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

2011.10.29 15:02 from 공간/서울

나는 중등부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강사는 선생님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애들앞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나' 아니면 '강사'라고 부른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내 골반을 풀어주던 선생님이 직업을 물어보시더니,
- 무서운 선생님이시죠?
하고 물어봤다
내가 벼락맞은 것처럼 놀라서
- 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학부모님인줄 알았음;;)
했더니
내 온 몸이 경직되고 굳어있다고 했다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보통 그렇다고 한다

나는 성적이 나쁜 건 본체만체 하는 편이지만,
숙제를 제대로 안 해온 아이들이 있으면 개처럼 짖는다
그렇게 세 번을 안넘기고, 그 다음에는 가방을 싸게 한다
가방 싼 애를 끌고 교무실에 가서는, 애가 보는 앞에서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서
<학습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수업을 할 수가 없으니 돌려보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보강 날짜를 통보한다
애들은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으면서 바짝바짝 굳어간다

옆 반 동료 강사가 
- 이러면 되니 안되니. 잘못했니 안했니
하고 훈계를 할 때,

- 이 개새끼 눈깔아 공부하기 싫으면 학원을 끊고 다닐거면 공부를 해 하고말고는 니네 부모님하고 쇼부를 봐서 결정할 것이지 다 큰 것들이 줏대도 없이 끌려온 것처럼 기어와서는 강사랑 기싸움 하지마 죽여버릴테다 멍멍멍
하면서 짖어댄다
특히 머리 큰 애들이 돈과 강사 비율제의 권력구도를 이미 파악하고서
'데스크에 말할 거에요' 라든가 '이런 거 엄마한테 말해도 돼요?'
(그러니까 데스크를 통해 강사에 대해 컴플레인을 하거나 학원을 그만두면, 강사에게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이용하는 거임)
이러는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아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모든 어드밴티지조차 절대 주지 않고 물어뜯는다
항상 촛점은
<네가 잘못했다>나 <반성해라>가 아니라
<네가 어떤 놈이든 나는 관심없으니 어설픈 기싸움을 신청해서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들면 죽여버리겠다>가 주제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기본적으로 포용하는 선생의 자세란 건 애초에 없다

애들은 나를 <개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평소에 애들을 개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애들이 학원얘기를 하다가 <개새> 얘기가 나오면서
지들이 같은 학원에 다닌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건 귀엽다. 예전 별명은 <미친개>였다
나는 쇠파이프나 빨래방망이(애들은 엑스칼리버라고 불렀다)로 애들을 팼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제정신일 때는 애들에게 설명하려고 애는 쓴다
애가 우두커니 버려져 있을 때
그 애의 팔을 붙들고 말을 걸지, 랩실로 쫓아버릴 지는 
나한테는 순전히 선택의 문제지만
애들에게는 삶의 문제다
나는 개싸가지같은 놈들이 아니면 대개는, 애들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가서 말을 건다

내 방 벽에는 단어시험 결과와
내 반에서만 보는 독해 복습 시험 결과를 적어두는 표가 있다
처음에는 애들이 자기 점수가 공개적으로 적힌다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발표나 대답하는 것도 꺼린다
나는 수없이 반복적으로, 나는 니들이 맞고 틀리고는 관심이 없고 내가 관심 없는 거에는 니들도 관심 끄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경을 써야하는 건 뭘 알고 뭘 모르는 지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좋은 선생님의 방향은 최소한 알고 있고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법도 최소한 알고는 있기 때문이다
애들은 서서히 벽에 붙어있는 시험 결과에 무덤덤해진다
어떤 애들은 60개 단어 시험 커트라인 54개 중에서, 열심히 해와도 30점대 후반을 지속적으로 치는 애들이 있다
표에 써진 결과에 지속적으로 30몇점이 수번 이상 반복되면
난 그 놈의 커트라인을 40개로 줄인다
대신 40개는 넘으라고 강요한다
그게 불공평하다며, 어떤 애들은 지들은 왜 54개를 넘어야 하고 어떤 애는 40개만 넘으면 되냐고 항의한다
나는, 그게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장치이고, 그런 장치가 있을 때 니들은 덕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보지는 않는 범위에 속해 있다고 말해준다
그런 게 손해가 되는 아이들은 상위 영쩜일프로나 그렇다고.
애들은 대개는 이해를 한다

한 소년은 숙제가 듬성듬성이었다
처음에는 대강 해왔다는 생각에 개처럼 짖었지만
두고 보니 그건 걔 성격이었다
그래서 애한테 숙제를 다시 설명하고 당분간 수업 끝나고 남아서 하고 가라고 했고, 소년은 동의했다
어느날 그놈 어머님이 애가 맨날 남고 늦게 온다며 상담전화를 하셨다
애는 벌벌 떨다가 나한테 뭐라고 상담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나는 그놈 엄마한테,
이놈의 현재 상태는 실력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은 시간이 걸려야 하니까 남기는 거라고 말씀드렸었다
어머님은 거듭, <그놈이 숙제를 제대로 안했나요> 하고 물어보셨고
나는 거듭, <제대로 안한 건 아니고 시간 문젭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놈은 그날 내 손을 꼭 잡았었는데,
그 의미를 미처 몰랐던 나는 그 다음 시간에 그 놈의 어떤 점을 개처럼 물어잡고 또 개처럼 짖고 개처럼 팼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렇게 쳐맞고도 그 다음에도 내 손을 꼭 잡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난 때로는 애들의 이해심이 어른들 꺼보다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은 한번 생긴 믿음을 잘 안버린다

+

그러니까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쁜 강사이기도 한 거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하는 거다
고민은 여러 지점에서 시작된다

얼마전 아무 이유없이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나를 이해하고 내 행동방식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욕>을 먹거나 내가 <화>를 내는 건 상처가 되는 거다

중3아이들은 학기가 끝났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제 고등부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한 놈이 단독 면담을 하다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야단 친 거에 비해서 너무 서럽게 울길래 교무실 문을 닫고 말을 해보라고 했다
- 야단 칠 때 욕 좀 하지 마세요
그게 첫마디였다
- 이제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그 말을 이제서야 하냐. 알았다 앞으로 1, 2 학년 애들한테는 신경쓸게
유언같던 그 말이 어찌나 가슴을 찌르던지.
또 뭐가 서운했냐고 물어봤더니
하나를 더 털어놨고
거기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아이는 눈물을 삼켰다
또 말해보라고 했더니, 이제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질을 했다
뭔가 기분이 풀린거다
대신 이제 마음껏 욕을 못하게 된 나는 왠지 뭔가 서먹서먹해져서 애를 먹었다

어쨌든 아이들의 이해심은 상상을 뛰어넘고
동시에 원초적인 화나 욕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도 상상을 뛰어넘는 게 확실하다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나쁜 강사이기도 한데
수 년째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모든 게 여전히 어려울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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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2011.10.02 13:01 from 공간/서울

2008. 9. 12

주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나는 내 밖으로 세발자욱도 나가지 않아왔다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웅크리고 비집고 들어가 있어야 하는 좁은 공간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게 세상의 전부다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간단했다
그들의 방식이 가진 내용은 어려웠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일은 쉬웠다
왜 천구백몇십몇년에 어떤 나라의 어떤 지역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몇 천명, 몇 만명 단위로 죽이는 건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지를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활자로 그 사실을 읽고, 인식하고, 세상의 모든 불합리한, 불가해한 죽음과 광기들을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간단했다

게다가 아..죽음과 광기.
그게 역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랑이 있었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
그렇게 넓고, 다양하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카테고리에 포함된 듯 하면서도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랑
...
하지만 난 그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 자리에 들어갈 수많은 시간들과 상황들이
너무 개인적인 반경에 머물러 있어서
그렇듯 찜찜한 일반화된 이름을 붙이고 싶지가 않아서다

그 외부세계
죽음과 광기와 사랑으로 가득한 그곳은 내게 현실이 아니다
냄새맡고, 맛보고, 손 댈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지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지진이 일어난 곳은
내 발 밑이었다



난 억지로라도 나를 외부와 단절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전화기를 꺼두었다
한마디 해명이나 설명이면 오히려 영원히 잠잠할 수도 있었을 상황들을,
대책없고 고집스러운 침묵으로 뒤덮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던져놓은 돌에서 퍼진 파문조차 두려워서
더욱더 눈과 귀를 막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만든 외로움이 격해져서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미칠 것 같다

지각변동이 일어난 곳은 세 발자욱 안, 내 현실 속이었다

아마도 난 나자신을 더욱 좁을 곳으로 몰아넣거나,
아니면 내 세계 밖으로 밀어내서
조각조각 깊게 갈라져 무너져 내린 그 땅이 속한 곳이 내 현실 속이 아니라,
사람이 다른 사람을 천명씩 만명씩 죽이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은
저 외부세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은 것 같다

그곳에서는 재판이 일어난다
모년 모월 모일 모시, 한 사람을 죽이고, 그를 아프게 하고,
그 주변에서 애써 만들어진 아슬아슬한 균형을 무너져 내리게 만든 댓가로
변호사가 모이고, 검사가 모이고,
거쳐야 할 절차들이 나오고,
판결이 내려진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죽음을 이해하는 데 번호가 달린 절차들이 등장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곳에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꼭 잡은 속, 웃음 소리
호기심 어린 그 눈빛들도 전부 다
그곳에서는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인데도 아직 한낮인데도
코엑스 몰에 갔었다
그 많은 얼굴들, 손짓 몸짓으로 흘러다니는 감정의 에너지들,
서로 다른 관심사, 표정, 그들의 소리
거기서 들리는 간접적인 촉감
모든 것들이 너무 이해하기 쉬웠다
내겐 현실이 아닌 풍경이어서
쉽다

아니다
무너진 곳은 내 발밑이었다
내가 얼마나 망설이다가 손을 대고,
다시 한 번 대고,
촉감을 느끼고,
기억하려고 애도 쓰고,
그러다 내 얘기가 되어 내 발밑을 단단하게 지탱하게 되었던 현실이었다
아무리 눈을 막고 귀를 막고
말로 상황을 고정하려고 해봐도
현실과 풍경은 다르다
현실은 풍경이 되지 않는다

내 발밑이
조각조각조각조각 조각이 나서
깊게 갈라져서, 다 부서져 버렸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려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도로 삼켜버렸다

아 맞다
외로운 게 아니고 무서웠던 거야

내 입으로 맛보고, 내 손으로 느끼고,
그 냄새가 노랫소리에 섞여 기억으로 남는, 그런 게 현실이라면
현실에서는 한 사람이 죽었는데 번호가 달린 절차를 내밀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이상한 거잖아

나는 이 모든 게 어떻게 된건지
언제부터, 어쩌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너무 다 이상한데
그렇게 간단한 절차에 간단한 방식으로...
그렇게 간단한 게 당연해서는 안되는 거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좀 더 복잡한 설명을 해 봐.
내가 한 꼬투리 움켜쥐고 버텼던 이 믿음은
이렇게 사라지는 게 당연해서는 안되는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망각이라는 거.
지금이 되자 다시 기억이 난 게 있다
 지금 이거, 전에 겪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부들부들 떨리는 외로움과 무서움과
온 촛침소리가 다 들리는 시간의 초조함과
고통을 느끼지 않고서는 멈추지 않는 이 체할 듯한 공허함을
전에 겪은 적이 있다
어떻게, 이런 걸 잊을 수 있었을까
아니 난 어떻게 그동안 이런 느낌을 느꼈다는 것을 잊은 채로
살 수 있었던 걸까

그럼 지금 이것도 잊을 수 있는 건가
그렇겠네

토할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좋은 선물을 줘야겠다
어쩔 수 없다, 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면서
망각을 택하느라, 오랫동안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시달려 온 나 자신에게
말초적인 선물을 주자

현실의 사람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이 아픈 시간에 우연히 함께 있는 책임을 뭍고,
내 편안함을 위해 기억과 함께 사라져주길 요구하면서도,
그 엄청난 반복을 반복을 했던 추억에는 손을 내미는,
이 얕은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선물을 줘야겠다

적절한 용기가 생긴다면
내 현실 안에서 가장 낯선 사람에게 가서
물어볼 것이다



원래는 꽤나 오랫동안 가지고 다니던 질문이었다
<의미가 있을까>
난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전에 대학로를 걸어가면서 물어본 것도
같은 질문이었다
<인간이 원래 이렇다면, 예술이 문학이 문화가 무슨 소용이 있어>

난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내게 적절한 용기가 생기는 날엔
낯선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다
대신 좀 다른 말로.
<난 어떤 사람이에요, 내 얘기를 해주세요>

그가 내 얘기를 해준다면
그 사람이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면
내가 누군가의 입으로 내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이 대책없는 도망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



다 믿을게
번호가 달린 꼬리표가 붙은 게 나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말을 할 수도, 말을 들을 수도 없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고민하는 동안에는,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과 같다
난 또 반복한다




+


2011. 10. 2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있다
- 난 기억력이 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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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적인간

2011.09.23 03:20 from 공간/서울

난 버스를 좋아한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버스다
전에는 버스를 무작정 타고 아무데로나 가다가 뼈다귀해장국집이 보이면 내려서 사먹고 그랬다
서울은 무척 익숙하지만
실제로 길 하나하나 정류장 하나하나는 낯설다
모모번 버스 빼고.
물론 그 모모번 버스가 지나가는 길목 구석구석을 아는 건 아니다
사실 버스를 좋아하는 핵심이 바로 그거다
구석구석이 아니라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광경에 익숙해지는 거다
수박겉핡기의 매력이랄까

퇴근을 하면서 중간에 내린다
삼쩜오키로짜리 떡두꺼비 랩탑을 들고 커피숍에 가서 일도 하고 책도 읽고 슬슬 졸기도 한다
잡지나 각종 사이트나 책을 훑으면서 만나서 두근두근하는 것들이 생기면
메모지에 옮겨적고, 사이트를 즐겨찾기 하고, 책 귀퉁이를 접는다
그리고 또 메모를 한다
하지만 목적은 메모 그 자체라서 사실 그 노래나 글귀나 사이트들을 찾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크고 복잡하고 무서운 세상으로 가는 길목을 하나하나 수집하고서
멀리서 바라보는 거다

사람에게 가장 매력을 느낄 때는
존댓말하는 관계에 있을 때다
나는 친해지면 금새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쓰는 버릇이 있는데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쓰는 구역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리와 예의와 신뢰를 요구한다
그리고 쫌 애매한 분들은 온리 존댓말 구역에 몰아넣고
그냥 음미한다
이 때가 가장 좋다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깜깜해서 잘 안보인다
집을 옮기면 동네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가급적 빨리 주변에 있는 목욕탕(가지는 않는다), 커피숍(인터넷을 쓰려고), 마트, 버스정류장
을 알아낸 다음에
그 지점들을 잇는 최단 동선을 만들어서, 대개는 그리로만 다닌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나면 주변의 낯선 길들을 좀 걸으면서 구경을 하는데
갈 때마다 길을 잃는 편이고
구경하는 걸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대부분이 통로이고,
그래서 그동안 살았던 집들이 집으로 느껴진 적이 없고,
나는 대개는 구경꾼의 역할을 했었다
내가 십년 동안 메탈리카와 곰 얘기를 하는 건
거의 유일하게 세상에 있는 것들 중 목적지에 나 스스로 도착했던 게 메탈리카와 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머지는
스쳐지나간다
내가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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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데서나 자고다니면서 또 어디서 잘까 항상 고민하던 시기였다

참고로 따뜻한 본가가 있었지만

본가의 냉장고에서 마구 수박을 꺼내 먹기엔 나와 부모님의 생활 패턴이 너무 달랐고

생활패턴이 너무 다른 데도 마구 수박을 꺼내 먹기엔 내가 너무 수줍었던 거다

 

어느 따뜻한 오후에 길에서 지인의 지인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으나, 나는 염치없이 하룻밤만 재워달라며 매달렸다

그는,

자기의 집에는 사람을 들인 적이 없으며

자기 집 근처에도 동행한 적이 없고

아무리 친한 사람도 자기 집을 알려준 적조차 없다며

거절했다

거기서 끝내야 하는 건데

나는 계속 조르고 조르고 또 졸랐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결국 그는 친절하게도 나를 재워주기로 했는데

조건이 있었다

 

그의 조건:

1. 11시 전까지 무조건 그의 집에 입장

2.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발을 씻을 것

3. 11시 이후에는 무조건 핸드폰을 끌 것

 

나는

네,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면서 약속을 했다

 

그의 예외적인 친절과 철저한 조건을 생각해보면,

나는 그 약속을 당연히 지켜야 했다

그게 당연한 거였다

 

우선 시간을 맞춰서 그에게 연락하여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발을 씻으려는데 그 집에는 샤워기가 없고 세면대 뿐이었다

발을 씻기 위해서는

한 발씩 가슴 높이까지 올린 상태로 빡빡 깨끗이 비누칠을 하는 곡예를 해야했다

나에겐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그것도 해냈다

 

문제는 핸드폰이었는데

그 날 난 자정에 걸려올, 당시로서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돌이켜보면 짜잔한

그런 전화 한 통이 예약되어 있었다

그래서 실수를 해버린 거다

11시에 불을 다 끄고 완전 어둡게 잠자리에 든 후 한 시간 동안

난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하면서 그가 잠들었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12시에 전화가 걸려오자 잽싸게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가서

잽싸고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 별 것도 아닌 통화를 끝내고

쥐새끼처럼 살금 방문을 열었는데

 

방 안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방 한 가운데 그가 떡하고 서 있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그의 예외적인 친절! 집을 제공해줬는데! 조건이 있었는데! 세심하고도 구체적인 조건이었는데!

약속을 했는데!!

내가 그걸 망쳐버린 거다

내 심장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방 안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방 한가운데 서서,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오그라들었다

 

- 약속을 어겼어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

- 너 때문에 잠을 깼어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

- 너 때문에 잠을 깼으니 살사를 춰야해

 

..

살사를 춰야한다고 했다

나는 살사가 뭐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러자 그는 살사 스텝을 가르쳐주었다

마주보고 손을 맞잡고 앞으로 뒤로 지그재그로 하나둘 하나둘.

민망함에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는 단호하고 무자비하게 말했다

 

- 웃지마. 살사는 그렇게 추는 게 아니야. 진지하게 추는 거야

 

나는 진지하게 살사를 추려고 노력했다

그 다음은 기억이 잘 안난다

진지하게 잘 추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 밤을 보냈는지,

약속도 어기고 살사도 제대로 못췄으면서 어떻게 그에게 제대로 사과를 했는지,

안타깝지만 잘 모르겠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토록 가혹하게 살았던 나도 그런 실수를 했구나 싶다








페북 안천익 쟉이의 글을 보고 생각이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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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모트오빠 페이지에서 퍼왔다
춤같은 몸짓 Krump 다







Bratson 은 썹컬쳐(비주류문화) 놀이 프로젝트(그들의 홈페이지에 따라서)고, 춤을 추는 건 Monster Woo FAM 다
저 몸짓같은 쎈 춤은 Krump라고 한다
평소에 많이 봤던 브레이크댄스는 멋지긴 하지만 기계체조를 닮아 있어서
뭐랄까 발레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마찬가지로 느껴졌었는데,
크럼프는 좀 더 원초적인 몸짓이면서도 발작같은 맛이 있다



+


(페북에서 퍼옴)

얼마전에 어떤 교수의 문화평론을 본 적이 있다
<장기하>와 <달빛요정만루홈런>을 비교하면서,
장기하는 '싸구려커피'라는 단어를 쓴 것과 그가 '교대 근처'에 산다는(혹은 살았다는) 정보를 종합해볼 때
그렇지 않은 자가 가난을 이해하는 척하며 그것을 재밌게 표현한데다 인기까지 얻었으니 진정성이 없다고
숨어있는 계급적 관점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낸 이중적인 정서라면서,
반면 달빛요정만루홈런을 보라고, 얼마나 암울한 것을 암울하게 진짜 변두리에서 변두리 정서를 진정성 있게 담아냈냐는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그 말이 역겨웠다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하는 개인의 감상이라면 상관없다
역겨웠던 지점은, 그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일반화시켜서 문화평론이라는 틀로 문화에 '진정성'을 강요하는 그 자태다

똑같은 수준의 예를 들어주자면,
내친구 동팔이는 실제로 가난하고 노래도 잘 만드는데 
'싸구려 커피' 뿐 아니라 '막장 내인생'이라든가 '허름한 옥탑방' '물차는 화장실' '훔친 내 자전거' '천박한 우리들' 등등의 표현을 쓴다
그는 주소지가 논현동인 물차는 지하 월세방에서 살고 있으니
이제 그의 진정성을 말하자면, 마치 외부에서 평가하는 듯한 눈으로 스스로에 대해서 말할 '여유'가 있는 
이중적인 정서가 되겠다
웃기네
똑같이 모순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주장하는 펑크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인 이중성의 승리라고 말할 기세다 

또 똑같은 수준의 예를 하나 더 들자면,
꼭 화장하고 제일 화려한 옷으로 차려입고 안하던 악세사리까지 온몸에 두르고는
친하지도 않은데 친한 척 하는 한참 아래 제자를 따라서 클럽에 방문하신 모 여사(혹은 모 사장님)께서
한참을 춤 구경을 하시다가, 휘적휘적 춤을 추는 클러버들과 각기 춤을 추는 제자를 번갈아 바라보다,
'아니 얘, 춤은 그렇게 추는 게 아니야. 자유와 자기표현의 시대에 그렇게 남을 의식하는 듯한 딱딱한 춤을 춰서야 되겠니. 
좀 더 자유롭게 저들처럼 휘적휘적 추도록해. 남을 의식하면서 클럽에서 춤을 추는 건 촌스러운 이중성이야.'
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저런 강요적인 틀은 그대로 고수한 채
그 안에다가는 온갖 최신 사상, 하위문화, 대안문화, 인디문화, 새로운 트렌드, 자유, 표현, 재미, 예술, 거기다 지식까지
잔뜩 몰아때려넣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는 열려있다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 또한 대단해서
감히 반박할 수도 없다

그건 마치, 흑백논리가 만연한 세상에서 분연하게 일어나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빨강과 노랑과 파랑을 인정하라고 외쳐부르면서,
막상 흐리덩덩한 검정, 얼룩덜룩 회색, 쥐색, 컴퓨터 팔레트에 온갖 문자와 숫자로 표현되는 무채색 퍼레이드에 대해서는
빨강인 척 하지 말고 검정임을 인정하라고, 뭔가 다른 척 가식적으로 굴지 말라고,
듣는 사람 속터지게 하는 소리를 하는 
그런 거다

소위 된장녀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굳이 있다면,
혹시 있을 수 있는 그네들의 등쳐먹는 습관(오빠, 나 xx백 사줘) 때문이지
그들이 밥값을 아껴 비싼 커피를 먹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커피 맛을 알고 커피를 좋아하는데 좋은밥과 좋은커피 둘 다를 사먹을 여유가 없으면
밥값을 아껴서 커피를 즐길 수도 있는 거다
남이사 그러든말든

대단한 평론가들
참 대단한, 그놈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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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방식의 틀

2011.08.27 15:16 from 공간/서울

그렇게나 '진지함'을 강조하면서, 경계인으로 태어난 사람들마저 가식적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그 손가락들
아, 경계인의 첫째 조건은 DNA였나, 아니면 겉으로 명확히 보이는,
즉 단색이어야만 하는 거였나


그 너그러움은
흑백을 믿던 사람이 빨간색은 인정해주겠지만
그 흑색 속에 있는 다양한 파노라마를 보고서는, 가식떨지 말고 흑색임을 인정하라고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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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당신을 배신했다.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아는 그런 집단들은 의리에 민감하지.
  의리에 민감하다는 건 배신에도 민감하다는 거야
- 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
  그냥 그라서 그렇게 행동했구나, 하고 넘겼습니다

- 충격은 인과성이 깨어질 때 오는 거야
  재판이 시작될 때만해도 너희 둘은 별 생각이 없었지. 하지만 그는 재판에서 말을 바꿨어.
  결국 너를 팔아넘기고 자기는 풀려난 건데, 감옥에서의 삼년은 증오를 키우기에 충분한 시간일텐데.
- 증오를 키우기에도 충분하지만, 작은 이해가 몸에 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죠.
  그는 돈에 매달렸어요. 감옥에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던 거죠. 재능이 있는 놈이었으니까요.
  그는 나가자마자 다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고, 얼마간을 저에게 부쳤어요. 매달.

- 계좌추적은 이미 했어. 그래서 그를 공범으로 다시 잡아올만큼은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지.
  천만원을 벌어서 그 중 십만원씩 준 걸로도 만족이 되고 용서가 되던가? 웃기고 있네.
-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당신 말대로 그는 재판에서 말을 바꿨어요. 미리 말을 맞췄던 게 아니라구요. 확실히 말할까요?
  그는 날 팔아넘기는 대신에 돈을 주겠다고 했던 게 아니에요. 그냥 날 배신한 거죠.
  그런데도 그 십만원씩을 매달 부친거에요. 그 정도로 배신이 상쇄되진 않는다는 건 그가 제일 잘 알텐데요.
  삼년동안 서서히 그가 내 증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죠.

- 그럼 누가 죽였다는 거지?
-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한가지 분명한 건, 그는 어디에서나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 거고 어떤 사람은 그의 행동방식을 알아보지 못했던 거라는 거죠.
  하긴,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건 받아들이는 쪽의 문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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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2011.08.05 18:17 from 공간/서울

잘 모르는 사람이고 강렬하지 않은데
계속 생각이 난다면
사랑에 빠진건가

나는 눈보다 귀가 큰 것 같다
분명 지금도 길을 가다 그를 만나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언젠가부터 주변소리에서 분리가 됐다

꽤 한동안 그저
목소리에 익숙해졌나보다, 했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그래서 그 한동안이 쉽게 지나갔던 거였다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쪼그맣고 귀여운 할머니가 돼서
옥수수 한자루를 짊어지고 무릎이 아프게 길을 가는데
어떤 친절한 아가씨가 다가와 그 자루를 들어주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난 사랑에 빠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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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누구야

2011.07.29 06:43 from 공간/서울

처음 시작은 충고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아 대화로 시작했던 건데.

- 공감하는 건 좋지 않을까. 게다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싫다면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때, 예를 들면 예수님이라든가.

그래서 나도 대답을 하게 된 건데, 역시 첫 대답은 괜찮았다

- 예수님은 쫌 봤어. 아직 서먹한 사이지만 좋았어
  그리고 예수님한테 죽었다고 말하지마. 부활하셨어
- 성당다닌지 얼마나 됐다고!!! 실은 믿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그 맥락 속에서 곧장 고인이 된 인물들과의 소개팅 주선이 펼쳐졌는데
문제는 이 주선자 놈이 본인의 역할을 겸허하게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에 비해 절대적으로 그 인물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는데
그게 당연한게 아니라 문제거리처럼 보였나보다

- 역사나 철학을 자꾸 미감 쪽으로 가져가는 걸 보면 미학을 얘기한 철학자들도 괜찮을 거 같아. 들뢰즈라든가.
  아,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라깡도 괜찮겠다.
- 예전에 영화동아리할 때 라깡 읽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단 한페이지도 이해가 안가더라.
  무지 오래전이긴 하지만 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으니까, 지금 읽어도 이해가 안갈거야.
  그리고 하여간 그런 이름들은 들어는 봤는데 하나도 몰라. 새삼 어디서부터 봐야해. 그냥 뭉쳐놓은 진중권 책을 읽을래

그들이 낯선 떼거지라는 이유로 정중한 거절

- 막스는 읽어봤지? 그럼 그 다음은...
- 안 읽어봤어
- 헉. 이 무식한...

나도 막스의  <자본론>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그 책을 권했던 지인이 거의 빌다시피해서 내게 책을 맡겼다
굳이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 책은 책장 장식용이 되었다
그냥 단순히, 읽기 싫었다
단호한 거절

- 그럼 취향에 좀 맞게 가보자. 글쓰는 걸 보면 니체는 좋아하는 것 같고 벤야민은...
- 니체 안읽어봤어
- 니체를 안읽어봤어?
- 하나는 알아. 신은 죽었다
- 그건 니가 가르치는 애들도 다 알아!! 니체 안읽어봤어?
- 안읽어봤어. 그런데 벤야민은 누구...
- 멍청아 니체부터 읽어.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내 책장에 꽂혀있는 건 보르헤스밖에 기억이 안난다 (장르는 소설이지만, 지금 대화에 껴도 되고도 남는다)
그나마도 <찾아가는책>을 한다면서 다 길에다 뿌렸다
부질없게도

- 그렇게 무식한 줄 몰랐어. 합리적이고 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 합리적이고 지적인 거 맞아. 그냥 책을 많이 안읽은 것 뿐인데.. 그래도 음악은 많이 들었어
- 아, 음악! 지난 달 론 카터 공연 있었잖아...
- 그게 누구야
- 재즈는 별론가? 그럼 누구 좋아해?
- 메탈리카
- 메탈리카, 좋지. 스래쉬메탈 종결자. ㅋㅋ 또 누구 좋아해?
- ...메탈리카.
- ...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인데, 난 보르헤스랑 메탈리카 말고는 좋아하는 것도 아는 것도 없다
그래서 삼백보 양보하기로 했다

- 그럼 나를 잘 아는 네가 보기에, 난 어디서 독서를 시작해야할까
- 니체.
  대학다닐 때 네가 했던 말이 기억나. '나는 반항한 적이 없다'고. '반항할 대상을 인지할 수가 없었으니까 반항한 게 아니다'고.
  무지하게 반항한 주제에. 너는 술만 먹으면 엄마를 부르며 울었고, 장담하건데 너네 엄마는 맨정신에도 너를 부르며 우셨을거야.

퉁퉁 얻어맞고 푹푹 찔리고
이제 니체 책을 인터넷 주문하는 일만 남았다
돈 없는데.

근데 생각해보니,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하기만 할 뿐, 사실 전혀 모르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것 같다


(위 사건은 가능한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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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은 좀 됐으나 여전히 가슴과 정신에 불을 지르는 적절한 예시




           역사감1: 이게 바로 역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무개념 세상의 한 단면
                     (무개념 현상에 대한 담론들이며, 실제 내용은 그걸 비판하는 글들임)




            역사감2: 반면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이런 경우는, 
                        비록 내 가슴은 무너지나, 받아들일 수 있음...ㅠㅠ






+




이미지가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 역사개념까지 없으면 이 판은 난잡해질 거다. 하지만 그놈의 역사개념은 고리타분하게 조언처럼 강제적으로 다가온다. 그럼 남은 방법은.... 역시 나로서는 이야기밖에 없다. 처음엔 그게 문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문학은 너무 위에서 내려다본다. 최고의 매체가 왜그런가 했더니, 문학하는 사람들이 구석기시대 출신이라 그런거였다. 그래서 문학 말고, 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대안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페북은 너무 빠르고 트윗은 훨씬 더 빠르다. 속도감은 한번 붙으면 줄지 않는데...어디서 새로운 통로를 찾지...
    •  
      Ha-oon Kim 구석기 출신 아니면 별나라 출신. 둘다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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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짐이 많다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는 카메라가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재밌는 건 카메라를 안들고 다닐때도 짐의 양은 줄지 않는다는 거다
그건 마치 십년 전에 비해 받는 월급은 늘었고 나의 생활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은데도
항상 돈이 없는 거랑 비슷하다

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집'인데,
꿈에서 나오는 내 집은 '집'이라기보단 항상 '통로'다
말 그대로 통로에 있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문을 잠글 수 없거나
여럿이서 우물거리며 머무르는 장소거나, 그런 식이다
그것도 아니면 재개발 중이다
것도 대규모로.

꾸준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원했는데도,
내가 그동안 살던 집은 왠지 '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내 집들을 '창고' 정도로만 느꼈다
들고다닐 수 없는 것들을 부득이하게 쌓아두긴했지만, 전혀 안정감이 들지 않았다
대신 당장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방에 쟁이고
그 가방을 들고다녔다
가방은 어느정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점점 커지거나 늘어났고
허리랑 무릎은 점점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가방에 대한 페티쉬가 생기게 되고 만 것이다

      

                                               너무 깊고 각이 잡힌데다가 방수도 안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멋진 편에 속하는 가방의 예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가방을 찾기는 쉽지 않다


괜찮은 가방의 조건
1. 틀이 어느정도 융통성있는 것. 너무 형태가 고정되어 있으면 들어가는 양이 확실히 적어진다
2. 여는 통로가 많은 것. 옆에, 위에, 아래에 별도의 지퍼가 있는 게 편리하다. 크면 클수록 그게 진리다
3. 그물 주머니가 최소 한 개는 있는 것. 물통이나 우산 등, 뭔가 갑갑한 안에 넣어버리면 답답한 것을 막 집어넣을 수 있게
4. 어깨끈의 패드는 필수. 가방은 큰데 어깨패드가 없는 유명브랜드 가방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자본주의의 헛점을 볼 수 있다
5. 수납 공간은 충분히. 안그러면 지갑, 담배, 전화기, 메모지, 펜, 휴지 기타등등을 위한 가방이 하나 더 필요하게 된다
6. 예쁜 것. 항상 말하듯이, 미적감각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다


결국, 난 가방은 하나만 줄곧 들고다니는 편이라서 가방이 많을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가방 구경하는 취미를 갖게 됐다
옷이나 신발보다도, 가방을 보면서 얻는 만족감이 있다
그리고 새 가방을 살 때마다 항상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건 여행을 갈 때도 겸사겸사 쓸 수 있어'

하지만 그 가방은 여행이 아니라 일상에서 매고 다니게 된다
매일 모든 것이 든 가방을 매고 집에서 나와서
약간은 추가되고 약간은 빠지지만, 어쨌든 비슷한 모든 것이 든 가방을 매고 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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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과제물

2011.07.03 15:02 from 공간/서울


아, 나의 입장에서는 과제물이라기보단 업무라고 해야하나보다



1.
에너지의 근원은 사랑인 것 같다
사랑을 과거로 추억하면서부터 에너지가 사라졌다
그런데 사랑을 하기에는 에너지가 없다
이게 무슨 젠장맞을 상황이야

+  

2.
좌표찍기. 나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는 찾아야 한다
그 동안 믿고 있었던 나의 좌표가 사실은 둥둥 표류중인 부유물이었다는 걸 알았다
내 현실을 부정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인 적도 단 한번도 없었다
그동안 나 대체 뭐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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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꺼이 하는 취미활동이 많지 않은데,
그 중 하나가, 다음 아고라 - 즐보드 - 반려동물방,에 들어가서 동물들 사진을 보는 거다

그 훈훈하고 작은 게시판에서도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법칙들과 다양한 관점들을 볼 수 있다
싸움도 난다
'동물한테 옷 입힐 시간 있으면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나 돌아봐라'
하는 종류의 사람들도 꼭 있지만,
동물을 무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도 싸운다

종종 반복되는 일 중 하난데,
한 사람이 여자고양이 불임수술을 시켰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랬더니, '사람의 잣대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게 싫어요,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하는 답글이 붙었다
그러면, '그런 말 하는 분들은 동물 키워본 적 없죠? 특히 여아들은 불임수술이 얼마나 중요한데,' 하는 답답글이 따라온다
나도 잘 몰랐다면,
불임수술은 강아지 못짖게 하는 수술처럼 나쁜 거라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우리 봄이도 자궁축농증으로 눈을 감았다
나는 지금도 봄이를 생각하면 운다
봄이가 세상을 떠날 때 즈음 썼던 글은, 다시 보지도 못한다
강아지 불임수술을 반대했다거나 한 건 아니었고
그거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아무생각이 없었던 거였다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더라면, 일찍 불임수술을 해줬을 것이다
봄이에게 하염없이 미안하다

+

때로는 진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서 그 곳에 섰는데,
실은 알고보면 그건 '내가 잘못알았던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내가 서고 싶었던 위치도 아니고, 나답지도 않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어버릴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딱 보니까 쓰레기 같았던 것도, 실은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고, 혹은 내가 해야하는 얘기일 때가 있다
어찌 그럴 듯 한데,
알고보면 쓰레기인 쪽이 더 무섭긴 하다

+

대신, 나에게 명확한 것은 난 편견일지라도 좋아하는 편이다
편견이어서 좋다
양쪽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매모호하게 구는 건 질색이다
'개신교는 쉣이야', 라고 말했는데, '하지만 좋은 개신교도 얼마나 많은데.'라는 식의 얘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참 좋은 개신교도 많지만, 그래도 개신교는 쉣이야.'라고 말해야 한다
물론 앞뒤맥락이 있을 때의 얘기다

+

내가 어려서 배추흰나비를 잡으러 다녔던 배추밭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택시도 들어오지 않았던 동네에는, 신흥부유층을 대표하는, 이름만 대면 전국민이 다 아는 주상복합이 들어섰고
그런 변화를 겪던 어린시절에, 주변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동네에는 '구마을'이라는 데가 있었다
지금도 있다
말 그대로 '올드씨티'인 셈인데, '옆은 재개발이 돼서 고층아파트가 섰으나 여긴 아직 빌라와 다세대주택과 상가들이 있는 지역' 이라는 뜻인 거다
구마을과 아파트 단지의 차이는 없는 듯 있었다
내가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구룡마을'이란 데도 있었다
지금도 있다
사람들이 등산을 하러가는 길목에서,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고 때로는 무관심하게 때로는 호기심에 돌아보는 동네였는데
'구룡마을에도 잘 보면 외제차 고급차가 득실하더라' 
라는, 완전 거짓말만은 아니지만 어조에는 악의가 있는 얘기도 있었다
같은 반에는 구룡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이 당연히 있기 마련이었다
그애들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 중 아는 애들은,
조금은 꾀죄죄하고, 조금은 체격도 작았고,
게다가 운나쁘게도(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반에서 미운짓을 하던 애가 구룡마을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럼 그렇지'
하고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아이들도 그 모든 상황에 어른스럽게 익숙해져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라면을 끓여먹다 실수로 집에 불을 냈다는 소문이 났던 적도 있다
또, '그럼 그렇지'
하고 아이들은 다시 끄덕였다
우리를 그렇게 잔인하게 키운 것이 뭐였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최근 강남구청 앞을 지나면서
구룡마을 주민들이 공영개발을 반대하면서 당장 민영개발을 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는 걸 봤다
소복을 입고 꽹가리를 치고 더러는 드러누워 있었는데
시위치고는 다채로웠다
난 처음엔 욱, 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곧 모든 게 헷갈려졌다
그러니까 공영이니 민영이니 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그 욱, 했던 게
어렸을 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잘못 찍었던 좌표 탓인지
아니면 커가면서, 나름 노력하고 생각하면서 찍는 중인 좌표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익숙한 이름과 주제에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어서였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는 광대가 전화를 했었다
포이동에서 큰 연기가 난다고 했다
이후, 눈으로 익숙해진 주변 인물들은 포이동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
나는 눈으로 그것들을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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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밑의속삭임            by 크라잉넛(feat.심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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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뱀이나 쥐 같은 건 좋아하고
풍뎅이 류는 무서워하지 않지만
바퀴벌레, 매미, 귀뚜라미 등을 몹시 무서워한다

어젯밤 9시쯤에
집에 송아지만한 바퀴벌레가 나왔다

내가 그 바퀴벌레를 보고 숨도 못쉬고 있는 사이에
그 놈이 현관에 둘러 놓은 빨간 커텐 사이로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왠지 별 생각 없이 그게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벽 2시 정도에 그 바퀴벌레는 욕실 문 옆에 붙어 있었다
나는 또다시 숨을 못쉬고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그 바퀴벌레가 날았다
퍼덕퍼덕하는 날개 소리가 다 들렸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소리를 질렀는데
이불 밖으로 나온 팔뚝이나 등 같은 데가 얼음처럼 시린 느낌이었다

간신히 옷을 집어 입고
현관문을 열어 놓고 복도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송아지 바퀴벌레는 계속해서 욕실 옆만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형광등으로 날아들기를 반복했다
나는 토할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고 서서
그냥 이 모든 게 없던 일이 되길 바랬다

그러다가 4시가 다 되어서야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가
가방을 집어들고 나왔다
나는 본가로 가는 택시를 탔다

아픈 엄마가 아침밥을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나는 송아지만한 바퀴벌레가 있더라고, 그래서 새벽에 택시를 타고 온 거라고 했는데
아빠가 자꾸 안믿고 바퀴벌레가 아니라 매미인게 아니냐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나는 아침밥을 먹다가 새벽에 날아들던 바퀴벌레가 생각나서
몸서리를 쳤다


                                                                                                                몸서리가 쳐진다



그리고 아침내내 먹은 걸 다 게워냈다

편치 않은 엄마와 아빠가 약을 사러 가신다며 온 동네를 돌았지만
약국 놈들이 싸그리 다 문을 닫아서 한 시간 만에 빈속으로 오셨다
엄마는 잔뜩 화가 나 계셨다

오후에 나는 간신히 성당에를 나갔고
엄마와 아빠는 바퀴벌레를 잡아주겠다며 내 집으로 가셨다
예비자교리가 끝날 때쯤 아빠한테서 문자가 왔다
- 한마리 잡았음. 욕실에서 엄마가.

집에 오자 엄마는 눈에 보이는 벌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이 더 무서운 거라며
외출했다 돌아오면 꼭 손발을 씻고 몇번이고 양치를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두 분다 바퀴벌레는 이정도 크기였다면서
손가락 한마디를 들어보이셨다
장담하건데, 그거 네 배는 되고도 남는다


 

                      이거다 이렇게 생겼다..우리집 바퀴는 미국바퀴. 미제는 덩치가 다 크다. 제발 오지마 다시는 오지마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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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K씨(본명)와 라이오넬씨(가명)와 써니씨(가명)를 만났다
나름 K씨의 총각파티였는데
우리는 원래 술을 왕창 먹고 노래방으로 마무리를 하고 해가 뜨면 집에 가는 코스를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어제도 잘 지켰다

그리고 어제는 건강문제로 참고 참고 참았던 술을 몇 개월 만에 마셔버린 대신에,
서울이 절대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몇몇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1. 러시아의 자존심

구소련의 KGB가 개발했다던가 밤늦게까지 영업하고 아침일찍 출근하면서 먹었다던가 하는
숙취해소 알약인데,
made in Russia라고 확고하게 적혀있고
이름도 Russia Identity의 앞글자를 조합한 <루스-아이디>다
포장 앞면에, 러시아 광대복장 같은 걸 입은 눈 풀린 아저씨가 그려져 있는데
손으로 마법을 부리고 있다
그게 아마도 숙취해소 마법인 듯 하다

최근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인생의 전환을 이룬 라이오넬씨가 스스로에게 임상실험 중이었는데,
우리는 모두 그 디자인과 효력에 감탄을 감탄을 쏟아냈지만
써니씨는 그런 우리를 비웃으면서,
몇년 전인가 종로에서 술에 잔뜩 취했을 때 내가 오빠에게 줬던 그 약이 바로 그 약이라며
심지어 인터넷으로 박스채로 구입한 것이 지금까지도 집에 있다고 말해줬다

실무자보다 얼리아답터가 항상 앞서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고,
우리 삶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러시아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에도 러시아의 뜬금없는 멋진 그림들과 멋진 문학들과 멋진 사진작품들에 감탄을 한 적이 많았는데
이 약은 이름과 디자인에서 뭐랄까,
앞서간다





2. the Key Maker

이 표현은 K씨가 단지 홀로 인용해서 써오던 단어였다
K씨는 애플빠인데
나는 요즘 한번 사면 세계 어디에서나 쓸 수 있다는 아이폰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스마트폰 자체가 부담스러운 애매한 상태라서
K씨의 아이폰에 관심을 보이다가
화제가 예전에 맛이 갔던 K씨의 맥북으로 옮겨갔고
- 그래서 맥북은 어떻게 됐어요?
하는 나의 무심한 질문에
- 그거 고쳤어요. 키 메이커를 찾아냈거든요.
라는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출처는 <매트릭스 3>라고 하는데(나는 안봤다),
거기에 절대 열쇠를 만드는 Key Maker가 나온다고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은 골방에 틀어박혀 있고,
어딘가 사교성에 문제가 있으며,
당연히 중국인이다

K씨가 말한 키 메이커는 신촌에 있다
간판도 없는 골방에 있고
성격이 더럽고 문 닫고 싶을 때 문을 닫고 모든 공휴일을 챙겨 쉬며
전화도 잘 안받는 아저씨인데,
모든 종류의 맥북 고장을 다 고쳐낸다고 한다
K씨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그 아저씨를 찾아내서 말도 안되게 그 맥북을 고쳤다는 거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나 중국 뒷골목에서나 있을 것 같은 헛점, 그 구멍, 그 신비로운 틈이 서울에 존재하다니!
나는 박수를 안 칠 수가 없었다




3. 무한상사 싱크로율 100%

영어강사로 순조로운 첫발을 디뎠던 라이오넬씨는
원래 공무원시험을 준비중이었고
수학이나 영어보다는 도덕과 체육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을 그만두고 공무원시험을 마저 준비할까 영업전선에 뛰어들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매우 값진 스시 뷔페를 제공하면서
- 자식이 어렸을 때 나이키 따위를 사주는 건 필요없어요. 보다 나이가 들었을 때 학비를 척척 대주고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공무원이 최고야!
라고 조언을 했었는데,
그는 스시 뷔페와 나의 조언을 둘 다 감사히 여기면서,
하지만 영업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현재는 멋진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다

우리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아침 6시에 헤어졌을 때, 그는 당일날 팀장님 딸 돌잔치를 가게 되어 있었다
팀장님 딸 돌잔치 뿐 아니라 
부장님 사촌의 결혼식, 이사님 당숙고모의 팔순잔치, 누구의 사촌의 팔촌의 발가락까지 챙겨야 한다는데,
예를 들어 노래방에 가면 충청도 출신의 부장님께서는 동선도 애매한 곳에 앉아계시면서
말단 직원들이 딸랑딸랑 불러제끼는 재롱잔치를 배경음악 삼아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이사람 저사람과 나누다가
때가 되어 누군가 미리 예약해둔 <충청도 내고향>인지 <내고향 충청도>인지의 전주가 깔리기 시작하면
- 어허, 또 이노래야? 그럼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나가서 열창을 하신다고 한다
그러면 모두들 자리를 박차고 나가 부장님의 앞, 뒤, 옆, 사방에서 각자의 포즈를 잡으며
손뼉을 치고 탬버린을 치고 화음을 넣고 박자를 맞추는데,
그게 또 한 번은 부장님의 고향인 대전으로 가는 당일치기 여행이었고
산행을 좋아하는 단 한 사람, 바로 부장님을 위해 대전의 모 산을 당일치기로 오르기 시작해서
모두들 기어서 정상에 올라갔을 때
- 정상에 오니 좋지 않나
라는 한마디가 떨어지자, 역시 기어가던 모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장님의 앞, 뒤, 옆, 사방팔방에서
- 그럼요 역시 정상의 공기는 상쾌해
를 외치는 식이라고 했다

나는 나름 개인사업자인데
앞으로는 좀 힘든 일이 있더라도 좀 참기로 마음먹었다
곰티비 무한도전 재방 중에서 <무한상사 야유회> 편의 평점이 왜 그리 높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


나한테 한국은 서울의 이미지가 크다
그래서 굳이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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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요즘 자전거를 타신다
살래살래 타는 게 아니라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양평이나 철원 같은 데를 팔구십 킬로씩 뛰고 오신다
과천이나 분당은 뭐랄까,
냉면 한그릇 먹으러 가볍게 갔다오는 정도

자전거 타는 데도 뭔가 요령과 규칙이 있다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음이 불편할 때는 자전거를 타서는 안된다'
는 거고, 또 하나가
'장애물을 만나면 반드시 직각으로 넘어갈 것'
이라고 한다

최근 엄마한테 당신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불편할 일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뉴스에도 보도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마음을 풀려고 아빠랑 자전거를 타고 분당을 갔던 거다
그리고 길에 작은 호스가 늘어져 있었던 거고
그걸 직각으로 넘지 못하고 비스듬히 미끄러졌던 거고
호스와 함께 밀려가면서 핸들이 180도 돌아갔고, 엄마 가슴을 쳤다

그래서 분당으로 가던 하천 공원길에서
아빠랑 다친 엄마는 도란도란 상의를 하신거다

- 119를 부를까
- 정신도 멀쩡하고 피도 안나는데 뭘. 그냥 슬슬 올라가보지 뭐
- 하긴 이런 일로 119를 부르기도 좀 그러네. 그럼, 나는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올까
- 그럼, 아빠가 자전거를 위에다 올려놓으면 난 길가에 가만히 앉아 있을께
- 그럼, 혹 택시가 올지도 모르니 여기 삼만원.
- 그럼 잘 다녀오세요

그렇게 착하고 합리적인 대화 끝에
아빠는 자전거를 도로 타고 차를 가지러 집으로 가시고
엄마는 길가에 오도카니 앉아계셨던 거다

(얘기를 듣다가 나는 속이 터졌다... 젠장!! 119를 부르란 말이야!! 119!! 119!!)

나조차 보기 답답한 그 자태를 부처님 하느님 알라님이 보시고
차도 안다니는 모중학교 뒤 그 골목 하천가에
착한 택시 기사분을 보내주셨다
그 아저씨는,
1. 엄마를 위해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싣고 엄마를 태우고
2. 차를 서울 우리가족 단골병원인 세브란스병원까지 살살 몰아주셨고
3. 심지어 미터기에 나온 요금만 받으시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갈비뼈 3개가 골절이었다
팔은 인대가 뒤틀렸는지
엑스레이를 찍다가 통증으로 졸도를 하셨다
엄마가 눈이 천천히 뒤집히면서 정신줄을 놓더라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빠는 분명 많이 놀라셨던 거다

나는 어찌나 착하고 합리적이면 119를 부를 줄도 모르는 우리 부모님이,
아빠는 안좋은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사하셨다는 것과
엄마는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앉아있고 택시를 타고 오는 도중에 부러진 갈비뼈가 다른 장기를 건드리지 않은 것과
경기-서울 따블을 불러도 잘 안가는 요즘엔 착한 택시아저씨가 요정처럼 등장해서 엄마를 구해준 것이
진실로 감사했다

엄마는 오른팔이나 다리가 멀쩡하셔서
돌아다닐 수도 있고 씻을 수도 있고
다만 기침할 때만 힘들어하신다
나는 본가에 가서 내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고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처음에는 너무 우울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가만히 엄마 옆에 딱 붙어앉아 있었다
아빠는 동네 상가에서 뼛국을 사가지고 오셨고
저녁에는 친구분들이랑 민어회를 드시고 오셔서, 피부에 밤나무 가지가 좋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우리는 언제 한번 경동시장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완전 사랑스런 우리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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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의 폐해

2011.05.12 07:42 from 공간/서울


지인들이 해방촌으로 이사를 갔다
원래 살던 사람들은 일종의 공동생활을 했는데
나는 지나가면서 흘끗, 살짝만 봤을 뿐이지만
집을 얼마나 개판으로 썼는지,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냉동식품들까지 싸들고
원래 좋아하던 402번 버스를 타고 남산에 도착했더니
지인1은 경사진 골목에다 장판을 깔아놓고 물과 세제로 뻑뻑 닦고 있는 중이었고,
지인2는 똥이 묻은 변기가 있는 화장실을 우엑우엑하면서 다 닦았고,
지인들의 친구인, 친절한사람1은 창틀을 떼고 사방에 물청소를 했다

나도 커다란 쓰레기봉투 두 개에다가
젖어서 축축한 드랙용 복장, 깨진 형광등, 찢어진 영화 포스터, 곤봉, 휴지더미,
썩은 콜라, 썩은 상자, 썩은 비닐, 썩은 나무토막, 썩은 화분,
등등을 집어넣어봤는데,
쓰레기봉투 두 개가 꽉 찼지만 전혀 치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공동생활이라는 거였기 때문에
누가 이 지경에 책임을 져야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는 거다
이 공동생활을 운영하는 사람? 아니면 거기에 마지막으로 살던 사람? 아니면 그곳을 스쳐갔던 에브리바디?
지인1은,
- 몸으로 때우는 거면 하겠는데, 돈드는 커다란 쓰레기들이 있어요. 그건 치워주면 좋겠는데.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많이 도와주지도 못해서 얌전히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럭무럭 화가 자라났다

요즘에는 성당에를 나가기 때문에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정다운 지인들에게 복이 내리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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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블랙홀

2011.04.16 14:26 from 공간/서울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공기가 어쩌다 모이면 빙글빙글 도는 토네이도가 되고
물이 이러저러하게 힘을 받으면 회오리가 생기듯이,
과학적으로는 굳이 설명이 되지 않겠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기운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허공, 어디쯤에
기운이 몰려드는 블랙홀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라는

그런 데가 한참 허공에 있다고 치자면,
바벨탑이 무너질 때까지만 해도 안전하게 보존 되었셈이다
그 공간이 아니라 인류쪽이.
그런데 이제는 흔해빠진 고층건물 덕분에
인간의 생활 영역이 그런 기운의 블랙홀과 겹치게 됐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거기서 대부분을 시간을 보내게 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집단적인 이상한 일에 대해
어느정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별 얘기가 아니라
새로 옮긴 직장 얘기다
8층 건물의 8층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학원인데,
감정선도 이상하고, 피드백도 이상하고, 사람들도 단체로 이상하고
그냥 거기엔 이상한 규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입사한 언니뻘의 선생님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을 토로하다 보면
기운이 쭉 빠지면서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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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몸 어디가 잘못된 건지 궁금해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동시에 하려고 수면마취를 했다
우선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팔에 주사바늘을 꽂은 채로 30분 가량을 누워있어야 했는데,
난 특히 바늘이나 샤프처럼 끝이 뾰족한 것을 상당히 무서워하기 때문에
어찌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지 30분이 다 지나갈 무렵에는 바늘을 꽂은 팔에는 마비가 왔고
마취제가 들어가기도 전에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어떤 원리인지는 이해는 안가지만 왼팔에는 주사바늘이 여전히 박혀 있는데도(핏줄은 도대체 얼만큼 두껍고 얼마나 직선인걸까) 
사람들이 자꾸 그 팔을 들었다 놨다 하고

심지어 나를 왼쪽으로 돌아눕히면서 왼팔을 몸통 밑으로 쑤셔박으려고 해서
난 공포 때문에 가뜩이나 잡고 있던 마지막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수면 마취약이 들어갈 때는
팔이 뻐근했고 코에는 기분 좋은 마취제 냄새가 맡아졌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내가 간호사 한 분의 손을 더듬어 잡았던 거다

그 간호사 아가씨는 내 손을 꼭 마주 잡아 주었다

마취제라는 게 있어서 다행이다

그 사람들은 그걸 '잠꼬대'라고 불렀다
예전에 꿈에서 엄청나게 정교하고 합리적이고 어려운 인문학 공식을 만든 적이 있는데
물론 나에게는 그런 지능이 없기 때문에 잠이 깨면서 동시에 내용은 다 까먹었지만
대단한 것이었던 건 틀림없다
그러니까 분명 꿈에는 무의식 속에 파묻혀 있는 뭔가에 닿는 빙산의 일각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별 건 아니지만,
무의식이라는 공간에 어떤 원리로 이것저것들이 들어가게 되고 그 중 어떤 것들이 어떤 자태로 남게 되고
그것들이 기회가 닿을 때 어떤 자태로 표출되는 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마침 내 속에 있는 그 공간에 마침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상당히 재밌다
그러니까 매일 들고 다니던 가방 속에 웬 랜덤 포장 선물 세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두근두근 하는 거랑 비슷하다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

내 팔에 주사를 찌른 간호사인지 손을 잡아준 간호사인지 모를 아가씨가 나를 꽉 누르면서 말했다
내 체형이나 체질은 엄마를 많이 닮았는데
마취제 따위에 별 영향을 잘 안받는 엄마가 검사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나갔던 게 첫번째였고
그 딸인 내가 역시 검사가 끝나자마자 좀 더 누워있어야 한다는 간호사들의 만류에도
자꾸 일어나겠다고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쇠막대기를 흔들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적 없고, 저 나가면 안돼요?"

간호사는 안된다고 했고, 1분 있다가 다시 내가 쇠막대기를 흔들어댔는데도 짜증을 안냈다
대단한 인내심이다
나도 월급만 많이 주면 나 정도 인간은 참아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난 결국 삼 분 만에 내 발로 걸어 나왔다

하여튼 결론은 내가 수면 마취 상태에서 그 사람들이 '잠꼬대'라고 부르는 걸 영어로 했다는 건데,
난 경계가 허술한 인간이라 잠시만 영어를 쓰는 환경에 있어도 영어랑 우리말이 뒤섞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전혀 영어를 뱉을 환경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게다가 무의식 중에 영어로 하고 싶은 말같은 건 전혀 없다

그래서 너무 신기하다
난 대체 왜 무의식의 공간에 영어따위를 재어놓았을까
무엇보다 난 내가 중얼거렸다는 그 말의 내용이 알고 싶어 죽을 거 같았다
분명히 멀쩡한 상태의 내가 추측할 만한 내용은 아닐 것 같다
뭘까 뭘까 뭘까
뭘까

어차피 기억이 안나는 거라면 지어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아서
오늘은 하루 종일 그 목록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마취상태에서 굳이 영어로 말할만한 것들의 목록
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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