of ending the occupation and keeping a Jewish state that what they are being offered is snake oil and more occupation. While I support and prefer a single, democratic state, I have no crystal ball to predict what kind of resolution will follow if we succeed in putting on Israel unbearable pressure. But I can predict with confidence that Beinart's effort can only help entrench the occupation. That is not a step in the right direction, even if the intention is halfway decent.


 그런 요청을 실어주는 뉴욕타임즈의 의도를 생각해보건대, 또 Beinart의 제안과 Reut의 내란 진압 모델과의 깊은 유사성을 고려하건대, 이러한 경과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Beinart는 BDS에 대한 대안적인 통합안을 제시하려한다. 이러한 시도의 이념적인 전제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유대인 국가를 유지하면서 점령을 종식시키겠다는 꿈을 아직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제안받은 것은 가짜 치료제이며 더 심한 점령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나는 민주적인 일국가 체제를 선호하지만, 우리가 이스라엘에게 견디기 힘든 압력을 가하는 데 성공했을 때 어떤 해결책이 뒤따를지를 예언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하건대, Beinart의 노력은 점령을 견고하게 할 뿐이다. 그 의도가 반은 맞을 지라도 그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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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