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서울'에 해당되는 글 101건

  1. 2016.02.14 자해의 취미
  2. 2016.01.18 아름다운 일상
  3. 2016.01.13 fear eats the soul
  4. 2015.05.05 지렁이집의 호박 (1)
  5. 2015.04.27 일 년 후 서울에 있다 (4)
  6. 2014.07.10 큰그림 파라독스 (1)
  7. 2014.06.10 곰굴 재오픈
  8. 2013.06.28 최근의 조각 조각들 (2)
  9. 2012.06.04 간단한 회상 a simple reminder
  10. 2012.03.04 왕재산 1심 판결문 (추가) (5)
  11. 2012.02.27 고백의 판결(내용 수정)
  12. 2012.02.27 안팎 깔맞춤
  13. 2012.01.21 엄마와 귤 (2)
  14. 2011.12.29 보일러 아저씨와 나의 계획 (2)
  15. 2011.12.28 이런 데가 있다던데
  16. 2011.12.07 곰싸움 (3)
  17. 2011.11.23 아이들과의 대화2 (8)
  18. 2011.11.22 Hassan의 말씀 (수정중) (2)
  19. 2011.11.09 불효녀 엉엉엉 (5)
  20. 2011.10.29 아이들과 나 (2)

자해의 취미

2016.02.14 02:45 from 공간/서울

논리회로에 이상이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느라 큰 그림을 어긋내지 말고

해결하려하든가 아니면 감성회로도 들여다보든가 해야겠다

남편이 꿈을 꾸었다

차가 거칠게 달려오는 오르막 길이 있었는데

오르막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고 차들은 거칠게 달려 오기 때문에 사고가 잦은 곳이 있었다고 한다

나와 남편과 혜란언니가 그 곳을 지나는데,

내가 차가 거칠게 달려와서 사람을 쳐대는 꼴을 증명하겠다며

그 길로 씩씩하게 걸어갔다고 한다

아 나는 그렇다

모두가 다 아는 걸, 지켜보면 그냥 보이는 걸, 굳이 증명하겠다고 

차로 뛰어드는 안타까운 멍청함

모모아저씨는 자해하면서까지 증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해결도 아니고 증명을 위해, 드러내기 위해 자해하는 건 안 된다

안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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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상

2016.01.18 02:45 from 공간/서울

아침에 일어나면 돌궐 커피를 끓인다

사무실 책상이 나란히 붙어 있기 때문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일어나자마자 보통 랩탑을 켜니까

보통 일을 바로 시작한다

보통 번역을 하고 편집을 한다

나는 초벌을 하고 남편이 편집을 한다

원고가 난장판이 된다

남편은 밥을 하고 짜이를 끓이고

난 설거지를 한다

난 바닥을 쓸고 남편이 닦는다

온수매트를 샀는데 겁나 좋다

내가 말을 걸면, 남편이 관련 자료를 찾아 말을 부풀려준다

그러면 말들이 온 방을 오고 가고

뭔가 윤곽이 잡힌다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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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ats the soul

2016.01.13 08:02 from 공간/서울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극복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믿음은 불안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다


나는 나 자신은 할 수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방법을 알아서

도움을 요청했다

딱 그것만 제외한 모든 이야기들이 돌아왔다


난 또 허공에 손을

하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손을 내젓고 있었다

그랬더니 두 가지가 잡혔다


허상에 쌓여있던 악의의 간절한 손짓과

나와 같던 또다른 누군가의 손


그래서 손을 내저은 보람은 최소한 있었다, 라고

진실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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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집의 호박

2015.05.05 06:35 from 공간/서울



내가 사는 집은 지렁이집이다

지렁이가 주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전부 지렁이에게 주는데, 그러면 조금 지나서 모두가 탐내는 흙이 생기고 음식물 쓰레기는 사라진다

어느 날에는 비가 들쳐서 지렁이들이 단체로 탈출을 하는 바람에 물을 걷어내고 지렁이들을 주워담아야 했다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주는 건 좋은데, 스티로폼 박스 속에 지렁이-음식물-흙, 에서 끝나는 관계여서 고민을 좀 했다

나무를 심을까

그리고 누군가가 먹은 호박씨가 자랐다



그런데 이 호박싹은 '웃자란' 거라서 생명으로서 기능이 약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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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을 드린다


계약관계로 돈 주고 복 받는 거나, 마치 인과관계인양 배우는 노력해서 뭘 이루는 거나, 이성 안에서 분석해서 결론을 내는 것 말고, 치성을 드린다

치성은 소원이 있을 때 드린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정돈한다

여전히 헤매는 와중에 돌아보고 둘러본다

요르단의 지인들은 그걸 '추구한다'고 불렀다

독실한 무슬림인 형은 '진정한 종교인은 추구하는 거다. 그게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자유이자 의무이다'고 말했고, 무신론자 좌파인 동생은 끄덕였다


그립다

그립고 후회된다

그립고 후회되고 원망스럽고 막막하고 고맙다


다음 단계라는 데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제자리 걸음을 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랬고

지금은 여전히 그렇게 생겨먹은 데다가 작정까지 하고 한다

손을 잡아주면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게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꼭 가야하나 그 다른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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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그림 파라독스

2014.07.10 07:14 from 공간/서울


큰 그림을 보며서 동시에 중심을 지키려는 자들이

어쩔 수 없게 갖게 되는 이율배반이 있다

게다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거칠고 단단하게 그 가치를 지키려고 애써왔다면

혹은 그래서 그것을 삶의 기조로 만들기까지 했다면

그러면 그 흐름의 일관성을 위해서 그들은 때로 주변을 왜곡한다

똑같은 현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서 모든 것을 바꾼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굉장히 인간적인 왜곡, 뒤틀림을 말하는 거다

때로는 보상심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진실로,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그동안 지켜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 때문에 그렇기도 한다

그래서 중심을 지키기 위해 그 중심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 얘기를 쓰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기억들이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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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굴 재오픈

2014.06.10 08:44 from 공간/서울



이 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냐면

진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들으면 좀 활동적일 것 같은 자취를 가지고 있지만

실은 생긴대로, 내 상식 안에서 했던 일들이고

거기에다 공감능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어서

뭔가에 도전하여 이루거나, 노력해서 얻거나, 바꿔본 경험이 없다

그렇게 해서 배운 것도 없다

그래서 머리를 두 갈래로 묶고 다니면서 아래위로 똑같이 소리를 질러대는 삼십 대 어린애였다


그런데 지난 이 년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르륵 잠겨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점점 작아져서 사라지면 딱 편할 것 같은 그런 거였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보이는 만큼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내 세상의 중심에 여전히 서서 물고기 둥지를 들여다보는 여전한 곰 같았다


무엇보다 오해, 뒤틀린 소통에 대한 괴로움이 깊이 남아서

내가 노력한 만큼 겉으로는 참 괜찮은데

그 괴로움이 속에서 뭉쳐져, 단단히 굳어져, 언젠가 독이 될까봐 무서웠다

어떻게 될 지는 아직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게 되면서 할 말도 같이 잃었다

아랍어를 배우러 갔었는데, 말을 잃고 돌아왔다


평생 구경꾼의 자태로 살면서 

어찌 알아보고 찾아온 쑈꾼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걸로 내 세상을 만들어왔었는데

내가 뛰어들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자리가 눈 앞에 펼쳐지자, 나는 죽으려고 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먼저 편하고 싶었다

몸에 밴 버릇이 그렇게 스며나왔다

문득 생각나면 자다 일어나서 얼굴을 박박 긁을 수도 있는, 그런 쪽팔린 사소한 괴로움이었다

그렇게 돌같이 암만으로 돌아왔을 때

바다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다시 얼굴을 박박 긁었다


전달자와 통로는 좀 다르다

전달자는 교육자 같기도 하고 영업직 같기도 해서 취향에 안 맞지만

통로는 열리기만 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나는 조각보 보자기 같은, 통로 같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는 게 느려서 가는 길이 멀지만

가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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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습관과 능력을 관통하는

어떤 특징이란 게 있다

다부진 체격의 사람을 보면 왠지 성격이 강단질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일종의 경험치나

혹은 다윈을 모독하는 다윈주의자들의 참으로 합당한 상상력에서 나온 

골상학 등도 같은 맥락인데,


예를 들어 나는 괜찮은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지력이 있고

그런데 막상 나 자신의 본질은 개새끼고

그래서 수집품의 세부사항은 지력의 힘을 빌어 그럴 듯 하게, 하지만 결국 전체 콜렉션은 뭔가가 어설픈 쌈마이가 나오는 것.

그리고 내 몸도 그와 마찬가지로

괜찮은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기는 자기파괴적이고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딱히 문제가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센치씩 어긋나있다


내 삶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 있다

내 취향에 대해서도, 지식이나 행동 습관에 대해서도,

혹은 손가락 하나까지도 마찬가지다

끊어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지만, 막상 있다고 해서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닌

내 손가락들.


+


월요일에는 엄마와 인사동을 걸었다

엄마는 종종 작은 오리나 개구리들을 사곤 했었지만, 그날은 그냥 걷기만 했다

우리 엄마한테 이제 작고 예쁜 것들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엄마가 내게 직접 하지 못한 그 말을, 중간에서 듣게 된 좋은 친구가 전해줬다

나는 남편과 부모 사이에서, 그 둘이 아닌 또다른 물리법칙 때문에 여기로도 저기로도 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중간에서 국제미아에 과부노릇을 할 참이기 때문이다

그 전전날, 엄마는 당신이 결혼 때 받은 반지 두 개를 나에게 줬었다

징징대지 말고, 둘이 하나씩 나눠갖고, 담배 끊고, 미래를 생각하라면서.


나는 저런 사람의 딸이 될 자격이 있는걸까, 

그리고 또 저런 사람의 아내가, 저런 사람의 친구가, 저런 사람의 지인이 될 자격이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인사동을 걷다가

보자기 같은 게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개새끼로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이야, 뭘 해도 일센치 씩 어긋나는 걸...

그런데 그 와중에 보자기 같은 것도 있는 거다

길어서 잘리고 짧아서 남겨진, 그냥 모자란 것들이 모여서 된 예쁜 거.

뭔가 어긋난 넝마들을 가지고서

또 그 본질을 속이지 않고서도 만들 수 있는 

예쁘고 쓸모있는 거


+



타고난 교만이나 가식이나 분노를 눌러주는

별 거 아닌 일상적인 면역체가 있다

예를 들어, 길에서 억압된 분노를 쏟아내는 멍멍이에게는

웃으면서 '아 미안해요' 하고 가볍게 먼저 걸어오는 말이

목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자극이 일상적으로 반복 되면, 단단한 성질일지라도 뭔가 다른 모양새로 바뀌기도 하는데,

그 한 땀 한 땀을 길을 가며 우연히 만나길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게 가족이나 친구나 책이나 노래 처럼 바로 옆에서 습관처럼 주어질 때는

일종의 뜨개질이 된다

말하자면, 존재론적 보자기를 만드는 일상적인 뜨개질인 거다


나는 좋은 것들을 주변에 많이 가지고 있구나

언젠가 월급을 굉장히 많이 번 적이 있는데, 딱 그 즈음에 아팠다

그래서 그걸 전부 병원에 다니며 상담에 약에 재활에 운동에 쏟아부어야 했다

나는 그 전에도 후에도 그렇게 많은 월급을 받은 적이 없고

그 돈이 없었더라면 병원에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은 얼마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거다, 따위 속세의 교훈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우주가 하는 미묘한 뜨개질 얘기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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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대개 아련하게 떠오른다고 하는데(나도 그렇다)

어떤 일을 현재, 지금 여기에서 겪으면서도 아련한,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은 추억이 되면

가슴을 저민다

 

과거의 관성과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버린 후

나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과 악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단순한 물리법칙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은

꼭꼭 감추어져 보이지 않았었다

너무 낯설어서

나는 심지어 놀라지도 않았다

 

초겨울 목이면 겨울냄새가 났었다

술이 깰 즈음 새벽에도

새벽냄새가 났고

비가 오려고 할 때는 젖은 시멘트 냄새가 났다

지금은 가을에도, 새벽에도, 비가 올 때도

그저 춥다

 

다시 또 여름이 왔고, 내가 올해 하려던 일들은 실은

지난 여름이든가 아니면 그 전 해 여름에 하려던 것이었다

그렇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면 얼굴이 달라져 있다

남아있는 기억은 없지만

몸은 손끝에 붙은 자취까지도 떨어져나가질 않는다

그리고 어떤 노래들은 확실히,

그리고 정확히,

그 시절을 불러온다

  

 

 

 

나의 두려움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온 것이다

내 분노도 가슴이 아니라 몸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걸 참으려면 몸의 떨림이 멈출 때까지 울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리튬을 내 마음대로 끊은 것에 대한

단순한 화학적 반응이라고 한다

 

 

 

 

 

+

 

 

 

 

 

I'm dreaming about the day when I can see you there...my side

by my side

...

 

I stop to say hello

'cause I think you should know, b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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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세요..
1. 왕재산 사건 1심 판결문
2. 고철,님이 정리해주신 간단 정리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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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잡아넣는다
2. 당연히 그들은 변호인단과 함께 증거를 수집해서 논리적으로 무죄를 주장한다
3. 그 증거들을 근거로 반국가단체 결성은 무죄라고 결론이 난다(구형 최고 무기징역)
4. 대신 그들이 적극적으로 증거를 제시하고 무죄를 주장했다는 이유로(방어권 남용) 가중처벌까지 더해서, 법원은 유죄를 선고한다(1심 판결 최고 9년)
5. ......
6. 이해가 가는가?
.
.
.
.
.
.

7. 안가면 당신은 정상인.

이번 판결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판결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고백하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왕재산 사건'
놀랍도록 어처구니없는 간첩사건
언론은 이 뻔한 논리없음조차 다룰 생각이 아예,
아예 없다


민주주의를 글로 배워서 그러나...


아니지, 민주주의는 우리가 저들에게 주권을 합법적으로 내맡긴 거 맞지
그럼, 민주주의를 너무 제대로 배워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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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 깔맞춤

2012.02.27 01:11 from 공간/서울

나는 이 광고가 마음에 든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저 사람들이 따로따로 나온 컷들(예를 들어 뒷줄 가운데 있는 청년은 피자를 입에다 구겨넣고 있다)도 있는데
그게 더 좋다


스타일은 때로
표면적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소피스트들은 '자신의 철학에 맞게' 옷과 신발까지 깔맞춤을 했다고 하던데.

가끔 노숙자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왜 중국이나 한국이나 팔레스타인이나(다른 나라는 아직 못겪어봤음)
노숙자들의 패션은 그렇게나 멋진 것일까
특히 정신이 약간 나간 사람들(예를 들어 허공에 대고 말을 한다든가)의 경우가
특히 더 그렇다


+


첫단추를 잘못 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애써 묻어두었더니
나중에는 애쓰지 않아도 혼자 잘 묻혔을 뿐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거기다가 얼마나 공을 들여 둘둘 감싸고 동여매고 틀어막고
옷을 껴입히고 장신구를 달아댔는지
그걸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찾아야 할텐데
매번 여전히 '그때의' 스타일을 잃지 않은 고고한 의복들(최근 사들인!)을 입고 있으니
또 매번 그걸 벗겨내는 반복반복반복반복을 하는 중이다

내 눈이 가려져 남이 보이지 않을 때는 어찌나 당당했던지.

십자로 짓이겨져 붙어있던 눈은 떠졌는데
대신 화염을 내뿜던 입이 십자로 봉인되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뭐가 그리 두려운지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엄마아빠가 오자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내게 담요를 덮어주려는 걸 내가 싫다고 했는데,
엄마는
'가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추울까봐 그러는 거야.'
라고 하셨다

그 말,
실제로도 들어본 적 있다



+



어딜가든, 무엇을 걸치든,
내가 한 가운데 연필심을 박고 있는한
내가 걸어가는 곳마다 시커멓게 자취가 남는 건 바뀌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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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귤

2012.01.21 04:28 from 공간/서울

설거지하고 있는데 엄마가 식탁에다 귤을 까두었다
- 귤이 하나 냉장고에 남아있었어. 얼마나 외로웠을까, 먹어줘야지
하고 엄마가 말했다
최근에 베란다에 둔 배랑 사과가 맛있어서 냉장고를 확인 안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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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일러 아저씨한테 반하게 된 것은
표정 때문이었다
쫌 어디서 맞고 다닌 듯한 얼굴에 서늘하게 웃는 표정이 있는데
나는 세상에서 그거에 제일 약하다
처음 만나서 인연인 걸 알았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냥 얼굴만 보고 반한 건 처음이다
처음이어서,
가슴께에 이름표가 달려있는지 확인도 못했고
왼손 약지에 반지가 있는지도 확인 못했고
그런 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주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지,
그 전에 할 일이 있는데
지금이 나한테는 일종의 차분한 기간, 이기 때문이다

1. 우선은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5월은 되어야 새벽에도 날이 따뜻해지는데, 난 요새 추위를 많이 탄다
   그리고 새벽에 밖에 앉아있고 싶다 졸린 건 싫은데 새벽냄새는 좋다
2. 일년동안 안만났던 가까운 지인들을 먼저 만나야 한다 순서란 게 있으니까
3. 한달 묵주기도 클리어... 그 정도 노력은 해줘야 손목에 십자가를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4. 그리고서 손목에 십자가를 새긴다 빅문오빠가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타투이스트도 괜찮다고 한다
5. 줄어든 귀를 다시 늘린다 목표는 12mm,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찾아서 하는 중이다
6. 약을 먹지 않아도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을 정도로
   약을 오래 먹은 상태였으면 좋겠다
7. 주양쇼핑 지하에 있는 빵을 종류별로 다 먹어본다 싸고 크고 맛있고 나는 빵을 좋아하니까
8. 담배를 끊는다, 오늘부로 다시 끊었다
9. 돈을 모은다 모으는 게 아니라 아낀다
10. 메모를 한다

일부러 숫자를 맞춰서 10개다

보일러 아저씨,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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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돌아온 스펙타클 청년의 페북에서 퍼왔습니다
홍대에 있대요
닭발 좋아하는데.





+

이건 개새.
사진은 불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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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싸움

2011.12.07 11:28 from 공간/서울

재방송을 보는데 곰들이 마구 싸웠다

이 세상에는 마치 우주의 법칙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주스는 오렌지주스
쨈은 딸기쨈
인형은 곰돌이인형

하지만 실제 곰돌이는 무서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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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대화2

2011.11.23 07:25 from 공간/서울

열심히 노력을 한다면,
종교인인 경우, 열심히 기도를 한다면,
또는 착하게 산다면

그러면 마땅히 와야하는 결과는 뭘까

그게 공부에서는 좋은 성적이고
사회적으로는 남에게 인정받는, 소위 성공이고
건강하거나 병이 낫는 거고
큰 키, 멋진 외모,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면

좋지 않다

그냥 확률적으로, 숫자로 따져봐도
'소위' 서울대연고대를 가는 아이들의 수는,
적다. 적게 정해져있다
'소위' 변호사가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소위' 삼성에 들어가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있다. 적다
성인 남자 키 평균이 174인가라고 하던데
그 와중에 키 180이상인 근사한 남자친구가 생기는 경우는
(그것도 나는 가만히 있는데 무작정 와서는 '너같은 애는 처음이야' 하며 나를 열렬히 사랑해주는 경우는)
그냥 확률상으로 적다

그렇게 숫자로 '적게' 정해져 있는 게
기도나 노력이나 선행으로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거꾸로,
성적이 안나오거나, 몸이 아프거나, 돈이 없거나, 외모가 마땅치 않을 때는
(확률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게 되는데도)
열심히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착하게 굴지 않은,
하여튼 뭐가 돼도 자기가 잘못해서 '벌 받은' 게 되어버린다


+


실제로 그런 가치관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쪽팔려하고 비난하고 불행해하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성적이 아이들을 결정하는(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때로는 말 그대로 성적이 그 아이가 '된다'. 성적이 낮은 아이는 가치가 낮아지고, 성적이 높은 아이는 그냥 가치가 높아진다) 시스템에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적이 안나오면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 걔가 초등학교 때 어학원을 보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맞벌이를 하느라 종합학원에 보내놓고 신경을 안썼어요. 그래서 듣기가 다른 거에 비해 약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애한테 미안하고 답답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모 외국어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때 서먹서먹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부모님 직업을 거수로 답하라고 했었는데,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 등등 사이에서 단 두명이었던 자영업자(소위 '장사하시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 순간 자기 부모들이 쪽팔렸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해준 부모가.

'남자친구 키가 컸으면 좋겠어' 가 아니라, '키 180도 안되는 남자를 왜 만나?' 하는 분위기에서는
둘만 있을 때는 좋은 애인을
자기 친구들에게는 소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쪽팔려서.
그리고 '겨우 그 정도' 남자를 만나고 있는 자기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는 그냥 공부를 못하는 것 뿐이다. 엄마도 아이도 잘못된 건 없다
사실 대다수의 부모들은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이 아니다. 소위 서민이다. 그건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스스로가 분열되는 그런 기준이라면
그건 애인의 잘못이 아니다. 본인이 가치가 없어서도 아니고.
 

+


나는 잠시 길거리에서 놀았었어
지금은 강사하니까 그나마 이렇게 치마도 입고 깔끔하지만 (BGM: 야유 '우~우~')
그때는 피어싱에 문신에 머리는 지금처럼 땋고서
꽃무늬만 보면 환장해서 분리수거함 같은 데서 주운 꽃무늬들을 이렇게 막 두르고 다녔었다고

어느날 새벽에 나같은 친구들하고 헤롱헤롱 노는데
양복 잘 빼입은 새끼들하고 시비가 붙은 거야
여러분이 나 보면 알겠지만, 내가 성질은 더러워도 먼저 시비를 걸거나 하진 않아
피곤하니까!
별 일도 아닌 걸로 파출소에 갔는데
그래도 경찰, 하면 뭔가 억울하고 그럴 때 제대로 판단을 내려줘야하는 거잖아
그런데, 들어갈 때부터 대우가 다른거야
그 양복놈들한테는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 앉아서 이거 쓰세요'고
우리한테는 삿대질을 하면서 '니들은 꼴이 그게 뭐냐.' 이랬어
지나가던 개새끼는 '부모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키워놓으면 저러고 다니고...쯧쯧쯧' 이러는데
그 혀차는 소리가 얼마나 분한지 모를거다
근데 말했잖아, 별일 아니었다고
경찰새끼 한 놈이 실수를 한거지
정도껏하고 입을 다물것이지 지 말에 지가 취한거라, 이랬어
'니들 중에 서울대연고대, 아니지 모모모모 대학(이렇게 한 일고여덟개를 주워 세면서) 거기 다닌 놈들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보내주겠다'
병신
우리 중에 있었거든, 그 대학 중 하나를 다니던 애가.
코 앞에 학생증을 들이밀고는
벙쪄 있을 때 우리를 다 끌고 파출소를 걸어나왔지

(BGM: 탄성 '이야~')

왜, 통괘하냐?

(BGM: 대답 '네~')

통쾌하지
근데 봐라
이거 통쾌한 얘기가 아니야, 졸라 답답한 얘기지
만약 우리 중에 그 대학 다니는 애가 없었으면,
그럼 어땠을까?
억울하게 뒤집어 썼겠지
그럼, 대학이 우리 자신의 성품이나 그 때 있었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없지
그러니까 이건 통쾌한 게 아니야
(소위) 좋은 대학, 좋은 집안, 돈, 권력이 없으면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야

그럼 너네는 통쾌하게 살 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아니면 확률상 소위 좋다는 대학에 안가더라도 억울하게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나야 학원 강사지만.


+



나는 그래서,
언뜻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그놈의 경쟁 사회가 싫다

출발점은 엄청 불공평한 주제에
게다가 그 목표라는 것도 때로는 우스운데,
결국 모두가 확률적으로 낮은 어떤 목표를 향해가야하고,
무엇보다도 확률적으로 높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싸그리, 게다가 스스로 개새끼가 되어버리는 그게 싫다
그냥 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럽고 쪽팔리고 하찮아지는
그게 뭐야


+


...라고 애들한테 말했다
나는 애들한테는 내 고민을 거의 전부 다 얘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말고사기간이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야 했고
본문암기를 하나라도 틀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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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녀 엉엉엉

2011.11.09 12:01 from 공간/서울

우리 성당 보좌신부님은 쫌 웃기시다
미사 때마다 농담을 찐-하게 하시는데,
저번주 일요일 미사 때는 무슨 농담을 하시다가
처음 당신이 사제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쉽게 보내주셨을 거 같냐고 하시면서
'그죠? 저라도 저같은 자식은 곁에 두고 싶었을 거에요.'
라고 하셨었다
근데 이랬다:
1. 그 말을 듣고 내가 즉각 이해한 내용- <나같이 걱정되는 자식은 어디 멀리 못 보내고 어머니 당신 곁에 두고 싶을 거다>
2. 사실 보좌 신부님이 말하고자 한 내용- <나처럼 멋진 자식은 나라도 보내기 싫었을 거다>

크면서 자식들은 부모 얘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너도 커서 너같은 딸 낳아봐라>
라는 말은, 대체로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엄마는 내 (지금 생각해보면 장난같은) 결혼을 반대하면서
<네가 커서 너같은 딸 낳을까봐...>
이랬었다..
저 말을 듣고서
저렇게까지 모두 품고가려는 모성애와 희생에 감사드려야 하나,
아니면 결국 내가 저만큼이나 속을 썩였다는 말이니 죄송해해야하나,
그냥 짜증을 부려야 하나,
묘한 기분이 들었었다
젠장! 미안해 죽겠어!



+




엄마가 다시 입원을 하셨다
폐에 종양이 있는데,
우선 암은 아니고 떼어내기 좋은 위치고 뭐 하여튼
어떻게 보면 좋은 상황이다
젠장
하지만 나나 우리 친오빠 말고 다른 누가 <어떻게 보면 좋은 상황이니 힘내> 라고 말하면
죽여버릴테야.

아빠랑 엄마는 수술할 거라는 얘기를 언젠가 화요일에 듣고서도
그 주 목요일까지 나한테 얘기를 안하셨다
뭐 일부러 숨기신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아 맞다, 내가 안경을 어따 뒀었지> 하는 식으로
그렇게 이틀을 넘긴 거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따로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집에 사는데
이틀씩이나!

아빠한테, 그것도 문자로, 엄마가 수술할 거란 얘기를 듣고서 엄마한테 득달같이 전화를 했는데,
그런 나에게 엄마가 통화로 말한 내용 요약:
<사람은 다 혼자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도 결국 혼자 아프고 혼자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자기 자신을 잘 간수하는 것이 주위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러니 너도 이런 거 가지고 전화하고 방방거리지 말고,
 지금껏 아무말 안하고 있었지만 네 방 청소 좀 하고, 나갔다 들어오면 손발씻고 이 닦는 버릇을 들이고,
 엄마 없는 동안 집 어지르지 말길 바란다.>

그래서 요즘 집을 어지르지 않고, 씻고 자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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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나

2011.10.29 15:02 from 공간/서울

나는 중등부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강사는 선생님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애들앞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나' 아니면 '강사'라고 부른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내 골반을 풀어주던 선생님이 직업을 물어보시더니,
- 무서운 선생님이시죠?
하고 물어봤다
내가 벼락맞은 것처럼 놀라서
- 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학부모님인줄 알았음;;)
했더니
내 온 몸이 경직되고 굳어있다고 했다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보통 그렇다고 한다

나는 성적이 나쁜 건 본체만체 하는 편이지만,
숙제를 제대로 안 해온 아이들이 있으면 개처럼 짖는다
그렇게 세 번을 안넘기고, 그 다음에는 가방을 싸게 한다
가방 싼 애를 끌고 교무실에 가서는, 애가 보는 앞에서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서
<학습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수업을 할 수가 없으니 돌려보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보강 날짜를 통보한다
애들은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으면서 바짝바짝 굳어간다

옆 반 동료 강사가 
- 이러면 되니 안되니. 잘못했니 안했니
하고 훈계를 할 때,

- 이 개새끼 눈깔아 공부하기 싫으면 학원을 끊고 다닐거면 공부를 해 하고말고는 니네 부모님하고 쇼부를 봐서 결정할 것이지 다 큰 것들이 줏대도 없이 끌려온 것처럼 기어와서는 강사랑 기싸움 하지마 죽여버릴테다 멍멍멍
하면서 짖어댄다
특히 머리 큰 애들이 돈과 강사 비율제의 권력구도를 이미 파악하고서
'데스크에 말할 거에요' 라든가 '이런 거 엄마한테 말해도 돼요?'
(그러니까 데스크를 통해 강사에 대해 컴플레인을 하거나 학원을 그만두면, 강사에게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이용하는 거임)
이러는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아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모든 어드밴티지조차 절대 주지 않고 물어뜯는다
항상 촛점은
<네가 잘못했다>나 <반성해라>가 아니라
<네가 어떤 놈이든 나는 관심없으니 어설픈 기싸움을 신청해서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들면 죽여버리겠다>가 주제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기본적으로 포용하는 선생의 자세란 건 애초에 없다

애들은 나를 <개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평소에 애들을 개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애들이 학원얘기를 하다가 <개새> 얘기가 나오면서
지들이 같은 학원에 다닌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건 귀엽다. 예전 별명은 <미친개>였다
나는 쇠파이프나 빨래방망이(애들은 엑스칼리버라고 불렀다)로 애들을 팼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제정신일 때는 애들에게 설명하려고 애는 쓴다
애가 우두커니 버려져 있을 때
그 애의 팔을 붙들고 말을 걸지, 랩실로 쫓아버릴 지는 
나한테는 순전히 선택의 문제지만
애들에게는 삶의 문제다
나는 개싸가지같은 놈들이 아니면 대개는, 애들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가서 말을 건다

내 방 벽에는 단어시험 결과와
내 반에서만 보는 독해 복습 시험 결과를 적어두는 표가 있다
처음에는 애들이 자기 점수가 공개적으로 적힌다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발표나 대답하는 것도 꺼린다
나는 수없이 반복적으로, 나는 니들이 맞고 틀리고는 관심이 없고 내가 관심 없는 거에는 니들도 관심 끄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경을 써야하는 건 뭘 알고 뭘 모르는 지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좋은 선생님의 방향은 최소한 알고 있고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법도 최소한 알고는 있기 때문이다
애들은 서서히 벽에 붙어있는 시험 결과에 무덤덤해진다
어떤 애들은 60개 단어 시험 커트라인 54개 중에서, 열심히 해와도 30점대 후반을 지속적으로 치는 애들이 있다
표에 써진 결과에 지속적으로 30몇점이 수번 이상 반복되면
난 그 놈의 커트라인을 40개로 줄인다
대신 40개는 넘으라고 강요한다
그게 불공평하다며, 어떤 애들은 지들은 왜 54개를 넘어야 하고 어떤 애는 40개만 넘으면 되냐고 항의한다
나는, 그게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장치이고, 그런 장치가 있을 때 니들은 덕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보지는 않는 범위에 속해 있다고 말해준다
그런 게 손해가 되는 아이들은 상위 영쩜일프로나 그렇다고.
애들은 대개는 이해를 한다

한 소년은 숙제가 듬성듬성이었다
처음에는 대강 해왔다는 생각에 개처럼 짖었지만
두고 보니 그건 걔 성격이었다
그래서 애한테 숙제를 다시 설명하고 당분간 수업 끝나고 남아서 하고 가라고 했고, 소년은 동의했다
어느날 그놈 어머님이 애가 맨날 남고 늦게 온다며 상담전화를 하셨다
애는 벌벌 떨다가 나한테 뭐라고 상담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나는 그놈 엄마한테,
이놈의 현재 상태는 실력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은 시간이 걸려야 하니까 남기는 거라고 말씀드렸었다
어머님은 거듭, <그놈이 숙제를 제대로 안했나요> 하고 물어보셨고
나는 거듭, <제대로 안한 건 아니고 시간 문젭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놈은 그날 내 손을 꼭 잡았었는데,
그 의미를 미처 몰랐던 나는 그 다음 시간에 그 놈의 어떤 점을 개처럼 물어잡고 또 개처럼 짖고 개처럼 팼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렇게 쳐맞고도 그 다음에도 내 손을 꼭 잡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난 때로는 애들의 이해심이 어른들 꺼보다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은 한번 생긴 믿음을 잘 안버린다

+

그러니까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쁜 강사이기도 한 거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하는 거다
고민은 여러 지점에서 시작된다

얼마전 아무 이유없이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나를 이해하고 내 행동방식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욕>을 먹거나 내가 <화>를 내는 건 상처가 되는 거다

중3아이들은 학기가 끝났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제 고등부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한 놈이 단독 면담을 하다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야단 친 거에 비해서 너무 서럽게 울길래 교무실 문을 닫고 말을 해보라고 했다
- 야단 칠 때 욕 좀 하지 마세요
그게 첫마디였다
- 이제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그 말을 이제서야 하냐. 알았다 앞으로 1, 2 학년 애들한테는 신경쓸게
유언같던 그 말이 어찌나 가슴을 찌르던지.
또 뭐가 서운했냐고 물어봤더니
하나를 더 털어놨고
거기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아이는 눈물을 삼켰다
또 말해보라고 했더니, 이제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질을 했다
뭔가 기분이 풀린거다
대신 이제 마음껏 욕을 못하게 된 나는 왠지 뭔가 서먹서먹해져서 애를 먹었다

어쨌든 아이들의 이해심은 상상을 뛰어넘고
동시에 원초적인 화나 욕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도 상상을 뛰어넘는 게 확실하다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나쁜 강사이기도 한데
수 년째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모든 게 여전히 어려울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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